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칼국수 집에 가서 외식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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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2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우리 아들 이름이랑 같군요.^^
 

 

오랫만에 놀이터에 나가서 미끄럼틀을 탑니다. 그런데 진이는 모든 사람이 언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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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
제럴드 L. 싯처 지음, 마영례 옮김 / 성서유니온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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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들어 답답함을 느낀다. 무언가 모르게 하나가 안 맞는 것 같은데 그 하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마치 도미노처럼 그 하나만 해결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삶에 활력을 다시 찾을 것 같은데 그 하나를 모르겠다. 그러니 답답하다.  

  그 하나를 놓고 참 많은 기도를 했다. 아직도 기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도를 하고 나도 마음이 답답하다. 순간순간 의심이 밀려 온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실까? 어려워 하는 이들을 만나면 기도하라고 권면하면서 나는 정작 기도에 대하여 의심을 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답답하던 차에  "그 청년 바보 의사"라는 책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읽을 것처럼 주문해 놓고 오랫동안 책꽂이에서 묵혔던 책이다. 아직은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있었고, 인문 사회 과학 서적에 눈길이 더 많이 갔다. 알라딘 서평단을 하면서 읽어야 할 책들도 많았던 까닭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뒤로 미루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알라딘 서평단 안식년을 맞이해서 그동안 사 놓았던 책들 재고 정리 좀 하겠다고 하면서 신앙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신앙서적을 읽은 이유는 내가 더 독실한 신앙인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가운데 신앙서적이 많았던 까닭이다. 거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무엇인지 모를 답답함 때문이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 시킨다, 기도는 능력이다."는 말을 교회에서 주로 듣는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다. 모든 기도가 다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만은 다르겠지라는 허망한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특징이다. 그러다가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은 없다고 뒤도 안돌아 보고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이러한 기독교인을 잡기 위하여 교회 안에는 기도와 관련된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넘친다. 그리고 온갖 기도회가 넘쳐난다. 기도를 하기 위하여 모이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오는 사람들도 많이 본다.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난다. 선배가 밥을 사준다는 말에 신입생이었던 선배를 따라갔고 주문한 밥이 나오자 기도를 했다. 정말 짧게 기도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 잘먹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짧은 기도를 했다. 선배가 빤히 보더니 뭐하냐고 물었다. 기도했는데요. 그러자 선배가 묻는다. "그렇게 기도해서 하나님이 들으시겠냐?" 한번도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그 말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나를 방황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일이 떠 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기도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놓는 행위임에도 내가 중심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면서 내가 기도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오만이다. 그러니 기도를 해도 답답하다.  

  기도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매일 나의 기도만을 하고, 나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만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다가 이어령 씨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읽었던 이어령 씨 아버지의 기도가 생각이 났다. 세계 곳곳, 나와 가장 먼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에게 이르는 기도의 방향. 그렇다 지금 내가 반성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먼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기도의 방향. 컴패션을 통해 결연하게 된 아이를 위해서 다시 기도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세번째 깨달음은 기도는 나를 변화 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변화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정당화한다. 기도는 내가 변화되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에 새겨본다. 

  아직 답답함을 해결되지 않았다. 언제 해결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답답함을 위해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았지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고맙다. 고민하고 하나님의 침묵에 답답해 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조만간 내가 가르치고 있는 청년들에게 선물해 줄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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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마빈 클로스 외 지음, 박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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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맷데이먼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스포츠 영화로 얼마 전에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남아공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흑백 갈등과 빈부의 격차가 존재했고 해결되지 않은 증오심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출범한 남아공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인빅터스는 이런 갈등 해결에 럭비가 한 몫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왕따를 당하던 남아공이 럭비 월드컵을 개최하고 우승하는 영화의 전재를 지켜보면서 남아공 사람에게 이미 럭비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동일한 것을 발견한다. 새롭게 출범한 남아공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내에 월드컵을 주최하게 되었는가? 수없이 많은 국가 중에서 남아공이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처음으로 개최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했다. 남아공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가 무엇일까? 그냥 공놀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공놀이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축구를 통하여 함께 노는 즐거움을 배웠고, 협동의 필요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몸을 단련했고, 정신을 단련했으며, 사회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웠다. 게다가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하여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2명 이상의 사람과 조그마한 공터와 공만 있으면 되었다. 게다가 룰도 상당히 간단한 편이다. 개인기와 팀플레이가 절묘하게 결합이 되어서 개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으며, 승리를 위한 전술적인 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축구를 통하여 소속감을 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하고 공격적이고 즐겁다.

  로벤섬에 갇혀 있던 수감자들이 축구를 하기 위해 투쟁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지루한 감옥 생활,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수감 생활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사회성을 배운다는 일차적인 목표 외에도 자극을 줄 수 있는 축구는 수감자들에게 단순한 게임 이상의 것이다. 럭비와 다른 스포츠에 비하여 축구라는 종목이 초창기부터 시작되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사진을 찍은 듯이 남겨져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수감자들은 축구를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배웠고, 의미를 배웠고,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 FIFA규정에 근거하여 리그를 만들어 운영하고 심판을 교육하고, 조직을 운영한 것은 이미 축구가 그들에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축구의 소중함을 알고, 그 축구 때문에 감옥에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투쟁을 통하여 축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사람들의 나라, 남아공! 그곳에서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축구의 기본 정신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ps 오타: 90p 6번째 줄 <발표을=>발표를> 153p 11번째 줄 <교도관 편지와=>교도관을 편지와> 232p 5번째 줄 <소개되면=>소개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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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 (반양장) - 변함없는 8가지 핵심 자질
존 R. 스토트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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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제자인가 그리스도인인가? 

  첫 질문부터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게 그것이 아닌가? 그러나 첫장을 읽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둘다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혹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믿음에 대한 부분을 강조한다면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강조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과 제자라는 말을 구분하여 사용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제자라는 말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제자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개독! 먹사! 돈만 밝히는 보수 꼴통 집단! 

  요즘 교회에 대한 평가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그 도는 더 심해졌다. 물론 내노라 하는 기독교의 대표 주자들도 기독교와 교회라는 이름을 팔아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다. 기독교는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대한 반발일까? 매우 정치적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행보가 여간 거슬리지 않는다.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다. 철저하게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독교를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할 뿐이다. 사회에서 지탄을 받을만 하다. 내 인생과 가치과의 거의 대부분을 형성한 기독교가 왜 이렇게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제자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믿으면 된다. 복받는다. 천국간다. 이런 복음들이 교회 강단에서 선포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전부는 아니다. 믿음과 행위, 이 두가지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한국 교회에서는 행위는 비믿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행위를 강조하는 설교를 하면 인간적이라고 공격을 받는다. 크리스천의 책임을 이야기하면 믿음이 약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믿음은 강조하지만 경건 훈련은 그저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전부하고 말한다. 그러니 말로는 믿음을 말하고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지만 삶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한나라당의 지역주의와 4대강 사업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젠 기독교인들도 훈련을 해야 한다. 거룩해 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물론 훈련이 거룩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경건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이다. 훈련은 이 경건의 씨앗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존스토트가 말한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 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이라는 8가지 항목들을 중심으로 먼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시작해보자. 그게 세상을 향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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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0-07-1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훈련이고 실천이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예수님과 함께하는 훈련이고 실천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saint236 2010-07-14 12:2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실천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독교는 미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바리새인이라고 예수님께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