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 Twil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캐서린 하드윅
주연 : 로버트 패틴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뱀파이어는 진화한다.'는 것이다. 뱀파이어가 진화하니 뱀파이어의 이야기도 진화하는 수 밖에. 사실 뱀파이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세대를 거듭해서 만들어져 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호러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렇게 흡혈귀를 소재로 한 영화 역시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것이 주는 매력은 감히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는 어땠을까? 그냥 인간의 피나 빨아 먹고 인간과 뱀파이어란 이분법의 선악구조를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나름 지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해 수작에 속할만 하고, 뱀파이어 영화는 무섭다는 나의 편견도 어느 만큼은 깨 준 영화였다. 

뱀파이어의 세계에서 나이 우논한다는 게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주연급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초중반을 상회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비해 본 영화는 영상이나 촬영 기법이 확실히 세련되어 있으면서, 등장인물은 그보다 훨씬 어린 존재로 그리고 있어 흥미롭다.   

영화 중 벨라가 에드워드의 존재를 알고 묻는 질문이 또한 이채롭다. 17세를 몇년째 살고 있느냐고 묻던가? 그렇다면 도대체 뱀파이어 세계에서는 인간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몇년만에 한번씩 나이를 먹는단 말인가? 

또한 이전에 본 영화는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면을 많이 살린데 반해, 이 영화는 가급적 그것을 배제하고 인간의 공간에 한발짝 더 다가선 현실적 공간을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를테면 뱀파이어가 학교도 다니지 않는가? 병원 의사이기도 하고, 정의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영화 역시 목이 먼저 뜯기는 쪽은 여자며 그에 따라 그 여자의 목을 무는 사람은 남자라는 것이다. 꼭 그게 아니어도 여자는 남자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남자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지 못해 안달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진화된 뱀파이어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 공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이 묘한 고정관념을 유지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이 관념도 여자 보단 남자가 유포한 고정관념은 아닐까? 그보단 여자에겐 한번 좋아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 모든 것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더 앞서는 것은 아닐까? 여자라고 다 나쁜 남자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탈의 욕망이나 나쁜 남자에게 찍혀보고 싶은 욕구가 일시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은 남자의 지나친 환상 내지는 여전히 여자를 전복시키고 싶어하는 남성 우위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여자가 뱀파이어에게 끌린다면 뭐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를 사랑함으로서 금단에 도전하고 픈 욕망. 또한 모성애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피아노 치는 뱀파이어라! 멋지지 않은가? 이전에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여자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설정은 애틋함을 더하면서 확실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얼핏 연상하게도 된다. 원래 사람이란 존재가 하지 말라면 더하고, 하라고 그러면 안하는 청개구리 근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에드워드 같은 훈남이 "난 널 사랑하면 안 돼."하며 자꾸만 끌리는 반어법적 프로포즈를 거절하긴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이 뱀파이어는 고독하면서도 자기 세계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여자는 점점 매료당한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찍고, 들이댈 생각하지 말고 이런 영화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세계도 없으면서 무작정 좋다고 들이대면 누가 좋다고 환영의 포옹을 해 줄까? 게다가 에드워드는 벨라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나타나 구해 준다. 이것은 또 여자로 하여금 얼마나 신뢰감을 주는 것인가? 벨라가 '난 너를 믿어"를 끊임없이 반복할 때 에드워드는 "날 믿지 마."라고 끊임없이 되풀이 하던 장면은 나쁜 뱀파이어와의 싸움에서 멋진 반전을 이루어 낸다. 



그런데 확실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다. 벨라와 에드워드의 저 엔딩 부분에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벨라가 어쩌면 그리도 낯간지럽게 느껴지던지. "얘야, 사람은 여러 사람을 만나 봐야 아는 거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하긴 사랑하고 있을 그 당시는 시간은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해도 그것은 별로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벨라의 목을 물지 않는한 에드워드는 영원히 늙지 않으며, 벨라는 늙어갈 것이다. 과연 에드워드가 이 늙어가는 벨라를 정말 변함없이 사랑해 줄 수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영원한 사랑 어쩌구 우논하는 쪽은 아쉽게도 에드워드 보단 벨라쪽이었다. 과연 벨라가 늙어서도 당당하게 에드워드의 사랑을 변함없이 받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물론 같이 영원히 사랑하자는 의미에서 벨라는 에드워드에게 기꺼이 목덜미를 내보이지만 에드워드는 인간의 우월성을 얘기하면서 그 목덜미를 물지 않는다. 확실히 에드워드는 사람도 아니면서 고단수다. 영원히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존재다. 이런 존재는 확실히 상대로 하여금 목마르게 만든다. 



이왕 이렇게 진화된 뱀파이어를 보여줄 바에야 다음번 뱀파이어는 좀 판세를 뒤집는 거라면 어떨까? 적어도 여자 뱀파이어를 사랑해 그녀에게 목덜미를 들이대는 남자형 같은 거 말이다. 질척해 보일까? 역시 남자가 여자를 구하는 캐릭터가 여자 관객이건 남자 관객이건 둘 다 좋은 거겠지?  

영화를 보면서 또 한번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 전설을 잘도 발전시키고 우려 먹는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설의 고향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를 본 것 같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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