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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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의 여신 디케는 항상 안대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엔 날선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저울은 법의 형평성을 의미하며, 날카로운 검은 법의 엄정한 집행을 의미한다고 한다.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람들의 형편이나 권력이나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양심에 따라 판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양심과, 공평과 엄정성이 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고대인들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이러한 외국의 모습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한국적인 모습으로 바꾸겠다고 해서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안대를 하고 있지 않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는 온갖 법률 비리가 넘쳐나고 있다. 판사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였다는 말을, 적어도 재벌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에 한해서는 한국의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는 법관들조차 믿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한국에 이런 비리와 불법이 자행되는 것은 법원 앞의 디케상이 안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얼마전 연수원생들이 디케의 눈에 안대를 해 주는 퍼포먼스를 계획했던 일이 있다. 물론 선배들의 제지로 무산되었지만 이런 행위의 의미는 너무나 명확하다. 한국에서는 법원이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삼성의 특검을 통하여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법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법률은 일단 어렵다. 판결문도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읽고 난 후에 결국은 몇 년 형이라는 말만 알아들을 뿐이다.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쓰는 법률과 판결문은 일반인으로 하여금 법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시에 목숨을 건다. 일단 사시 합격이 되고 나면 인생 역전이 되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도 사시에 목숨을 걸었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을 보면서 이젠 법이 법이 아니고, 판사가 암행어사 박문수나 솔로몬이 아니라 고수입을 보장하는 하나의 직업이 되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법조인은 고수입을 보장하는 전도유망한 일류직업이다. 그러니 안대를 하고 싶어하겠는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김앤장이다.

  법률사무소 김앤장, 혹은 그냥 김앤장이라고 불리는 이름은 공적자금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도무지 나와 관련이 없는 전문용어이다. 그럼에도 이 말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부정적인 의미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삼성, 현대, 한화, 론스타, 한미은행 등등 왠만한 재벌 기업들의 일에는 꼭 김앤장이 끼어 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들이 내려질 때마다 속으로 생각해본다. "법관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정신은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냐? 어떻게 저런 판결을 내릴 수 있지?"  이 책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막연하게나마 누가 돈 먹인거 아냐, 로비한 거 아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배후로 김앤장을 지목한다. 단순한 카더라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집어가면서 배후를 지목한다. 여기에 이 책의 무서움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데블스 어드보킷이라는 영화가 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재판에서 반드시 이기는 승률 100%의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앤장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한국판 데블스 어드보킷이 바로 김앤장이 아닐까? 고객의 이익을 위하여 공정을 불공정으로 바꾸고, 수억의 돈을 쏟아부으면서 인맥을 형성하고 그것을 통하여 불법 로비를 벌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약자를 억압하고 철저하게 강한자의 편에 선다. 이게 법이고, 이런 사람들이 법조인인가? 제목도 기억이 안나는데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가운데 법조인을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저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야, 현실은 안그래 하면서 즐겨 보지 않았는데 마지막 엔딩을 어떻게 보게 되었다. 그 대사의 대략 적인 내용이 그랬다. 법관은 형평성을 가지고 판결해야 하는데 사실 완전한 공평이라는 것은 불편등이다. 완전한 평등을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이나 약자의 편으로 저울 추가 기울어 있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냉소주의다. 나만이 아니다. 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그렇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누가 디케의 안대를 벗기고 눈을 뜨게 만들었는가? 어떻게 디케의 눈에 안대를 다시 씌워줄 것인가? 이 책이 이 질문에 대한 아주 작은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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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허허 2011-12-31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데블스 어드보킷이라는 영화를 보고 김앤장을 떠올린다라... 거기 가서 엑소시즘이라도 해보시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