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적인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아무리 모든 것을 용납한다고 할지라도 해소되지 않을 아픔이다.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로 남아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을 아픔이다. 이젠 그만 용서하자는 말이 많이 나온다. 두고두고 잊지 말자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친일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은 남아 있는데 친일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2008년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오랜 세월동안 지지부진했던 친일인명 사전을 발간하였다. 이 인명 사전의 파괴력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핵탄두에 버금가는 위력이다. 이 인명 사전이 발간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거의 대부분 연로하신 노인분들이다.) 민족문제 연구소를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 항의의 골자는 이것이다. 박정희가 왜 친일파냐? 안익태가 왜 친일파냐? 이 문제의 핵심에는 여전히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우류부단함이 들어 있고, 공이 있으면 과가 자연적으로 말소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공이 있으니 정상 참작을 하여 풀어준다는 재벌 총수들의 이야기나 이만큼 먹고 살게 된게 누구 덕인데 박정희를 비판하고 친일파로 모냐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이다. 독일과는 너무 달라도 다른 모습이다. 2차대전 후 나치를 완전히 청산한 독일에서도 여전히 나치의 잔재가 뿌리 뽑히지 못했는데 친일 청산은 고사하고 그들을 다시 집권층에 포용한 한국의 모습은 말해 무엇하랴?

  오늘날 벌어지는 정치의 혼란함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및 자유 선진당을 포함하여 보수당이라 부르는 이들 가운데 과연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친일 인명 사전에 대하여 그렇게 방해공작을 폈던 것이고, 이젠 용서하자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와 인권과 존재를 돈 몇푼에 팔아버린 박정희와 그를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한나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밥에 그 나물인 민주당은 어떤가? 모두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친북 좌빨을 외치는 이유도 반공을 국시로 삼은 이승만 정권의 모습의 연장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진보 연대가 촛불의 배후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덕일 씨의 책을 읽으면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교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교는 원래 이런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안 좋았을 뿐이야라는 논리의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 그냥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누구나 보고 판단할 것을 굳이 계몽하려는 식으로 늘어 놓는 이야기들 같아서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동일한 생각을 품어본다. 어느 시대에나 우가 있으면 좌가 있고, 보수가 있으면 진보가 있다. 유교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되는데 굳이 계묭하려는 모습이 영 마뜩찮다. 그러나 이덕일 씨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말할 수 있는 대범함이 아닐까? 자기 신념에 대한 자신감, 학문에 대한 자신감, 말과 행동의 일치가 상실된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야기된 것은 아닐런지? 노론의 일당 지배하에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웃긴 조선의 모습이나 코메리카를 꿈꾸며 어륀지를 외치는 1%를 꿈꾸는 웃기는 작자들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인터넷과 언론을 통제하려는 방통위와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범무부와 조선 당시 노론을 위해 봉사하던 의금부와 주자를 숭상하던 송시열을 비롯한 설익은 유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단지 당시 명이 오늘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바뀐 것뿐이요, 청의 침략이 일본의 침략으로 바뀐 것 뿐이다. 다른 것은 청의 침략이 조선을 좀더 자유로운 사회로 만들었다면 일본의 침략은 대한민국을 친일후손들을 위한 국가로 만들었다는 정도? 거기에 더하여 박정희 신화를 만들었다는 정도일까?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내 말이, 내 신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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