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기자의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란 책을 읽고 있다. 거기 보면, '잘 가게 40원어치 폐지로 남은 인연들-절판되는 책'이란 쳅터가 있는데, 읽다보면 책도 사람의 일생만큼이나 초라하고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헌사를 휘장처럼 두르고 세상에 등장했을 책도, 교과 과정에 뒤쳐진 학습참고서도(144p)도 일단 폐지가 될 운명이라면 그 안에서는 대등하다는 걸 나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학습 참고서의 운명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잘난 책은 그렇게 영원히 잘난 체하고 있을 줄만 알았다.  

경기도 파주시 백석리라는 곳에 가면 책 파쇄공장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쌓아 놓은 파쇄를 기다리는 책들을 두고 작가는 참 처절한 표현을 썼다. 

오래 손을 탄 책들에서 느껴지는 포슬포슬한 정겨움 대신, 단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는 새 책들은 으레 정결한 위엄을 지닌다. ......아마도 그 책들은 책공장에서 출판사 창고로 옮겨진 뒤 해마다 조금씩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다 결국 이곳, 책의 도살장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정결했으나 그들이 지닌 위엄은 권력을 찬탈당한 어린 임금의 눈빛처럼 애잔했다.(145p) 

마치 엄마의 몸에서 낙태당하는 모양새라고나할까? 그런 운명이라면 몸을 던지듯 뛰어들어 이것들을 끌어 안고 나오지 않을까? 거기에 혹시 내가 찾는 또는 내가 읽을 만한 책이 들어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권력을 찬탈당한 어린 임금의 눈빛이라니...흑. 

작가는 그 파쇄공장에서 차로 40분 남짓 떨어진 곳의 어느 출판사를 방문해 거기서 책 한권을 발견한다. 작가가 10년전쯤에 읽었다던 일본 소설 <시귀(屍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싹한 이야기일 듯하다. 외전 산골마을의 몽환적 분위기와 애잔한 결말이 감동적이어서 가지고 있다던 소설.  

역시나 조회를 해 봤더니 절판으로 나온다. 책소개를 좀 더 살펴보면, 선과 악의 대립 및 반전에서 벗어나 기독교적인 정조와는 달리 동양적 정조를 풍기는 일본의 공포소설. 공동체 의식의 해체 과정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반목, 정당화되는 집단의 폭력성과 강요받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 나아가 인간의 편협된 시각이 아닌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 관점이 자유롭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토장 풍습이 남아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불어닥친 재앙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상황 전개, 인간에 대한 고민 등이 전개된다. '시귀'는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과 같은 존재. 이 소설은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듯 시귀는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습격할 수 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결국 시귀는 인간의 삶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갈등을 대변한다. 과학, 철학, 종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뒤얽힌 호러작품.
이라고 나온다.  

이렇게 절판이 됐다고 하면 괜히 사 보고 싶은 건 또 뭐냐? 그나마 만화책은 계속 나오고 있는가 보다.

   

 

 

 

보통 출판 계약이 5년을 단위로 맺어진다고 하는데, 판권 계약이 만료가 되었고 최근 임원회의에서 재계약을 안하기로 했단다. 안타까운 일이다. 혹시 어느 독자의 노력으로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것도 서명운동 같은 거 하면 안 되는 건가? 이책을 찾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물론 아직 헌책방 같은데 가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절판된 책이라도 찾는 독자가 있으면 소규모라도 다시 찍어 낼 수 있는 뭐 그런 (법적으로도 깨끗한) 시스템이 없어 아쉽다. 적어도 절판될거란 소식만 입수해도 개떼같이 달라붙지 않았을까? 어떻게 소리 소문없이 절판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아직도 분서 박해가 있는가 보다. 그건 80년대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는 주로 이념 서적이었겠지만 오늘 날엔 그것 가지고 분서하지는 않는가 보다. 세상 많이 좋아졌달까? 하지만 지배 이념, 풍속 보호라는 명분하에 판매를 금지하는 행위는 여전하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고도 출판사의 사드가 쓴 <소돔 120일>!  

이책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는 책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테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이책의 저자 사드 자신의 '패덕의 유형학'이라고 했다니 더 말해 뭐하랴? 더구나 번역자 조차도 자기 이름을 싣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단다. 

하지만 이책은 출판되자마자 판금이 되었고, 그래도 살 사람은 사고, 읽을 사람은 읽는다.  읽어 본 사람의 서평에 의하면 "이성의 세기에 합리주의를 전복시킨 문제작"이라고 했다나 뭐라나. 

이책은 당시 8000부를 찍었고, 회수되기 전 짧은 유통기에 얼마간 팔렸고, 회수 과정에서 또 얼마간 유출됐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10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는데, 제일 비싼 게 그렇고, 아직 알라딘 중고샵에선 6만5천원에서 9만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얼마전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묘한 대조이긴 하다. 

저자는 18세기 저작인 만큼 저작권은 없을테고, 번역만 새로해서 다시 살려 볼 계획이 없냐고 고도 관계자에게 물으니 그는, 그 책 판금시킨 게 국민의 정분데 현 정부가 그때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보느냐고 반문을 하더란다.  

그러고 보면 참 책의 운명도 왕권을 지켜내기 위한 운명 만큼이나 어렵고 힘든가 보다. 그러니까 작가가 그런 말을하지.  

아, 근데 잊을뻔 했다. 어쨌거나 책 한 권의 무게는 450그램 정도 된다고 한다. 코팅되서 재활용이 힘든 부위를 뜯어내면 300그램쯤 남는데, 요즘 패지 단가가 120원 정도니까 책 한 권 값이 40원쯤 된다고 한단다. 그래서 제목이  잘 가게 40원어치 폐지로 남은 인연들 인 것이다. 아, 슬픈 책의 운명이여.  

이런 걸 알면 정말 책을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아껴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책 만드느라 우리가 베어 냈던 나무는 또 얼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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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표를 우습게 보지 마라.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10-05-02 15:04 
    또 이 책 이야기다. 이 책에 보면 우표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은 이메일을 사용하느라 우표에 대한 수효가 있을까 싶다. 가끔 집단으로 공문을 띄울 때 '요금 별납'이나 '요금 후납'이란 스탬프가 찍인 것이나 받아보지 사연이 담긴 편지나 엽서에 우표가 붙은 우편물은 언감생심 기대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나마 나에게 있어서 다행인 건 30년 가까이 되어오는 아는 오빠에게서 받은 우표가 붙은 편지를 아직도 간
 
 
마립간 2010-04-1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방 사장님이 새디즘의 어원이 된 사드의 책이 나왔다고 저에게 구입하면 좋을 것이라고 권유해서 구입할까 말까 하다가 구입하지 못했는데, stella09님의 글을 보니 더욱 읽고 싶어지네요.

stella.K 2010-04-12 17:06   좋아요 0 | URL
중고샵에선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하나 장만해 두시죠, 마립간님.
전 그쪽 방면엔 좀 그래서 언감생심입니다요.ㅋ

마노아 2010-04-1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도 구하기 힘들어서 더 궁금했는데 소돔120일이 도서관에 있지 뭐예요. 작년에 빌려서 읽었는데 결국 다 못 읽고 반납했어요. 웬 똥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stella.K 2010-04-12 20:5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들은 것도 같습니다. 영화도 만만치 않다던데...
괴로우셨겠습니다.

2010-04-12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3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danew 2010-04-13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돔 120은 아마도 도서관에 들어간 분량을 제하면 개인 소장분은 정말 얼마 안 되는 거겠군요. 내용적으로는 지금껏 서가에 두는 것조차 다소 거북한 책이었지만, 그렇게까지 수량이 귀한 책이었다니 새삼 달리 보이기는 합니다. - -;

stella.K 2010-04-13 12:09   좋아요 0 | URL
그도 그렇지만 이책이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판금이란 게 또한 거시기해요.
어차피 해제해도 사 볼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을텐데
지금의 정부도 진보적이지는 못하단 말이 보수니 진보를 떠나서 아이러니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ㅜ

카스피 2010-04-1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판매되지 않는 책을 파쇄하는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국가적 낭비지만 해당 출판사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하는 행위지요.안팔린다고 그냥 싼 값에 팔면(예를들어 정가대비 50%이하 가격)차후 독자들은 그 출판사 책을 절대 정상각격으로 사질 않으니 그 출판사에서는 마이너스지요.결국 판매 부진이 책을 파쇄하게 되고 일부 독자들은 절판된 책을 찾고자 노력하니 중고 책값(예를들면 SF소설)등이 비 정상적으로 오르게 되는 이유지요.
헌 책방주인들은 파쇄를 하느니 자신들에게 싸게 넘기라고 요구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이를테면 출판사 이미지등)로 책을 파쇄합니다.물론 그중에는 파쇄단계에서 출판사 몰래 일부가 헌책방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읍니다.혹 헌책방에서 책을 사다가 보신분들도 계시겠지만 책등에 검은 혹은 붉은 스프레이가 있거나 책 표지가 찢어진 책들이 바로 그런것들이지요.
소돔 120일은 저도 위에 있는 책보다 더 전에 출판된 2권자리 책이 있었는데 참 내용이 거시기하고 뭐시기해서 읽다가 토할뻔한 책이었지요.그래서 어디다 쳐 박아 두었는데 당최 찾을수가 없네요 ㅜ.ㅜ

stella.K 2010-04-13 12:11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말씀 들으니 그도 이해가 가네요.
암튼 이래저래 책은 험난한 길을 갈 수 밖에 없는가 봅니다.
그 거시기한 책을 가지고 계시다니 우~! 카스피님이 새삼 대단해 보이십니다.ㅋ

Seong 2010-04-1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드의 책은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까진 기회가 없었습니다. 파졸리니의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을 5번에 걸쳐서 겨우 봤던 경험이 있지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이것참.. 저도 제 속을 모르겠어요. ㅡ.ㅡ;;;

stella.K 2010-04-15 13:04   좋아요 0 | URL
와, 파졸리니의 책도 있었군요. 토멕님 대단하십니다. 지식욕이 넘치시는 걸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 Michael Jackson’s This is i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순간 오래 전 사망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TV에서 그의 추모 방송을 했을 때 나름 꼼꼼히 챙겨 보았다. 물론 주로 그가 인기 절정에 있었을 때의 공연과 음악들을 짜깁기 한 것이지만 그의 음악이나 공연은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세련과 멋스러움을 넘어 스펙타클 그 자체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어제 나는 느껴나마 그의 마지막 기록물을 보았다. 이 필름은 그가 10년간의 공백을 깨고 런던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리허설 장면을 녹화 소장한 것을 편집한 것이라고 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무엇보다 그는 꼼꼼하게 자신이 공연할 것을 체크했고, 여러 많은 세션들과 대화하고 세세하게 고쳐나갔다. 그 와중에도 볼 수 있는 건 그가 간간히 피곤해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지치기도 하겠지. 하지만 긴장하는 모습이나 화내는 모습은 전혀 없어 보였다. 매번 그는 자신의 혼과 기를 쏟아 부어 연습에 임했고, 실제 무대에서도 역시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죽음은 정말로 아쉽다. 사람 나이 50이면 아직도 젊고 할 일이 많은 나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그것은 정말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던 것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봐도 그렇고, 추모 공연을 봐도 그렇고, 마이클 잭슨도 마이클 잭슨이지만 세션들이 눈에 들어 온다. 마이클 잭슨과 같은 무대에서 연주하고, 코러스하고, 같이 춤추고. 어디 보통 영예겠는가? 그렇게 오디션을 통과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그리고 실제로 한동안 그의 숨결을 느끼며 그와 함께 연습에 임했다. 이제 또 얼마 안 있으면 마이클과 함께 꿈의 무대에 선다. 사람들은 환호할 것이고, 열광할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에게 보내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이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마이클 잭슨과 같은 무대에 설테니까.  뭐 그런 부푼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두려움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마이클로부터 강한 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테고, 그를 향한 신뢰 또한 강철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추앙해 마지 않았던 사람이 죽었다. 저들의 마음이 어땠을까?가 나는 자꾸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어디서 뭘할까?    

그래도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또 어디에선가 열심히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살지 않을까? 마이클 잭슨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의 음악은 영원히 들려질 것이다. 세계 어딜 가도. 언제라도. 해마다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또 힘을 내서 열심히 살게 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나는 그가 공연하는 것을 보면 비가 생각이 났다. 물론 테크닉이나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이클이지만, 아마도 비의 롤모델은 마이클 잭슨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보곤 한다. 하긴, 그가 영향을 미친 사람이 비 한 사람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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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1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죽은이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오히려 저리 일찍 죽어서 대중과 팬들한테 전설로 남는것이 아닐까요.앨비스나 제임스 딘이나 마를린 몰로나 브르스 리처럼 말이죠.

stella.K 2010-04-13 11:57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일견 그렇게 생각해요. 재인박명이라더니...ㅜ

프레이야 2010-04-1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못 보고 지나쳤더랬어요.
마이클 잭슨을 추앙하는 싱어와 댄서들 참 많을 테지요.
스타킹,이란 티비프로그램에서 잭슨을 흉내내는 남자아이가 나왔는데
진짜 재밌게 웃었어요. 어린애가 어찌나 잘하던지요. ㅎㅎ
전생에 저도 곰이 아니었나싶은 때가 많아요.
겨울잠을 너무 오래자는 건 아닌지..ㅋ

stella.K 2010-04-14 10:21   좋아요 0 | URL
그래요? 거 볼걸 그랬습니다.
저는 예능 프로는 웬만해선 보지 않는지라...ㅜ
지금 모 사이트 가면 무료로 볼 수 있게 해 주더라구요.
함 보세요.^^
 
줄리 & 줄리아 - Julie & Juli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노라 에프론
주연 :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애덤스

남녀간의 연애를 아기자기 하면서도 도회적인 감수성으로 형상화시키는데 탁월한 노라 에프론 감독이 새 영화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일련의 작품들이 남녀간의 연애를 스크린에 담았다면, 이번엔 거기서 좀 비껴나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들고 왔다는 것. 

사실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전에도 다른 감독들에 의해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져 왔다. 얼핏 생각나는 영화로는 음식을 매개로 가족간의 소통의 문제를 다뤘던 <음식남녀>가 생각나고, 요리와 부부 간의 애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안토니아의 요리책>도 나름 인상 깊게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책은 <바베트의 만찬>과 <초콜릿>이란 영화가 아닌가 싶다. 



 

두 영화의 공통적이라면 요리를 통해 종교적 금욕을 교묘히 비꼬았다는 것인데,  또한 그런 것을 통해서 요리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며, 극대화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때 굳이 인간의 절제나 금욕을 표현해 줌으로 그 반대에 있는 것들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써야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인간의 삶은 어느 특정한 부분에선 과잉이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인만큼 상대적으로 어느 부분에서의 절제나 금욕도 필요한 것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의 대상이 하필 요리여야 하다니! 또 그것을 통해 절제와 금욕의 미덕을 비꼬고 있다니! 이런 얄궂은 운명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요리는 일상적인 것이다. 동시에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요리만큼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고 즐겁게 만드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음악은 청각을 만족시키지만 먹을 수 없다. 미술은 시각을 만족시킬 수도 있지만 역시 먹을 수 없다. 청각이나 시각이 미각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인간의 감각 중 가장 탁월한 감각은 역시 미각이다. 그것을 세치 혀로 맛 볼 수 있다는 건 역시 탁월한 예술행위가 아닌가?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몇 가지의 요리법이 개발 됐을까를 생각해 본다. 말하나마나 그것은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요리법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매일 TV에서 어느 요리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요리를 만들 때마다 인간의 창의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래봐야 그림의 떡이지만. 


영화는 처음에 좀 바쁘게 돌아간다. 어떤 땐 1960년대를 보여주다, 어떤 땐 2000낸대 중반을 보여주다. 왔다 갔다 정신이 없다. 분명 영화의 주인공들은 줄리와 줄리아지만 그들은 어느 한 장면에서도 만나지지 않는다. 오직 줄리는 다소 삶에 지친 나이 30의 여자로 현재의 시점을 유지하고, 줄리아는 60년대를 사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하나의 의미로 만나질 수 있는 건, 줄리가 우연한 기회에 줄리아가 출간한 요리책을 손에 드는 순간부터다. 더 정확히는 그녀가 365일 동안 524가지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는 계획을 실천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별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차츰 누리꾼의 관심을 얻게되고 그것은 줄리의 기쁨이자 삶에 활력소가 된다.   

이걸 보니 나도 블로그질을 처음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이것은 뭐에 쓰는 물건인고...?'하며 과연 내 블로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이웃하자고 할 사람이 있을까?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난 솔직히 아무런 기획도, 보여 줄 개인기도 없으면서 무조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의 줄리는 분명한 기획을 가지고 있었으니 처음 방점은 아주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쓰든, 블로그질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또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지 않는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업(業)으로 삼는 것처럼 좋은 일이 없다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60년대를 살았던 줄리아는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외교관인 남편의 사랑을 평생 받고, 요리를 좋아해 프랑스의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요리책도 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항상 승승장구만 할 것 같은 줄리아도 나름의 아픔과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아기를 낳지 못했다. 그것을 요리로 승화시키며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그 어렵다는 요리 학교도 무사히 마쳤다. 여기서 그녀에게 어렵다는 건 공부하는 자체 보단 남자들 가운데 여자는 줄리아 하나로 차별을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용이한 시절이 아니었을 테니 학교에서 조차도 쉽지는 않았겠지. 

줄리는 또 어떤가? 줄리아의 책에 나온 설명서 대로 요리를 해 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요리 학원에서 직접 강사의 설명을 듣고 해도 겨우 쫓아 갈까 말까인데 책만 읽고 해 본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처음엔 요리를 하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는 일이 즐거운 일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실패의 연속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남편하고도 갈등을 겪고 가출까지 한다. 뭐든 인간의 일은 쉬운 법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줄리는 지혜와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남편하고도 화해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도 하게 되고 자신의 기사가 신문에도 알려지는 기쁨을 얻는다. 그뿐인가? 책을 쓰자는 제안도 받는다. 그러고 보면 행운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라는 언제나 평범하지만 진실된 진리를 또 한 번 이 영화에서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 행복 또한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면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한편 마음이 묵직해 지는 것을 느낀다. 난 어제도 블로그질을 했고, 오늘도 했으며, 내일도 크게 따로 할 일이 없는 한 블로그질을 하게 될 것 같다. 짦지 않은 세월 블로그를 운영해 왔지만 난 아직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때 그때의 낙서 같은 단상도 올리고, 책이나 영화에 관한 리뷰도 쓰고, 관심 가는 책들에 관한 정보도 공유 하지만, 이런 것들로만 운영되어지는 나의 블로그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하다못해 나는 나의 습작 소설도 써서 올려보기도 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 끝도 못 보고 더 이상 올리지 않게 되었다.) 뭔가 나만의 색깔을 지닌 블로그를 하고 싶은데 내 색깔이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니, 왕년에 음식 잘하고 알뜰하기로 소문난 울엄마가 생각이 났다. 당신의 손맛이 예전만 같지 않다고 말씀하시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그런데 비해 나는 엄마를 닮지 못했다. 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아주 기본적인 것 외엔 나머지에 관해선 그다지 관심도 없다. 엄마는 그런 나를 자주 타박하시곤 한다. 여자가 돼 가지고 배울 생각이 없다고. 그건 내가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어차피 내가 하루 아침에 달라질 것은 아닌 것 같고, 영화를 보면서 나도 엄마의 살림을 블로그에 올려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엄마가 개발하고 응용한 음식이며 맛내기 비법도 알고 보면 꽤 될 것 같은데 그 딸이 전수를 못하고 있으니 아마도 엄마가 돌아 가시면 사장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올려보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사람이 시공간을 떠나 계속 어떠한 의미로든 교감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를 찾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써 실제로 줄리 파웰이란 동명의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만일 그녀의 그러한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 세상에 없는 노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바칠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고, 사람은 가도 요리 남는다.  

줄리 역의 에이미 애덤스도 나름 연기는 잘했지만 역시 줄리아 역의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과연 탁월하다 싶다. 어쩌면 낙천적이면서도 능청스러운 아낙의 역할을 그리도 잘 하는지! 다시 한번 그녀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면서 내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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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릴 스트립의 매력이 다시 푹 빠졌던 영화에요.
독특한 목소리하며, 웃음.^^
재미있게 본 영화에요. 블로깅에 대한 생각까지요.

stella.K 2010-04-10 21:31   좋아요 0 | URL
그래요. 블로깅에 대한 생각까지...! 프레이야님. 흐흑~

hnine 2010-04-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마지막 사진에서 액자 속의 메릴 스트립은 진짜 줄리아 차일드인줄 알았어요. 포즈가 어쩌면 저렇게 똑같지요?

stella.K 2010-04-11 14:0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저는 진짜 줄리아를 못 봐서리...
이 영화 정말 좋더라구요. 안 보셨으면 꼭 보세요, 에치나인님.^^
 

 

 1. 요리사 대 요리사 

 어제 영화 <줄리&줄리아>를 재밌게 봤다. 지금까지 음식을 소재로한 영화가 줄기차게 만들어지고 있는데, 역시 그런 영화는 대체로 보면 흐뭇해진다. 

알겠지만 그 영화는 소설을 영화화한 책인데 책은 또 어떤 감흥이 있을지 궁금하다.(물론 나 개인적으론 미국 문학은 읽기가 꺼려지는 분야라 딱히 끌리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우리나라는 다른 외국작품에 비해 이런 쪽에서의 소재 발굴이 미흡하다는 느낌이다. 지난 번, 드라마 <대장금>을 필두로 <식객>등이 나와 그나마 이제 눈을 뜨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은데. 암튼, 오늘 이매지님 서재에 들어갔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 바로 저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란 책이다. 오, 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비록 소설은 아니고 일종의 역사 대중서 같은데 급끌림이다. 

<줄리&줄리아>도 보면 줄리아가 쓴 요리 지침서가 매개가 되기도 하지만, 이책 <안동 장씨,...>도 보면 장계향이 쓴 '음식디미방'이란 책이 나온다. 어쨌든 이걸 가지고도 뭔가의 컨텐츠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책은 또한 이문열의 <선택>에 나온 주인공이기도 한단다.    

그런데 이책 오래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ㅠ

 

이밖에도 관심이 가는 책이라면 조경란의 <혀>와 <효자동 레시피>와 <앗뜨거워>인데, <혀>는 이미 읽었고, 뒤의 두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음식을 소재로한 책들이 참 많기도 하다.      

 

2. 선생 대 선생 

둘 다 선생과 제자의 좌충우돌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건 나라가 다르다는 거. 프랑스와 일본의 이야기다. 

클래스는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지난 번 시사회를 포기한 게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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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0-04-0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점심먹고 들어와서 사무실 책상위와 책상밑 그리고 주위에 널려있는 책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치울 것인지 고민중입니다. 10분내로 대책을 세워야해요. '책대책'을!

stella.K 2010-04-09 13:08   좋아요 0 | URL
ㅎㅎ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야클님.^^

플레져 2010-04-0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스, 는 인상적이었어요. 다큐멘터리 느낌이 물씬한데 점점 진짜 이야기로 확장되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구요. 포기하지 마시지! ㅎㅎ

stella.K 2010-04-09 13:1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나중에라도 꼭 봐야겠어요.
그나저나 오랜만이어요, 플래져님. 잘 지내는 거 맞죠?^^

hnine 2010-04-0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동 장씨도 있었네요.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음식디미방'은 전통 음식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필수적인 참고서적이더라고요.
조경란의 '혀'는 읽지도 않았으면서 표절 시비 때문에 한참 시끄러웠던 책이라는 것만 기억에 있고요.
5학년 3반 료타 선생님 포스터가 인상적이네요. 저는 저런 뒷모습 그림이나 사진에 끌리더라고요. 이전에 제 서재이미지로 쓰던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뒷모습 그림도 그렇고, 어제 주문한 동시집 '나의 살던 고향은...' 표지 그림도 그렇고요.

stella.K 2010-04-09 13: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안동 장씨.
저도 료타 선생님 표지가 참 맘에 들어요.
맞아요. 님 서재이미지 기억나요. 하지만 지금도 좋아요.^^

플레져 2010-04-09 14:28   좋아요 0 | URL
저두 hnine님 서재 이미지 좋아했는데~
지금 이미지도 좋아요^^

2010-04-09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9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9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9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4-0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급 떙기는 책들이네요^^
 
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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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다도가 깊이 있는 인간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막연하게 남아 알고는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 하루 석잔의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고, 녹차를 보리차 대용으로 마시는 내가 다도의 깊고 오묘한 세계를 어찌 알겠는가?  

가끔은 나도 다도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깊고 은은한 차의 세계는 또 어찌보면 밋밋한 것과 가끔은 혼동을 일으켜, 달착지근한 것을 좋아하는 내가 과연 그 세계를 받아 들일 수 있을런지도 의문스럽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왜 일본의 개국 공신이라 할 수 있는 명장들이 그들의 근성과 달리 그토록이나 다도에 집착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책을 읽으며 그 짐작이 어렵지 않다. 전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를 봐야만 했던 그들에게 마음의 평정심과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게 다도는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인간의 야수성이 그 반대의 격인 문화성을 키워 온 셈이기도 하다.  

작가의 문체는 얼핏 김훈의 문체를 연상케도 한다. 김훈의 단문과 고기심줄처럼 사람의 마음을 쉬 놔주지 않는 질깃함이 느껴진다.  

독특하게도 소설의 배경은, 다성(茶聖, 차의 성인) 리큐의 할복 하루를 앞두고 그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며, 리큐 할복 몇 개월 전, 몇 개월 전 하다가 몇 년 전으로 점점 올라가더니 마침내 리큐라는 이름을 히데요시에게 하사 받기 이전 청년의 원래 이름 요시로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면 청년 요시로는 조선의 어느 왕녀를 사랑해 그녀를 탈출시키려다 실패하는데 까지 이른다. 여자는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지만, 자신은 정작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 온 인간 리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아우라가 제법 매력적이고 근사하다.  

알고보면 요시로가 다성 리큐가 되기까지 그 배후엔 청초하고 아름다운 이 조선 여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가슴 속에 못 다이룬 사랑 하나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확실히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도 죽음 앞에서면 모든 것은 허무 해지고 만다.  

책은 도의 경지에 이른 리큐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정작 그가 왜 할복을 해야하는지에 관해서는 알길이 없다. 단지 부록으로나마 그가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사 할복 자결했다는 사실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왜 히데요시의 미움을 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점에 있어서는 이책은 불친절하다. 단지 미루어 알 수 있는 건, 영원한 주군은 없으며 따라서 영원한 가신도 없다는 것쯤.          

그러나 이 작품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차 하나에 갖가지 인간 군상과 역사를 담고, 사랑까지 담고 있으니 작가의 필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마음을 다스림에 있어 차 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진실은 피 보다 진하다.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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