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속으로 3 -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사도행전 6.7장 이재철 목사의 사도행전 설교집 3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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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 접어들어서야 드디어 이재철 목사다운 설교가 시작된다. 내가 이재철 목사의 설교를 듣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철저하게 본문 중심이라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너무 작위적으로 듣기 좋은 이야기, 복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곳곳에서 성경의 본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축복의 약속이 넘치도록 선포된다. 과연 그 복은 누구를 위한 복이며, 누구 주는 복이며, 복의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복과는 상관없이 한국적인 상황에서의 복, 장수와 물질적인 풍요만 선포하는 전혀 비성경적인 설교가 얼마나 많은 강단에서 넘쳐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복의 선포를 따라서 모여들고 있는가? 삼박자 축복에 열광하고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는 말씀에 열광한다. 그렇게 많은 축복의 선포 뒤에 몇 배는 더 많은 저주의 선포가 이어짐을 애써 무시하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재철 목사는 이런 면에서 자유롭다. 지나치리만큼 회개를 강조하며 성경을 파고 또 판다.그의 설교가 묵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그의 설교는 폭이 참 넓다. 성경을 그저 성경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본이요, 인문학적인 그리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까지 동원하여 말씀을 해석하기 때문에 그의 설교는 기독교인에게도 그리고 비기독교인에게도 호소하는 능력이 크다. 사도행전 속으로는 비교적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편이지만 곳곳에서 보여지는 그의 폭넓은 시각은 참으로 존경스러우며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물론 이재철 목사의 설교가 흠이 없고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선포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 인간적인 생각이 필연적으로 끼어들 수밖에 없다. 내 판단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인다. 특별히 정치적인 상황을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서 제대로 설교하는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사도행전 속으로 3권에서는 그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교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로부터 얻게 된 기득권들과 이권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버린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 한국 교회의 잘못된 믿음을 비판한다. 예전에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일이 있었다. 그분이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기 형제들이 모이면 누구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크냐를 놓고 다툰다고 한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영어로 이야기를 한다.  

  "What's the biggest church in the worrld?"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인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교회가 가장 큰 교회인가를 다투는 한국 교회는 스데반의 설교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요, 우리의 삶의 한복판에 들어오셔서 동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무너져버릴 바벨탑을 쌓는데에만 몰두한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져 버릴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1권과 2권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3권만이라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바른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3권만큼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특히 청년들은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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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을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을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과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을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지난 여름 써니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아!!! 정말 촌스럽다. 아무리 복고풍을 표방했다지만 거의 태권V 포스터와 맞먹는 포스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이 무슨 “어린이 새농민”스러운 포스란 말인가?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녀석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순간 혹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결국 패스하고 말았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패스를 당한 것이 맞으리라. 이 영화를 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지 못했으니 패스를 당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난 영화를 참 좋아한다. 과거 신용카드 할인 초창기 시절에 하루에 3~4편씩 줄기차게 보면서 시중에 나왔던 영화를 다 섭렵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도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결혼하고도 한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나와 매주 한편씩 영화를 보고 가기도 했다. 군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그것도 코엑스까지 걸어서도 불과 30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둘째가 태어났다. 요 몇 년간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생활 패턴을 맞추었다. 그래도 나는 공적인 일 때문에 영화를 몇 편 보는 일도 있었지만 아내는 지난번 아이들을 데리고 모험하듯이 봤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근 4년 사이에 처음이었다. 솔직하게 DVD를 빌려다 보는 것도 거의 없었고, 빌려도 아이들 것이 우선이었다. 요즘도 둘째 녀석은 토마스와 친구들을 큰 녀석은 태권V를 줄기차게 틀어댄다. 간혹 어둠의 경로로 접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한 번에 앉아서 끝까지 보는 것은 어렵고 짬짬이 조금씩 끊어서 본다. 아내에 비하면 이것도 감지덕지해야할 일이다. 

  이런 삶을 살다보니까 어느새 나와 아내는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아이들이다. 밥을 먹으러 가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주로 외식이 아웃백과 신선설렁탕, 바지락 칼국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을 봐도 아이들 것으로, 외출을 해도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으로! 아이 가진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솔직하게 가끔은 허탈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아마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아내는 더하겠지? 윤동주의 시처럼 무엇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허탈함! 두 아이의 부모로 살면서 아내와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마 세월이 흘러 써니의 주인공들처럼 중년의 나이가 된다면 이러한 허탈함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보다는 서글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해 봤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 마지막으로 향하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먹먹함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았지 나는 없었던 거야” 

  한 사람이 아내로, 엄마로 그저 주어진 역할로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답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정주부들이 써니를 많이 보러 왔다는 말을 듣고 왜 그런가 했더니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아내로, 아이로 올인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자기의 인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뭐하고 싶니?”
“이 나이에 무얼..그냥 사는거지!” 

  꿈 많고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냥 산단다. 여자뿐이랴. 남자도 마찬가지다.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남편의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그러니 돈이라도 못 벌면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겠다 싶어서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이 평균적인 대한민국 기혼 남성들의 삶이 아닌가? 꿈 많던 학창 시절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배 불뚝하게 나온 아저씨로 그냥 산다. 

  이제 멈추어서 한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무얼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이들이지만 장례식장에서 함께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학창시절의 그들 못지 않게 빛났다. 그냥 살던 것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찾는 삶으로 돌아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윤동주 시인의 글귀 한 구절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남는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ps. 마지막 엔딩은 대놓고 작위적이다. 해피엔딩을 끼워넣은 것은 좋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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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지막이 작위적이어서, 맘이 편했습니다.
요즘 같아선 하두 여유가 없어서 엔딩이 슬프면 더욱 맘이 편하지 않아서
전 감사하던데요.. 그렇게 뻔히 보이는 해피 엔딩이라는 것이.

아이를 키우면 정말 자신만의 시간을 내기 어려워요, 맞아요, 그렇더라구요.
하지만 분명 얻으신 것도 있으실걸요... 남들이 부러워하는걸루 말이죠. ^^

saint236 2011-10-11 15:4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분명 얻은 것이 많지요. 그렇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일텐데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죠. 해피 엔딩이라 옥죄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죠.
 
메모의 기술 -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양장본)
사카토 켄지 지음, 고은진 옮김 / 해바라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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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억하기 위하여가 아니라 잊기 위하여 메모하라. 신선한 말이다. 보통은 기억하기 위하여 메모를 하는데 메모된 것은 메모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외우느냐 그냥 잊어버리라는 저자의 말이 허를 찌른다. 맞는 말이다. 메모한 것은 외우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외우는가? 메모한 것을 다시 들춰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하면서 가장 낭패를 당할 때가 언제냐면 매우 중요한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나갔을 때일 것이다. 혹은 아내의, 남편의 생일을 잊어먹고 지나가서 서운하게 한 적도 있을 것이다.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어느 순간 메모를 게을리하게 된 덕이다. 예전에는 다이어리에 꼼꼼하게 적고 다녔는데 요즘은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고 휴대폰의 일정 관리를 사용하다보니까 더 그렇다. 열심히 적은 일정관리도 때론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책상 한 켠에 항상 포스트 잇을 구비해두고 일이 생길 때마다 기록해서 무조건 붙여두기 시작했다. 한결 일을 하기가 수월해진다. 까먹고 지나가는 것들도 많이 줄어들고.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여기서 더 넘어가면 그것은 메모가 아니라 또 다른 일이 되어서 나를 짓누른다. 예전에 한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민다고 스티커를 사다 붙이고 색연필로 칠하고..남자인 나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다이어리 작성에 꽤 많은 공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부담이 되어 다이어리 자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사회 초년생들을 위해서 메모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 메모를 왜 하는가? 메모는 어떻게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메모를 해야 하는가? 기획서 작성을 위해서는 어떻게 메모해야 하는가? 여러가지 실용적인 팁들을 제시해준다. 분명히 귀담아 들을 말이 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에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저자가 말하는대로 하다보면 메모가 아니라 또 다른 일이 될 것 같다. 저자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그것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방법에 숙달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일을 돕기 위한 메모가 아니라 메모라는 또 다른 일에 부딪치게 된다. 

  가령 일상 생활에서의 메모도 여러가지 상황으로 나눈다. 전화할 때의 메모, 가족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기 위한 메모, 잡지를 위한 메모, 꿈 메모 등등 온통 메모가 넘쳐난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맴도는 이미지는 정확하게 어느 영화인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무엇인가 적혀 있는 "포스트 잇"이 방안 가득 들어 차 있던, 심지어는 강아지에게까지 포스트 잇이 붙어 있었던 영화의 장면이 생각난다. 이 정도면 메모하는 것도 중독이다, 일이겠다 싶다. 

  분명 읽고 몸에 익히면 도움이 될법한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특유의 과도한 친절함 때문에 책에 대한 부담감이 먼저 생긴다. 게다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은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슥슥 말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책 내지가 너무 빤질거려서 불빛 밑에서 읽기에는 불편하다. 괜히 책의 가격만 놓이려는 꼼수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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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런던 세트 - 전2권 - 버려진 것들의 도시
차이나 미에빌 지음, 김수진 옮김 / 아고라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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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고라 편집부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 만나게 된 책이다. 소설보다는 주로 인문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즐겨 있는 편인지라 이런 책이 나왔나도 잘 모르고 있다가 접하게 된 책이다. 표지가 상당히 웃긴다. 쓰레기 통이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보여 주는 것처럼 멋있게 폼 잡고 공중에 떠 있다. 그 밑으로 이상 야릇하게 만들어진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띠지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가라고 화려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런던을 덮쳤던 환경 문제가 모티브라고 하니 살짝 구미가 당긴다.  

  책을 한 장씩 넘겨가면서 가장 처음에 만나는 감정은 당혹스러움이다. 이건 뭐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어딘선가 갑자기 툭하고 이상한 캐릭터가 튀어 나오니 당황스럽다. 게다가 이 캐릭터들이 보통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어릴 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런 어수선함과 당혹스러움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거창하게 등장한 슈와찌가 도대체 하는 일이 없다. 매트릭스에서 기다리던 "네오"가 이름만 올리고 아무 것도 해 놓은 것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일의 모든 것은 '사이퍼(네오를 배신하는 역)' 혹은 '링크(우주선 조정하는 사람)'같이 비중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구원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 책이 바로 그렇다. 기대하던 슈와찌는 사라지고, 선택받지 못한 자, 이름조차 책에 올리지 못한 디바가 스모그를 물리치고 언런던을 구한다. 이 얼마나 발칙한 배신이란 말인가? 

  그것뿐이 아니다. 비장하게 죽음을 당한 카나베가 어느 순간 다른 몸을 구해서 나타난다. 반인반유령 헤미, 런던에서 퇴출당해 언런던으로 들어온 차장 존스, 런던의 파생도시이며 모든 쓰레기들이 모여 새롭게 사용되는 도시 언런던, 버려지고 못쓰게 된 우산을 병사로 부리는 망가진 우산 등등. 이 책에 나오는 태릭터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무엇인가 중요한 결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 캐릭터들은 런던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존재, 이미 사용가치가 끝난 존재이기 때문에 버려진 것이다. 이런 존재들이 모인 언런던, 무척이나 어지러울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규칙을 가지고 공존한다. 오히려 그러한 평화와 공존을 깨는 것은 가장 큰 권력과 존경을 받는 환경부 장관과 언스티처블이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버려진 것들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버려진 것들로만 이루어진 언런던은 결코 쓰레기의 나라가 아니고, 루저들의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이 더 인간미 넘치고, 더 활기차다. 뱉어진 말, 그래서 곧 사라져 버릴 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안타까워하는 곳이, 가래효과 때문에 자기가 잊혀질까 고민하는 현실보다 더 정겨운 곳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책이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 2권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이 책은 다른 방향으로 쓰임받으면 또 다른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게다가 조금 찢겨져 망가진 우산의 부하로 변했던 디바의 우산이 약간의 수리를 통하여 다시우산이 되는 것은 버려진 것들의 가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 망가진 것을 고쳐 쓰기보다는 버리고 새롭게 사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고 현명하게 생각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버려진 것들의 가치란 과연 무엇일까? 망가진 우산의 가치에 대해 디바가 다시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주변의 버려진 것들, 우리 마음 속에서 잊혀진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런던의 지리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 잘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한데 책을 펴면서 그 사건이나 영국의 지리, 혹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해서 한번씩 짚어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해준 아고라 편집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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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꼼수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혼자 헤드셋을 끼고 나꼼수를 들으며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키득거린다. 주변의 이목도 있고 해서 애써 태연한척 하지만 키득거리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가 없다. 매주 금요일 나꼼수가 업데이트 되기를 바라면서 지난 방송들을 계속 듣고 있다. 일주일동안 짬짬이 절반을 넘게 들은 것 같다. 나꼼수가 열풍을 일으키는 까닭이 무엇일까 혼자 생각해본다.  

  첫째 아마도 솔직 담백함이 아니겠는가? 어르신들의 이야기야 텔레비전을 통하여 필터링된 것만을 듣다가 이야기들을 날 것 그대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치인들에게 이런 유머와 솔직담백함이 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을 하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 위치가 있으신 분이라 솔직담백하기는 했지만 유머러스한 부분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가끔 유머라고 던진 이야기들이 구설수에 오를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음이 사실이니 말이다. 아마도 정규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이기 때문에 그런 장점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둘째 날카롭다. 언론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들어 준다. 물론 이런 내용들이 그렇게 고단수의 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주요 언론을 통하여 필터링된 정보만을 들었던 우리들에게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작업은 아직은 고단수의 작업인 것 같다. 

  셋째 정치에 대한 우리의 답답함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가카의 자상하신 배려로 그 어느때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 젊은층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민감한 것은 가카의 가장 큰 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정치적인 관심들을 충족시켜주면서 그 어느때보다 정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것이 나꼼수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니겠는가? 

  이런 세 가지 이유로 나꼼수를 열심히 듣던 중 드디어 기다리던 21회를 다운로드 받았다. 아내를 친정에 데려다주고 올라오는 길에 열심히 나꼼수를 듣고 있는데 안성 톨게이트에 왔을 때쯤 박변이 소개했던 한 에피소드를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운전을 하면서 눈물이 핑도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핑 도는 눈물 때문에 잠시 차를 멈추고 수습하고 간다. 그 에피소드는 박원순 펀드를 모집하던 가운데 펀드에 가입했던 한 시민이 보낸 사연이었다.  그 사연을 그대로 소개하면 이렇다. 이 소개를 위해서 다시 나꼼수를 듣는다. 여전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돈다.

   2년전 변호사님의 강의를 통하여 세상을 다시 보았지요. 수험생의 어미로 온갖 시름이 저의 어깨를 누르고 있을 때 저를 깊은 잠에서 깨워 주셨답니다. 덕분에 나는 나누는 삶을 조금씩 실천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답니다. 변호사님의 말씀대로 함께 따라 나서겠습니다. 인도여행 가려고 쥐고 있던 돈, 서울 시민을 위해 투자하겠습니다. 정당 없고 돈없다고 기죽지 마세요. 저 시민이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한 박변!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충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한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동생에게 "너희 대장은 이번에 어떻게 한다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존 정치인에 대해 불신이 깊던 나였기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안을 세운다면 아마도 박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별 관심없어 하는 것 같다고, 그냥 지금 하는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로 많이 놀랬다. 시민 운동을 하던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측은했기 때문이다. 처형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 양반은 안됐으면 좋겠다. 그 판에 들어가서 모진 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우려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정당도 없고, 돈도 없다. 조직이라고 있긴 하지만 시민단체 조직과 정권 획득을 목표로 전력투구하는 정당 조직과의 규모나 경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을 알기 때문에 박변을 돕기 위해 희망 제작소를 사직한 동생이 안쓰럽기도 했다. 상처도 많이 받을텐데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라 권면만 했지 마땅히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3일날도 직장에서 행사가 있기 때문에 선거인단에 지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펀드를 가입하자니 이미 내가 알았을 때는 펀드 공모가 모두 끝난 후였기 때문이다. 동분서주하는 박변 캠프의 분위기를 동생을 통해서(그렇다고 동생이 캠프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블로그나 트윗터를 통한 선거 운동을 돕고 있을 뿐이다.) 간접적으로나 건네 듣게 되었다. 돈도 없고, 정당도 없고, 그래서 무소속이 반짝하다가 사라진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이 부분은 박영선 후보의 말실수라고 생각한다) 후보 검증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사생활이, 가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까발려지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찌, 고민이 많았을지 상상이 된다. 

  그런 박변이 펀드에 가입한 한 시민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받고 집에 가서 엄청 울었다고 한다. 그런 박변의 아릿한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제부터 정치가 돈과 빽과 조직의 힘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 마음이 아프다. 돈과 빽과 조직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국민의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은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다. 펀드를 모집하면서 돈의 부재가 얼마나 아쉬웠겠는가? 캠프를 차리고 경청 투어를 하면서 얼마나 조직의 부재가 아쉬웠겠는가? 무소속이라고 한나라당에 치이고, 민주당에 치이고, 강**(나꼼수에서는 강추행이라고 지칭하는)의 저격을 받으면서 무소속의 설움을 어마나 많이 받았을까? 그런 박변의 아릿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 편지가 아닐까? 

  동생이 캠프에서 일을 하기에 박변을 지지하는 사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전에 동생을 통해서 매달 1만원이지만 희망 제작소에 기부하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박변의 시민 운동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군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가카의 정권이 시작된 후 받았던 온갖 중상 모략과 걸림돌을 지켜보면서 답답해했던 난 박변의 선택을 지지한다. 비록 그가 통합 서울 시장 후보가 못된다고 해도, 박변을 지지한다. 예전에 노사모에 저금통을 보내던 선배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박변이 가야할 길이 참 멀다. 이제 막 정치계에 입문한 그가 계속 정치인의 길을 가던지, 아니면 모든 것을 접고 다시 시민 운동으로 돌아오든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 정치적인 행보가 아니냐라는 보수 언론들의 까대기와 싸워야 할 것이고, 대선과 총선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그의 이름이 언급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꽤 구체적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진심을 왜곡당하고 힘들고 마음 고생을 많이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박변이 이 사실 하나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비록 개개인으로 보면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박변의 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조용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박변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이 사실을 기억하고 첫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의 바램대로 대한민국은 조금은 더 아름답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벌개진 눈으로 박변에게 한마디, 딱 한마디만 한다.

  "박변님! 정당 없고 돈없다고 기죽지 마세요. 저 시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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