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는 맹자가 그의 왕도론을 전개할 때 한 말이다.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이어서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3리의 내성(內城)과 7리의 외곽(外廓)을 에워싸고 공격하지만 이기지 못한다. 에워싸고 공격을 하는 데는 반드시 하늘의 때를 얻겠지만, 이기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때가 땅의 이로움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고, 못이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굳고 이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군량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닌데 성을 버리고 간다. 이는 땅의 이로움이 사람의 화합만 못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전쟁의 승패의 요건을 첫째 하늘의 때, 둘째 땅의 이득, 셋째 인화의 세 가지로 보았으며 각각의 순서를 天時<地利<人和로 본 것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무리 기상과 방위, 시일의 길흉 같은 것을 견주어 보아도 지키는 쪽의 견고함을 능가하지 못하며, 아무리 요새가 지리적 여건이 충족된 땅의 이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지키는 이들의 정신적 교감, 즉 정신적 단결이 없으면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자의 결론은 분명하다.  


  “고(故)로 말하기를, 백성들을 국경 안에 머물게 하는 데는 영토의 경계로써 하지 않고, 위를 튼튼히 하는 데는 산과 골짜기의 험함으로써 하지 않고, 위엄을 천하에 떨치는 데는 무력으로써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도(道)를 얻는 사람은 돕는 사람이 많고 도를 잃은 사람은 돕는 사람이 적다. 돕는 사람이 적은 것이 극단에 이르면 친척까지 배반하고, 돕는 사람이 많은 것이 극단에 이르면 천하(天下)가 나에게 순종한다. 천하가 순종함으로써 친척이 배반하는 것을 치는 것이기 때문에 군자(君子)는 싸우지 않지만,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다고 할지라도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필패라는 말이다. 
 

  십자군 전쟁2권을 읽으면서 내내 맹자의 말이 생각이 났다. 1세대 십자군이 막강한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고 성지를 탈환하여 십자군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천시가 있었기 때문이며, 성채라는 지리가 있었기 때문이요 결정적으로 이슬람 세력의 분열과 광신이냐 맹신이냐, 아니면 독실한 믿음이냐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하나로 통일된 지도력 즉 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 어느 하나만 갖추어도, 특히 인화만 갖추어도 전쟁에서 패하지는 않을 것인데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으니 적진에 들어가 영토를 획득하고 십자군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2권은 천시와 지리 그리고 인화의 삼박자가 십자군에서 이슬람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창업자가 아닌 수성자의 입장에서는 더 근신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으나 십자군 진영에서는 걸출한 인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평범 이하의 사람에게 권력이 이동하고 있으니 천시를 잃어버림이요, 평범 이하의 지도자들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사람들을 이리 저리 내몰고, 현지인과의 연대를 사소한 일들로 잃어버리고, 유럽과의 연대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니 인화가 깨짐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천시가 십자군 측에 있어서 보두앵 4세가 나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혹은 나병에 걸렸지만 10년을 더 살았다면 십자군 국가의 운명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바뀌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안타까운 종말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시와 인화를 잃어버린 십자군에게 남은 것은 오직 지리뿐이다. 당시 지중해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치아와 제네바 해군의 지원을 받기 유리한 항구 도시와 곳곳에 세워진 견고한 성채가 십자군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이다. 단언컨대 누레딘의 등장과 함께 대폭 허물어졌어야할 십자군 국가들이 꽤 오랜 세월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살라딘이 등장하였지만 예루살렘을 탈환하기까지 꽤 애를 먹었던 이유도 순전히 지리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슬람 측에서는 누레딘과 살라딘 같은 걸물들의 등장, 적절한 시기에 퇴장하는 권력자들은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해주는 순전히 역사의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천시가 이슬람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또한 갈갈이 흩어져서 반목하던 이슬람이 무력이든, 성전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슬람이 인화의 이점을 얻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슬람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지리인데 이 또한 오랜 세월 십자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절대적인 불리함에서 상대적인 불리함으로 바뀐다. 비록 성채를 운용하지 못하지만 공략법을 획득하고 파괴함으로써,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의 양동작전을 통해서 해상에서의 불리함을 지상에서의 유리함으로 만회한다. 절대적인 불리함이 상대적으로 바뀌니 이제 남은 것은 천시와 인화 뿐인데 이것은 이미 이슬람 측에 넘어갔으니 십자군 국가의 몰락은 역사의 필연이라고 하겠다. 
 

  사실상 십자군 전쟁은 2권으로 끝이 났다. 3권에는 살라딘의 최대 라이벌인 사자심왕 리처드가 등장하지만 천시도 지리도 인화도 모두 잃어버린 십자군 측에서 십자군 국가를 다시 건국한다는 것은 꿈일 뿐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미 끝이 났고, 3권은 대국에 영향을 전혀 끼치지 못하는 십자군 전투만이 기록될 뿐이다. 흔히 무사의 낭만으로, 살라딘 vs 리처드의 대결로, 로빈훗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3권의 내용은 그저 십자군 전쟁을 이대로 마무리 짓기 아쉬운 십자군 측의 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3권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다지 크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십자군 국가의 몰락, 이슬람 측에서 보자면 빼앗긴 성지의 수복은 역사의 필연이기에 그다지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2권을 읽으며 한 가지 생각해 보는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대한민국은 천시와 지리와 인화를 고루 갖춘 곳인가 하는 점이다. 한동안 수출 중심 국가로 성장하던 시기에 반도형 국가는 우리에게 막대한 지리를 제공했지만 후진국을 벗어나면서(개도국이 되면서) 지리는 불리로 바뀌었다. 사실상 사방이 막힌 대한민국에서 의식의 세계화를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계몽해야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미러중일의 4대국에 끼어 있는 지리(地理)는 지리(地利)가 아니라 오히려 지해(地害)로 변한지 오래다. 가변적인 요소로 천시와 인화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천시는 어떤가? 요 몇 년 간 벌어진 세계 경제 위기는 천시가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남은 것은 가장 중요한 인화뿐인데 이 또한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좌와 우로,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서 대통령마저 반쪽짜리 대통령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니 인화 또한 그다지 기대할 만하지 못하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소위 말해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그나마 있는 인화도 산산이 부숴뜨리기에 열심이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천시와 지리와 인화를 잃어버린 국가의 운명은 몰락일 뿐이다. 과연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하는가? 역사책을 한권씩 읽을 때마다 깊은 시름이 하나씩 더 늘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자백가 시대의 재조명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1권이 나왔다. 아직 2권을 사보지는 못했지만 1권을 통하여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이해가 간다. 조금 거칠게 표현해 보자면 맑시즘의 유물론이라는 프리즘을 가지고 제자백가 시대를 조명한다고 하겠다. 원래 리뷰의 타이틀을 유물론 강의 교재라고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굉장히 날카롭게 사유하기 때문에 유쾌한이라는 수식어를 첨가한 것이다. 요즘 딱딱한 인문학이나 정치에 대해서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인가 보다. 

  인간의 경제적 상황이(물적토대, 혹은 하부구조) 이데올로기와 사상(상부구조)를 규정한다. 

  유물론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접해본 사람이라면 위의 문장이 의마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물론은 맑시즘, 공산주의라는 빨간색을 아주 진하게 칠해놓은 개념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과거보다 덜하지만 여전히 빨간색은 옅어지지가 않고 있다. 게다가 인문학이라는 것이 얼마전까지 거의 사양학문처럼 여겨지던 시대이기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MB정권 들어서 인문학과 경제학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것은 당연히 유물론을 다시 집어드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빨간색이라는 무시무시함, 레드 콤플렉스를 걷어내고 유물론을 접하게 된다면 이만큼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해설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유물론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가? 여러가지 학설들이 많이 있겠지만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정신쪽으로 치우친 사상적인 편향을 바로 잡아 우리 삶을 보다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접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서구에서 기독교 정신과 철학이라는 거대한 이야기 앞에서 육체의 삶이라는 것은 그저 정신에 종속되는 변수로만 이해되었지만 근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과연 정신에 비하여 육체는 열등한 것인가?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규정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반대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물적인 것들이 정신적인 것들을 규정할 수 있다는 대답을 내놓게 된다. 꽤 복잡한 말이지만 간단하게 하자면 우리의 삶의 조건에 의해서 우리의 정신과 사상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중국 역사상 가장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했던 시기인 제자백가! 그 제자백가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온갖 잡스러운 학문들이 발생했고, 사불범정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온갖 잡스러운 학문은 유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 스러지고 말았다고 이해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성리학이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유가가 현실적인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나오면서 성리학에서 양명학과 고증학으로 모습을 바꾸기는 하지만 그러한 변신도 유가 내의 변신일뿐 어쨌거나 유가의 사상이 절대 우위에 있다는 기본 전제는 바뀌지 않는다. 중국의 역사는,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철저하게 유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해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과격한 책까지 등장한 것이 아닌가? 

  강신주는 이러한 동양 사상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유가가 다른 학파에 비하여 사상적으로 우월한 것인가? 또한 우리의 사고는 유가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제자백가라는 말로 표현될 정도로 다양한 학설들을 고작 십 여가지의 학파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렇게 제기된 질문들에 의하여 강신주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부제 가운데에는 이러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왜 강신주는 제자백가의 재발견이 아니라 귀환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재발견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여 인정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제자백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재발견 정도의 수동적적이고 지협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제자백가들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발칙한(?)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겠는가? 

  1권에서 강신주는 제자백가는 이러한 유파가 있으며 어떤 사상을 주장하였다는 식의 전통적인 구조주의의 입장이 아니라 시대사적인 흐름으로 제자백가를 이해한다. 강신주에게 있어서 흐름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흐름을 무시한다면 유가, 불가, 도가, 법가, 종횡가 등등 제자백가의 사상들은 모두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서 발생하였다는 사실 또한 무시하게 된다. 주나라의 천하가 저물어 가자 주나라의 예법을 바로 세워서 질서를 세우고자 한 것이 유가요, 주나라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리고 법과 제도를 통하여 혼란을 잠재우고자 한 것이 법가이다. 외교적인 기술을 통하여서 현상 유지를 꾀하는 것이 종횡가이다. 다른 사상들도 마찬가지다. 주나라의 몰락, 그로 인한 혼란과 전쟁, 민생 파탄! 이를 잠재우고 사람 사는 세상을 설립하려는 필요에 의하여 제자백가가 출현한 것이다. 즉 삶의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온갖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유가가 오랜 세월 독보적인 통치 이념의 위치를 점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의 필요를 잘 잡아내고 그 요구에 맞추어 자신을 잘 변신시킬 수 있었던 유연함 때문이라는 것이 유가에 대한 평이다. 물론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신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게 되었고 그 순간 유가의 가르침은 타파되어야 하는 구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시대의 요구라는 점에서 제자백가를 바라본다면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오늘 SNS 통제라는 방통위의 초강수를 뉴스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철저하게 시대적인 요구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우리네 삶의 환경과 조건은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정신적인 가치들을 요구한다. 한국적인 예의라고 포장되었던 것들은 이미 상당부분 그 힘을 잃고 타파되어야 하는 구습으로 취급받았다. 요즘 열풍을 일으키는 동양 고전의 상당부분이 노자 장자 계열임을 떠올린다면 방통위의 가치관이 얼마나 이 시대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는지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말 가운데에서 깨닫게 되는 또 다른 것은 통제를 통해 획일화를 꾀하는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이 시대는 다양한 제자백가의 사상들이 화려하게 귀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상적인 흐름이 아니겠는가? 

  조만간 2권을 구입해서 읽을 예정이다. 과연 관중과 공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신주는 둘을 가지고 어떤 썰을 풀어낼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춘추전국이야기와 열국지 교양 강의와 함께 읽는다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국 현상을 말한다 - 개정판 -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김용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나꼼수의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간혹 정봉주 전 의원이 앞 뒤말을 바꿔서 "돼지 아들 목사"라는 엉뚱한 호칭이 튀어나오긴 기분 나쁠 법한 호칭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지금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을 자신의 캐릭터로 설정하고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지만 한 때는 인기 투표에서 에어컨에게도 밀렸던 사람이다. 가끔 튀어나와서 조현오 청장의 성대모사를 할 때쯤이면 "이 사람 상당히 가볍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꽤 진중하고 날카로운 시사 평론가 김용민을 만나게 된다. 현상을 분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내놓는 그의 모습은 나꼼수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목사 아들 돼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마초 김어준과는 또 다른 설득력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왜 우리는 조국에 주목해야 하는가? 

  조국은 서울 대학교 법학 교수요, 훤칠한 키와 출중한 용모, 거기에다가 개념까지 탑재한 진보진영의 뉴페이스이다. 강남좌파라는 비판에 대해서 거리낌없이 "그래 나 강남좌파다. 그래서 어쩌라구?"라고 카운터 펀치를 날릴 정도로 쿨한 사람이다. 여타 엘리트들과는 달리 야구면 야구, 영화면 영화, 소설이면 소설, 음악이면 음악 고상하게 폼잡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홍보의 한 수단으로 SNS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SNS를 즐길 줄 아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감각은 그를 20대와 소통이 불가능한 꼰대로 만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조국은 아직 정치인이 아니지만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도, 진보 쪽에서도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왜 굳이 조국이 아니어도 되는가? 

  조국 현상을 말한다는 제목과는 모순되게 김용민의 분석은 굳이 조국이 아니어도 된다. 조국이라는 이름 대신에,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문재인, 송영길 등을 넣어도 디테일이 약간 바뀔 뿐이지 큰 틀을 바뀌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 조국 현상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조국이 아니라 현상이라는 뜻이다. 

  여러가지 경쟁력을 가졌지만 얼마전까지 그는 듣보잡이었다. 그런 그를 조국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이끌어 낸 사람은 오마이 뉴스의 오연호이다. 솔직하게 나도 조국이라는 이름을 오연호와 조국이 쓴 "진보집권 플랜"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순서상 진보집권플랜을 먼저 읽어야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조만간 읽을 예정이다.) 문국현 띄우기에 실패했던 오연호가 찾아낸 대안이 조국이라는 것이 이 바닥의 중론이다. 오연호가 없었다면 정치인 문국현도, 정치인이 될지도 모를 조국도 없다. 약간 곁길로 빠지지만 만약 조국이 정치인이 될 생각이 있다면 문국현의 길을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마 그런 이유로 김용인이 조국 컨설트라는 장에서 문국현과는 다른 길을 제시했는지도 모른다.

  왜 조국 현상이 발생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조국 현상은 철저하게 가카의 은총이다. 문국현도, 조국도, 이정희도, 진보의 뉴페이스들도 모두 가카를 통하여 세상에 출현하였다. 논란이 많지만 일단 유시민을 진보로 분류한다면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같은 진보의 얼굴 마담들은 뉴페이스라고 하긴 다소 무리가 있다.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가카이다. 가카와 얽히면서 이름을 알린 사람들은 진보의 뉴 페이스요, 그 전에 노무현과 삼성과 관련해서 이름을 알린 사람들은 올드 페이스라고 하겠다.  

  조국 현상이란 한나라당에 인재가 몰리던, 혹은 양쪽에서 같이 나누어 먹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리 진보진영에 인재가 몰리는 현상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정치인이 아니어도 반한나라당 전선에 모인 면면들이 거의 별들의 전쟁이 아니던가? 이외수, 공지영, 김제동, 김여진, 박원순, 문성근 등등 사람들의 입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왠만한 뉴 페이스들은 거의 대부분 진보진영으로 모여들고 있는데 조국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조국이라는 이름보다 현상이라는 이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국이라는 이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조국 현상은 절대적으로 가카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가카의 은총이다. 가카의 임기 4년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느끼게된 정치적인 피로감을 뉴 페이스를 통한 신선함으로, 절망적인 현실을 미래의 희망으로 치환시키려는 노력이 진보진영에 그 어느때보다 풍성한 인재풀과 지지를 가져다 주었다. 

  왜 2012년 진보가 집권할 수밖에 없는가? 

  김용민은 2012년은 절대로 진보가 집권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가카의 뒤치닥거리는 하다보면 임기가 다 지나가는 2012년 대선은 독이든 성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가 2011년 6월 30일이다. 책을 집필하기 위하여 상황을 분석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2011년 전반기까지의 내용을 가지고 2012년 진보가 집권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때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그의 분석은 옳다. 비겁하다고 비난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분석이 철저하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5년간 뒤치닥거리하면서 한나라당이 얼마나 발목을 잡겠는가? 

  그렇지만 불과 몇 달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가카의 속도는 정말이지 독보적이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는 광고 카피처럼 국민들에게 따라올테면 따라오라며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 4대강 사업, 한미 FTA 체결 등 정책 결정의 속도는 거의 광속이요,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느끼는 피로감의 정도도 배수가 아니라 제곱으로 늘어만 간다. 가카의 위엄은 땅바닥을 뚫고 지하로 파고들어간지 이미 오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엄을 어떻게든 끌어올려 보려고 사정기관들을 꽉 틀어 쥐고 계시다. 원래 이런 일들은 아무도 모르게 진행해야 하는데 통큰 가카는 모든 것들을 사람들이 한번만 생각하면 다 알게 행하신다. 

  가카를 통하여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은 반한나라당 이라면 표를 몰아줄 것이다. 만약 반가카를 표방한다면 더 많은 이들이 표를 몰아줄 것이다. 야권은 분명히 반한나라당, 반가카를 표방할 것이고 이것은 야권의 집권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피로감이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다면 이젠 가카에 대한 피로감이 가카 여집합에게 손을 들어 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2년 대선은 독이 든 성배라고 할지라도 마실 수밖에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보에게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이다. 무슨 당연한 말이냐고? 위에서 반한나라당의 정서를 잠재울 수 있는 카드가 아직 한나라당에 있기 때문이다. 반가카를 표방할 수 있는 박근혜 카드가 아직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저리 기세 등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가 해야할 가장 큰 숙제는 각개전투가 아니라 연합이어야 한다. 지금 진보신당, 국참당, 민노당이 연합 진보 정당을 구성하려는 이유도, 민주당이 진보 3당과 연대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연대라는 것이 참 어렵다. 각자의 속내가 다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미묘하지만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에 권력 분배라는 면에서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연대라는 것도 종이처럼 쉽게 찢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를 하려면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며,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각 정당에서 양보할 각오까지 해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희 민노당 대표의 양보는 큰 본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서울시장 선거의 승리를 자기들의 승리로 착각하면 그들은 복당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태도는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책을 가지고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새로운 인물들을 찾는 것은 좋지만 새로운 인물 찾기에만 몰입한다면, 즉 묘수에만 열중한다면 진보의 집권이란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기억해야 할 것은 만가카 정서는 한나라당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정책으로, 그것도 말로만 하는 공약이 아니다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국민들 앞에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에 관한 정책에서도 한나라당과의 차별을 보여주어야 한다. 복지는 시혜라고 생각하는 과거의 모습을 되풀이 한다면 진보의 집권은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정권 교체를 단기적으로 끝낼 생각이 아니라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인재풀들을 잘 관리하고 어떻게 차기 대선 주자로 올릴 것인가, 그리고 이 기회에 어떻게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같이 가져가야 한다.  

  김용민 교수는 2012년 진보의 집권을 반대한다. 먼저 총선을 통하여 진보의 뜻이 정책에 반영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야권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분명 총선에는 꽤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진보 3당의 연합이 물건너 간다고 할지라도 진보 3당은 지금보다는 꽤 많은 지지율을 올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민주당이 "늬들 내 밑으로 헤쳐 모여"라고 연대를 강요한다면 총선을 통하여 한나라당과 동시에 폭파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요즘 보면 그러한 면면들이 눈에 보인다. 밥그릇을 놓지 못하는 것은 영남도 문제이지만 호남도 문제이다. 이런 호재에 진보 3당은 자신들의 정책을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문제는 대선이다. 총선과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치뤄지는 대선에서 국민들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야권이 거대해진 상황 때문에 한나라당에 표를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은 대안이 부재하기 때문에 차선을 택하는 것일뿐 대안을 제시한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그 대안이 무엇이겠는가? 오연호는 조국, 김어준은 문재인, 민주당에서는 손학규와 정동영을. 국참담은 유시민을 밀고 있는데 모를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재인이 가장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차차기 대선으로 넘어간다면 2017년 대선이라면 너무나 먼 훗날의 이야기인지라, 김용민 교수의 분석이 맞다 틀리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타 

  26p 강부자(강자+부자) => "강남+땅부자" 

  35p 밑에서 3번째 줄 개갰다는 이유로 => 개겼다는 이유로 

  64p 위에서 7번째 줄 그기서 토론하고 => 거기서 토론하고 

  180p 위에서 9번째 줄 아버지부터 들이박은 => 아버지부터 들이받은 

  189p 위에서 7번째 줄, 8번째 줄 들이박은 => 들이받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믿음은 그런 것이다 - 신념과 맹신과 광신의 차이를 말하다! 온전한 삶 시리즈 1
송태근 지음 / 포이에마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히브리서 11장은 고린도전서 13장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성경이다. 고린도전서 11장이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면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른 성경들은 다 생각이 나지 않아도 한국 기독교인의 머리 속에는 고린도전서 13장과 더불어 히브리서 11장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 기독교 신앙은 믿음이라는 말을 빼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한 예를 들어 보면 예전에 내가 했던 경험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 가인이 벌을 받아서 도망가는데 이해가 안되는 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벨을 죽인 가인이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받으면 어떻게 하냐면서 하나님께 호소하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어디서 튀어 나온 것인가? 성경을 읽다보면 이러한 의문들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목사님께 이것을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이 "성경은 믿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아라." 이거다. 아마 내가 다니던 교회가 시골이어서 상당히 보수적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듣고 내가 드는 생각이 도무지 납득이 안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도 이해가 안되면 선생님에게 묻는다. 그러면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데 유독 교회에서만큼은 믿으면 된다고 넘어간다.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인가? 의문을 표하는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 정도가 과연 믿음이 본질인가? 이 정도가 믿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 기독교의 수준이 매우 안쓰럽다. 

  교회에서 그렇게도 많이 사용되는 믿음이라는 말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다. 아니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히브리서 11장과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묻고 대답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나의 단호함(신념)이나, 어떤 목적에 맞추어진 과도한 동의(맹신), 혹은 믿음이 요구하는 인격적 요소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양상(광신)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 흐름에 맞게 읽다보면 믿음에 관해 우리가 크게 오해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이란 말을 중의적인 뜻으로 설명한다. 첫번째로 믿음은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와 함께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임과 동시에 하나님께 반응하는 우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로 믿음은, 그 자체만으로는 구원이나 의를 획득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면에서 철저하게 통로적이고 도구적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기쁨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p13) 

   믿음의 본질에 대해 이보다 더 탁월한 설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신념, 혹은 맹신, 혹은 광신으로 착각하지만 이것들은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으로 무슨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을 한다. 간절히 원하면 주신다라는 표어아래 믿음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정리해 버린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린다면 믿음이 없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 척 한다. 아무리 굳건한 기독교인이라고 할지라도 기도하면서 마음이 흔들리도 두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믿음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약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약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음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묘한 습성 때문에 한국 교회의 믿음은 광신이나 맹신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대로 이러한 현실에 반발하여 매우 차갑게 논리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이것이 믿음이다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그런 것은 신념이기 쉽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이란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어렵고, 절망스럽고, 흔들리고, 의심이 든다고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바라보기를 포기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사람이 그 안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이다. 동시에 믿음이란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력이기도 하다.  

  믿음의 본질에 관하여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송태근 목사와 함께 하는 믿음을 찾아가는 여행이 꽤 재미있고 유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TA비준 과정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첫째 비준 절차상의 문제이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날치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YS시절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여러가지 국회에서 이상야릇한 행동들을 하던 것을 봤었지만 날치기라는 말에 대해서 이거 문제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그때쯤이라는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이었고, 그 뒤로 대략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날치기 통과가 몇번 더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날치기 통과가 되는 장소가 달라졌다는 정도일 뿐이다. 과거에는 본회의장을 점거당하면 갑작스럽게 다른 회의실에 모여서 날치기 통과를 했지만 지금은 꼭 국회 본회의장에서만 한다는 것이다. 왜? 날치기를 막아보려 제정된 모든 법은 국회 본회의장의 국회의장 단상에서만 처리될 수 있다는 법 때문이다. 날치기를 막아보려는 법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날치기나 강행처리가 아닌 협상을 해야 하겠지만, 법은 제정되었고 사람은 바뀌었어도 국회의원들의 사고방식은 여야를 막론하고 20년전과 동일하기에 국회본회의장을 둘러싼 점거 사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것도 요즘은 과거에 비하여 더 자주 점거되고 있으니, 국회의원은 말이 아니라 무력으로 선출된는 자리처럼 느껴진다.  

  더 웃긴 것은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한미 FTA 비준안 동의는 강행처리도, 그렇다고 날치기도 아니라고 한 점이다.(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1123100653511&p=nocut)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다 강행처리요 날치기인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서 아니라고 하는가? 야당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만약 강행처리시 22인이 불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 강행처리라고 시인한다면 23인은 단연 다음 총선에는 불출마해야 하기에 죽어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 명단과 선택은 다음과 같다. 지역구를 명기한 의원은 찬성자 명단임(오마이뉴스 명단 참조) 

구상찬(서울 강서구 갑)
권영세(서울 영등포구 을)
권영진(불참)
김선동(서울 도봉구 을)
김성식(기권)
김성태(기권)
김세연(부산 금정구)
김장수(비례대표)
남경필(경기 수원시 팔달구)
배영식(대구 중구 남구)
성윤환(기권)
신상진(경기 성남시 중원구)
윤석용(서울 강동구 을)
이한구(대구 수성구 갑)
임해규(기권)
정병국(불참)
정태근(기권)
주광덕(경기 구리시)
진영(참석자 명단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참으로 여겨짐))
현기환(찬성을 눌렀으나 기권으로 표기, 부산 광역시 사하구 갑)
홍정욱(불참)
황영철(반대)
황우여(인천 연수구) 

  기권자나 불참자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찬성자들은 자신들의 말에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는가? 한나라당의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인터넷으로 두드리면 다 나오는데 잊혀질거라 착각하는 그들의 단견이 우스울 뿐이다. 

  둘째 민노당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사용에 대한 문제이다. 국회의원도 눈물을 흘려봐야 안다, 이렇게라도 여당을 막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집회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국회의원은 물리력이 아니라 정치력과 말로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동기가 납득이 간다고 해도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조중동을 비롯한 한나라당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을 못했는가? 최루탄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사건이 FTA의 본질을 가리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이다. 중도성향의 일반적인 국민들에게 FTA 날치기 통과보다 김선동의 최루탄 투척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가 국회의원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라면 테러범이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가 국회의원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렇지않아도 입지가 좁은 민노당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진보에 대한 반발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강기갑의 공중부양 사건만 봐도 분명하다.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강기갑 의원이 책상을 뒤엎고 펄쩍 뛰었다는 부분만 기억한다. 그 후로 강기갑은 민노당의 폭력성을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는 이것이다. 진보 정당은 정당이다. 진보 정치인은 정치인이다. 과거 학생 운동 하던 시절의 생각으로 다 뒤집어 버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정치인이 되면 안된다. 정치인이 되어서 그러한 행동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좁혀버리면 그를 국회로 보낸 지지자들의 바램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조금은 더 냉철하게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 한미 FTA의 책임 공방이다. 한미 FTA는 한나라당의 작품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되어 한나라당이 완성한 작품이다. 그 어느 것에서도 노무현과 이명박이 만난 적이 없지만 이상하게 한미 FTA에서만큼은 한 마음이 되었다. 이명박을 심판하기 위해서 노무현 세가 결집하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노무현은 완전 무결한 진보의 아이콘으로 보는 것은 반대이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한미 FTA,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이 행한 실정이다. 이런 부분들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는, 혹은 반성하라는 목소리에 대해서 진보를 분열시키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니 여당일때는 밀어 붙이다가 야당이 되니 반대하냐는 비판을 듣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면 국익을 위해서고 남이하면 국가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이다. 노무현도 넘어야할 대상일 뿐이다. 관장사를 그만두라는 말에 발끈하는 태도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미 FTA가 통과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주의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국민은 국회의원의 봉일 뿐이다. 최효종씨가 말했던 것처럼 그저 말로만 공약 내세우면 되고, 시장에 한번 찾아가서 악수하고, 안 먹던 국밥 한번에 먹어주기만 해서 쉽게 국회의원이 된다면 누가 국민을 두려워 하겠는가?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함께 읽어보고 공부할 책 몇권을 뽑아 본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1-2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saint236 2011-11-23 19:03   좋아요 0 | URL
ㅠㅠㅠㅠㅠ

전호인 2011-11-2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서로 잘났다는 기준은 결국 국민들만 더욱 분열시킬 뿐입니다.
딴날당만 탓한다고 곧이 곧대로 믿을 국민들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진보가 이리저리 갈려서 잘났다고 한다면 어제의 역사는 진행형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민노, 진보, 참여, 민주, 기타 등등 국민들은 모두 같은 종이며 서로 헐뜯고 분열된 모습만 기억해서 각인하고 있을 테니까요. ㅠㅠ

saint236 2011-11-23 19:03   좋아요 0 | URL
이런 행보가 계속된다면 진보 대통합은 결국 대권을 위한 이합집산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겠죠.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민주당도 밑천 다 까먹다고 봐야겠죠.

전호인 2011-11-24 08:27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아마도 그쪽 당이 가장 심각합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늘 기득권만을 유지하려고 하는 오만함이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그런 굴레를 내려놓지 않는 한 대통합은 대권을 위한 것에 국한되겠죠. 그리고 다시 분열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ㅠㅠ쩝

saint236 2011-11-24 11:43   좋아요 0 | URL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도 자기들의 공인줄 알고 있었죠. "그들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복당의 대상이다."라는 말에 깨끗하게 포기했습니다.

saint236 2011-11-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경필 19대 총선 출마할 생각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