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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어둡다. 무겁다. 서럽다. 그리고 침묵!
이 책을 통하여 본 것들이다. 흡입력이 매우 강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에 푹 빠져든다. 그리고 소현이 되고, 석경이 되고, 흔이 되고 만상이 되며 막금이 된다. 때론 도르곤이 되고 봉림이 되며, 원손이 되고, 인평이 되며, 기원이 되고, 인조가 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왔다가 들쑤셔 놓고는 다시 나간다. 그후에 느끼는 묵직함... 결코 가볍고 즐거운 느낌은 아니다. 애써 외면하고 싶다. 그러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김인숙이라는 작가의 천재성에 박수를 보낸다.
한 일자로 앙다문 입술, 멀리 응시하는 서글픈 눈동자, 온전히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간신히 반만 내민 얼굴! 그 얼굴이 서글프다. 서른 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적의 나라에서 8년을 견디고 돌아온지 두달만에 급하게 세상을 뜬 그의 삶이라서 더 서글프다. "조선으로 돌아가리라, 부국강병을 이루리라." 다짐했지만 아버지에 의하여 정적으로 낙인찍히고,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그의 죽음이 많이 서글프다. 아내가 아버지에게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어린 자식들도 환국할 때마다 자기 대신 적국에 볼모로 잡혀왔던 열두살짜리 큰 아들이 제주도에서 굶어 죽어야 했기의 그의 삶은 서글픔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슬프다.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책의 곳곳에 서글픔이 묻어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묻어 있다. 병자호란을 통해 받은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에, 아니 조선 팔도 곳곳에 스며 있다. 가족이 모두 죽고 청에 팔려와 역관이 된 만상에게 재물에 대한 집착이 트라우마이다. 석경에게는 흔이, 흔에게는 막금이, 막금에게는 신기가, 인조에게는 세자가, 세자에게는 조선이 트라우마이다.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자리가, 사람이, 조국이 그들에게는 아픔이자 트라우마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린 것이 낯선 땅에 묻히는 동안, 종일 비가 내렸다. 그리고 세자는 정일 몸이 아팠다. 심양 관소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세자가 조선에 있는 동안 세자 대신 인질로 잡혀 있는 원손도 아프고, 인평도 아프다 했다. 봉림의 어린 딸이 땅에 묻혔으니 봉림도 아플 터였다. 아비의 상을 치르러 조선에 들어왔다가 임금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곡 한번 하지 못한 채 다시 도성을 떠나야만 했던 빈궁도 아팠다. 종일 그렇게 비가 내렸다.(P.180)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지만 어느 곳에도 치유는 없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는 저자의 말이 마치 치유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 같아서 책을 덮는 나도 아프다. 왜 치유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치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치유를 이야기할 여력이 없는 것이리라. 병자호란의 상처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 재조지은의 케케묵은 가치관에 사수하고, 숭정의 연호를 사용하며 북경을 향하여 절을 올리니 상처가 아물 틈이 있겠는가? 오히려 상처를 찌르고 찔러 덧나게 만드는 것이 될 뿐이다.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존재의 근거요, 이유요,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든 뜻이 다 있다 하였다. 조선의 글 읽는 자들이 누구나 다 이쪽을 향하여 절을 했다. 그러나 불탄 자리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불타버린 뜻을 본 자도 역시 아무도 없었다.(P.316)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 뜻이 있다며 절한다. 세자가 그렇게도 돌아가고자 했던 조선의 글쟁이들은 오히려 남의 나라를 향하여 절을 한다. 세자의 뜻은 조선에 있으나 조선 글쟁이들의 뜻은 조선에 있지 않다. 그러니 돌아간 세자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피폐해진 조선이다. 세자를 위하여 재물을 보내고, 청에 바칠 공물을 보낼 그 조선은 너무나 빈약하고 피폐하다. 세자와 세자빈의 노력으로 재물을 모으고, 그 재물로 조선의 포로를 속환하고, 땅을 사서 정착시켰다. 부국 강병을 꿈꾸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 그날을 기다리는 그를 도르곤은 벗이자 적이라 했다. 그러나 피폐해진 조선의 글쟁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 무부와 노비들이었다.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전혀 폐지하고 오직 화리만을 일삼았으며, 또 토목 공사와 구마와 애완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크게 인망을 잃었다. 이는 대체로 그때의 궁관 무리 중에 혹 궁관답지 못한 자가 있어 보도하는 도리를 잃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P.339)
세자가 본 것은 무엇일까? 조선의 영광이었을까, 몰락이었을까? 세자가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아가 죽을 자리였던가, 왕이 될 그 순간이었을까? 세자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한 곳은 어디였을까? 자신을 적으로 보는 아비 곁일까, 자신을 적이나 벗으로 인정한 도르곤 곁일까? 앙다문 입술,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이 너무 서글퍼 눈물이 난다. 죽어서도 도리를 잃어 그리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그의 눈매와 앙다운 입술이 유난히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