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런던 세트 - 전2권 - 버려진 것들의 도시
차이나 미에빌 지음, 김수진 옮김 / 아고라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아고라 편집부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 만나게 된 책이다. 소설보다는 주로 인문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즐겨 있는 편인지라 이런 책이 나왔나도 잘 모르고 있다가 접하게 된 책이다. 표지가 상당히 웃긴다. 쓰레기 통이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보여 주는 것처럼 멋있게 폼 잡고 공중에 떠 있다. 그 밑으로 이상 야릇하게 만들어진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띠지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가라고 화려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런던을 덮쳤던 환경 문제가 모티브라고 하니 살짝 구미가 당긴다.  

  책을 한 장씩 넘겨가면서 가장 처음에 만나는 감정은 당혹스러움이다. 이건 뭐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어딘선가 갑자기 툭하고 이상한 캐릭터가 튀어 나오니 당황스럽다. 게다가 이 캐릭터들이 보통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어릴 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런 어수선함과 당혹스러움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거창하게 등장한 슈와찌가 도대체 하는 일이 없다. 매트릭스에서 기다리던 "네오"가 이름만 올리고 아무 것도 해 놓은 것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일의 모든 것은 '사이퍼(네오를 배신하는 역)' 혹은 '링크(우주선 조정하는 사람)'같이 비중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구원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 책이 바로 그렇다. 기대하던 슈와찌는 사라지고, 선택받지 못한 자, 이름조차 책에 올리지 못한 디바가 스모그를 물리치고 언런던을 구한다. 이 얼마나 발칙한 배신이란 말인가? 

  그것뿐이 아니다. 비장하게 죽음을 당한 카나베가 어느 순간 다른 몸을 구해서 나타난다. 반인반유령 헤미, 런던에서 퇴출당해 언런던으로 들어온 차장 존스, 런던의 파생도시이며 모든 쓰레기들이 모여 새롭게 사용되는 도시 언런던, 버려지고 못쓰게 된 우산을 병사로 부리는 망가진 우산 등등. 이 책에 나오는 태릭터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무엇인가 중요한 결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 캐릭터들은 런던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존재, 이미 사용가치가 끝난 존재이기 때문에 버려진 것이다. 이런 존재들이 모인 언런던, 무척이나 어지러울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규칙을 가지고 공존한다. 오히려 그러한 평화와 공존을 깨는 것은 가장 큰 권력과 존경을 받는 환경부 장관과 언스티처블이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버려진 것들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버려진 것들로만 이루어진 언런던은 결코 쓰레기의 나라가 아니고, 루저들의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이 더 인간미 넘치고, 더 활기차다. 뱉어진 말, 그래서 곧 사라져 버릴 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안타까워하는 곳이, 가래효과 때문에 자기가 잊혀질까 고민하는 현실보다 더 정겨운 곳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책이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 2권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이 책은 다른 방향으로 쓰임받으면 또 다른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게다가 조금 찢겨져 망가진 우산의 부하로 변했던 디바의 우산이 약간의 수리를 통하여 다시우산이 되는 것은 버려진 것들의 가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 망가진 것을 고쳐 쓰기보다는 버리고 새롭게 사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고 현명하게 생각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버려진 것들의 가치란 과연 무엇일까? 망가진 우산의 가치에 대해 디바가 다시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주변의 버려진 것들, 우리 마음 속에서 잊혀진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런던의 지리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 잘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한데 책을 펴면서 그 사건이나 영국의 지리, 혹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해서 한번씩 짚어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해준 아고라 편집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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