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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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다. 무겁다. 서럽다. 그리고 침묵! 

  이 책을 통하여 본 것들이다. 흡입력이 매우 강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에 푹 빠져든다. 그리고 소현이 되고, 석경이 되고, 흔이 되고 만상이 되며 막금이 된다. 때론 도르곤이 되고 봉림이 되며, 원손이 되고, 인평이 되며, 기원이 되고, 인조가 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왔다가 들쑤셔 놓고는 다시 나간다. 그후에 느끼는 묵직함... 결코 가볍고 즐거운 느낌은 아니다. 애써 외면하고 싶다. 그러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김인숙이라는 작가의 천재성에 박수를 보낸다. 

  한 일자로 앙다문 입술, 멀리 응시하는 서글픈 눈동자, 온전히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간신히 반만 내민 얼굴! 그 얼굴이 서글프다. 서른 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적의 나라에서 8년을 견디고 돌아온지 두달만에 급하게 세상을 뜬 그의 삶이라서 더 서글프다. "조선으로 돌아가리라, 부국강병을 이루리라." 다짐했지만 아버지에 의하여 정적으로 낙인찍히고,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그의 죽음이 많이 서글프다. 아내가 아버지에게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어린 자식들도 환국할 때마다 자기 대신 적국에 볼모로 잡혀왔던 열두살짜리 큰 아들이 제주도에서 굶어 죽어야 했기의 그의 삶은 서글픔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슬프다.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책의 곳곳에 서글픔이 묻어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묻어 있다. 병자호란을 통해 받은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에, 아니 조선 팔도 곳곳에 스며 있다. 가족이 모두 죽고 청에 팔려와 역관이 된 만상에게 재물에 대한 집착이 트라우마이다. 석경에게는 흔이, 흔에게는 막금이, 막금에게는 신기가, 인조에게는 세자가, 세자에게는 조선이 트라우마이다.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자리가, 사람이, 조국이 그들에게는 아픔이자 트라우마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린 것이 낯선 땅에 묻히는 동안, 종일 비가 내렸다. 그리고 세자는 정일 몸이 아팠다. 심양 관소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세자가 조선에 있는 동안 세자 대신 인질로 잡혀 있는 원손도 아프고, 인평도 아프다 했다. 봉림의 어린 딸이 땅에 묻혔으니 봉림도 아플 터였다. 아비의 상을 치르러 조선에 들어왔다가 임금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곡 한번 하지 못한 채 다시 도성을 떠나야만 했던 빈궁도 아팠다. 종일 그렇게 비가 내렸다.(P.180)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지만 어느 곳에도 치유는 없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는 저자의 말이 마치 치유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 같아서 책을 덮는 나도 아프다. 왜 치유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치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치유를 이야기할 여력이 없는 것이리라. 병자호란의 상처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 재조지은의 케케묵은 가치관에 사수하고, 숭정의 연호를 사용하며 북경을 향하여 절을 올리니 상처가 아물 틈이 있겠는가? 오히려 상처를 찌르고 찔러 덧나게 만드는 것이 될 뿐이다.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존재의 근거요, 이유요,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든 뜻이 다 있다 하였다. 조선의 글 읽는 자들이 누구나 다 이쪽을 향하여 절을 했다. 그러나 불탄 자리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불타버린 뜻을 본 자도 역시 아무도 없었다.(P.316)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 뜻이 있다며 절한다. 세자가 그렇게도 돌아가고자 했던 조선의 글쟁이들은 오히려 남의 나라를 향하여 절을 한다. 세자의 뜻은 조선에 있으나 조선 글쟁이들의 뜻은 조선에 있지 않다. 그러니 돌아간 세자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피폐해진 조선이다. 세자를 위하여 재물을 보내고, 청에 바칠 공물을 보낼 그 조선은 너무나 빈약하고 피폐하다. 세자와 세자빈의 노력으로 재물을 모으고, 그 재물로 조선의 포로를 속환하고, 땅을 사서 정착시켰다. 부국 강병을 꿈꾸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 그날을 기다리는 그를 도르곤은 벗이자 적이라 했다. 그러나 피폐해진 조선의 글쟁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 무부와 노비들이었다.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전혀 폐지하고 오직 화리만을 일삼았으며, 또 토목 공사와 구마와 애완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크게 인망을 잃었다. 이는 대체로 그때의 궁관 무리 중에 혹 궁관답지 못한 자가 있어 보도하는 도리를 잃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P.339) 

  세자가 본 것은 무엇일까? 조선의 영광이었을까, 몰락이었을까? 세자가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아가 죽을 자리였던가, 왕이 될 그 순간이었을까? 세자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한 곳은 어디였을까? 자신을 적으로 보는 아비 곁일까, 자신을 적이나 벗으로 인정한 도르곤 곁일까? 앙다문 입술,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이 너무 서글퍼 눈물이 난다. 죽어서도 도리를 잃어 그리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그의 눈매와 앙다운 입술이 유난히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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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10-1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아픔, 인질로서 목숨을 부지해야 만 하는 주변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읽는 내내 참으로 무겁고 우울했습니다. ^^

saint236 2010-10-14 23:29   좋아요 0 | URL
맞아요...내내 무겁고 우울하더라고요.
 
예수님이 선택한 평범한 사람들
존 맥아더 지음, 정다올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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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平凡)! 

  이만큼 아무런 특색이 없는 말이 또 있을까? 한문도 평평할 平에 무릇 凡이다. 그 뜻을 대충 생각해보면 "대충 그렇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평범이라는 것큼 무특색이고 종잡을 수 없는 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평범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신 이유라 한다.   

  정말 예수님의 12제자는 평범한 사람인가? 아니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평범이라는 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평범이 맞을까? 무특색이라는 의미의 그 평범이 맞을까? 가만히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각자는 모두 개성이 있다. 베드로는 열정적이지만 괄괄하고, 안드레는 조용하며, 요한과 야고보는 출세욕이 대단했고, 빌립은 우유부단한 현실주의자이며, 도마는 비관주의자이고, 바돌로매는 특별한 존재감이 없다. 세리라는 커다란 약점을 가진 마태, 말그대로 존재감이 아주 작은 야고보, 테러리스트(열심당) 시몬,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촛점이 불명확한 유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12제자의 면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 이하라고 할 수 있고, 흠을 잡자면 한없이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택하셨는가? 일자 무식에, 성질만 있고, 무언가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감대도 없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바리새인도, 제사장도, 서기관과 율법사도, 사두개인도, 헤롯당도, 그 당시에 기득권층이고 식자층이었던 그 누구도 택하시지 않으시고 왜 이들을 택하셨을까? 

  예수님의 12제자 택하심, 그 자체로 나에게 위안이 된다. 대학원을 나왔으니 제자들보다 가방끈은 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뿐이다. 나에게도 성실이 있고, 나에게도 약점이 있고, 특별한 배경이나 권력도 없다. 그냥 평범하다.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에게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게 내가 12제자의 이름을 통하여, 그들의 선택을 통하여 얻는 가장 큰 기쁨이다. 

  대개 이런 책들이 그렇지만 약간 지루할 수 있다. 성경공부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읽기 싫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어느 하나 버릴 수가 없다. 기대하지 않았던 중에 얻은 깜짝 선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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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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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윤리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배아복제 문제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날 것이다. 황우석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생명윤리에 대하여 진지하고 깊은 토론을 가졌어야 했다. 그러나 일부 학계와 종교계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를 거쳤는지 몰라도 이 논의가 일반 대중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생명의 가치와 존중으로 깊이 고민하는 생명윤리라는 말보다는 생명공학, 또는 돈 되는 생명기술,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신산업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것이 이쪽 분야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어려운 용어와, 인간의 영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비과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용어와 개념이 우리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런 말보다는 이 기술이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 장애로,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낙관적인 말들이 우리의 귀를 사로잡아 왔다. 그런 현실에서 “생명윤리를 말한다”는 책이 과연 팔릴까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많이 팔렸다. 아마도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후광 효과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팔렸는지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이 책대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생명윤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야기하는 드문 책이기에 생명 윤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 생명윤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영혼, 종교적인 전통 등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에서 논의가 되었다. 그 논의는 대부분 생명을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논의는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의 희망을 깨어버린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비난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생명공학에서 사용되는 기술에 대한 찬반입장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어떻게 책임있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가깝다. 일단 생명기술을 연구하는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찬성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들어간 후에 그 기술들을 어떻게 공동체에 책임있고 평등하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한다.  

  일견 어려운 논의같지만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스포츠계에서는 생명 공학을 사용하여 선수들의 근육을 강화하고 능력을 끌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전공학 기술을 사용하여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샌델이 갖고 있는 생명윤리에 대한 기본 입장이다. 

  과연 유전공학을 사용하여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리가 한번쯤은 꿈꿔봤던 것들이다. 약하나만 먹으면 키가 크고, 혹은 다이어트가 되고, 유전 형질을 개선하여 보다 똑똑하고 우월한 후손을 만드는 것, 혹은 슈퍼맨이 되는 것 등을 한번은 꿈꿔봤을 것이다. 이런 종류는 아니더라도 유전공학이 발달하면 많은 불치의 병들을 고쳐 인류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은 한번은 꾸었을 것이다. 이러한 꿈에 대하여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을 내려본 적이 있는가?  

  샌델은 이러한 꿈들이 결국은 우생학이었다고 말한다. 유전공학을 통하여 인간의 능력을 강하하는 것은 결국 열성인은 제거하고 우성인만 대우하는 새로운 게르만주의, 우생학이 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나아가 유전공학이란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을 위하여, 병을 치유하는 등 최소한의 범위에서 사용되어야지, 그것을 성형이나, 우성인자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부한다. 만약 이러한 것을 허용할 시에는 겸손과 책임과 연대하는 공동체 윤리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더 큰 위험은 유전학적 강화가 일상화 되었을 때, 사회연대에 필요한 도덕 감정을 키우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잘 나가는 사람들은 사회의 최저 수혜자들에게 무엇을 빚졌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주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에 크게 좌우된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잘나갈 수 있도록 해준 자연적인 재능은 사실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른바 유전적 제비뽑기의 결과다. 우리의 유전적 재능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성취가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라면 달라지는 게 무엇인가? 그렇다면 시장경제에서 거둬들인 모든 것에 우리 각자가 전권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잘못이고 자만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남들만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과 이익을 공유할 책임이 있다.
  여기서 연대와 '주어진 선물'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겼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자기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의식은 능력주의 사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능력주의 사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란 우쭐거림과 의기양양함이 밴 기정이다. 즉 성공은 덕에 씌워지는 왕관인데,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가난한 자보다 더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라는 가정이다.(P.137 ~ 138) 

  샌델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비단 유전공학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내가 잘나서 얻었다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재능과 재산에 대한 책임의식이 희박해진다. 그 결과 사회에의 기여라든지, 환원,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라져버리고 불법과 불의를 통해서라도 성공하기만 한다면 장땡이라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닌가? 나에게 주어진 것은 나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을 게으르다 정죄하고, 무식하며 개인적인 부덕으로 가난하다고 가르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것 때문에 국민들이 서로 괴리감을 느끼고 박탈감을 느끼며 원인 모를 분노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샌델의 책은 분명 생명윤리를 주제로 하여 씌여졌지만 공동체의 시각에서 생명윤리를 논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도 읽혀질 수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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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열성유전이 우성이죠.
근데 거기서 열성인자를 제거하는 게 우성학이고,
여기서 우리는 돌연변이를 간과할 수 없고...

아직 관심만 갖고 시작도 못했는데,'정의란 무엇인가'부터 찾아 읽어야 겠네요,불끈~^^

saint236 2010-10-13 22:32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 보세요. 재밌습니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 살림과 육아, 맞벌이 때문에 덮어둔 나의 꿈을 되살리는 가슴 뛰는 메시지
김미경 지음 / 명진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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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들었던 노래 중에 김국환 아저씨의 "우리도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가 있다. 아마 연식이 오래되신 분들은 기억하는 노래일 것이다.  

우리도 접시를 깨자 - 김국환  

자 그녀에게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시간을 주자)
저야 놀든쉬든 (놀던쉬든) 잠자든 상관말고
거울 볼 시간 (볼시간) 시간을 주자 (시간을 주자)
그녀에게도 (그녀에게도) 시간은 필요하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아항 그건 바로 내 사랑의 장점
그녀의 일을 나도 하는 것 필수감각 아니겠어 그거야
자 이제부터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접시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접시를 깨뜨리자  

  중학생 때 나온 노래 같다. 당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노래였는데, 나에게는 무척 불온한 노래로 비쳤다. 남자는 하면 좋은 것이지만 여자는 꼭 해야 하는 일이 살림이요, 주방일이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만약 나중에 내가 결혼했는데 노래 가사처럼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던 노래였다. 그런데 가요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도 이 노래만큼은 즐겨 들으셨다. 텔레비전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지는 못하셔도 집중해서 들으신다는 것을 내가 느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 내가 결혼을 하고, 연년생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께서 왜 그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셨는지, 당시 아주머니들께서 왜 그렇게 이 노래를 좋아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고등학교 때인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혼자 우리 삼남매를 키우시던 때에 여동생이 어머니께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뭐 하고 싶은거 없었어? 꿈이 뭐였어?" "공부도 하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지." 집에 어머니께서 소장하고 계시던 한국단편 소설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글은 아무나 써요? 공부 잘하셨으면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니면 됐는데, 왜 중학교만 나오셨어요?"라고 철없는 소리를 했다. 마침 곁에 계셨던 외삼촌께서 "엄마가 공부 잘했지. 중학교 석차가 전교 10위에서 왔다갓다 했어." 그런데 공부 안하셨던 것이, 그리고 갓 스물이 넘어 9살 차이나는 아버지와 결혼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장학금을 주겠다고 고등학교에서 진학 권유를 받았지만 없는 살림에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거였다. 일찍 홀로되신 외할머니, 가장 노릇을 하는 외삼촌, 열심히 집안 일을 돕는 이모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밑으로 외삼촌 둘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까지 사회 생활을 일찍 하신 덕분에 외삼촌 한분은 지방 국립대지만 진학하여 은행원이 되셨고, 지금도 열심히 근무하고 계시며, 막내 외삼촌도 고등학교는 졸업하셨다. 어머니에게도 꿈이 있었지만 집안 살림과 결혼, 그리고 육아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아내와 결혼한지 1년만에 큰 애를 갖고, 바로 둘째를 가졌다. 원래 둘만 낳을 생각이었는데, 그 둘을 너무 발리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서 두 아이와 씨름한다. 게다가 이 두녀석 모두 입이 짧다. 그래서 밥을 먹이면 보통 한시간씩 걸린다. 가끔 아내가 투정부리듯이 이야기한다. 직장 생활을 하라고 해도 애들 때문에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직장생활하던 때가 그립다고 말이다.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회 생활한 경력이 꽤 된다. 그런 경력을 다 포기하고 나와 결혼해서 하루 종일 집안에서 싸름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뭐하도 해줘야 할텐데, 고민하다가 어느날 알라딘에 올라와 있던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아내에게 사다 주니 저자를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말하면서 틈틈이 읽는다.  

  하루는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자하고 책을 폈는데 내용이 쉬워서그런지, 아니면 원래 이런 종류의 자기 계발서가 가진 특징인지 술술 읽히는것이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아내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내가 힘들다고, 가끔은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할 때마다 그래도 애들 키워야지 어쩌겠냐고 하면서 지나왔는데, 어지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내에게도 꿈이 있고, 그것을 포기한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서 어린이집 다닐 정도가 되면 내 사무실로 아이들이 와서 기다리면 되니까 뭐라도 해볼래? 배우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더니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다. 그런 아내가 유난히 예뻐 보였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맞벌이다, 여성 인력을 잘 사용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등등 말은 많지만 실제로 아내들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자리를 남편들이 마련해 주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접시를 깨자는 말을 불온한 선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며, 조금은 더 신경을 쓰자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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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다니엘 벤사이드 외 지음, 김상운 외 옮김 / 난장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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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이다. 아마도 광우병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시민들이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왔을 때의 일일 것이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엄마들이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미 사라졌던 전대협의 깃발도 다시 올랐다. 지칠 줄 모르고 거세게 타오르는 촛불을 명박산성으로 가로 막고 소통을 이야기하던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겸허히 불렀단다.  

  그 즈음 한나라당의 주성영 의원은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석하여 촛불집회를 보면서 천박한 천민 민주주의라는 황당한 드립질을 하셨다. 비슷한 색깔을 가지신 다른 의원들은 국민들이 떼를 쓴다고 민주주의를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국민들을 계도하기에 바쁘셨다. 경찰청에서는 치안 유지라는 명목하에 여대생에게 발길질을 하고 시위 진압 특별팀을 신설했다. 물론 온갖 시위 장비를 다 시험하는 실험 정신도 보여주셨다. 

  국민들도 반대편의 생각을 들어주지 않는 정부에 화가 나서인지 점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닭장차 투어를 하게 되었다. 내 기억에는 초등학생도 이 투어에 강제로 참여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혼란스러운 2년 반이었다. 스펙터클하고, 판타지하고, 서프라이징한 시간들이었다.(한국 말로 쓰면 감정 절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코쟁이 말로 슨다.) 이 시간이 그저 답답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지난 2년 반동안 이명박 정부가 해 놓은 가장 큰 업적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과학 서적이 많이 읽혔으며, 정치에 대하여, 정체에 대하여, 헌법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에거 번역된 책이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인데 내겐 원제가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민주주의, 어떤 상태에?"라는 원제를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보다는 "당신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감벤, 바디우, 벤사이드, 브라운, 낭시, 랑시에르, 로스, 지젝이라는 당대의 최고 지성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기록한 짧은 소논문들과 인터뷰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가벼운 분량에 12000원에 육박하는 책값이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막상 읽어보니 진짜 부담은 책값이 아니라 그 내용이다. 마음 잡고 읽으면 이틀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내용이 너무 어렵고 딱딱해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몇달을 끌어 간신히 읽었다.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란 대중이 주인이 되는 정체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주인은 대중이라고 배워 왔다. 역사적으로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의 주인은 자격을 갖춘 아테네 시민, 그 중에서도 남자만이다. 그런데 로스는 민주주의의 어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조지아 오버가 지적하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권력을 지칭하는 세 개의 주요 용어(군주제monarchia, 과두제oligarchia, 민주주의demokratia) 중 오직 민주주의만이 숫자에 무관심하다. 군주제의 [어근인] '모노소monos'란 일인 지배를 지칭하며, 과두제의 '호이 올리고이hoi oligoi'는 소수의 권력을 지칭한다. 오직 민주주의만이 "[지배자의 수가] 얼마나 많으냐?"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데모스의 권력은 주민 전체의 권력도, 다수의 권력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나의 권력이다. 아무나는 지배받는 자의 명칭이자 지배하는 자의 명칭이다.(P.150) 

  민주주의의 주인을 주민 전체의 권력으로 이야기하면 그것은 전체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독일의 나치즘도, 이탈리아의 파시즘도, 그리고 북한의 체제도 사실은 독재나 전체주의이면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자신들 앞에 내세우는 것을 보면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명확해 진다. 민주주의 권력의 주인은 아무나 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로 범주화할 수 있는 국민이나 대중도 아니고, 오직 개개인만이 권력의 주인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아무나라는 말이 참 묘하다. 불특정한 개개인이 모두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아무나를 잘못 오해하면 주인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아무나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도 안되는 똥배짱이 생긴다. 이러한 똥배장을 가진 사람들이 떼법이다, 천만한 천민 민주주의다 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권력의 주인인양 행세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아무나 가질 수도 없고, 소수라고 무시할 수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특정인에게 권력이 이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때문에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개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을 보장해 줘야 한다. 실제로 무늬만 민주주의였던 고대 아테네에도 민회가 있었고, 아크로 폴리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은 공적 공간의 도래와 뗄 수 없게 된다. 이 공적 공간이 말라 죽을 때 정치적 대의는 장난이나 웃음거리가 된다. 아렌트는 정치적 대의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우스꽝스런 가극'이 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비극적 코미디이거나.(P.71) 

  개인의 생각을 자유스럽게 발언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말라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 민족주의이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스스로 공적인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닐까? 만약 국민 스스로 공적인 공간을 만들 요량으로 촛불을 들었다면 그것은 불온한 움직임으로 매도해서도, 폭력 시위로 몰아 강제 진압을 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그러한 공적 공간을 말라 죽게 만든 정치인들 스스로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옳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벤사이드는 영원한 스캔들에서 민주주의의 속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스캔들'에 대해 말한다. 어떤 점에서 민주주의는 스캔들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으려면 항상 더 멀리 가고, 그것의 제도화된 형태들을 영구하게 위반하며, 보편적인 것의 지평을 뒤흔들고, 평등을 자유의 시험대 위에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간의 불확실한 나눔을 끊임없이 뒤흔들고, 사적 소유로 인한 피해 그리고 공적 공간과 공공재에 대한 국가의 침해에 필사적으로 항의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항구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평등과 시민권에 대한 접근을 확장시키려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것이 끝까지 스캔들을 일으키는 한에서만 민주주의인 것이다.(P.81) 

  민주주의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것, 일상적인 것, 자유와 평등 등 지금까지 사회가 유지해 왔던 가치관들을 끊임없이 흔들고, 기성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애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안녕한가? 아니다. 절대 안녕하지 못하다. 반대 의견을 철저하게 숫자로 묵살하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기존의 가치 체계를 밀어붙이는 행태는 전혀 민주주의의 속성이 아니다. 스캔들을 일으킬 수 없는 민주주의는 이미 생명력과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라는 책의 제목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 왠지 노무현이 그립다. 최소한 그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반박하려고 했지 누구처럼 싹 무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가 살았을 때 햇병아리 검사들의 객기도 "이정도면 막나가자는 거죠?"라는 말로 받아 줄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아량으로 보지 않고 체신머리없다고 보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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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9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10-09 13:12   좋아요 0 | URL
헉...그럼 리뷰로서 실수한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