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무례한 복음이라는 책을 통하여 이택광씨를 처음 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경제 지상주의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이것들을 무례한 복음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제만 살린다면”이라는 지난 대선의 가치판단이 오늘 한국 사회를 이렇게 천박한 곳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하는 반성과 더불어 열심히 읽었던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택광씨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라는 흥미있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마치 “저를 사주세요.”라며 간절히 애원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넣고 빼기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평단에서 보내준 책이 이 책임을 알았을 때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기분은 책을 펴고 몇 장을 읽지도 않아서 철저하게 깨졌다. 너무 어렵다. 다시 제목을 보니 이젠 “나는 겁내 어려운 책이니 함부로 보지 마시오.”라는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책을 읽어가면서 메멘토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뒷부분을 읽으면 앞부분을 까먹고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가면 뒷부분을 까먹고. 전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각 부분들의 내용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의 인문학의 현주소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외국에서는 노숙자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하여 인문학을 공부시키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한국에서 인문학은 돈도 안되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에 의해서 이공계도 찬밥신세가 되는 마당이니 돈 안되고 머리만 복잡한 인문학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을 한다고 말을 했을 때, 그 학생은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말을 다반사로 들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하나의 상식으로 굳어진 사회에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단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효용성을 가질 때는 입시나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경우이다. 논술과 인문경영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어떤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가치 체계는 고전적인 인문학의 역할이기도 했다. 조정에 기여할 관료들을 양성하고 군주의 통치술을 보필하는 ‘동양적 인문학'의 유령을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11p) 

  되도록 돈 생각은 하지 마라.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니 아예 생가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학비 면제를 위해 부득이 연구조교 정도는 맡을 수 있겠으나, 그 이상 나아가서 행정조교를 맡는다거나 하는 무모한 직은 하지 마라.(327p)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문을 하겠다면 자기 학문활동을 극대화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자본가가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본가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다. 학문활동의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라. 글쓰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몇 년에 걸쳐 원고지 1000장을 쓰는 장인정신은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면 권장할 만하다. 21세기에 더 이상 예비 학자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줄 너그러운 페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 쓰되, 글로 먹고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역설적 메커니즘을 잘 타고 넘는 연습을 미리 해둬야 나중에 뒤탈이 없다.(328p) 

  인문학자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들은 팔 걷어 붙이고 나서서 자식들을 말릴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모들은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논술 학원에 보낼 것이고, 글쓰기를 연습시킬 것이며, 책을 읽힐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들이 인문학을 용인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이 모든 것은 금지당한다. 대학에라는 문턱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인기있는 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학점에 목을 매고 토플 점수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전력투구해야 한다. 철학을 논하고,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사색을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글로 먹고 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자의 현주소이다. 글쓰기 책이 난무하지만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인가? 그냥 이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의 세례를 받고 거기에 경도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지난 2년간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결론은 뻔하다. 재개발이라는 논리가 철거민의 생명보다 앞서는 것이,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보다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이다.  

  돈만 된다면 무엇이라도 내다 팔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작은 희망이라고 본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굶어죽을 지경이 되어도 다음해 파종할 종자만큼은 까먹지 않았다. 그것을 까먹는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종자와 같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에 빠져서 인간성마저 팔아버리려는 절망적인 순간에 최소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어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요, 책을 읽는 이유이며, 내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고 싶은 이유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인문좌파란 현실에 휩쓸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판을 가하고 더 나아가 비판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이다. 분명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이 완벽한 슈퍼맨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 

  책이 너무 어렵다.(별표를 두개준 이유가 여기있다.) 320페이지밖에 안되는 이 책에 마르크스, 루카치, 프로이트, 벤야민, 라캉, 헤겔, 사드, 칸트, 지젝, 데리다, 네그리, 랑시에르, 바디우, 사르트르, 알튀세르 등등 수없이 많은 학자들의 의견을 다루기 때문이다. 각주를 충실하게 달고, 참고서적을 밝혀놓는다고 할지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론 가이드라는 거창한 제목에 비하여 포스트 모던 시대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각 사상가들의 사상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몇 페이지 안되는 짧은 공간에 그들의 개념과 사상을 우겨 넣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차라리 시간을 들여서 원전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지 않겠는가?

  오타 210p 4번째 줄 (포기한다는 것은=>포기한다는 것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좋아 2010-05-1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다가 덮었어요. 서문은 나름 읽을만 해서 기대 좀 했는데 점점 힘들어지더라구요. 초반에 마르크스는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읽다가, 이해 안되면 돌아가서 다시 읽고 또 앞 문단으로 가서 읽고 반복했는데 중반 넘어가니 알지도 못하는(이름만 아는) 철학자 뭐라 뭐라 했다는 식이고 또 그 말을 근거 삼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니 반박도 못하겟도..... 솔직히 접수불가입니다. '난 이 책이 무슨말 하는지 못 알아 듣겠다.'하고 외치고 싶은 참에 반가운 리뷰 만나서 푸념 좀 했습니다 ㅎㅎ
좋은 말도 안 나올거 같은데 이 리뷰 쓸까 말까 고민입니다.

물론 제 앎이 부족하기 때문이란걸 생각하더라도 불친절한 책 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아요.

saint236 2010-05-13 22:35   좋아요 0 | URL
정말 불친절한 책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꾸겨 넣었다는 생각에. 간서치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독자의 난독증은 저자의 책임이다. 맞는 말입니다. 욕심이 과한 책이었던 것 같아요.

L.SHIN 2010-05-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왠만하면...왠만하면...(부들부들 ㅜ_ㅡ) 세인트님 리뷰를 안 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나도 인문 서평단 하고 싶었는데 못 하는 슬픔'이 되새김질 되기 때문에!!!
아흑...미치겠어요. 인문쪽은 내용이 다양하니까 쓸 말도 많을 거 같은데..
경영은...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아,놔. 숙제 해야하는데...머리가 굳었어요.

saint236 2010-05-13 22:3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인문 서평단은 많이 약합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인문 서평단이 최고였던 기억이. 밀려드는 책을 주체하지 못해서 힘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외도도 해가면서 널널하게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강아지와 불평등 경제학, 그리고 정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에 달려 있는 존재 즉, 관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일까? 사람 人자도 서로가 서로에게 비스듬이 기대어 선 모양이다.  개개인이 부족해서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찾고 만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문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삶들이 모여 얽히고 섥혀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사람은 운명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고독을 느끼는 존재이다.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고독은 가장 뚜렷한 인간만의 특징일 것이다. 물론 홀로 생활하면서 사냥하는 맹수를 일컬어 고독하다 표현하지만 실제로 그 짐승이 고독한 것은 아니다. 그 짐승을 바라보는 내가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인가에게만 있는 고독이란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좌절하게도 만들고 성숙하게도 만들며 자신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마법의 약이다. 고독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생각이 더 깊어지고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깜작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고독에 관한 책이다. 시대의 지성이 고독이라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문제를 만나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가고, 또 어떻게 영성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양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씨는 한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물론 유명 아이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젊은이들이 그만큼 책을 읽지 않는 것 같아서 이러한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고, 글을 참 맛깔나게 쓰며, 시대의 지성이요, 무신론자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이런 이어령씨가 세례를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참 의아해했다. 자기 딸과 자폐증을 앓고 있던 외손자의 일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시대의 지성이요 무신론자의 대부라 일컬어지던 그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짐작이 되었고,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얼마나 힘든 것들이었는지 약간이나나 상상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이미 이어령씨의 화려한 글솜씨와 맛깔난 책을 접해본 나로서는 굳이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 아닐지라도 바로 구입했을 것인데 더더군다나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라면 안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책을 구입만 해놓고 한동안 읽지 않았다. 읽어야할 책들도 많고 써야할 서평도 많아서이다. 그런데 어제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라는 이택광씨의 책을 읽다가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잠시 쉰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역시 이어령이다. 책을 편 순간 그 글맛에 빠져서 마지막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어제 약속이 없었더라면 이 서평은 어제 밤에 올라왔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책이다. 

  시대의 지성도 결국은 고독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나 보다. 이어령씨가 딸의 문제, 손자의 문제라는 위기를 만나면서 직면하게 된 것은 존재의 고독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하게 그를 따라다녔던 고독이라는 녀석이 어느 힘겨운 순간에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이다.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일본에서 초빙받아 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것도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었고, 미치도록 사람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었으며 자기 존재의 무력감이었다. 시대의 지성으로서도, 철학으로서도 채울 수 없는 갈증과 허기는 결국 그로 하여금 영성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었고 그곳에서 채움을 받았으며 자신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번의 망설임 끝에 자신의 경험을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책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그래도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왜 이 책을 보면서 눈물이 나왔는가? 그가 느꼈던 고독감이 남의 이야기가 같지 않아서였다. 이어령씨와는 달리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습관처럼 교회를 다녔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언저리에서 알짱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큰 실패와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맛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그 시간을 견디고 난 후 종교가 아닌 영성에 대하여 아주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다. 아니다. 눈을 떴다는 것은 너무 교만한 생각이고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 혹은 그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의 기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로운 그의 지적인 사고는 성경을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게 만들었다. 특히 기도에 대한 그의 사고는 무릎을 탁치게 만들 정도였다. 잠시 그의 글을 인용해 본다.  

  아버지가 기도를 하실 때면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애썼지만 나는 그 기도를 들으면서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작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기도는 언제나 우리와 가장 먼 나라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셨던 것이지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으신 외신 뉴스 가운데 보스니아처럼 전쟁을 하거나 아프리카처럼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이나 우리는 관심조차 갖지 않은 지역에서 일어난 태풍이나 홍수로 가족을 잃은 난민을 보살펴 주시라는 기도였던 것이지요.
  그 긴 기도의 끝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국과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하셨는데 그것도 아주 작고 멋쩍은 소리로 혹시 남은 복이 있으시면 우리 식구들, 어린 손자들에게도 좀 나눠 주십사라고 끝을 맺으십니다.(P.41)  

  지금껏 내 기도에, 내 가족을 위한 기도에 열중했던 내 얼굴을 뜨겁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기도는 먼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에게서 멈춘다는 기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의 이러한 신앙의 순수함이 여러번의 간증과 세미나를 통하여 때가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의 오타가 너무 많다. 이어령씨가 오타를 내었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 출판사의 책임이려나? 설령 이어령씨가 오타를 내었다고 할지라도 출판사에서 교정을 충실하게 봤다면 이 정도로 오타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충 눈에 들어오는 오타들을 적어본다. 

  124p 6번째 줄 (들였던 것입니다.=>드렸던 것입니다.) 170p 3번째 단락 첫번째 줄 (흥동백서=>홍동백서) 178p 9번째 줄 (단신을 믿겠노라고 사다처럼=>당신을 믿겠노라고 사사 입다처럼) 262p 첫번째 줄 (목사님의 대한 애길=>목사님에 대한 이야길, 혹은 목사님에 대한 얘길) 262p 두번째 단락 네번째 줄(집회를 시작하는=>집회를 시작하는데) 마지막 페이지 2번째 (이어령 선생님와=>이어령 선생님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서평단 도서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 다이어트와 심리의 비밀에 관한 모든 것
캐런 R. 쾨닝 지음, 이유정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0년 07월 04일에 저장
절판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
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유영미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의 생떼와 이를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알려진 티벳. 신강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곳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티벳은 그저 무협지에서 서장으로서, 혹은 동북공정과 맞먹는 프로젝트인 서남공정으로서, 혹은 달라이 라마, 혹은 승려의 나라라는 막연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다.  

  히말라야라...우리에게 히말라야는 오은선에 의하여 14좌가 모두 정복된 곳이며 산악인 윤치원씨가 실종된 곳이다. 우리에게 히말라야는 도전이라는 낭만을 불러일으킬만한 세계에서 높은 산봉우리 중의 하나일 뿐이다. 도전하다가 죽는다면 그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이지 타인에 의하여 강요된 생존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어린 아이들을 비롯하여 수십만의 티베트인들에게 히말라야는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는 미아리 눈물 고개이며, 굴종과 자유 사이에서 목숨을 걸어야 투쟁의 공간이다. 이 투쟁의 공간을 탐딩과 치메와 돌커, 리틀 페마, 돈둡, 롭장, 락커는 어던 마음으로 넘었을까? 그들을 떠나 보내는 이들의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부모님은 너희와 함께 살기 싫어서 너희들을 떠나보낸 것이 아니었어. 너희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도록 다람살라(Dharamsala)에 있는 달라이 라마에게로 보낸 거야. 부모님은 너희들이 티베트에서처럼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지 않기를 바랐어. 또 티베트인 선생님이 티베트 말로 수업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너희들이 티베트 고유의 문화에서 성장하기를 바랐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를 누리기를 바랐어. 너희들을 떠나보내기로 결정하기까지 부모님은 무척 상심했을 거야. 그리고 떠나는 너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을 거야.(P.8 ~ 9)  

  "노란색은 우리의 땅을, 초록색은 물을, 붉은색은 불을, 흰색은 구름을, 파란색은 하늘을 상징하는 거란다."(P.94)   

  느기 닝 니 체위 우. 사랑스런 우리 아가, 우리 아가(P.193)  

  1950년 이래로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나는 너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속으로 얼마나 되뇌였을 것이며 울음을 삼켰을 것인가? 떠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엄마에게, 아빠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상실감, 혹한과 싸워야 하는 고생, 공안의 추적에 대한 두려움, 인도에서의 미래에 대한 답답함과 암울함.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의 마음이 타르초를 통하여 국경에 걸릴 때 그들은 남이 아니라 나의 형제가 되고 가족이 된다.  

 

http://greensol.tistory.com/151?srchid=IIM21tIp000&focusid=A_184CFB044B6F411952663(출처) 

  그들은 왜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히말라야를 넘어야 했을까? 왜 부모들은 아이들을 멀리 인도로 보내야만 했을까? 중국의 지배는 단순히 집권층이 바뀐 것이 아니다. 문화가 깨어지고 전통이 단절되고,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롭장의 말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증언한다.  

  나는 열한 살에 승려가 되었어요. 당시 우리 사원에는 삼백 명의 승려가 살았지요. 하지만 그 후 열일곱 명의 승려가 구금당하고 오십 명이 넘는 승려들이 인도로 도망쳤어요.. 남아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중국인들과 타협했고, 심지어 어떤 승려들은 중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지요. 가장 난감한 것은 공동체 안에 더 이상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아무하고도 터놓고 대화할 수 없었어요. 누가 변절자가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P.180 ~ 181)  

  신뢰할 이가 하나도 없는 곳,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터 놓을 수도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티벳사람들은 오늘도 자유와 신뢰, 동료를 찾아 히말라야를 넘는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의 아이들도 초라한 장비를 가지고 히말라야를 넘는다. 이들의 앞길에 함께 할 수 없는 부모들은 타르초에 자신들의 간절한 바램을 담아 하늘로 올려보낸다. 바람은 마치 이들의 바램을 하늘로 실어 나르듯 오늘도 히말라야를 휩싸고 돈다. 

  책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타르초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던지.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고구려는 우리 역사만을 줄기차게 외치는 나에게 서남공정에 의해 희생되어 가던 티벳인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아주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종교는 다르지만 오늘도 히말라야를 넘는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평화가 그들과 함께 하기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SHIN 2010-05-0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습니다. 몇 년 안에 히말라야를 가려고 하는 저는...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가려진 히말라야를 보았습니다.

saint236 2010-05-07 13:3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면서 그렇게도 안울려고 노력했는데 책에 나온 타르초 사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0-05-0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입니다. 티벳도 참 슬픈 나라인 듯 합니다.

saint236 2010-05-08 22: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티벳이라는 나라도 참 슬픈 나라입니다.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는 최소한 티벳이나 신강 문제만큼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과 과학과 신화가 만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한 조합이다. 조합 자체가 불가사의하고,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책의 표지에 적힌 각각의 특징은 이렇다.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서 과연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저 그렇고 그런 따로 국밥이 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재료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비빔밥이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금찍한 키메라를 만들어 낼 것인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책을 폈다. 기대는 상상이상이다. 정말 재미있다. 만화책처럼 술술 넘어가는 철학책이 있을 줄이야. 첫페이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가쁘게 달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철학과 신화, 그리고 과학이 각자의 특징을 지키면서 상대방에 대하여 열린 태도로 임하게 될 때 세가지 모두가 풍성해 진다는 저자의 관점 때문이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화-과학-철학의 연기는 각 분야의 개성을 전제한다는 점만 은유적으로 짚고 넘어간다. 신화는 즐겨 진리의 놀이를 하고, 과학은 아직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거울이기를 바라며, 철학은 현실의 베일을 끊임없이 벗겼다 덮었다 한다.(P.5) 

  진리를 놀이로 말하는 신화, 자연을 비춰보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 현실의 베일을 끊임없이 벗겼다 덮었다 하는 철학. 세가지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갂아내리지 않고 용납할 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할 때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책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이 관점으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철학과 신화와 과학을 접목했다는 구성뿐만이 아니라 주제 자체도 결국은 상대방을 용납하는 열린 자세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이 서평의 제목이 되는 슬픈 미노타우로스는 이 책의 7장의 제목이다.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전설은 이렇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이 왕이 되기 전에 포세이돈 신에게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는 증거로 바다에서 황소를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포세이돈 신이 황소를 보내주었지만 그 황소가 너무 멋이 있어서 차마 잡을 수 가 없었던 미노스 왕은 다른 황소로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고 그것을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 화가 난 포세이돈 신이 벌을 내려 그의 아내 파시파에스는 황소에게 욕정을 느끼게 되고 다이달로스의 부탁을 받아 황소와 관계를 갖고 미노타우로스라는 반인반수를 낳게 된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를 시켜 미로를 만들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고 크레타의 침공을 받은 아테네는 9년마다 남녀 7명식을 제물로 바치게 된다. 어느날 아테네 왕의 숨겨진 아들 테세우스가 자처하여 크레타의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게 된다. 이때 테세우스에게 반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는 실 한뭉치를 주었고 그 실 때문에 테세우스는 무사하게 미궁에서 빠져 나온다.  

  저자는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영웅 테세우스가 아닌 미노타우로스에게 맞춘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신의 벌을 받아 왕비와 황소 사이에서 태어나 미노스 왕에 의하여 미궁에 갇히고, 테세우스에 의하여 죽임당한 슬픈 존재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는 철저하게 타인에 의하여 타자화된 대상일 뿐이다. 인간과 황소 사이에서 태어난 키메라, 왕의 치부를 드러내는 존재, 인간이 아닌 몬스터, 흉폭한 괴물 등 온갖 악한 존재로 타자화 되었다. 그 결과 테세우스라는 영웅에 의하여 미노타우로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만약 이 신화를 미노타우로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어떻겠는가? 만약 자신과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고 가두어 버리는 미노스 왕의 옹졸함과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해 버리는 테세우스의 과격함에 촛점을 맞춘다면 어떨까? 아마도 조지 프레드릭 와츠라는 화가는 이런 생각을 했나 보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작품 미노타우로스는 너무나 슬프고 처연하다. 128p에도 이 그림이 실려 있다. 

 

  너무나 슬픈 미노타우로스의 눈망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왜 나를 이곳에 가두었는가? 내가 당신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데 용납하기 어려운 일인가? 나를 당신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고 당신들의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수는 없는 것인가?" 물론 외모라는 말을 입장이나 태도, 정치적인 견해 등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저자는 슬픈 미노타우로스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공상 과학의 수준으로까지 생각을 넓히지 않더라도, 별난 개체들의 미래에 대한 물음은 생명체의 공존 능력에 관한 물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생명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이며, 그것이 곧 존재론적인 것이다. 이는 '있음은 있다'라는 동일성 논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함께 있을 수 있음이 곧 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동일자의 존재론이 아니라 차이로서 공존론이다. 개체와 개체들의 사이가 곧 차이라면, 각 가치는 차이들 사이에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인간 중심주의를 체념해야 한다.(P.129 ~ 130)  

  결론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편가르기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미노타우로스라는 존재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는 미노타우로스는 신화 속에 나오는 황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가 아니라 나와 입장을 달리하는 상대편이다.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낸 우리는 용맹스러운 테세우스가 되어서 가꺼이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테세우스들이 존재하는가? 자유주의라는 테세우스, 민주주의라는 테세우스, 시장주의라는 테세우스, 민족주의라는 테세우스, 지역주의라는 테세우스, 조중동이라는 테세우스 등등등. 이 많은 테세우스들은 기꺼이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 낸다. 빨갱이라는 미노타우로스를 시작으로 하여 좌파 미노타우로스, 민노당 미노타우로스, 반기업 미노타우로스, 호남 미노타우로스 등등등. 사회 곳곳에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하여 타자화 된 미노타우로스들이 넘쳐 난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려는 용맹한 테세우스들에 의하여 철저하게 배제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끊임없이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 내는 체제. 이것이 바로 메두사의 시선이 아니겠는가? 사회 곳곳에서 느껴지는 메두사의 전투적인 시선 때문에 미노타우로스는 오늘도 슬프다. 그리고 오늘도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살아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그레이효과 2010-05-12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석 선생님의 <일상의 발견>이었나. 그걸 '진중문고'로 읽은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로 도통 못 읽었는데..반가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saint236 2010-05-12 09:51   좋아요 0 | URL
일상의 발견이라. 땡기는데요. 한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님 아이디를 예전부터 보면서 궁금했던 것인데 혹시 얼그레이가 홍차 얼그레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