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박권일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성전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178㎝ 키에 근육질 체형·계란형 얼굴의 30대 초반 ‘전문직 남성’

 

  삼성전자 이미지는 도회적 느낌의 전문직 남성상.
  대학생들은 삼성전자라는 이름에서 176~180㎝의 키에 근육질 체형과 계란형 얼굴인 30대 초반 전문직 남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삼성전자의 성별이 남성이라는 응답이 74.4%에 이르러 여성(25.6%)이라는 응답비율을 압도했다. 나이는 30~34살과 35~39살이라는 응답비율이 각각 31.1%와 17.8%였다. 그밖의 항목들에 대한 응답 빈도수로 1순위와 2순위를 매기면, 얼굴형은 △계란형(29.5%) △둥근형(24.0%), 체형은 △근육질형(30.2%) △보통체형(23.3%), 키는 △176~180㎝(22.5%) △171~175㎝(19.4%), 옷차림은 △유행에 민감한 정장(40.4%)△유행 안타는 정장차림(40.2%), 직업은 △전문직(47.3%) △판매서비스직 (19.4%) 등이다.
  현대차를 제외한 대부분 민간기업에서 남성상과 여성상이 경합하는 데 반해 삼성전자에서는 남성이미지를 떠올리는 비율이 높다는 점, 가전제품을 생산·판매하지만 전문직 이미지가 압도적이라는 점 등도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원숙하면서도 세련된 직장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응답자들이 많았다.(임주환 기자 )
                                                                                                   -한겨레 기사 중에서

  기업의 꿈은 영속성이다. 오랜 세월이가도 살아남는 것, 이것이 기업의 제1목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나 또한 여기에 동감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좌나 우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기업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묻고 있으면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저자의 말처럼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이야기되어 오는 것들을 모아서 좀더 알아듣기 쉽게, 세련되게 각주를 달은 것이 이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책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에 적은 한겨레 기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성맨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갖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기사이다. 이상적인 외모와 체격에 도회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샤프한 사람들. 이것이 삼성맨의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삼성이 오랜 세월을 공들여 가꾸어낸 이미지이다. 그 결과 삼성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면 화이트 칼라뿐 아니라 블루 칼라까지도 세련된 도회남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할지라도 말이다. 삼성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서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왔고, 이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하여 실제적으로 이 이미지에 적합한 사람들을 신규 사원으로 채용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삼성맨이라는 이미지는 그 사람의 삶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을 포장해주는 새로운 포장지가 되었다.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LG나 GS, 현대, SK 등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뭐야? "하는 생각을 품지만 그 이미지가 굳어지면 사람들은 왠만한 실책에도 그 이미지를 그 기업의 본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삼성의 수없이 많은 비리들과 이건희 총수 일가의 비리가 삼성맨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중화되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것이 바른 모습일까? 나는 기업들의 이러한 이미지 전략을 위의 사진을 통하여 읽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신입 사원 연수를 몇 주간의 합숙으로 실행한다. 그 과정에서 신입들에게 주말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새로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 따라서 개인들의 근무처가 바뀌기 때문에 신입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의력과 협동력이라는 미명하에 거행되는 이러한 폭력들이 얼마나 창의력과 협동력을 길러낼 수가 있겠는가? 그저 폭력이고 획일화를 만들어 낼 뿐이다. 협동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가지 일을 위하여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에서 신입 연수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협동이란 군대에서 말하는 일사분란한 모습을 의미하는 것같다. 실제로 군대도 바뀌어 가고 있는데 기업들은 협동과 창의력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자기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과연 여기에서 얼마만큼의 창의력이 나올 것인가?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나 고분고분한 사람들만 모아 놓고 그것도 맘에 들지 않아 더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일사분란함으로 다양성이 강조되고, 희소성을 따지기 시작한 포르스 포디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기업은 영속성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죽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말로는 창의력이 경쟁력이라고 말하지만 창의력을 말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성은 용납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기업에서 도태되어 가고 있다. 쓸만한 사람들은 다 나가버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사회는 더욱더 획일화로 흘러간다. 도대체 현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블루칼라가 입사하는데 토플 점수가 왜 필요한 것인가? 영어를 못하는 중역 밑에서 단 한번도 외국에 나갈 일이 없는 20대들이 왜 목숨걸고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 아무리 영어 실력이 좋아도 국어 실력이 꽝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영어 실력이 좋고 누구 말대로 어린쥐라는 발음을 잘 따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공문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고 혼자서 판단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무도 이것이 대안이 아니라고 말한다. 반대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극우들에 의하여 지금 기준들이 강화되고 도태되기 싫어서 경쟁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계속 이 방향으로 간다면 미래는 없다. 국민 기업도 없고, 영속하는 기업도 없다. 사람들은 기업이 싫으면, 실직하면 산에 들어가 농사라도 지으면 되지만 쓸만한 사람들이 떠난 기업은 쉽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경제가 아닌 이데올로기로 포장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불쌍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동 원리에 의하여 기업 총수들은 잘못을 해도 경제에 기여한 공으로 사면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에서 대기업들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래도록 영속할 수 있는 기업, 한국 대표 기업이라고 떳떳하게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기업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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