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2 -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한국사傳 2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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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떠온 어느 님의 사진>

  

   
  깨끗한 달 빛이 환하게 비추나니...비록 구름이 그 빛을 가리더라도...삽시간에 불과하다.  
                                         -<정조실록>정조 7년 6월 15일

  "모든 강을 미추는 달빛과 같은 존재!"

  정조가 자신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노론이라는 거대 당이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하는 혼란한 시기에 이런 군주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사용하였던 정조의 낙관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정조의 이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한국사 傳 1권이 역사에서 예기치 않은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었다면 한국사 傳 2권에 기록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역사의 위기 앞에 직면하여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김윤후, 정조, 이경석, 김춘추 등 비교적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들의 일생에 관하여 적고 있지만 거기에 적혀 있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국사를 통하여 국민은 통치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여기에서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그저 말잘듣는 국민을 양산하기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군인들을 이야기하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민족 항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머리가 커가면서 단순히 그럴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좌빨이라 부르며 정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꼈다. 역사의 사건이란 단순히 한면만을 바라봐서는 그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사 傳 2권에 기록된 사람들은 화려한 배경을 가진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다. 그저 가진 능력을 계속 갈고닦고, 역사의 부름에 고개 돌리지 않고, 위기 가운데 배짱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했던 사람들이다. 한국사 傳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메이저들이 아닌 마이너들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마이너들의 삶이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수업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한, 아니 일부러 접근을 금지당한 역사의 진실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너무 안타까워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억울해서 탄식을 하기도 하고, 거대 노론의 무식한 행동에 너무하단 마음에 분노를 삭히기 위하여 애쓰기도 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껴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정조는 달과 시냇물 사이에 구름이 끼면 안된다고 했다. 요즘은 달이 없다. 서울에 달이 안뜬지 오래다. 먹구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먹구름 중에 가끔 자기를 달이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냇물은 보이지 않는다. 구름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거기가 자기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구름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조금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달이라 자처하는 기회가 오기를 말이다. 그 밑으로 성난 시냇물들은 모래를 삼키고 버스를 뛰어 넘는다. 이순신 동상을 향하여 전진해 보지만 컨테이너 방파제에 막혀서 가야할 길마저 가지 못해 역류하고 있다. 물이 흐르는 길을 불법이라 지칭하며 깎아 내리고, 깊이 파고, 운하를 만들어 검찰청으로, 경찰서로 넘긴다. 어찌보면 한반도 대운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진짜 물이 아닌 국민이라는 물을 조절하고 컨트롤하기 위해서 말이다.

  경제는 김영삼, 정치는 전두환이라는 오늘의 총체적인 난국을 어떻게 해야 할거나? 정조대왕이 다시 나타나야 할것인가, 아니면 홍경래가 다시 나타나야 하나? 소현세자빈 강씨는 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죽어가는 명을 섬기며 청을 멸시하는 척화파들,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적인 일마저 팽개치는 썩은 글쟁이들, 김처선 같은 왕의 남자들은 이미 사라지고 김자원만이 가득한 파란집. 도무지 풀리지 않는 복잡한 정국 속에서 지켜주지 못해 끌려갔던 아낙내들은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자결을 강요당한다. 돌아갈 고향을 꿈에도 잊지 못했지만 환향의 기쁨은 순간 환향년으로 변해버렸다. 여전히 달은 없고 구름들이 서로 높은 위치에 서서 달을 자처하기 위하여 한나라를 뒤덮는다. 성나고 지친 시냇물들은 그저 촛불을 켜고 토정비결로 아픔을 달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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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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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적인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아무리 모든 것을 용납한다고 할지라도 해소되지 않을 아픔이다.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로 남아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을 아픔이다. 이젠 그만 용서하자는 말이 많이 나온다. 두고두고 잊지 말자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친일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은 남아 있는데 친일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2008년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오랜 세월동안 지지부진했던 친일인명 사전을 발간하였다. 이 인명 사전의 파괴력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핵탄두에 버금가는 위력이다. 이 인명 사전이 발간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거의 대부분 연로하신 노인분들이다.) 민족문제 연구소를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 항의의 골자는 이것이다. 박정희가 왜 친일파냐? 안익태가 왜 친일파냐? 이 문제의 핵심에는 여전히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우류부단함이 들어 있고, 공이 있으면 과가 자연적으로 말소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공이 있으니 정상 참작을 하여 풀어준다는 재벌 총수들의 이야기나 이만큼 먹고 살게 된게 누구 덕인데 박정희를 비판하고 친일파로 모냐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이다. 독일과는 너무 달라도 다른 모습이다. 2차대전 후 나치를 완전히 청산한 독일에서도 여전히 나치의 잔재가 뿌리 뽑히지 못했는데 친일 청산은 고사하고 그들을 다시 집권층에 포용한 한국의 모습은 말해 무엇하랴?

  오늘날 벌어지는 정치의 혼란함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및 자유 선진당을 포함하여 보수당이라 부르는 이들 가운데 과연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친일 인명 사전에 대하여 그렇게 방해공작을 폈던 것이고, 이젠 용서하자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와 인권과 존재를 돈 몇푼에 팔아버린 박정희와 그를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한나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밥에 그 나물인 민주당은 어떤가? 모두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친북 좌빨을 외치는 이유도 반공을 국시로 삼은 이승만 정권의 모습의 연장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진보 연대가 촛불의 배후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덕일 씨의 책을 읽으면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교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교는 원래 이런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안 좋았을 뿐이야라는 논리의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 그냥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누구나 보고 판단할 것을 굳이 계몽하려는 식으로 늘어 놓는 이야기들 같아서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동일한 생각을 품어본다. 어느 시대에나 우가 있으면 좌가 있고, 보수가 있으면 진보가 있다. 유교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되는데 굳이 계묭하려는 모습이 영 마뜩찮다. 그러나 이덕일 씨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말할 수 있는 대범함이 아닐까? 자기 신념에 대한 자신감, 학문에 대한 자신감, 말과 행동의 일치가 상실된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야기된 것은 아닐런지? 노론의 일당 지배하에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웃긴 조선의 모습이나 코메리카를 꿈꾸며 어륀지를 외치는 1%를 꿈꾸는 웃기는 작자들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인터넷과 언론을 통제하려는 방통위와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범무부와 조선 당시 노론을 위해 봉사하던 의금부와 주자를 숭상하던 송시열을 비롯한 설익은 유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단지 당시 명이 오늘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바뀐 것뿐이요, 청의 침략이 일본의 침략으로 바뀐 것 뿐이다. 다른 것은 청의 침략이 조선을 좀더 자유로운 사회로 만들었다면 일본의 침략은 대한민국을 친일후손들을 위한 국가로 만들었다는 정도? 거기에 더하여 박정희 신화를 만들었다는 정도일까?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내 말이, 내 신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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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박권일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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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178㎝ 키에 근육질 체형·계란형 얼굴의 30대 초반 ‘전문직 남성’

 

  삼성전자 이미지는 도회적 느낌의 전문직 남성상.
  대학생들은 삼성전자라는 이름에서 176~180㎝의 키에 근육질 체형과 계란형 얼굴인 30대 초반 전문직 남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삼성전자의 성별이 남성이라는 응답이 74.4%에 이르러 여성(25.6%)이라는 응답비율을 압도했다. 나이는 30~34살과 35~39살이라는 응답비율이 각각 31.1%와 17.8%였다. 그밖의 항목들에 대한 응답 빈도수로 1순위와 2순위를 매기면, 얼굴형은 △계란형(29.5%) △둥근형(24.0%), 체형은 △근육질형(30.2%) △보통체형(23.3%), 키는 △176~180㎝(22.5%) △171~175㎝(19.4%), 옷차림은 △유행에 민감한 정장(40.4%)△유행 안타는 정장차림(40.2%), 직업은 △전문직(47.3%) △판매서비스직 (19.4%) 등이다.
  현대차를 제외한 대부분 민간기업에서 남성상과 여성상이 경합하는 데 반해 삼성전자에서는 남성이미지를 떠올리는 비율이 높다는 점, 가전제품을 생산·판매하지만 전문직 이미지가 압도적이라는 점 등도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원숙하면서도 세련된 직장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응답자들이 많았다.(임주환 기자 )
                                                                                                   -한겨레 기사 중에서

  기업의 꿈은 영속성이다. 오랜 세월이가도 살아남는 것, 이것이 기업의 제1목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나 또한 여기에 동감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좌나 우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기업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묻고 있으면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저자의 말처럼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이야기되어 오는 것들을 모아서 좀더 알아듣기 쉽게, 세련되게 각주를 달은 것이 이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책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에 적은 한겨레 기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성맨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갖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기사이다. 이상적인 외모와 체격에 도회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샤프한 사람들. 이것이 삼성맨의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삼성이 오랜 세월을 공들여 가꾸어낸 이미지이다. 그 결과 삼성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면 화이트 칼라뿐 아니라 블루 칼라까지도 세련된 도회남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할지라도 말이다. 삼성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서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왔고, 이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하여 실제적으로 이 이미지에 적합한 사람들을 신규 사원으로 채용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삼성맨이라는 이미지는 그 사람의 삶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을 포장해주는 새로운 포장지가 되었다.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LG나 GS, 현대, SK 등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뭐야? "하는 생각을 품지만 그 이미지가 굳어지면 사람들은 왠만한 실책에도 그 이미지를 그 기업의 본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삼성의 수없이 많은 비리들과 이건희 총수 일가의 비리가 삼성맨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중화되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것이 바른 모습일까? 나는 기업들의 이러한 이미지 전략을 위의 사진을 통하여 읽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신입 사원 연수를 몇 주간의 합숙으로 실행한다. 그 과정에서 신입들에게 주말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새로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 따라서 개인들의 근무처가 바뀌기 때문에 신입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의력과 협동력이라는 미명하에 거행되는 이러한 폭력들이 얼마나 창의력과 협동력을 길러낼 수가 있겠는가? 그저 폭력이고 획일화를 만들어 낼 뿐이다. 협동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가지 일을 위하여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에서 신입 연수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협동이란 군대에서 말하는 일사분란한 모습을 의미하는 것같다. 실제로 군대도 바뀌어 가고 있는데 기업들은 협동과 창의력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자기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과연 여기에서 얼마만큼의 창의력이 나올 것인가?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나 고분고분한 사람들만 모아 놓고 그것도 맘에 들지 않아 더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일사분란함으로 다양성이 강조되고, 희소성을 따지기 시작한 포르스 포디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기업은 영속성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죽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말로는 창의력이 경쟁력이라고 말하지만 창의력을 말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성은 용납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기업에서 도태되어 가고 있다. 쓸만한 사람들은 다 나가버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사회는 더욱더 획일화로 흘러간다. 도대체 현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블루칼라가 입사하는데 토플 점수가 왜 필요한 것인가? 영어를 못하는 중역 밑에서 단 한번도 외국에 나갈 일이 없는 20대들이 왜 목숨걸고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 아무리 영어 실력이 좋아도 국어 실력이 꽝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영어 실력이 좋고 누구 말대로 어린쥐라는 발음을 잘 따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공문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고 혼자서 판단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무도 이것이 대안이 아니라고 말한다. 반대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극우들에 의하여 지금 기준들이 강화되고 도태되기 싫어서 경쟁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계속 이 방향으로 간다면 미래는 없다. 국민 기업도 없고, 영속하는 기업도 없다. 사람들은 기업이 싫으면, 실직하면 산에 들어가 농사라도 지으면 되지만 쓸만한 사람들이 떠난 기업은 쉽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경제가 아닌 이데올로기로 포장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불쌍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동 원리에 의하여 기업 총수들은 잘못을 해도 경제에 기여한 공으로 사면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에서 대기업들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래도록 영속할 수 있는 기업, 한국 대표 기업이라고 떳떳하게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기업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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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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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6월 1일 이명박 서울 시장이 고집스레 밀어붙였던 청계천이 개통되었다. 통수식을 보도하면서 언론들은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긴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외국에서 청계천 복원 공사를 보러 온다고, 외국에 이 복원공사 기술을 팔면 엄청난 경제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서울시 관계자들의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청계천을 복원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진짜 복원인가하는 것이다. 복원이라 함은 예전의 모습을 다시 재현시켜 놓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청계천 복원 공사는 이 책에 나와 있는대로 그저 커다란 어항일 뿐이다. 물을 억지로 끌어올려서 흘려보내는 시스템은 과연 이것이 "천"이라는 말이 붙는 개울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저 콘크리트로 만든 커다란 어항에 계속적으로 물을 흘려보내어 물고기를 살게 만드는 커다란 어함일 뿐이다.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비만 오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청계천에 대하여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은 이것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급속하게 처리한 공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안 없이 쫓겨났고, 그 자리를 모기와 날파리와 생쥐가 차지하였다. 졸속학 처리한 결과이다.

  대체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복언 사업이 이러하다. 생태라는 말은 그저 구색 맞추기 위하여 끌어 다 놓은 것일 따름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모양, 네모 반듯한 건물들, 곧게 뻗은 도로들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아름다움의 판단 기준은 그저 얼마나 똑바른가, 얼마나 커다란가,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집은 아파트 아니면 빌라, 도로는 아스팔트 아니면 콘크리트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예전의 일이다. 벼를 보고 아이들이 쌀나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기절할 듯이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어렵다는 수학공식은 척척 외어가면서도 르네상스를 모르는 학생들을 보면서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세계사와 국사를 선택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그래서 선택하는 아이들이 얼마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세상이 온통 암울해 보였다. 직선을 추구하고, 크기를 숭상하고, 속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에 A급 건축가들, 건설가들이 넘쳐날지는 모르겠지만, C급의 예술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공계가 먹고 살기 어려워 인재들이 안몰린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인문학이 죽고, 철학이 죽고, 역사가 죽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그들 가운데 모드리안의 황금비율과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 나 될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호이징어에 따르면 인간은 재미에 따라 움직이는 호모 루덴스라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있으면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재미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상위 1%의 사람들에게는 재미란 저급한 가치일뿐이다. 예술은 그저 돈이 될때에만 가치를 가진다. 미술품이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진품과 사본의 차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품의 가격이 상상할 수 없이 비싼 것은 미술품이 소유의 가치가 되어 버렸다는 반증이리라.

  우석훈씨는 항상 자신을 가리켜 C급 경제학자라 말한다. 독창적으로 이론을 만들지 못하는 그저 남이 한 이야기를 주워 섬기는 C급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우석훈씨는 C급이다. 우석훈씨 본인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살벌한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예술을 논하고 미학을 논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한다. 경제만 살리면 전과도 덮어지고, 저렴하기만 하면 국보 1호가 불탈 우려가 있음에도 그 위험부담을 떠안는다. 돈이 된다면 인생을 다 포기해서 수학 공식을 외우고, 돈만 된다면 미술품을 사재기해서 창고에 처박아 둔다. 돈만 된다면 멀쩡한 도로를 뜯고 다시 짓기도 하고, 돈만 된다면 기꺼이 사기를 치기도 한다. 이렇게 천민자본주의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곡선을 이야기하고 미학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밥먹고 살기 힘들다. 그런데 경제학자가 주제넘게 밥먹고 살 생각은 안하고 곡선과 미학을 이야기한다. 역사를 이야기하고 예술을 논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가 공허한 울림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以柔制强은 역사에서나 찾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곳곳에서는 뉴타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도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도무지 정의가 되지 않는 뒤죽박죽인 세상이 되었다. 가치가 사라지고 오직 유교의 충이라는 가치만이 강조되는 군대와도 같은 조직사회가 되어 버렸다. 의사표현을 가로막고 획일화를 주입하는 포디즘에 목숨 건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력만이 경쟁력이라는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직선에 목숨을 걸고, 경제에 목숨을 거나 보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더 좋아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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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 256조 예산을 읽는 14가지 코드
정광모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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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에 대한 짧은 생각

  하나: 세금은 쉽게 내자.

  어느 순간인가 세금을 납부하러 은행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 세금 납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회원 가입하고 지로번호만 넣으면 세금에서부터 공공요금까지, 심지어는 벌금까지 다 납부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불편해서 어떻게 은행까지 갔을까? 첨단 세상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둘: 연말 정산을 꼭 하자.

  연말 정산을 위해 열심히 영수증을 챙긴다. 편의점이야 괜찮지만 동네 음식점에서 현금영수증을 발급받기가 눈치가 보인다. 발급해달라면 인상부터 쓴다. 괜히 죄인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은 담배를 사면서 꼭 두갑을 산다. 현금영수증 때문이다. 예전보다 담배가 더 늘은 것 같다. 보험료도, 신용카드도, 의료비도 모두 꼼꼼히 챙긴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단 몇푼이라도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연말 정산시 왜 돈을 더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근로세도 냈고, 소득세도 냈고, 간접세란 세는 다 냈는데 왜 세금 덜 냈다고 더 받아가지? 정말 영수증 챙기는 것이 전쟁이다.

  셋: 또 깔아?

  연말만 되면 보도블럭 교체가 너무 잦다. 작년에도 깔은 것 같은데, 또 까네. 차라리 저 돈으로 하수도 정비나 해주지. 아니면 놀이터 페인트 칠이라도. 정말 필요한데는 안쓰고 꼭 연말에 몰아서 멀쩡한 보도블럭 교체하고, 멀쩡한 아스팔트를 뜯어 버린다. 여기저기 땜빵된 도로는 우리 나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착잡하다. 저렇게 땡빵할 것이면 차라리 비포장이 낫지 않을까? 땜빵한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사고날까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내년에도 또 하겠지?

  재작년인가 처갓집을 갔을 때였다. 아산시의 명동 거리라고 부르는 시내 한복판을 걸으면서 아산시가 미쳤다는 생각을 해봤다. 멀쩡했던 아스팔트를 다 뜯어내고 보도블럭을 새로 교체한 것인데 그 블럭이 영 마음에 안든다. 제딴에는 멋을 낸다고 울퉁불퉁하게 조각한 돌맹이들을 깔아 놓았던 것이다. 마치 고궁처럼. 그런데 이게 영 마음에 안든다. 지나가다가 구두가 돌에 채이길 몇 번일까? 결국 한 사람이 넘어졌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엄마들도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사람들의 통행이 이정도로 많다면 차라리 먼젓번에 깔았던 아스팔트가 낫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도 연말에 몇번씩 뜯었다 고쳤다 해서 누더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내가 결혼하기 바로 전에 설계 사무소를 다녔다고 하는데 그 공사를 계획하고 실시한 공무원을 봤다고 한다. 너무 자랑스러워 하더란다. 화가 나서 뭐라 말하고 싶지만 사무실에 피해가 갈까봐 참았다고 했다. 나와 아내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그 비싼 돌 보도블럭은 1년도 못되어 평범한 아스팔트로 교체되었다. 사람들에게 한번도 안물어보고 보도블럭을 설치했다가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클레임을 걸어서인지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 공사를 시행한 공무원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아산시는 돈이 좀 있는 지자체이다. 아산시에 현대와 삼성 공장이 내려 왔기 때문이다. 신도리코도 있고. 예전에는 참 가난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부유한 지자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골목마다 비싼 카메라가 높이 달려 있다.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위한 카메라이다. 그 카메라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서울에서도 뜨문뜨문 다는 것인데 아산시에는 그 좁은 골목에 집중적으로 깔려 있다. 차가 있어도 별 지장 없고 예전에도 주정차 금지 구역임에도 불법주차가 많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불법주정차 단속용 카메라를 집중으로 배치해 버린 것이다. 돈이 참 많은 지자체다. 그런데 그 아산시에도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카메라 하나면 그들 가운데 몇명을 일년동안 도와줄 수 있을텐데 전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나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맞아, 그랬어, 그랬군." 이런 생각에 고개를 끄떡거리다 보니 책이 다 넘어갔다. 어렵게 세금 내는 데,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어느새 눈먼 돈이 되어버렸다. 못먹는 놈이 병신 취급받는 눈먼 돈, 주인 없는 돈이 되어버렸다. 피같은 돈이 그렇게 변해 버렸다. 국민들이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안다. 멀쩡한 보도블럭 갈고, 도로 땜빵하고, 말도 안되는 축제 유치하고, 기억에 돈 주면서 흥청망청 쓰는 돈이 되어버렸다. 손해를 보면 기억이 투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손해를 보면서 도로 건설하고 항만 건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최소 이익을 보전받고, 공사비를 챙기고. 공사 중간 유통을 하면서 마진 먹고, 업소 관리하며 관리비 받으니 꿩먹고 알먹고 아닌가?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정치권. 우석훈씨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우리 나라 정치인 가운데 건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가 왜 그리 생각이 나던지. 건설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으니 이번에는 아예 건설업 CEO출신을 대통령으로 앉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대한민국을 주식회사로 표현하시지 않으셨던가? 대한민국 주식회사를 자처하신다면 기업답게 운영을 하시던가? 인사는 기업답게 하면서 예산은 지금처럼 하시면 어찌하시려는지?

  어렵게 낸 돈이다. 이 돈이 못먹는 놈이 병신 취급받으면서 이놈저놈 다 먹는다면 소로우를 본받고 싶어진다.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못받는 빚이다, 세금이다 말하며 비자금 만들어 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열심히 내는 사람들에게만 뭐라하는 이상한 국가에서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갈등이 되는 일이다. 세금 납부는 가능한 쉽게, 연말 정산은 가능한 어렵게, 그리고 가능한 적게. 이것이 우리나라 세금 정책의 본질이다. 오늘도 동네 골목길은 어김없이 아스팔트를 갈아 엎고 땜빵을 한다. 그 위로 폐지 수집하시는 할머니께서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해 구부정하게 유모차를 끌면서 몇천원의 일당을 위해 박스를 줍고 계신다. 아침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광경을 보는 내 눈은 눈물이 날 것처럼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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