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 256조 예산을 읽는 14가지 코드
정광모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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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에 대한 짧은 생각

  하나: 세금은 쉽게 내자.

  어느 순간인가 세금을 납부하러 은행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 세금 납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회원 가입하고 지로번호만 넣으면 세금에서부터 공공요금까지, 심지어는 벌금까지 다 납부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불편해서 어떻게 은행까지 갔을까? 첨단 세상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둘: 연말 정산을 꼭 하자.

  연말 정산을 위해 열심히 영수증을 챙긴다. 편의점이야 괜찮지만 동네 음식점에서 현금영수증을 발급받기가 눈치가 보인다. 발급해달라면 인상부터 쓴다. 괜히 죄인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은 담배를 사면서 꼭 두갑을 산다. 현금영수증 때문이다. 예전보다 담배가 더 늘은 것 같다. 보험료도, 신용카드도, 의료비도 모두 꼼꼼히 챙긴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단 몇푼이라도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연말 정산시 왜 돈을 더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근로세도 냈고, 소득세도 냈고, 간접세란 세는 다 냈는데 왜 세금 덜 냈다고 더 받아가지? 정말 영수증 챙기는 것이 전쟁이다.

  셋: 또 깔아?

  연말만 되면 보도블럭 교체가 너무 잦다. 작년에도 깔은 것 같은데, 또 까네. 차라리 저 돈으로 하수도 정비나 해주지. 아니면 놀이터 페인트 칠이라도. 정말 필요한데는 안쓰고 꼭 연말에 몰아서 멀쩡한 보도블럭 교체하고, 멀쩡한 아스팔트를 뜯어 버린다. 여기저기 땜빵된 도로는 우리 나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착잡하다. 저렇게 땡빵할 것이면 차라리 비포장이 낫지 않을까? 땜빵한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사고날까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내년에도 또 하겠지?

  재작년인가 처갓집을 갔을 때였다. 아산시의 명동 거리라고 부르는 시내 한복판을 걸으면서 아산시가 미쳤다는 생각을 해봤다. 멀쩡했던 아스팔트를 다 뜯어내고 보도블럭을 새로 교체한 것인데 그 블럭이 영 마음에 안든다. 제딴에는 멋을 낸다고 울퉁불퉁하게 조각한 돌맹이들을 깔아 놓았던 것이다. 마치 고궁처럼. 그런데 이게 영 마음에 안든다. 지나가다가 구두가 돌에 채이길 몇 번일까? 결국 한 사람이 넘어졌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엄마들도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사람들의 통행이 이정도로 많다면 차라리 먼젓번에 깔았던 아스팔트가 낫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도 연말에 몇번씩 뜯었다 고쳤다 해서 누더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내가 결혼하기 바로 전에 설계 사무소를 다녔다고 하는데 그 공사를 계획하고 실시한 공무원을 봤다고 한다. 너무 자랑스러워 하더란다. 화가 나서 뭐라 말하고 싶지만 사무실에 피해가 갈까봐 참았다고 했다. 나와 아내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그 비싼 돌 보도블럭은 1년도 못되어 평범한 아스팔트로 교체되었다. 사람들에게 한번도 안물어보고 보도블럭을 설치했다가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클레임을 걸어서인지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 공사를 시행한 공무원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아산시는 돈이 좀 있는 지자체이다. 아산시에 현대와 삼성 공장이 내려 왔기 때문이다. 신도리코도 있고. 예전에는 참 가난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부유한 지자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골목마다 비싼 카메라가 높이 달려 있다.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위한 카메라이다. 그 카메라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서울에서도 뜨문뜨문 다는 것인데 아산시에는 그 좁은 골목에 집중적으로 깔려 있다. 차가 있어도 별 지장 없고 예전에도 주정차 금지 구역임에도 불법주차가 많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불법주정차 단속용 카메라를 집중으로 배치해 버린 것이다. 돈이 참 많은 지자체다. 그런데 그 아산시에도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카메라 하나면 그들 가운데 몇명을 일년동안 도와줄 수 있을텐데 전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나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맞아, 그랬어, 그랬군." 이런 생각에 고개를 끄떡거리다 보니 책이 다 넘어갔다. 어렵게 세금 내는 데,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어느새 눈먼 돈이 되어버렸다. 못먹는 놈이 병신 취급받는 눈먼 돈, 주인 없는 돈이 되어버렸다. 피같은 돈이 그렇게 변해 버렸다. 국민들이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안다. 멀쩡한 보도블럭 갈고, 도로 땜빵하고, 말도 안되는 축제 유치하고, 기억에 돈 주면서 흥청망청 쓰는 돈이 되어버렸다. 손해를 보면 기억이 투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손해를 보면서 도로 건설하고 항만 건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최소 이익을 보전받고, 공사비를 챙기고. 공사 중간 유통을 하면서 마진 먹고, 업소 관리하며 관리비 받으니 꿩먹고 알먹고 아닌가?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정치권. 우석훈씨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우리 나라 정치인 가운데 건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가 왜 그리 생각이 나던지. 건설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으니 이번에는 아예 건설업 CEO출신을 대통령으로 앉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대한민국을 주식회사로 표현하시지 않으셨던가? 대한민국 주식회사를 자처하신다면 기업답게 운영을 하시던가? 인사는 기업답게 하면서 예산은 지금처럼 하시면 어찌하시려는지?

  어렵게 낸 돈이다. 이 돈이 못먹는 놈이 병신 취급받으면서 이놈저놈 다 먹는다면 소로우를 본받고 싶어진다.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못받는 빚이다, 세금이다 말하며 비자금 만들어 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열심히 내는 사람들에게만 뭐라하는 이상한 국가에서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갈등이 되는 일이다. 세금 납부는 가능한 쉽게, 연말 정산은 가능한 어렵게, 그리고 가능한 적게. 이것이 우리나라 세금 정책의 본질이다. 오늘도 동네 골목길은 어김없이 아스팔트를 갈아 엎고 땜빵을 한다. 그 위로 폐지 수집하시는 할머니께서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해 구부정하게 유모차를 끌면서 몇천원의 일당을 위해 박스를 줍고 계신다. 아침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광경을 보는 내 눈은 눈물이 날 것처럼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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