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 줄리아 - Julie & Juli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노라 에프론
주연 :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애덤스

남녀간의 연애를 아기자기 하면서도 도회적인 감수성으로 형상화시키는데 탁월한 노라 에프론 감독이 새 영화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일련의 작품들이 남녀간의 연애를 스크린에 담았다면, 이번엔 거기서 좀 비껴나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들고 왔다는 것. 

사실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전에도 다른 감독들에 의해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져 왔다. 얼핏 생각나는 영화로는 음식을 매개로 가족간의 소통의 문제를 다뤘던 <음식남녀>가 생각나고, 요리와 부부 간의 애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안토니아의 요리책>도 나름 인상 깊게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책은 <바베트의 만찬>과 <초콜릿>이란 영화가 아닌가 싶다. 



 

두 영화의 공통적이라면 요리를 통해 종교적 금욕을 교묘히 비꼬았다는 것인데,  또한 그런 것을 통해서 요리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며, 극대화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때 굳이 인간의 절제나 금욕을 표현해 줌으로 그 반대에 있는 것들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써야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인간의 삶은 어느 특정한 부분에선 과잉이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인만큼 상대적으로 어느 부분에서의 절제나 금욕도 필요한 것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의 대상이 하필 요리여야 하다니! 또 그것을 통해 절제와 금욕의 미덕을 비꼬고 있다니! 이런 얄궂은 운명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요리는 일상적인 것이다. 동시에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요리만큼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고 즐겁게 만드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음악은 청각을 만족시키지만 먹을 수 없다. 미술은 시각을 만족시킬 수도 있지만 역시 먹을 수 없다. 청각이나 시각이 미각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인간의 감각 중 가장 탁월한 감각은 역시 미각이다. 그것을 세치 혀로 맛 볼 수 있다는 건 역시 탁월한 예술행위가 아닌가?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몇 가지의 요리법이 개발 됐을까를 생각해 본다. 말하나마나 그것은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요리법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매일 TV에서 어느 요리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요리를 만들 때마다 인간의 창의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래봐야 그림의 떡이지만. 


영화는 처음에 좀 바쁘게 돌아간다. 어떤 땐 1960년대를 보여주다, 어떤 땐 2000낸대 중반을 보여주다. 왔다 갔다 정신이 없다. 분명 영화의 주인공들은 줄리와 줄리아지만 그들은 어느 한 장면에서도 만나지지 않는다. 오직 줄리는 다소 삶에 지친 나이 30의 여자로 현재의 시점을 유지하고, 줄리아는 60년대를 사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하나의 의미로 만나질 수 있는 건, 줄리가 우연한 기회에 줄리아가 출간한 요리책을 손에 드는 순간부터다. 더 정확히는 그녀가 365일 동안 524가지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는 계획을 실천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별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차츰 누리꾼의 관심을 얻게되고 그것은 줄리의 기쁨이자 삶에 활력소가 된다.   

이걸 보니 나도 블로그질을 처음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이것은 뭐에 쓰는 물건인고...?'하며 과연 내 블로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이웃하자고 할 사람이 있을까?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난 솔직히 아무런 기획도, 보여 줄 개인기도 없으면서 무조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의 줄리는 분명한 기획을 가지고 있었으니 처음 방점은 아주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쓰든, 블로그질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또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지 않는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업(業)으로 삼는 것처럼 좋은 일이 없다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60년대를 살았던 줄리아는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외교관인 남편의 사랑을 평생 받고, 요리를 좋아해 프랑스의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요리책도 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항상 승승장구만 할 것 같은 줄리아도 나름의 아픔과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아기를 낳지 못했다. 그것을 요리로 승화시키며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그 어렵다는 요리 학교도 무사히 마쳤다. 여기서 그녀에게 어렵다는 건 공부하는 자체 보단 남자들 가운데 여자는 줄리아 하나로 차별을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용이한 시절이 아니었을 테니 학교에서 조차도 쉽지는 않았겠지. 

줄리는 또 어떤가? 줄리아의 책에 나온 설명서 대로 요리를 해 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요리 학원에서 직접 강사의 설명을 듣고 해도 겨우 쫓아 갈까 말까인데 책만 읽고 해 본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처음엔 요리를 하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는 일이 즐거운 일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실패의 연속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남편하고도 갈등을 겪고 가출까지 한다. 뭐든 인간의 일은 쉬운 법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줄리는 지혜와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남편하고도 화해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도 하게 되고 자신의 기사가 신문에도 알려지는 기쁨을 얻는다. 그뿐인가? 책을 쓰자는 제안도 받는다. 그러고 보면 행운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라는 언제나 평범하지만 진실된 진리를 또 한 번 이 영화에서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 행복 또한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면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한편 마음이 묵직해 지는 것을 느낀다. 난 어제도 블로그질을 했고, 오늘도 했으며, 내일도 크게 따로 할 일이 없는 한 블로그질을 하게 될 것 같다. 짦지 않은 세월 블로그를 운영해 왔지만 난 아직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때 그때의 낙서 같은 단상도 올리고, 책이나 영화에 관한 리뷰도 쓰고, 관심 가는 책들에 관한 정보도 공유 하지만, 이런 것들로만 운영되어지는 나의 블로그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하다못해 나는 나의 습작 소설도 써서 올려보기도 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 끝도 못 보고 더 이상 올리지 않게 되었다.) 뭔가 나만의 색깔을 지닌 블로그를 하고 싶은데 내 색깔이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니, 왕년에 음식 잘하고 알뜰하기로 소문난 울엄마가 생각이 났다. 당신의 손맛이 예전만 같지 않다고 말씀하시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그런데 비해 나는 엄마를 닮지 못했다. 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아주 기본적인 것 외엔 나머지에 관해선 그다지 관심도 없다. 엄마는 그런 나를 자주 타박하시곤 한다. 여자가 돼 가지고 배울 생각이 없다고. 그건 내가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어차피 내가 하루 아침에 달라질 것은 아닌 것 같고, 영화를 보면서 나도 엄마의 살림을 블로그에 올려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엄마가 개발하고 응용한 음식이며 맛내기 비법도 알고 보면 꽤 될 것 같은데 그 딸이 전수를 못하고 있으니 아마도 엄마가 돌아 가시면 사장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올려보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사람이 시공간을 떠나 계속 어떠한 의미로든 교감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를 찾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써 실제로 줄리 파웰이란 동명의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만일 그녀의 그러한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 세상에 없는 노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바칠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고, 사람은 가도 요리 남는다.  

줄리 역의 에이미 애덤스도 나름 연기는 잘했지만 역시 줄리아 역의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과연 탁월하다 싶다. 어쩌면 낙천적이면서도 능청스러운 아낙의 역할을 그리도 잘 하는지! 다시 한번 그녀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면서 내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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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릴 스트립의 매력이 다시 푹 빠졌던 영화에요.
독특한 목소리하며, 웃음.^^
재미있게 본 영화에요. 블로깅에 대한 생각까지요.

stella.K 2010-04-10 21:31   좋아요 0 | URL
그래요. 블로깅에 대한 생각까지...! 프레이야님. 흐흑~

hnine 2010-04-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마지막 사진에서 액자 속의 메릴 스트립은 진짜 줄리아 차일드인줄 알았어요. 포즈가 어쩌면 저렇게 똑같지요?

stella.K 2010-04-11 14:0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저는 진짜 줄리아를 못 봐서리...
이 영화 정말 좋더라구요. 안 보셨으면 꼭 보세요, 에치나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