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93년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새도우 랜드라는 영화가 CS 루이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더욱이 섀도우 랜드가 헤아려본 슬픔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군다나 모를 것이다. 혹시 헤아려본 슬픔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루이스, 지성인이자 대학교수이자, 무신론자였던 루이스가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것은 한국에서 이어령 교수가 세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가 된 루이스는 기독교를 대변하는 최고의 변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루이스는 사랑에 관하여서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반족짜리 신앙인일 뿐이다. 기독교인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빼고 난다면 무엇이 남을까? 이런 루이스에게 조이는 당돌한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사랑을 아는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면서 기독교에 고나한 책을 쓰는가?" 이 말을 들은 루이스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말했고, 60이 다 된 나이에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조이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의 힘이 위대했는지 3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결국 조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홀로 남겨진 루이스가 자신의 슬픔을 돌아보면서 끄적거렸던 일기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너무 산만하기도 하고, 대론 문맥이 맞이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서 이 책은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슬픔에 못이긴 나머지 하나님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부정해 보기도 하면서 루이스는 좀더 성숙한 단계로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 생각이 났다.

님의 침묵(한용운)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꽃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띠끌이되야서 한숨의 微風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의追憶은 나의運命의指針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은 님의얼골에 눈멀었슴니다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녀하고경계하지 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은 슬븜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源泉을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깨치는것인줄 아는까닭에 것잡을수업는 슬븜의 힘을 옴겨서 새希望 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염녀하는 것과가티 떠날때에 다시맛날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 사랑의노래는 님의沈默을 휩싸고돔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난 뒤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에 사로잡혀 버린다. 나도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는데 그 때 같은 심정이었다.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느낌에 방황했고,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라는 회의 때문에 방황을 했었다. 정말로 기독교 신앙을 거의 포기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루이스와 같은 과정을 밟아 갔다. 세상에 대한 회의,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 그리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들, 마치 그것이 아버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 같아서 답답해 미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 ㄴ단계가 지나자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며, 내 삶을 통하여 아버지의 삶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 루이스를 만났더라면 방황을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뜻밖의 이별을 만나 놀라고 슬픔이 터지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다시 맡겨진 일을 시작한다는 한용운 님의 글과 어찌 그리 일맥상통하는지... 님을 보냈지만 그때 비로소 님을 영원히 더나보내지 않았다는 역설이 이 책의 핵심이리라. 루이스가 이후 더 정력적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별한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내가 그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더 깊이 들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슬픔의 원래 목적이 아닐런지?

  헤아려 본 슬픔을 읽는 것은 루이스의 슬픔을 아는 것임과 동시에 그의 사랑의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서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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