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2005년 6월 1일 이명박 서울 시장이 고집스레 밀어붙였던 청계천이 개통되었다. 통수식을 보도하면서 언론들은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긴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외국에서 청계천 복원 공사를 보러 온다고, 외국에 이 복원공사 기술을 팔면 엄청난 경제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서울시 관계자들의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청계천을 복원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진짜 복원인가하는 것이다. 복원이라 함은 예전의 모습을 다시 재현시켜 놓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청계천 복원 공사는 이 책에 나와 있는대로 그저 커다란 어항일 뿐이다. 물을 억지로 끌어올려서 흘려보내는 시스템은 과연 이것이 "천"이라는 말이 붙는 개울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저 콘크리트로 만든 커다란 어항에 계속적으로 물을 흘려보내어 물고기를 살게 만드는 커다란 어함일 뿐이다.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비만 오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청계천에 대하여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은 이것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급속하게 처리한 공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안 없이 쫓겨났고, 그 자리를 모기와 날파리와 생쥐가 차지하였다. 졸속학 처리한 결과이다.

  대체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복언 사업이 이러하다. 생태라는 말은 그저 구색 맞추기 위하여 끌어 다 놓은 것일 따름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모양, 네모 반듯한 건물들, 곧게 뻗은 도로들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아름다움의 판단 기준은 그저 얼마나 똑바른가, 얼마나 커다란가,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집은 아파트 아니면 빌라, 도로는 아스팔트 아니면 콘크리트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예전의 일이다. 벼를 보고 아이들이 쌀나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기절할 듯이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어렵다는 수학공식은 척척 외어가면서도 르네상스를 모르는 학생들을 보면서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세계사와 국사를 선택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그래서 선택하는 아이들이 얼마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세상이 온통 암울해 보였다. 직선을 추구하고, 크기를 숭상하고, 속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에 A급 건축가들, 건설가들이 넘쳐날지는 모르겠지만, C급의 예술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공계가 먹고 살기 어려워 인재들이 안몰린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인문학이 죽고, 철학이 죽고, 역사가 죽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그들 가운데 모드리안의 황금비율과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 나 될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호이징어에 따르면 인간은 재미에 따라 움직이는 호모 루덴스라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있으면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재미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상위 1%의 사람들에게는 재미란 저급한 가치일뿐이다. 예술은 그저 돈이 될때에만 가치를 가진다. 미술품이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진품과 사본의 차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품의 가격이 상상할 수 없이 비싼 것은 미술품이 소유의 가치가 되어 버렸다는 반증이리라.

  우석훈씨는 항상 자신을 가리켜 C급 경제학자라 말한다. 독창적으로 이론을 만들지 못하는 그저 남이 한 이야기를 주워 섬기는 C급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우석훈씨는 C급이다. 우석훈씨 본인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살벌한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예술을 논하고 미학을 논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한다. 경제만 살리면 전과도 덮어지고, 저렴하기만 하면 국보 1호가 불탈 우려가 있음에도 그 위험부담을 떠안는다. 돈이 된다면 인생을 다 포기해서 수학 공식을 외우고, 돈만 된다면 미술품을 사재기해서 창고에 처박아 둔다. 돈만 된다면 멀쩡한 도로를 뜯고 다시 짓기도 하고, 돈만 된다면 기꺼이 사기를 치기도 한다. 이렇게 천민자본주의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곡선을 이야기하고 미학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밥먹고 살기 힘들다. 그런데 경제학자가 주제넘게 밥먹고 살 생각은 안하고 곡선과 미학을 이야기한다. 역사를 이야기하고 예술을 논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가 공허한 울림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以柔制强은 역사에서나 찾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곳곳에서는 뉴타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도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도무지 정의가 되지 않는 뒤죽박죽인 세상이 되었다. 가치가 사라지고 오직 유교의 충이라는 가치만이 강조되는 군대와도 같은 조직사회가 되어 버렸다. 의사표현을 가로막고 획일화를 주입하는 포디즘에 목숨 건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력만이 경쟁력이라는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직선에 목숨을 걸고, 경제에 목숨을 거나 보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더 좋아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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