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 살림과 육아, 맞벌이 때문에 덮어둔 나의 꿈을 되살리는 가슴 뛰는 메시지
김미경 지음 / 명진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들었던 노래 중에 김국환 아저씨의 "우리도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가 있다. 아마 연식이 오래되신 분들은 기억하는 노래일 것이다.  

우리도 접시를 깨자 - 김국환  

자 그녀에게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시간을 주자)
저야 놀든쉬든 (놀던쉬든) 잠자든 상관말고
거울 볼 시간 (볼시간) 시간을 주자 (시간을 주자)
그녀에게도 (그녀에게도) 시간은 필요하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아항 그건 바로 내 사랑의 장점
그녀의 일을 나도 하는 것 필수감각 아니겠어 그거야
자 이제부터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접시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접시를 깨뜨리자  

  중학생 때 나온 노래 같다. 당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노래였는데, 나에게는 무척 불온한 노래로 비쳤다. 남자는 하면 좋은 것이지만 여자는 꼭 해야 하는 일이 살림이요, 주방일이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만약 나중에 내가 결혼했는데 노래 가사처럼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던 노래였다. 그런데 가요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도 이 노래만큼은 즐겨 들으셨다. 텔레비전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지는 못하셔도 집중해서 들으신다는 것을 내가 느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 내가 결혼을 하고, 연년생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께서 왜 그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셨는지, 당시 아주머니들께서 왜 그렇게 이 노래를 좋아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고등학교 때인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혼자 우리 삼남매를 키우시던 때에 여동생이 어머니께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뭐 하고 싶은거 없었어? 꿈이 뭐였어?" "공부도 하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지." 집에 어머니께서 소장하고 계시던 한국단편 소설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글은 아무나 써요? 공부 잘하셨으면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니면 됐는데, 왜 중학교만 나오셨어요?"라고 철없는 소리를 했다. 마침 곁에 계셨던 외삼촌께서 "엄마가 공부 잘했지. 중학교 석차가 전교 10위에서 왔다갓다 했어." 그런데 공부 안하셨던 것이, 그리고 갓 스물이 넘어 9살 차이나는 아버지와 결혼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장학금을 주겠다고 고등학교에서 진학 권유를 받았지만 없는 살림에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거였다. 일찍 홀로되신 외할머니, 가장 노릇을 하는 외삼촌, 열심히 집안 일을 돕는 이모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밑으로 외삼촌 둘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까지 사회 생활을 일찍 하신 덕분에 외삼촌 한분은 지방 국립대지만 진학하여 은행원이 되셨고, 지금도 열심히 근무하고 계시며, 막내 외삼촌도 고등학교는 졸업하셨다. 어머니에게도 꿈이 있었지만 집안 살림과 결혼, 그리고 육아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아내와 결혼한지 1년만에 큰 애를 갖고, 바로 둘째를 가졌다. 원래 둘만 낳을 생각이었는데, 그 둘을 너무 발리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서 두 아이와 씨름한다. 게다가 이 두녀석 모두 입이 짧다. 그래서 밥을 먹이면 보통 한시간씩 걸린다. 가끔 아내가 투정부리듯이 이야기한다. 직장 생활을 하라고 해도 애들 때문에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직장생활하던 때가 그립다고 말이다.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회 생활한 경력이 꽤 된다. 그런 경력을 다 포기하고 나와 결혼해서 하루 종일 집안에서 싸름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뭐하도 해줘야 할텐데, 고민하다가 어느날 알라딘에 올라와 있던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아내에게 사다 주니 저자를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말하면서 틈틈이 읽는다.  

  하루는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자하고 책을 폈는데 내용이 쉬워서그런지, 아니면 원래 이런 종류의 자기 계발서가 가진 특징인지 술술 읽히는것이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아내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내가 힘들다고, 가끔은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할 때마다 그래도 애들 키워야지 어쩌겠냐고 하면서 지나왔는데, 어지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내에게도 꿈이 있고, 그것을 포기한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서 어린이집 다닐 정도가 되면 내 사무실로 아이들이 와서 기다리면 되니까 뭐라도 해볼래? 배우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더니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다. 그런 아내가 유난히 예뻐 보였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맞벌이다, 여성 인력을 잘 사용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등등 말은 많지만 실제로 아내들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자리를 남편들이 마련해 주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접시를 깨자는 말을 불온한 선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며, 조금은 더 신경을 쓰자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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