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있었지만 누구도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덟 권의 책


한때 존재했으나 이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책들이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거나 아니면 작가가 책으로 쓰기 위해 구상해놓았던 이야기가 아닌, 분명히 글로 쓰였고 누군가가 읽었지만, 지금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린 책들 말이다.


영원히 전설로 남을 여덟 권의 책을 찾아서


프랑스 리옹 역에서 도난당한 여행 가방과 함께 사라진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나치의 압박을 피해 도망치다 생을 마감한 발터 벤야민이 마지막까지 지녔던 가방 안의 원고 뭉치, 미망인에 의해 파괴된 로마노 빌렌치의 미완성 소설, 스캔들을 두려워한 주변 사람들이 불에 태워버린 바이런의 회고록, 전쟁 중 폴란드에서 사라진 브루노 슐츠 필생의 역작, 신경증에 가까운 저자의 완벽주의 성향 탓에 불에 타 사라진 고골의 작품, 언젠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등.


잃어버린 위대한 작품들은 우리의 애도 속에서 완벽함과 불멸을 얻을 것이며 우리는 거기서 위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했던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의 말처럼, 한때 존재했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책들, 한때 우리 곁에 있었으나 이제는 전설로만 존재하는 책들은 애서가들로 하여금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사라진 것들에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


20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 로마노 빌렌치의 소설 거리는 미완성 소설이 평소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글을 쓰려고 했던남편의 평판에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미망인이 없애버린다.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의 회고록. 바이런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낸 그 원고는 19세기 영국에서 차마 입 밖에 내어 고백할 수 없었던 동성애를 밝혔다는 이유로 스캔들을 두려워한 주변 사람들이 불태워버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그가 캐나다 일간지의 유럽 특파원으로 일하며 작가로서의 미래를 타진했던 그 작품들은 그의 첫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의 여행 가방과 함께 리옹 역에서 사라진다.


<외투><> 같은 잊지 못할 단편을 썼던 러시아 작가 고골. 어느 서점이나 가면 찾을 수 있는 그의 장편 죽은 혼은 원래 훨씬 더 방대하게 구상된 작품으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작품의 1부에 불과하다. 그 작품의 2, 500페이지 가량의 원고는 신경증에 가까운 작가의 완벽주의 성향 탓에 불에 타 사라진다.

 

2차 대전 중에 유대인이었던 저자와 함께 사라진 가슴 아픈 작품들도 있다. 브루노 슐츠의 필생의 역작 메시아와 발터 벤야민이라는 20세기 위대한 지식인의 검정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작품. 전쟁이, 역사가, 운명이 삼켜버린 작품들이다.

 

운명이 아닌 화재가 삼켜버린 작품도 있다. 전설적인 알코올 중독자인 맬컴 라우리의 바닥짐만 싣고 백해로라는 소설. 9년 동안 캐나다 오지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손이 떨려 글을 쓰지 못한 상태에서 선 채로 손등을 피가 날 때까지 테이블에 문지르며 구술로 완성했다는 그 소설은 그가 살던 전기도 수도도 없던 판잣집이 불타 무너지면서 사라진다. “그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이라고 쓰인, 불에 탄 종잇조각들만 남아 그 소설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가 마지막 몇 달간의 삶을 기록한 일기와 이중 노출이라는 소설도 있다. 남편의 불륜으로 절망하다 자살을 결행한 그녀가 자신의 상황, 자신의 감정, 자신의 분노를 기술한 일기는 그녀를 떠났던 남편 테드 휴즈의 결정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의 미완성 소설 이중 노출은 어떻게 되었는지 휴즈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라진 책들]은 작가의 고집이, 운명이, 사회가, 역사가 사라지게 만든 여덟 권의 책들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완성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작가가 실제로 쓴 책, 즉 누군가가 보거나 읽어본 적도 있지만 그 뒤에 파괴되었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책들의 단서를 좇으며 그 책들이 사라지게 된 경로를 탐색한다. 태워지고, 찢어지고, 버려지거나 아니면 단순히 사라져버린 이 책들을 위해 저자는 수많은 학교와 기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작은 증거들까지도 면밀히 조사했다.


조지 고든 바이런과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찾아 영국으로, 그리고 헤밍웨이가 살던 1920년대 프랑스를 지나 니콜라이 고골이 살았던 러시아로, 발터 벤야민이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스페인 국경에서 브루노 슐츠가 총에 맞아 죽었던 나치 점령지 폴란드로, 맬컴 라우리가 피신했던 캐나다 벽촌으로 이동하면서 저자는 숨어있던 진실을 발견하고 생각지도 못한 연결점들을 찾아냈다.


땅이 더 이상 없어도 땅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서문 중에서)


사라진 책들은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상상하고, 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책들을 다시 지어낼 가능성을 유산처럼 남겨두었다. 그 책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날수록 그 책들은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도.


테드 휴즈가 조지아 대학교에 맡겨놓은 문서 가운데 실비아 플라스의 사후 60년이 되는 2022년까지 열어보면 안 되는 문서가 있다니, 그 안에 플라스의 미완성 소설 이중 노출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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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전직 신부이자 최고의 유방 절제술을 갖고 있는 암 전문의 헨델.

어려서부터 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자살 기도 전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두운 성격 탓이라고 말하는 가족과 절연하고 사는 화가 피카소.

스스로를 호색가로 주장하며 언어와 욕정의 결합을 좇는 사포.

 

피카소와 사포와 헨델이라는 세 캐릭터가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철학과 예술과 성에 관한 질문이자 모색이고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아름다운 미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사포헨델 세 사람이 돌아가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예술과 역사와 종교를 논하고 자신의 현재를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찾아 미로를 더듬어 나가는 체험.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이고 어지러운 이야기의 가닥들이 하나의 타래로 엮이는 순간, 퍼즐을 풀고 미로를 탈출하는 후련한 쾌감이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예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진실이 주어질 때 그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짓말이다.”

_파블로 피카소

 


시간을 초월한 근미래의 런던에서 이들 셋은 각자의 도시에서 도망쳐 같은 열차에 탑승하게 되고, 흥미로운 한 권의 책을 통해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바로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이라 불리는 책.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창녀인 돌 스니어피스라는 여인의 황당무계한 연애를 엿보고, 언어가 치유능력을 갖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야기를 읽는 독자일 수도 있는 창녀 돌 스니어피스( 스니어피스Sneerpiece라는 성은 남자의 물건을 비웃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인형이라는 의미의 이름 돌Doll과 충돌한다)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한 전지적 화자와 독자의 역할 모두를 대체합니다.


예술작품의 본질은 (흔히 오해하듯) 현실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세계의 복제품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독립적이고 완전하고 자치적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술작품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세계의 법규에 순응하고, 현실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당신이 가졌던 믿음, 목표, 그리고 특정한 조건들을 당분간 묵살해야 한다.


소설의 첫 장을 열기 전에 이런 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길잡이 같은 구절이지만 온전하게 예술을 온전히 향유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제언이 아닐까 합니다. 가벼운 소설들에 싫증이 난 독자라면 이 구절을 떠올리며 잠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넷 윈터슨


이 소설의 작가 지넷 윈터슨은 독실한 기독교도인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열여섯 살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달은 후, 그 경험을 소재로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로 휫브레드상 데뷔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합니다.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종교예술성적 정체성 등을 소재로 글을 써온 그녀는 피카소헨델사포라는 거장들의 이름을 지닌 주인공들을 통해 성별의 차이에 어마어마한 사회적 법률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통용되는 세상의 이치에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그물망 같은 권력들이 더께처럼 굳어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지넷 윈터슨은 페미니즘과 문학, 성과 정체성, 가족 안에서의 성폭행, 종교음악과 거세, 아동성애 등의 날카로운 주제들을 대담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유연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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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영국, 학구파 대학생 세 명과 미술에 염증을 느낀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 한 명이 거침없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중음악계에 뛰어든다. 야심만만하고 단도직입적인 데다가 통제가 안 될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이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의 하나가 된다. QUEEN.

자유와 열정으로 빛나는 록의 보헤미안, 삶을 사랑했고 노래를 사랑했던 영원한 로커,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자서전으로 퀸의 역사를 돌아본다.



 

우리는 단순히 시늉만 하는 음악은 할 생각이 없었다. 우린 이렇게 얘기했다. “좋아, 록에 뛰어들어서 진짜 그걸 업으로 삼는 거야. 어설프게 하는 게 아니라.” 그때 우린 아직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훌륭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독자들이 읽는 것은 전부 프레디가 직접 한 말이다. 20년 동안 이루어진 프레디와의 인터뷰와 무수한 자료들을 토대로 이 책을 편집했다. 경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정리하기는 했지만, 맥락에 맞춰 더 보태거나 뺀 것은 없다.

 

어떤 경우든 프레디가 한 말을 최대한 정확하게 남기고 모든 구문과 어감까지 그대로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프레디가 남긴 말들은 그의 서정적인 노래들처럼 고맙게도 기록 보관소에 잘 정리되어 남아있었다. 이 책을 만들고자 그 막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옮겨왔고, 모든 자료가 한데 합쳐지면서 프레디는 생전보다 더 크게, 생생하게 모습을 들어냈고, 이제 독자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편집자의 말)


편집자의 말대로 책은 모두 프레디 머큐리가 직접 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가 남긴 말들은 다양하게 남아 있었으나 그 기록들을 모두 한 권의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그를 이해하는 새로운 자료가 된다.

 

20년 넘게 각광을 받고 2억 장이 넘는 음반이 팔렸는데도 프레디 머큐리는 대단히 비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 외에 조금이라도 낯선 사람이 있으면 지나칠 정도로 낯을 가리고 불편해해서 인터뷰도 피할 정도로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담아냈다는 것이 이 책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그와 같은 내용들을 프레디 머큐리 자신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하고 있기에 그의 솔직하고 진지한 내면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20년 동안 이루어진 프레디 머큐리와의 인터뷰와 무수한 자료들을 토대로 편집한 이 책은 프레디 머큐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되 지루하지 않다. 절대 지루할 수가 없다!


프레디 머큐리 본인의 육성으로 퀸이라는 밴드가 얼마나 자주 해체될 뻔했는지, 그러면서도 이들이 음악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열정으로 꾸준히 밴드를 지켜 온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꿈을 추구하고, 부와 명예를 관리하고,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 없이 과거를 회상하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나 유산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자신감과 자만심이 줄줄 흐르면서도 남들 모르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찾으려 했던 프레디 머큐리. 바위에 깃든 여린 감성 같은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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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도처의 성당에서 비발디의 곡들이 울려 퍼지는 베니스, 브람스가 여름마다 머물며 명곡들을 작곡했던 스위스 툰 호수, 매년 6월이면 바흐 페스티벌이 열리고 그 바흐의 음악을 부활시킨 멘델스존이 활동한 라이프치히, 도시 곳곳에 베버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바로크의 도시 드레스덴,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

 

드레스덴 거리의 피아니스트


음악의 혼이 살아 숨 쉬고 일상에 예술이 스며있는 유럽 음악 도시 기행. 피아니스트 엄마 조현영이 아이와 함께 그 도시들을 천천히 걸으며, 위대한 음악가들의 발자취와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간다.

 

음악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는 피아니스트 조현영. 자신이 공부하고 생활한 독일의 쾰른과 라이프치히, 그리고 여러 유럽의 음악도시를 다시 찾아 클래식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번 유럽 음악 도시 여행이 소중한 것은 그녀의 어린 아들과 함께 하기 때문.

 


엄마이기 이전에 음악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자신의 모습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고, 음악이 자신의 삶에 끼친 무한한 에너지가 아이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하며 아이에게 음악의 아름다움과 힘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엄마의 마음이 애틋하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끼리 함께 음악 듣고 음악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 묻고 나누는, 그런 느낌으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한 책. [피아니스트 엄마의 음악 도시 기행]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세상을 떠난 도시들을 천천히 걸으며, 그곳에 깃든 위대한 음악가들의 예술혼을 느껴보고, 그곳에서 꼭 들으면 좋을 음악을 애써 찾아 듣고, 그 느낌을 아이와 공유하며, 그 순간들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클래식 음악이 주는 선물 같은 감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


첫 여행지는 저자의 제2의 고향인 독일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괴테를 만나고, 이어서 작은 도시 만하임으로 향한다. 그곳은 서양음악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만하임 악파의 태생지이자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모차르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음악에의 꿈을 접지 못해 결국 법학 공부를 포기한 슈만의 청춘시대를 느껴보고, 그곳에서부터 동쪽으로 쭉 이어진 괴테 가도를 따라 바흐의 도시 라이프치히로 간다. 클래식 음악의 성지이자 도시 전체가 서양 음악사의 살아있는 현장인 라이프치히는 특히 저자가 유학하며 음악을 공부했던 곳.

 

라이프치히의 게반트 하우스


바그너가 태어나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구상하고 멘델스존이 생을 마감하고 바흐의 <마테 수난곡>이 사후 최초로 전곡 초연된 그곳에서 저자는 바흐를 공부하게 된 계기와 바흐의 가치와 철학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이야기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예기치 못한 걱정들을 맞닥뜨리게 하지만, 여행은 서로를 더 알아가기엔 최고의 기회인 법. 모차르트가 태어났고 아버지와 함께 유럽 각지로 연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던 잘츠부르크와 19세기 예술의 메카 빈에서 저자는 신동 모차르트와 슈테판 성당 소년 합창단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만의 소소한 감정들과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 때로 충돌하는 것을 경험하고, 아이의 눈에 맞춰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기도.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빈 사람들 - 오페라 극장 앞


이 책을 읽다 보면 물의 도시,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 건축 비엔날레의 도시 베네치아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고향, 베네치아라는 것을 기억하게 되고, 언젠가 툰 호수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꼭 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음악이라는 주제를 확실하게 붙잡고 여행을 한 기록이고, 여행으로 또는 글로 흔히 접하지 못하는 드레스덴라이프치히만하임툰 호수등 음악사의 관점에서 중요한 장소들을 소개해주고, 딱 그곳에서 들으면 좋을 음악까지를 엄선하여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피아니스트 조현영


독일 쾰른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전공 실기 전문 연주자 과정(Diplom),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최고 전문 연주자 과정(Konzertexamen) 학위를 취득했다. 음악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쾰른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교육학 과정(Instrumental Paedagogik)을 수료했으며, 귀국 후 16회의 독주회와 다수의 실내악 연주회를 열었다.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실기 및 예술철학음악교육학을 강의했고, 현재는 온오프를 막론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2016)가 있고, 현재 예술 강의 기획 아트 앤 소울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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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장소에 머물다 간다. 집과 일터는 물론이고 여행지, 혹은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 거리, 카페, 친구 들과 어울리는 어떤 곳, 우연히 발길을 들여놓은 낯선 동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 더 다양하고 많은 장소를 경험한다.

 

어찌 보면 이들 장소에 대한 기억이 곧 자기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 반대로 장소들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벌어진 기억들로 채워진다. 자신의 삶을 자기가 거쳐 온 장소들을 지표로 기록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것은 내밀한 일기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의 기록일 수도 있다. 여기 프랑스 파리의 장소들을 지표로 자신의 삶과 시대를 기록한 책이 있다.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1919년에 태어나 98년을 살고 201711월 세상을 떠난 로제 그르니에, 기자이자 작가로서 생전에는 '걸어 다니는 현대 프랑스 문학의 역사'라 불릴 만큼 시대의 기록자로 충실했던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 삶을 파리라는 '위대한 도시'를 중심에 놓고 회고한다. 어린 시절 이후 그가 평생 거쳐갔던 파리의 장소들에 대한 기억은 곧 그의 역사이자 파리의 역사가 된다. 파리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에서 생을 마친 한 파리지엥의 삶.


작가 로제 그르니에는 자신과 연관된 100여 곳이 넘는 파리의 거리들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회상함으로써, 20세기라는 격변기에 기자로 작가로 편집자로 살아온 삶을 회고한다. 파리에서 보낸 첫 밤에 대한 기억은 물론이고 파리 해방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당시 파리 시내를 묘사한 풍경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막연한 전쟁의 모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존의 현장으로서의 한 도시와 사람들을 보여준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에 대한 묘사가 이토록 슬프고, 비참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예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왼쪽 끝) 알베르 카뮈, 오른쪽 끝)로제 그르니에


50여 년 동안 기자이자 편집자, 작가로 일하며 만났던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들을 중심으로 아련하지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죽음을 전하는 순간의 기록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길 만하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작업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에 있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카뮈는 자주 페이지 레이아웃을 검열하고, 마지막 교정쇄를 수정했다. 누군가 결국 내게 말했다.

카뮈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면 우리가 그의 친구였다고 말해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자공들과 교정자들이 책 친구들이 알베르 카뮈에게라는 제목으로 공동 저작을 펴냈다. 그들은 내게 그 책의 서문을 청하면서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주었다.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전시회를 기억하고, 소르본에서 들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강의를 기억하고, 파리 해방 즈음 플레옐에서 본 루이 암스트롱의 반짝이던 트럼펫을 기억하고, 물랭 루주 테라스에 세워진 보리스 비앙의 아담한 집을 기억한다. 그에게 <콩바>지에 들어오라고 권한 알베르 카뮈의 제안을 기억하고, 카페 플로르에서 본 윌리엄 포크너를 기억하고, 앙드레 지드의 집으로 찾아가 그와의 대담을 녹음하던 중 지드가 발음을 연습해야겠어라고 한 말을 기억해낸다.


카페 플로르 1949


파리, 문학의 도시


아버지가 태어난 마자린 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친구이자 동지였던 클로드 루아의 유해가 뿌려진 퐁데자르 길에서 끝맺기까지, 그는 파리의 수많은 거리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언급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건드린다. 그가 들려주는 추억과 일화는 각각의 장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잊힌 사람들을 되살려놓는다.


파리는 문학적 자취로 가득한 도시다.

보들레르, 그가 파리에서 살았던 서른 곳 넘는 거주지들을 돌아보자면 기진맥진해질 것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은 딱하게도 오직 한곳에 사로잡혔다. 비에유랑테른 길, 그곳에서 그는 검고 흰어느 겨울밤에 목을 맸다. 그 길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의 프롬프터용 구멍이 아마도 네르발이 목을 맨 창살창 자리였을 것이다. 보들레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은밀하게, 그가 찾을 수 있었던 가장 어두운 거리에서 자기 영혼을 풀어놓았다.


평생을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의 기억들의 대부분은 문학과 연관되고,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카뮈네르발빅토르 위고보들레르스탕달로맹 가리자크 프레베르보리스 비앙샤토브리앙사르트르프루스트지드포크너헤밍웨이카렌 블릭센등 문학의 거장들이 대거 소환된다.

역사적 사건과 문학적 자취로 가득한 파리를 자신의 몸에 새긴 작가는 이 책의 출간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문학과 삶, 그리고 망각에 대해서 기억해 둘 만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잊힐 만하지 않은 작가들이 망각되는 빠른 속도에 놀랐다. 루이 기유는 겨우 망각을 면했지만, 다른 이름들은 젊은 세대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마르크 베르나르가 그렇고, 클로드 루아조차 요즘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30년 전에 타계한 작가들 가운데 로맹 가리와 알베르 카뮈 같은 몇몇 작가는 여전히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남은 것은 비극적 운명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이 책에서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들의 문학적 자질과 무관하게 그들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망각은 아주 부당한 것이다.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고 표현한 대로, 사랑했던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잊힌 사람들만남사건을 회상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다시 열어주는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기행. 새삼 그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골목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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