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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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쁜 사마리아인을 통하여 장하준이라는 사람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다 몇달전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 도서에 "나쁜 사마리아인"이 버젓이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국방부가 미쳤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슨 책인지 읽어보고나 불온 도서로 선정한 것일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장하준이라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일까? 그의 책을 읽어 빨갱이의 빨자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보수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국가에서 나나서 주도하는 통제 경제, 이것이 장하준이 이야기하는 경제의 모델이 아닌가? 많은 선진국들이 이 경제 모델을 통하여 선진국이 되었고, 아시아의 신흥강국들이 이렇게 발전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지적하면서 후진국들이 발전하기 위해선 이 방법을 기본으로 삼아 각 국에 맞는 경제 발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보수적인 주장이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이 좌파적인 불온 사상으로 평가되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시장만능주의를 믿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발언 때문일까? 여하튼 국방부 불온 도서에 그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장하준의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런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더할나위 없이 자랑스럽고, 이런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영국에 눌러 앉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나쁜 사마리아인"의 원형이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하준 사상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도둑이 파숫꾼으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발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것이 범법이든, 비열한 짓이든 말이다. 이렇게 발전해서 어느 위치에 오르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아니다. 이젠 더 비열한 짓이 남아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과거의 기억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시장의 힘에 모든 것을 맡겨버렸더니 오늘 이렇게 발전했다는 개도 안물어갈 소리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국가에서 나서서 이것저것 컨트롤하면 될 것도 안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상대방이 발전할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버린다. 비열한 짓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대방의 발전 가능성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상대방의 생존권마저 위협해 버리고, 상대방을 착취하기 위하여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치 않는다. 잊네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 자기들의 행태는 모드 잊어 버리고서 말이다. 오늘 대한민국이 세계 사회에서 졸부 취급 받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니던가? 선진국들이야 자기들의 과거를 이미 깨끗하게 세탁해 버렸다지만, 대한민국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국가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짓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대한민국에 민영화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쓸만한 공기업들은 다 팔아버려야 한다고 한다. 팔아서 민간에 맡겨야 경쟁력이 살아 난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장하준 교수는 분명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공기업 매각은 소수의 기득권층에게 부를 더 몰아주는 일일뿐이라고 말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을 키워 그것을 헐값에 대기업에 넘겨주는 것이 민영화의 핵심이 아니던가? 그 가운데 오가는 웃돈이란 부수입일 것이고. SK가 대표적인 예가 아니던가? 누가 돈으로 기업을 만들었고, 그 기업의 열매는 누가 가져갔는가? 이 책이 불온 서적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힘이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국제 사회에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다리 걷어차기는 계속되고 있다. 부의 사다리를 아둥바둥 대면서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꼭대기에 앉아서 그것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어느 정도 올라온 사람들을 걷어차 버리는 사람들, 그래서 세상은 아수라장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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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예수 - 톨스토이 스토리 바이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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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톨스토이라는 러시아의 대문호가 성경을 새롭게 썼다. 그 부제만으로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너무 두거워서 읽기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문고판인 관계로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내용도 그렇게 빡빡하지 않았던 관계로 읽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그러나 그 내용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책들이 아니고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을 작가의 상상력과 철학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일 뿐인데 왜 이리 읽기가 어려운 것일까? 마지막까지 책을 읽고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인생의 문제를 만나 종교에서 답을 찾고자 했던 톨스토이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만난 기독교, 그가 발견한 성경의 진리, 그가 가진 철학과 신학이 이 안에 녹아 있기 때문에 쉬운 문체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너무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에 치우쳐 버렸기 때문에 읽기가 더 난해한 것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배제하고 있다. 서론에서 기독교의 복음서들이 그 안에 잘목된 가르침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 잡겠다는 포부를 접하면서 톨스토이의 생각의 단면을 알게 된다. 성경의 율법적인 부분들을 빼내어 하나로 재구성하려는 노력들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분명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식 변형시켜 놓았을 뿐인데 왠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신비와 그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리고 그의 사역과 말들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잇었다. 십계명을 대체하려는 듯한 예수의 5계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수의 계명과 가르침이란 구약과 대립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시각이 내 신경을 계속 긁고 있다고 할까? 원시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교회가 만들어온 역사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그의 신앙관은 순수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신앙관이 절대로 원시 기독교의 가르침에 가까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도 원시 기독교에 가가워지려고 노력하면서도 왜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신앙의 신비와 부활이라는 신비의 사건과 구원을 빼버렸단 말인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낙관주의의 한 단면을 여기에서 바라보게 된다.

  성경은 분명 윤리와 율법을 그 안에 품고 있는 책이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전부는 아니다. 성경의 본질이 윤리이고 도덕이라면 차라리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고 변화가 된다는 것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같은 성현의 가르침이나, 윤리적인 지침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신비한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꿈꾸었듯이 윤리적으로 살기 때문에 성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분명 이 책은 지금까지 게으름을 피워온 기독교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힘이 있다.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뒤로 하고 지위를 높이고, 재물을 모으고, 권력을 지향하는 성공을 꿈꾸는 오늘날의 교회에 원시 공동체가 품어 왔던 삶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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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2011-10-2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혼어쩌구 하는데 톨스토이도 결국 중요한걸 배제한듯한 유물론적인 냄새가나네요.
머리말을 읽고서 뭐가 그리 문제가 될까 상당히 주목했는데
흠.. 읽는 도중입니다만 좀 위험한 책임.
톨스토이는 구원을 얻었을까 의문이네요 ㅎ

saint236 2011-10-24 01:34   좋아요 0 | URL
윤리와 신비! 믿음과 행함! 둘 중 어느 하나라도 포기되는 순간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성경은 지나치게 윤리와 행함으로 치우친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부분만 감안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삶이 따르지 않아 손가락질 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톨스토이가 한쪽 편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만 분명히 기억해야겠지요!
 
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이상호 감수 / 프로메테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나이키, 아디다스, 맥도날드, 코카콜라, P&G, 리복, DKNY, 월 마트, 리바이스, 포드, 치코, 셸, 바이엘, 화이자, 디즈니, 포드, GM, 몬산토, 델몬트, 엑슨 모빌, 토미 힐피거, 지멘스, 마텔, 도이체 방크, 갭, 글락소 미스클라인, 네슬레, 노바르티스, 놀, 다임러 크라이슬러, 돌, 알리안츠, 마이스토, 미쓰비시, 베링거 인겔하임,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BP, 삼성, 셰링, C&A, 아벤티스, 아지프, 알디/호퍼, HVB, OMV AG, OTTO, 유니레버, 치키타 브랜즈, 카슈타트크벨레, 크래프트 푸즈, 토탈, 트라이엄프, 하인리히 다이히만 제화, 헤네스 앤 모리츠,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생활 용품에서, 약품, 의류, 제화, 에너지, 전자 제품, 자동차 등 모든 물품을 총 망라하는 다양한 기업들인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초국적 기업들이라는 것이요, 두번째는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CSR)을 중요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이라는 것이며, 세번째로 나쁜 기업이라는 책에 의하여 그들의 부정이 고발된 단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수천억대의 돈을 쏟아부어서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홍보전략을 구사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을 쥐어짜내어 이윤을 극대화하는 나쁜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자원을 착취하고 있으며, 인간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가를 사실에 근거해서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블러드 다이아 몬드"라는 영화와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로서 세계의 일류 기업들이 어떻게 시에라리온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사들이고 있으며, 다이아몬드 구입 대금으로 받은 돈들이 어덯게 무기 구입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강제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디카프리오의 멋있는 얼굴도, 다이아몬드라는 보물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피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를 수 있는 시에라리온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비극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이윤극대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이야기하던 네슬레의 횡포에 대하여 이 책도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세계 곡물 기업들이 그 곡물들을 식량이 아닌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기업들의 이미지에 속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파렴치한 회사에서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기업들이 얼마만큼의 홍보예산을 편성해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뒤에서는 인권이 어떻게 무시되고 있는지를 실례와 구체적인 자료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2장에서는 휴대폰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콜탄의 생산지 콩고가 어떻게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추구를 위하여 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삼성도 여기에 연루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삼성이 비도덕적인 기업인 것은 익히 알고 잇지만 독일 사람에 의하여 지적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3장은 의약품 다국적 기업들의 비윤리적인 작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플라시보 연구는 의약적으로도 비윤리적인 것인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의약 기업들이 아직까지도 플라시보 처방을 내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약이 없는 것도 아니고, 치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신약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하여 플라시보 처방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UN의 헌장을 무시하는 행위이지만 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람을 모르모트로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에는 화이자와 바이엘이 대표적이다.

  4장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축복이자 저주인 석유 산업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예를 들어서 기업들의 파렴치한 모습을 고발한다. 석유를 더 쉽게,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각국의 기업들이 어떻게 개싸움을 벌이는지, 얼마만큼 환경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무책임한지 보여준다.

  5장에서는 식료품을 다루고 있는 돌, 델몬트, 몬산토, 치키타 같은 초국적 기업들의 비리에 대하여 고발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가지만 그것은 세계 식량의 40%를 소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이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에서 오는 광우병과 환경파괴를 지적한다. 또한 네슬레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산모와 어린이의 생명을 어덯게 우습게 여기는지, 그리고 다른 기업들이 바나나와 코코아 등의 열매를 생산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동력을 착취하는지 고발한다.

  6장에서는 완구를 만들어 파는 회사들이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으며, 최저 임금마저 무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7장에서는 스포츠용품과 의류를 생산해 내는 회사들의 기만적인 행위에 대하여 8장에서는 수출업과 금융업들이 앞 뒤 재지 않고 단기 이익을 위한 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상과 이로 인한 피해는 누가 보고 있으며, 이익은 누가 보고 있는지를, 9장에서는 기업들이 부정과 로비를 어떻게 저지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포럼과 위원회들이 어던 기업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조차 잊지 않는다.

  10장에서는 각 기업들이 어떤 문구로 자기 기업의 이미지를 포장하는지, 그리고 실상은 어떤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매우 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춘향가의 "玉盤佳肴千人膏 金樽美酒萬人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각국의 기업들이 오늘날 쌓아올린 부는 천짜서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도 변학도와 같은 기업들 때문에 신음하는 이들이 전 세계에 널려 있다. 인간을 원료로 보는 기업들은 자진하여 바뀌지도 않고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소비자들이 항의할 때 비로소 바꾸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여라. 속지마라.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은 콩고의 내전을 부채질하는 자금줄이며, 내가 먹고 있는 바나나는 아이들을 노예로 사고 팔도록 만드는 원인이 된다. 쓰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조금만 덜쓰자는 말이다. 수십만원짜리 휴대폰을 일년에 한번식 바꾸지 말고 조금만 더 쓰자. 그러면 그 기간만큼 콩고의 사람들이 덜 죽어갈 것이다. 나쁜 기업에 충성하는 나쁜 사람이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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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중심에 서다
한홍 지음 / 두란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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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알게 해준 책이다. 세미나를 통하여 이 책의 내용을 접했고, 그 뒤 책을 구입해 읽었다. 한홍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리더쉽이다. 그의 책이 대부분 리더쉽에 관한 책이다. 때론 썰렁한 농담을 하기도 하고, 때론 말을 씹기도 하지만, 그래서 언변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안에 숨겨진 열정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게 된다.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몇번씩이나 그의 이야기에 내 시선과 마음을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이 한국 교회에 있다는 것, 그것도 내가 바라보고 나가야 하는 선배로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중심에 서다."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한홍목사의 이야기의 주제는 명확하다. 기독교인들이 크리스천 리더쉽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천 리더쉽의 예로 이 책에서 인용되는 것이 느헤미야이다. 느헤미야는 포로민 3세대이다. 잡혀와서 떠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1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페르시아에 적응하기 위하여 목숨걸고 노력하던 모르드개와 같은 2세대도 아니다. 이미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적응하여 어느 정도 위치를 누리고 살아가던, 유대라는 나라보다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더 익숙한 포로민 3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3세대가 아니라 권력의 핵심에서 활약하는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위치에 선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너무나 뻔하지 않는가? 오늘날 이민 2세대 3세대들이 미국의 관료가 되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사정을 봐주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오히려 한국계라는 자기들의 핏줄을 도구삼아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빼앗아다가 미국에 주는 일을 당연히 여기고 있지 않은가? 이게 세상의 인심이요, 이치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고국 유대를 위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해 내지 않던가? 그것도 재건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재건 이후 모든 제도들이 정착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가? 그렇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총독인 느헤미야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시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리더쉽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을 쏟는다. 인맥을 키우기 위하여 강남의 큰 교회를 선택하고, 열렬한 불교 신자인 박정희를 마치 기독교 신자인 것처럼 포장한다. 정주영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병상에서 이미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고 말하면 정몽준 의원 띄우기에 열심이다. 이런 한국 교회에서 느헤미야 같은 리더쉽을 갖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한국이기 때문에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실력을 갖추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솔선수범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이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느헤미야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웠듯이 IMF로 폐허가 된 이 나라 경제와 사회 제도, 그리고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과 황폐해져 가는 영혼을 다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이 나라에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길 소망해 본다.

  만일 지도자가 되길 꿈꾼다면 꼭 읽어보도록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PS.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홍목사는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갔다가 돌아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사고의 틀이 미국식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합리적이라는 미명하에 상당히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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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형성사
박창환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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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예전에는 2천원짜리 소책자였는데 그 이후로 다시 만들어 내면서 책 크기가 커지고 가격이 배로 올랐다. 커진 책을 보면서 들고 다니는 불편함을 생각해보고, 얄팍한 상술에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내용이 증편된 것도 아니고 그저 책의 판 형태만 바꾸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라는 불평이 입까지 나오지만 애써 꾹꾹 참아본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 책이 절판되지 않고 계속 나온다면 그만한 불편과 언짢음이야 감수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그 만큼 이 책은 성경을 이해하기 우히ㅏ여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지금까지 연구되어온(물론 이 책이 쓰여지던 1960년대까지지만) 신학적인 내용을 기초로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성경에 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경에 대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10년이 넘게 흘러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지만 역시나 수작이다. 성경에 관하여 이 만한 책을 아직 찾아 볼 수 었는 것이 안타깝다면 안타깝달까?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대하여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신적인 권위까지 부여하여 때론 성경을 우상화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배가 아플 때 성경을 배 위에 올려 놓고 잔다는지, 머리가 아플 때 성경을 베고 잔다든지 하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식의 말도 안되는 성경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 기독교인들이다. 어느 신학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진다고 책의 터진 부분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들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은 예전에 교회 수련회를 갔다을 때의 일이다. 어디를 가면서 베개를 가지고 다니는 거추장스러움을 피하기 위하여 성경책에 수건을 깔고 베개를 대용으로 자고 있는데 한 사람이 오더니 나를 혼내는 것이었다. 전혀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인데 대뜸 나를 혼내면서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베고 잘 수가 있냐는 것이다. 도무지 내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을 보면서 성경을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가득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동시에 왜 저렇게 무식하게 생각하는 것일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책에 대한 신성화가 습관이 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책을 지독히도 안 읽는 사람도 성경책은 거룩한 책이라고 한다. 물론 거룩한 책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룩한 책에도 번역상의 오류가 있고 서로 맞지 않는 역사관들이 양립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서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대한 반론을 받게 되면 신앙을 포기하던지 반대로 독선이 되어 버린다. 세상과의 소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자기만의 성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는다. 참 웃기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나는 기회가 있는대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도 사람이 기록한 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기독교를 매우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성경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고 그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삶이 바뀌어 가기 때문에 신성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다. 전설처럼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환상중에 40일동안 끊임없이 이야기하여 제자들이 받아적어 완성된 책이 아니다. 십계라는 영화에서처럼 번개가 쳐서 초자연적으로 기록한 것 또한 아니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고백을 기록한 책이다. 부디 이 책을 읽고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는 이들이 늘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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