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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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어떤 존재일까?

  생각나는대로 아프리카에 대해서 적어보자.

 

  하나의 대륙, 오랜 식민지, 흑인, 축구, 춤, 타잔, 에디오피아, 이집트, 리비아, 사하라 사막, 부시맨, 피그미,르완다, 소말리아, 민족학살, 에이즈, 절대 빈곤!

 

  대체로 아프리카에 대해서 내가 떠올리는 것들은 그다지 밝고 좋은 면들은 없다. 가난하고, 내전에 시달리고 무법천지이고, 왠지 문명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대륙!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조용한 대륙이라고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해도 우리들 눈에는 비문명의 땅, 야만의 땅일 뿐이다. 소말리아, 르완다, 이집트, 리비아 등 많은 국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국가들을 구별하는 것도 어렵다. 그냥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일뿐이다. 그 이름의 유래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실제 땅 크기가 얼마인지도, 민족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몰라도 상관이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의 머릿속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 그것만이 아프리카의 전부이다. 물론 그것이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임을 알지도 못한다. 서구 열강에게 같은 착취를 당한 처지이면서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동지가 아닌 수탈의 대상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의문을 던지면서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고대에 어떤 국가들이 이 땅을 지배했는지, 어떠한 문명들이 이 땅에 존재했었는지, 민족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고, 오늘날 독립국들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설립이 되었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무엇인지? 왜 그들은 지속적인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있는지, 르완다에서처럼 인종 청소가 발생하는지, 왜 어린이 병사가 존재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절대 빈곤으로 몰아 붙이는지?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자. 이 책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위는 아프리카의 지도이다. 이 지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가? 아프리카 국가의 국경선들이 잘르 대고 그은 것처럼 대체로 반듯하지 않은가? 일반적인 국가의 국경선들은 강이나 산맥같은 자연적인 지형들로 인하여 구불구불한데 이상하리만치 아프리카의 국경선들은 반듯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지형지물들이 반듯하게 생겨서? 절대로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의 국경선들은 위에서 던진 현재 아프리카 대륙이 처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속한 국가들의 국경선이 저렇게 네모 반듯한 것은 그들의 국경선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면서 여러가지 복잡하고 정치적인 그리고 국제역학적인 관계가 고려되면서 국경선이 확립되었다. 물론 부족간의 통합이라든지, 원주민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인종 청소와 같은 비극들이 아프리카에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이유이다.

 

  어쩔 수 없이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야 했지만 그렇다고 서유럽의 국가들이 욕심을 버리고 회개한 것은 아니다.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했다. 그러한 마음이 원조로, 혹은 친밀한 동맹관계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택한 것은 자기 입맛에 맞는 권력층의 형성이다. 그 권력층들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깨끗하냐,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느냐는 물론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서유럽 국가들은 무자비한 독재자들을 선호했다.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와 무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 무기들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폭력으로 피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책의 2/3는 이러한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각 국가들이 어떻게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되어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워낙 많은 국가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2/3라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어보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륙이 직면한 정치적인,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만큼 다루고 있는 책이 없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만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별점에 짠 것은 저자의 글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교과서 정도로 본다면 얼마나 지루한지 상상이 갈 것이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이 책은 아프리카의 고대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아프리카 역사를 그렇게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비판하면서도 저자 또한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역사적인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현대사를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서인지는 모르겠다. 이 또한 이 책을 읽기가 지루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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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1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어본적이 있고요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책입니다. 추천 드리고 갑니다~^^

saint236 2012-01-01 23:00   좋아요 0 | URL
주목받지 못한 양서입니다. 반값에 판매할 때 낼름 집어 왔습니다.

차트랑 2012-01-03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목받지 못한 양서'라는 말씀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많은 독자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행동.의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만프레드 베버 엮음, 정현숙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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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좋으나 제목은 비겁! Freiheit zum Leben이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로 번역될 줄이야. 리뷰작성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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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2-2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원래 뜻은 뭐가 되야 하는 건가요?

saint236 2011-12-24 00:24   좋아요 0 | URL
freiheit가 자유(freedom)이고 leben이 삶(life)이니 삶에의 자유, 혹은 자유로운 삶 정도로 번역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유와 행동에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본회퍼는 독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신학자 2사람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지성의 대명사 바르트, 다른 하나는 행동의 대명사 본회퍼! 본회퍼의 사상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nachfolge(영어 제목 The cost of discipleship 한국 제목 나를 따르라 개인적으로 영어 제목이 더 원제에 가깝습니다.)를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워낙 오래 전에 번역한 것이라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지만요. 요즘 새로 번역된 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저는 예전 번역본을 봤었습니다.

stella.K 2011-12-24 12:00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한국식 제목은 원제에서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네요.
뭐 안 그렇다는 역설의 뜻이 강한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세인트님은 신학을 하셨나요? 왠지 그럴 것 같아요.^^

saint236 2011-12-24 13:07   좋아요 0 | URL
ㅎㅎ 본회퍼를 참 좋아하는지라...

stella.K 2011-12-24 13:11   좋아요 0 | URL
아하!^^

Johanna 2014-09-1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은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보냈고, 이 소책자가 청소년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랐는데, 번역자로서도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리고 예리한 지적과 섬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본회퍼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라 하시니, 책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지금은 은퇴하신 만프레드 베버라는 할아버지가 `청소년들을 위해` 다양한 본회퍼 저서에서 짧막한 내용을 발췌하여 만든 소책자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 본회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본회퍼 저서들을 읽어 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부족하나마 이 책을 소개한 저의 뜻이 성취된 것이라 보시고 너그러히 이해해 주세요.

saint236 2014-09-19 17:47   좋아요 0 | URL
홍보 문제 때문에 책 제목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보게 되네요. 책 제목 때문에 많은 실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나네요.

Johanna 2014-09-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와 봤어요.
본회퍼 글은 내용도 뛰어나지만, 정말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문학 전공자인 제가 읽어도 감탄이 나올 때가 많답니다. 원서 읽기가 가능하다면, 한 권쯤 원서를 읽어 보시도록 권하고 싶어요. 진리를 찾는 삶에 기쁨 있으시길 바라며!

saint236 2014-09-25 22:31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본회퍼의 저작이 가지는 힘은 본회퍼라는 저자의 힘도 있지만 베트게라는 편집자의 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요. 본회퍼의 단편들을 모아서 그렇게 훌륭한 책들을 만들어 낸 베트게도 존경할만한 사람이지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성경 밖 성경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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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한권으로 모아 놓은 책이랄까? 시간이 있으면 연린다 성경을 추천한다. 없으면 이 책으로...리뷰는 열린다 성경 작성시 포함하여 기록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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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한나라당 최고의원 5명 중  3명이 사임했다. 남은 것은 홍준표와 나경원뿐인데 나경원이야 10.26 재보선의 데미지에서 회복되지 않은 탓에 닥치고 버로우하고 있는 상황이다. 5명의 최고의원 중 실제로 한나라당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4명 뿐이라는 말인데 그 중에 3명(남경필, 원희룡, 유승민)이 사퇴를 한 것이다. 한나라당 최고의원 3명이 사퇴하는 모습을 보면서 2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첫째는 한나라당이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왜 젊은층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나보다. 지금껏 벌여놓은 문제에 대해서 책임지는 모습이 없다. 한미 FTA 날치기 통과를 시켜 놓고 날치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더니 선관위 디도스 공격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니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재창당이다. 재창당한다고 그 구성원들이 그리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뀔 때 구성원이 대폭 달라졌던가? 그냥 명함 바꿔 달기가 아니었나? 한나라당이 하는 행태를 지켜보면 헤지펀드가 페이퍼 컴퍼니를 앞세워 돈놀이를 할 때와 비슷하다. 실체를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리스크는 페이퍼 컴퍼니로 집중시켜서 꼬리자르기를 한다. 한나라당의 재창당 이야기가 결국 이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정치적인 실책(의도적으로 알면서도 저지른 일을 실책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들을 한나라당이라는 간판에 다 몰아 넣고 당을 폐쇄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그대로 다른 당을 창당한다. 정신을 차렸다면 책임지고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최고의원 사퇴는 단순히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친박계와 친이계의 대결이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유력 대선후보 박근혜와 현 대통령 이명박의 대결 구도가 심화되다 못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말이다. 최고의원 3명의 탈당은 홍준표 흔들기인데 왜 홍준표를 흔드는가? 원래 홍준표는 친이계도 아니고 친박계도 아니기 때문에 미묘한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당대표로 선출된 사람이다. 공천에 막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당대표의 자리에 아무런 그늘도 없는 홍준표가 선출된다는 것은 불과 1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박계과 친이계의 복잡한 계산에서 탄생된 홍준표 체제는 태생 자체가 미묘한 줄다리기다. 홍준표 체제가 살아남는 방법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홍준표는 청와대에 휘둘려온 양상이다. 내곡동 사저건도 그렇고, 한미 FTA도 그렇고, 론스타 문제라든지, 선관위 홈페이지 해킹이라든지, 어떤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미래야 나몰라라 하면서 당이 대통령 말을 안듣는다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임기 말이 다가오는 시기에 당의 미래야 어떻든 자기의 입장만 주장하고 고집하는 청와대에 한나라당이 충성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더군다나 대선보다 총선이 더 앞에 있지 않은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한나라당 의원들 특히 친이계가 아닌 의원들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은 뻔하다. MB와의 선긋기. 홍준표 체제는 철저하게 여기에 실패했고 친박계 의원들이 여기에 반발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박근혜의 어떠한 식으로든 사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않고는 친박의 핵심이라 불리는 유승민 최고의원이 사퇴를 할 리 없다. 그들이 그렇게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면 소수파로 분류되지 친 아무개의 그늘을 뒤집어 쓰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유승민 최고의원을 비롯한 3명의 사퇴는 홍준표의 친청와대식 처세에 대한 경고라고 하겠다.

 

  한나라당 최고의원이 3명이나 사퇴한 상황에 대한 대책 회의에서 홍준표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홍준표의 당찬 기세 때문이 아니다. 홍준표가 안된다면 물러나겟다고 당차게 선언하고 회의 자리를 떴지만 이미 판은 홍준표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 홍준표 체제의 유지는 철저하게 친이계의 적극적인 홍준표 옹호와 친박계의 숨고르기가 만난 결과이다. 아직까지는 한나라당이라는 판을 깰 수는 없지만 자꾸 이렇게 나간다면 충분히 당을 깰 수 있다는 친박계의 경고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이 경고에 대해서 홍준표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따라 한나라당의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득-이재오에게 공천권을 준다면 결과가 어떻지 눈에 뻔히 보이는 마당에 친박계 의원이 한나라당에 남아 있을리 없을 것이며 당을 깨고 나갈 것이다. 물론 박근혜는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당이 깨지고 나간 친박계 의원들이 과거 친박연대 의원들과 연합하여 박근혜당을 만들고 당수로 영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이 제1 야당이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가 없는 홍준표는 그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가 해온 정치적인 행보들이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홍준표는 동대문구의 한 반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나라당의 복잡한 정치적인 셈법 가운데 어디에도 국민은 없다. 아직도 한나라당이 딴나라당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나 보다. 혹은 모르는척 하는 것이든지. 어느 쪽이 되든간에 말로만 쇄신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환골탈퇴를 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암울하다. 한나라당이 간판을 바꿔단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한나라당이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는 것보다 친박계가 탈당하여 민주당 박지원계와 연합하여 양박 공조체제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광박에 피박을 뒤집어 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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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팔레스타인
홍미정.서정환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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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해서 나를 묘한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자기 땅 주장, 그리고 일방적인 영토 침략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영토 수복으로, 그리고 대다수의 온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토 분쟁으로 받아들여진다. 극소수의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 이스라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이다. 왜 이런 이상야릇한 태도가 형성되었는가? 원인을 구분해 보자면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다. 기독교의 기본은 성경이다.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모든 행위의 기준과 권위를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과 블레셋이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과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깡패 짓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을 동일시 한다. 물론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라이벌 블레셋에 대해서는 대단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족과 동일시되어 그 적개심을 고스란히 전가시킨다. 저자는 과거의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혈통적으로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서구에서 이미 학문적으로 연구되었고, 그 연구 결과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반론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여진 재구성된 신화는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이성적인 비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둘째, 이스라엘을 약자로 생각하고 갖게 되는 동정심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들은 다윗과 골리앗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상황이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목동 다윗의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막강한 화력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등에 업은 골리앗 이스라엘과 짱돌로 탱크와 비행기와 같은 최첨단 무기에 맞서는 다윗 팔레스타인일지라도 우리는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약자요, 팔레스타인 민족은 골리앗과 같은 강자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다른 사람에 비해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고 있는 나조차도 가끔 이 사실이 헷갈릴 때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는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 서구에서 핍박받은 민족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때문이다. 2차 대전을 통하여 6백만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가스실에서 학살 당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반면 "팔레스타인 민족=이슬람=폭탄테러"라는 도식이 머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민족을 절대로 약자로 생각하기 않는다. 거기에다 더하여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집트, 시리아를 비롯하여 중동 국가들의 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절대 강자로 오해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착실하게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이다. 

  몇 차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중동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자원하여 귀국을 했다. 그런데 한 노신사가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전쟁터에 나가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많아 보여 옆에 있는 사람이 물었다. "지금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너무나 위험한데 왜 그곳으로 가십니까?" 그러자 그 노신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전쟁에 직접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통곡의 벽을 붙잡고 나라를 위해 기도라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들어갑니다." 

  나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빠지지 않았던 이야기다. 출처가 어디인지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 그것이 사실인 줄 알았고, 이스라엘은 절대 약자이지만 이러한 나라 사람의 정신으로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았지만 다시 건국했고, 중동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잘 지키고 있구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팔레스타인 민족이 중동 국가에서도 그다지 인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나로 모여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행했던 중동 연합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치적인 필요 때문이지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자신들의 동포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는 골치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이다. 한국 기독교만큼 미국 기독교에 종속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모르긴 몰라도 MB가 친미적인 이유 가운데에는 그가 내용은 어떻든 간에 형식적이나마 기독교인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학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한국 교회 안으로 유입이 된다. 대다수의 신학교수들이 미국에서 유학하였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미국 기독교 중에서도 온건주의 노선과 복음주의 노선, 진보노선을 걷고 있는 교회들이 많은데 하필이면 근본주의 기독교만이 한국에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근본주의를 복음주으로 포장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태도가 그대로 한국 기독교에 이식 된다. 토라를 불태우는 행위들, 막연하게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행위들, 팔레스타인 분쟁이 아마겟돈의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기독교 내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쟁 수행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한국 기독교인들은 철저하게 이스라엘 편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은 크게 위의 세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볼 것은 권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기독교인이라면, 이스라엘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무감 때문이다. 한장 한장 책을 넘길 때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슬픔과 눈물이 곳곳에 스며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할 권리도, 행복할 권리도 모두 잃어버리고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절대 약자 팔레스타인과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깡패 이스라엘의 만행이 묘하게 대비되면서 학생들에게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교사들의 슬픔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열심히 가르치면서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공부하면 머지 않은 미래에는 더 행복하게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희망마저 주지 못하는 교사들의 답답함은 집권자들의 횔포와 명박산성식의 소통에 물대포를 맞으면 덜덜 떨며 밤을 지새는 우리들의 울분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다만 우리는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참으면 된다지만 이들에게는 기약이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조금이나마 나아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자구책이 아니라는 것이 아쉽지만 다극화 되는 세계의 추세가 팔레스타인에게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견제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정치적인 결정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운신의 폭을 병아리 눈꼽만큼이나마 좁히고 있다니 다행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들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쫄지마! 아직 희망은 있어! 쫄지마! 이길 수 있어! 팔레스타인에 희망이라는 말이 이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질 날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르치는 청년들을 위해서 5권의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을 올해의 마지막 읽을 책으로 선정한 것은 요근래 내가 한 선택 중에 최상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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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2011-12-2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신같은 분이 많으셔야 더욱더 많은 색안경이 벗겨질텐데 말이죠...

이재환 2012-04-1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삐딱한' 개신교 신자로서,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진실을 알리려고 애쓰시는 선생님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saint236 2012-04-12 00:08   좋아요 0 | URL
예수님도 삐딱하신 분이셨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불의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하지만 그 열매를 누리려고 하면 안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 한국 교회는 열매를 누리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 걱정될 뿐입니다. 김용민의 개신교 비판 발언에 발끈하는 모습이 창피합니다. 그가 한 말이 틀린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MB정권 몰락과 함께 MB를 밀었던 교회가 돌팔매를 맞을 것이라는 것은 뻔한 예측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