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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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협씨는 "밖에서 본 한국사"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접해본 분이다. 밖에선 본 한국사를 읽으면서 솔직히 그분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서 비판하는 서평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다는 말로 혹평했던 기억이 있어서 만약 이 책이 그분이 쓴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나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분의 이름을 본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 비판"이라는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구매했다. 작가의 소개를 통하여 그분이 그분이었구나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열심히 읽기 시작하였지고 이분에 대하여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의 생각에 일부 동의하기도 하고 일부는 비판하기도 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이 땅에 건전한 보수(이 책에서는 합리적인 보수라 칭한다.)가 존재하는가?"이다. 언제부터인가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리뷰 100편 이상을 기록했다면 나름대로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한다. 종교에서부터 사회과학가지 닥치는대로 읽었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쯤이 아마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쯤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 놈의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기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미친 사회가 어디로 굴러가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답을 책에서 찾고자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특히 세리보고서, 사회과학서적, 경제 분야는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한다. 처음에는 버벅거리면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어느새 지금은 쉽게 술술 넘어가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 같다. 그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땅에 건전한 보수는 존재하는가?" 

  1년이 조금 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결론은 비극적이게도 이 땅에는 보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좌파도 없고, 주도파도 없고, 보수도 없다. 오직 수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 수구의 최선봉이 행정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요, 정계에서는 한나라당이요, 시민단체에서는 뉴라이트이다. 언론은 두말할 것 없이 조중동이다. 요즘 문화일보가 추가되어 조중동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황당한 사건을 겪어 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격적이고 샤프하신 목사님이 이상하리만치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편을 들면서 이명박 대통령 추종자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뭔가라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기독교 복음이 언제부터 반공이었는가 반문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내린 결론이 이 땅에 건전한 보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로 나의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은 철저하게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 운동을 하면서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둘고 양키 고 홈을 외쳐본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노당의 지지자였으며, 민노당의 체제화를 비판하면서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서 한나라당의 이야기는 정말 딴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군목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도 다분히 민족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내가 나의 생각을 펼치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좌로 몰아 붙인다. 내가 보기에 나는 지극히 보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좌로 평가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을 비판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사물화 되어 가는 것을 비판하기 대문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을 비판하기 때문일까? 

  이런 나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과연 보수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들과 전혀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당을 뽑아가면서 반공을 외치고 친미를 외치는 지인들을 보면서 황당하다 못해 말을 잃은 적이 몇번이던가? 이제는 이렇게 서평으로나마 내 할말을 할뿐이지만 말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을까? 왜 김진홍 목사님이 뉴라이트를 이끌면서 기독교가 수구 꼴통으로 인식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자기 정당성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 땅에 건전한 보수가 없는 것은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트라우마와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뉴라이트의 논리는 과거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에서 과거로 올라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아전인수와 역사적인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 자기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논리를 반공에서 찾았다. 유일한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반공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반공을 이념으로 내세우니 북한의 경제체제 붕괴와 한국의 경제적 약진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박정희와 이승만을 영웅화 한다. 그리고 이들이 받아들인 친일 인사들도 반공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과거를 용서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길러내고 이 당에 경제와 자본주의를 발생하도록 기간 시설을 마련해 놓은 일본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북한이 정반대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민족은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세계화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뉴라이트는 이것을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었을 분이고,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무식하게 노가다 정신으로 밀어 붙이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 그 본질에서는 동일하다. 그런 이들이 자신들을 건전한 보수로 선전한다. 뉴라는 말은 수구가 아니라는 자기 최면이요 가면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국민들이 잘 속는다. 왜 그럴까?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힘과 권력과 재물을 자기도 소유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되는 자위가 아닐까? 마치 여자 친구를 두고 군에 입대한 병사들처럼 말이다. 군에 입대해서 99%의 커플이 깨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1%이겠지라고 자위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가? 그 마지막은 결국 파탄이 나지만 말이다.  

  이 땅에 건전한 보수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사람들이 자신은 건전한 보수라고 국민을 기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서민이라는 애매한 말 대신 사용되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이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진짜 정치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전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20대에는 마르크스에 미쳐야 하고 30대 이후에는 보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20대에 보수에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마르크스에 미쳐있으면 그것은 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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