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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4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4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2월
평점 :
날카롭다. 서둘러 지식e 시즌 4를 펴고 읽어가면서 가장 처음 받은 느낌이다. 날선 검 하나가 비수가 되어 이 시대를 살피고 쪼개고 고발한다. 왠만한 시사 프로그램보다 더 시사적이고, 보수적인 언론들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을 철저하게 까발린다. 그래서 나는 시종일관 이 책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오직 이 책과 나 만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가운데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의 테두리 밖에서”, “세상의 결을 따라”, “다시 삶의 테두리 속으로”라는 제목을 달고 구분된 각 부분을 따라가본다.
“일상의 테두리 밖에서”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세상이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흑인 운동가, 사회적인 지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앨런 튜링”,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충만한 세상을 벗어나 자신만의 기도를 그린 “아르노 페터스”, 1%의 미적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90%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가진 재능을 디자인에 올인하는 디자이너들, 명예가 아니라 삶의 존재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무술을 택한 이소룡, 정치풍자의 달인 샤를 필리봉 이들은 시대의 이단아들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들을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했다면, 현실에 순응했다면 평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겠지만 이들은 그편을 택하지 않았다. 무모하게도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프레임을 깨는 도전을 했다. 일상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시대의 돈키호테가 되었다. 그리고 무익하고 쓸데없는 상상력이라 평가를 받았지만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첫 발걸음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 일상적인 습관에 젖어 산다. 혹은 세상의 불의를 목격하지만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하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지식e 제작팀은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런 무모함이라고 말이다. 온갖 정쟁과 말도 안되는 복잡하고 기인한 현상이 일어나는 2009년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돈키호테의 무모함이라는 말이 아닐까?
“세상의 결을 따라”라는 부분에서는 세상의 논리와 프레임을 따라 가면서 그 모순들을 고발한다. 제주 해녀의 삶, 소통 부재의 모습들, 정권에 의해 이용당하고 강제로 불임 수술까지 당한 한센인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해 가는 독일과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일본, 온갖 토론이 난무했던 민주주의의 산실 아고라, 부자가 아닌 경제적으로 소외당한 패배자들을 위한 뉴딜정책, 공포를 매개 삼아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지는 금융자본들, 다른 이들의 위기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거대 자본들,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프레임 신봉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뒤에 달려 있는 해설들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2008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수없이 많은 정책과 이슈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마치 세상의 결을 한켜한켜 벗겨내겠다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간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혹시 나는 프레임 신봉자가 되어서 이것이 삶이고, 진실이요, 불가항력이라고 나를 설득시키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그것을 묻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돈키호테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냐?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지지도 모욕도 아니다. 무관심이다. 돈키호테의 행동이 이슈가 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를 꺾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획일화 되어 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로의존성을 버리지 못한다. 반공, 경제, 학력 등 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의존성을 버리지 못한다. 세상은 이미 그것들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돈키호테가 생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건을 만드는데 나도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삶의 테두리 속으로”는 우리를 삶의 자리로 초대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초대된 우리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본 우리들이기 때문에 다시 삶의 한복판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과거의 내가 될 수 없다. 이미 나는 세상 밖을 경험했다. 돈키호테가 되어 보았고, 세상이 나에게 던져주는 경쟁의 논리와 효율성의 논리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을 주문처럼 외우고 신봉하며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던 나였지만 그것의 허구를 깨닫는 순간 나를 골리앗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다윗이 된다. 기륭전자의 복직 투쟁자들이 된다. 감자굴의 상학이가 되고, 494,011개의 꿈을 키워가는 공고생이 된다. 세상에 가장 싼 가격에 밥을 나눌 수 있는 사장님이 된다. 세상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만이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밥을 나눌 수 있다. 부당하게 쌀직불금을 받아가는 이들이 아니라, 녹색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토목 건설을 주도하는 이들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직업을 나누자면서 신입사원들의 월급을 깎는 집단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진정 내가 가진 밥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될 때 세상은 밝아질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지식e 시즌 4를 읽으면서 돈키호테를 떠올린다. 어릴 적 내 기억에 그는 우스꽝스러운 기사였다. 세상 모르는 철부지였고, 시대의 반항아였으며, 시대의 발전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했다. 그는 구닥다리가 아니다. 세상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시대의 선구자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할지라도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구닥다리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구닥다리가 한없이 소중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 부분을 적어 본다. 내 마음 속에 남은 가장 구닥다리이지만 간직해야할 이 한말을 말이다.
“스킨 스쿠버? 그게 있으면 한 사람이 백 명 일도 할 수 있다며? 근데 그렇게 하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어떻게 되나?”<물이 되는 꿈 139p>
기업과 정부의 Job sharing이라는 말보다 더 가슴에 깊숙이 박히는 말이다.
후기
1. 날카롭다. 그 날카로움이 좋다. 그러나 지난 권들에서 보여주었던 넉넉한 푸근함이 그립기도 하다.
2. 각 장의 말미에 참고 도서 목록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도서 목록을 보고 몇 권 사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다시 목록이 추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