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은교> 얘기다. 

내내 은교에 매료되어 다 읽기도 전에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던 내가 책을 완독하고나니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이 책도 끝까지 읽고 그 좋고 나쁨을 얘기했어야 했을까? 아무튼 내가 좀 경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책이 별로라서가 아니다. 읽고나서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파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서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듯도 하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린 듯도 하고. 책 보다 우는 경우 나에겐 거의 없는 일인데 마치 마음이 데인 듯도 하다.  

누군가 이책 읽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술 마시며 밤새도록 얘기하고 싶기도 하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가 생각이 난다. 여자의 노래만 들으면 매료되다 못해 우울해서 자살했다는.  그땐 그 영화가 그런가 보다 했지 실제로 영화를 봤다고 우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우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난 오히려 이 책 읽기를 자제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이 말이 갖는 여파가 어떨지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관적인 것이니 참고하랄 밖에.  

리뷰를 써야하는데 당분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은 다 읽으면 바로 쓰는 편이긴 하는데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써야할 것 같다. 

보너스> 은교 가상 캐스팅에 서지우에 대한 캐스팅이 있어왔는데 나 개인적으론 임승대가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 다소 촌스럽고 조연만 맡아 왔지만 눈빛이나 연기발이 좋다. 

아무튼 빨리 마음을 추스려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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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5-1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단지 세월이 약이라는 말에 기대서가 아니라 일렁이는 마음이 가라앉은 자리를 생각이 대신하게 되면 애착이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얼마전 제가 소세키의 <길위의 생>을 읽었을 때 님과 같은 심정이었거든요.

stella.K 2010-05-11 12: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소세키의 <길위의 생>이라...
책소개 해주셔서 고마워요. 나중에 리스트 한번 만들어 볼까요?^^

야클 2010-05-1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고 판단해드리죠. 일단 땡스투 해드리고. ^^

stella.K 2010-05-11 14:31   좋아요 0 | URL
땡스투는 고마운데요, 야클님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시는 것이
좀 불안합니다. 저 원망하지 마세요.
설혹 우울해지시더라도 빨리 나오시구요.ㅎㅎ

2010-05-11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10-05-1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럴 때 있습니다. 너무 복잡해지면 어느 정도 가라 앉고 나서 쓰는게 나은.
그런데, 저 배우, 한 얼굴에 두 가지 표정이 함께 있네요.

stella.K 2010-05-12 11:24   좋아요 0 | URL
오잉? 어떤 어떤?
보는 눈이 남다르시군요, 엘신님.
이 배우 어제부터 시작한 K2의 <국가가 부른다>에
나오더만요.

L.SHIN 2010-05-11 16:53   좋아요 0 | URL
코를 경계선으로 스테님의 손바닥으로 왼쪽 얼굴, 오른쪽 얼굴을 한 번씩
가리면서 보세요. 전혀 다른 표정의,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걸 발견할
거에요.(악, 혹시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ㅋ)

stella.K 2010-05-12 11:0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설마요?
뭔지 알겠네요.^^

blanca 2010-05-1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의 글은 저를 은교로 더 끌어당기시는데요. 다 읽고 나면 저는 또 어떤 감정이 들까 기대해봅니다. 롤리타랑 비슷할 것도 같은데. 열심히 찬찬히 읽어볼게요.

stella.K 2010-05-12 11:09   좋아요 0 | URL
아, 롤리타! 그럴 것도 같네요.
몇년째 마음에만 읽고 읽어보지 못한 소설인데
좋은 비교가 될 수도 있겠군요.
저도 브랑카님 땜에 끌립니다. 조만간 읽어 보도록하죠.^^
 
언노운 우먼 - The Unknown Wo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주세페 토르나토레
주연 : 크세니야 라포포트, 미켈 플라시도

우선, <시네마 천국>을 만들었던 감독이 영화를 이렇게도 만드는구나 테크닉과 기교에 일단 놀라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이 <시네마 천국>을 만든 감독이라고 소프트하고, 그 작품에서처럼 유머나 위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불행한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폭력과 피가 낭자하다.  

그래도 여자를 존재하게 만든 건 자신이 마지막으로 난 아이를(여자는 총  9번의 아기를 낳은 것으로 되어있다) 찾고 그 아이의 보모가 된 것이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모성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중엔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슬퍼하는 장면이 보는 나도 짠하게 만든다. 

인상적인 건, 아이를 자기 같이 약하고 짓밟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몸을 칭칭 감고 쓰러뜨린 후 오뚜기처럼 일어나게 만드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투사 같은 것이기도 할테지만 그렇게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면 자기 아이를 마냥 온실속의 화초마냥 키울 수 만은 없겠단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감독은 <시네마 천국>에서처럼 자신의 상처를 재료로 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인 건 같다. 하지만 전작은 평면적인 감이 들지만(뭐 누구나 있을 수 있고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여기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물론 복수를 통한 치유라는 점에서 진취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럴 수 있는 중심엔 그런 모성과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뺀다면 거리의 창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창녀라고 해서 사랑도 없고 모성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암튼 좀 잔인하고 얄짜없고 다소 거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 음악의 거장 앤리오 모리꼬네의 건재함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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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이거 급땡겨^^

stella.K 2010-05-10 10:46   좋아요 0 | URL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어요.
마기님 영화 취향을 몰라서 이렇게 밖에는 말씀 드릴 수 밖에 없겠네요.^^

비로그인 2010-05-10 14:20   좋아요 0 | URL
세상에 맞서 강하게 키워내는 그녀의 모성은 어떤건가 직접 보고 싶어서요.
잔인하거나 거친면은 영화를 위한 필수요소였을거라고 이해하고 보면...ㅎㅎ

프레이야 2010-05-0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면서 놀랍고도 가슴 아팠던 영화에요.
동구(헝가리였던가요?) 매춘실태도 극악했구요.
마지막 장면, 저 꼬마 아이가 커서 그녀와 만나는 장면
여운이 길더군요.

stella.K 2010-05-10 10:49   좋아요 0 | URL
그 엔딩 장면이 여운이 길었던 건
아무래도 여자의 마음에 진정한 사랑과 모성애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이죠.
영화는 정말 참혹스럽더군요.
 

지금은 <은교>를 읽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가끔 다 읽어 간다는 사실이 아깝게 느껴지는 책들이 있다. 나에겐 아주 드문 일이긴 한데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한장 한장 넓길 때마다 자주 "후~"하는 탄성을 지르게 한 책. 내가 왜 박범신이란 작가를 진작에 몰랐을까? 후회될 정도라고나 할까?  

 결코 비교 대상이 되어선 안 되겠지만 난 지금까지 우리나라 작가 중 문장에 있어서만큼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면 김훈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박범신 선생은 또 다른 문장의 경지를 보여준다. 몰랐던만큼 전작에 도전하고 싶은 작가가 한 사람 더 생겨버렸다. 아, 어떻게...ㅜ 

 

 <공무도하>를 읽지 못해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김훈 선생의 글 중엔 <남한산성>이 가장 탁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더불어 숲>은 정말 다 읽기 아까운 책이었고. 신영복 선생한테는 죄송한 일이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저 <은교>가 순위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두 책은 한 카테고리 안에 있다는 것도 밝혀둔다. 

 

어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요즘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한 것들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기까지 하거나 적어도 그 부조리를 보고도 묵인하는 것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원칙이 없어서이거나 원칙이 있어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뭐 그것이 어니 내 주변의 일만이겠는가? 우리나라 탐관오리들의 행태가 또한 그렇지 않은가? 원칙은 힘있는 것들이 만들어 놓고 그것을 몸소 지키지 않는 것도 그들이다. 그리고 그것에 분개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 받거나 잡아 가둔다. 빌어먹을 세상이다! 

왜 사람들은 이것을 지켜나가지 않는 것일까? 원칙을 지키면 고리타분한 인간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원칙이 없을수록 원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가는 리더십이 중요하지 않은가? 오지랖 넓으면 그게 리더십인 줄 착각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근데 이 리더들이 흔히 갖는 이 오지랖이란 이불이 그렇다. 모든 사람을 다 덥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추울 것 같아 덥어주면 저 사람의 어깨는 덥어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엔 저 사람을 덥어주면 이번엔 이 사람의 어깨가 나오는 형국이다. 난 리더들의 이 어줍지 않은 리더십에 항상 반기를 들었고 그들의 지켜지지 않는 원칙에 저항했었다. 그래서 난 늘 리더들의 걸림돌이었고 대항마였었다. 이젠 나이 먹어 그짓하는 것도 싫다고 초야에 묻혀 살다가 손바닥만한 마당으로 나왔을 뿐인데 그 손바닥만한 마당에도 어줍잖은 잡초들이 나있더라. 이것을 뽑아야 하는지, 그 잡초가 보기 싫어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내면의 평안을 모른다고 했던 헤르타 뮐러가 말은 잘했다. 그녀는 "내면의 평화를 얻게 되면 따분하고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 누가 그랬다. 그래봤자 세상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니 너만 다치게 될거라고. 그러므로 네가 생각을 바꾸라고.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난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다가 바보가 되기는 싫다. 불평이 힘이 된다고 했던가? 힘이 없으니 고쳐나갈 수는 없다고 해도 불평이라도 하련다. 너는 왜 원칙을 지키지 않느냐고? 이 일을 함에 있어서 당신의 원칙은 뭐냐고 끊임없이 묻고 다닐 것이다.  

어제 내 손에 들어 온 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봐야겠지만 청소년의 자살을 억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주제로한 내용이라고 했다. 일본소설이고 한때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방송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내 청소년 자살률이 좀 떨어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작가도 비교적 젊다. 단지 자살 억제라는 착한 소재의 책이 있다는 게 반가울 뿐이었다.  

얼마 전, 엄마의 아는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아는 지인은 <자유죽음>이란 책이 생각난다며 죽은이의 명복을 대신 빌었다.  

하지만 이런 책은 내가 추천받고 싶은 책은 아니다. 자살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자살을 권하는 사회에서 저런 책은 오히려 더 부추기는 꼴이 될텐데 관심은 가져 뭐하겠는가? 모르긴 해도 자살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면에선 저 소설처럼 자살 억제를 위한 노력을 어디선가 하고 있다면 그것이 매일 자살에 대한 보도만큼이나 매스컴에 보도가 된다면 참 좋겠다. 이젠 어떻게 사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한 세대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을 때는 마이클이 아직 젊었을 때고 그렇게 일찍 단명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엘비스의 죽음만큼이나 충격적인 마이클 잭슨. 그에 관한 책을 어제 새롭게 발견했다. 얼마 전에 본 <디스 이즈 잇>이 생각난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간다. 

 

 

 

 

그밖에 관심 가는 책이다. 연애에 관한 책. 하나는 웃기고 하나는 뭔가 특이할 것 같다. 책 표지도 나름 일본스럽고. 

 제목도 특이하지만 표지 그림이 아름답다. 내용도 읽어보고 싶다.  

 

  

 

그래도 이번 주 가장 럭셔리한 책의 발견은 이 두책이 아닌가 싶다.  

카뮈는 그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있고 무엇보다 표지 그림이 타자기가 내 마음을 확잡아 끌었다. 

저책을 보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표지 그림 보면 막 욕이 나올 것 같다. 어떻게 타자기를 요따구로 밖에 못 그리는 거냐? 카뮈나 헤밍웨이나 얼마나 타자기가 잘 어울리는 작가더란 말인가? 팽~ 

저 긴 이탈리아에 관한 책은 내가 워낙 이탈리아와 그 나라의 음식을 좋아해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다. 더구나 작가가 자국의 사람이 아니고 러시아 사람이라니 이채롭다. 책이 좀 비싼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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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5-0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은교를 확실히 제가 읽게 만들어 주시네요. 저 책을 읽을까, 말까 어찌나 망설였는지 몰라요. 저도 문장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김훈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지금 주문한 책들이 괜히 거추장스러워지네요. 은교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카뮈의 마지막 날들도요.

stella.K 2010-05-09 09:41   좋아요 0 | URL
ㅎㅎ 한번 질러보세요. 지르셔서 박범신의 탐미적 문장에 한번 빠져보세요. 후회 안하실 거예요. 블랑카님!^^

얼그레이효과 2010-05-1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위치를 누를 때> 커버와 <자유죽음>커버를 연이어 보니, 이거 한 편의 영화 장면인걸요~

stella.K 2010-05-11 10:09   좋아요 0 | URL
앗, 정말 그러네요. 깊이 생각 안했는데...^^

뮤진트리 2010-05-1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뮈의 마지막 날들 서재에 한번 방문해 주세요
열심히 소통하려고 노력중입니다
 
트와일라잇 - Twil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캐서린 하드윅
주연 : 로버트 패틴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뱀파이어는 진화한다.'는 것이다. 뱀파이어가 진화하니 뱀파이어의 이야기도 진화하는 수 밖에. 사실 뱀파이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세대를 거듭해서 만들어져 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호러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렇게 흡혈귀를 소재로 한 영화 역시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것이 주는 매력은 감히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는 어땠을까? 그냥 인간의 피나 빨아 먹고 인간과 뱀파이어란 이분법의 선악구조를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나름 지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해 수작에 속할만 하고, 뱀파이어 영화는 무섭다는 나의 편견도 어느 만큼은 깨 준 영화였다. 

뱀파이어의 세계에서 나이 우논한다는 게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주연급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초중반을 상회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비해 본 영화는 영상이나 촬영 기법이 확실히 세련되어 있으면서, 등장인물은 그보다 훨씬 어린 존재로 그리고 있어 흥미롭다.   

영화 중 벨라가 에드워드의 존재를 알고 묻는 질문이 또한 이채롭다. 17세를 몇년째 살고 있느냐고 묻던가? 그렇다면 도대체 뱀파이어 세계에서는 인간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몇년만에 한번씩 나이를 먹는단 말인가? 

또한 이전에 본 영화는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면을 많이 살린데 반해, 이 영화는 가급적 그것을 배제하고 인간의 공간에 한발짝 더 다가선 현실적 공간을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를테면 뱀파이어가 학교도 다니지 않는가? 병원 의사이기도 하고, 정의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영화 역시 목이 먼저 뜯기는 쪽은 여자며 그에 따라 그 여자의 목을 무는 사람은 남자라는 것이다. 꼭 그게 아니어도 여자는 남자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남자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지 못해 안달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진화된 뱀파이어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 공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이 묘한 고정관념을 유지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이 관념도 여자 보단 남자가 유포한 고정관념은 아닐까? 그보단 여자에겐 한번 좋아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 모든 것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더 앞서는 것은 아닐까? 여자라고 다 나쁜 남자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탈의 욕망이나 나쁜 남자에게 찍혀보고 싶은 욕구가 일시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은 남자의 지나친 환상 내지는 여전히 여자를 전복시키고 싶어하는 남성 우위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여자가 뱀파이어에게 끌린다면 뭐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를 사랑함으로서 금단에 도전하고 픈 욕망. 또한 모성애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피아노 치는 뱀파이어라! 멋지지 않은가? 이전에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여자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설정은 애틋함을 더하면서 확실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얼핏 연상하게도 된다. 원래 사람이란 존재가 하지 말라면 더하고, 하라고 그러면 안하는 청개구리 근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에드워드 같은 훈남이 "난 널 사랑하면 안 돼."하며 자꾸만 끌리는 반어법적 프로포즈를 거절하긴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이 뱀파이어는 고독하면서도 자기 세계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여자는 점점 매료당한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찍고, 들이댈 생각하지 말고 이런 영화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세계도 없으면서 무작정 좋다고 들이대면 누가 좋다고 환영의 포옹을 해 줄까? 게다가 에드워드는 벨라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나타나 구해 준다. 이것은 또 여자로 하여금 얼마나 신뢰감을 주는 것인가? 벨라가 '난 너를 믿어"를 끊임없이 반복할 때 에드워드는 "날 믿지 마."라고 끊임없이 되풀이 하던 장면은 나쁜 뱀파이어와의 싸움에서 멋진 반전을 이루어 낸다. 



그런데 확실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다. 벨라와 에드워드의 저 엔딩 부분에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벨라가 어쩌면 그리도 낯간지럽게 느껴지던지. "얘야, 사람은 여러 사람을 만나 봐야 아는 거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하긴 사랑하고 있을 그 당시는 시간은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해도 그것은 별로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벨라의 목을 물지 않는한 에드워드는 영원히 늙지 않으며, 벨라는 늙어갈 것이다. 과연 에드워드가 이 늙어가는 벨라를 정말 변함없이 사랑해 줄 수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영원한 사랑 어쩌구 우논하는 쪽은 아쉽게도 에드워드 보단 벨라쪽이었다. 과연 벨라가 늙어서도 당당하게 에드워드의 사랑을 변함없이 받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물론 같이 영원히 사랑하자는 의미에서 벨라는 에드워드에게 기꺼이 목덜미를 내보이지만 에드워드는 인간의 우월성을 얘기하면서 그 목덜미를 물지 않는다. 확실히 에드워드는 사람도 아니면서 고단수다. 영원히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존재다. 이런 존재는 확실히 상대로 하여금 목마르게 만든다. 



이왕 이렇게 진화된 뱀파이어를 보여줄 바에야 다음번 뱀파이어는 좀 판세를 뒤집는 거라면 어떨까? 적어도 여자 뱀파이어를 사랑해 그녀에게 목덜미를 들이대는 남자형 같은 거 말이다. 질척해 보일까? 역시 남자가 여자를 구하는 캐릭터가 여자 관객이건 남자 관객이건 둘 다 좋은 거겠지?  

영화를 보면서 또 한번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 전설을 잘도 발전시키고 우려 먹는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설의 고향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를 본 것 같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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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소설 <은교>를 읽고 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한달 반 동안 받아 적는 듯 썼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어떠한 인용문도 없이 주로 서술형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 의외로 인용문도 눈에 띈다.  

특히 <군도>를 쓴 독일의 문학가 실러의 말을  인용한 글이 눈에 띈다.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면서,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다." 

과연 맞는 말이고, 멋진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난 이 5월이 너무 좋고, 앞으로 다가올 여름도 좋은데 이 좋은 계절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서성거리고만 있는 것 같다. 여름 한철이 지나면 가을이 오지만 서서히 한 해도 저물어 간다는 것을 알기에 현재는 너무 짧고 어영부영하다 또 한 세월을 보내게 될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과거는 영원한 것. 과거속에 살아야 하는 건가? 그건 좀 무의미한 건 아닐까?   

<군도>는 실러가 쓴 희곡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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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1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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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15: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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