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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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다도가 깊이 있는 인간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막연하게 남아 알고는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 하루 석잔의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고, 녹차를 보리차 대용으로 마시는 내가 다도의 깊고 오묘한 세계를 어찌 알겠는가?  

가끔은 나도 다도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깊고 은은한 차의 세계는 또 어찌보면 밋밋한 것과 가끔은 혼동을 일으켜, 달착지근한 것을 좋아하는 내가 과연 그 세계를 받아 들일 수 있을런지도 의문스럽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왜 일본의 개국 공신이라 할 수 있는 명장들이 그들의 근성과 달리 그토록이나 다도에 집착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책을 읽으며 그 짐작이 어렵지 않다. 전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를 봐야만 했던 그들에게 마음의 평정심과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게 다도는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인간의 야수성이 그 반대의 격인 문화성을 키워 온 셈이기도 하다.  

작가의 문체는 얼핏 김훈의 문체를 연상케도 한다. 김훈의 단문과 고기심줄처럼 사람의 마음을 쉬 놔주지 않는 질깃함이 느껴진다.  

독특하게도 소설의 배경은, 다성(茶聖, 차의 성인) 리큐의 할복 하루를 앞두고 그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며, 리큐 할복 몇 개월 전, 몇 개월 전 하다가 몇 년 전으로 점점 올라가더니 마침내 리큐라는 이름을 히데요시에게 하사 받기 이전 청년의 원래 이름 요시로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면 청년 요시로는 조선의 어느 왕녀를 사랑해 그녀를 탈출시키려다 실패하는데 까지 이른다. 여자는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지만, 자신은 정작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 온 인간 리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아우라가 제법 매력적이고 근사하다.  

알고보면 요시로가 다성 리큐가 되기까지 그 배후엔 청초하고 아름다운 이 조선 여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가슴 속에 못 다이룬 사랑 하나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확실히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도 죽음 앞에서면 모든 것은 허무 해지고 만다.  

책은 도의 경지에 이른 리큐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정작 그가 왜 할복을 해야하는지에 관해서는 알길이 없다. 단지 부록으로나마 그가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사 할복 자결했다는 사실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왜 히데요시의 미움을 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점에 있어서는 이책은 불친절하다. 단지 미루어 알 수 있는 건, 영원한 주군은 없으며 따라서 영원한 가신도 없다는 것쯤.          

그러나 이 작품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차 하나에 갖가지 인간 군상과 역사를 담고, 사랑까지 담고 있으니 작가의 필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마음을 다스림에 있어 차 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진실은 피 보다 진하다.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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