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듣다가 DJ가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잊어버리기 전에 여기 옮겨 놓는다.

 

"남자를 사랑하는 법. 조금 사랑하고 많이 이해할 것.

 여자를 사랑하는 법. 많이 사랑하고 절대로 이해하려 하지 말 것" 

 

맞는 얘기 같긴 한데 왜 여자가 이해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여자만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도 없는데. 이게 다 착각이었단 말인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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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5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중에 나오는 연애 관련 책들을 보면 남자는 논리적, 여자는 감성적이라는 식으로 남여의 성격 차이를 부각시켜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주는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춰서 알려줘요. 이런 방식은 <화성남자 금성여자>가 먼저 썼어요. <하버드 사랑학 수업> 인가...? 아무튼 이 책에서 화성남자 금성여자 식의 연애 관점을 반박하던데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남자도 여자처럼 감수성이 충만한 동물이에요. ^^

stella.K 2015-01-16 13:24   좋아요 1 | URL
맞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여자처럼 합리적인 동물도 없다구.
그러니까 이 지구가 굴러가는 줄도 모르고.ㅋㅋ
요즘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르냐가 아니라
얼마나 같은가를 연구한다더군.
나도 가끔 남자들을 대하면 다른 것 보다 같은 걸 발견할 때가
종종있어. 그러면 남녀가 좀 더 쉽게 공존할텐데 말야. 그지?^^

바람돌이 2015-01-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를 사랑하는 법은 많이 사랑하고 무조건 이해할것 아닌가요? ^^

stella.K 2015-01-16 12:15   좋아요 0 | URL
그러면 금상첨화죠. 그런데 그렇게 욕심부리기엔 좀
미안하니까 저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겠어요? 바람돌이님.^^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제이 새끼가 여성비하 발언을 했네요.
쉽게 말해 여성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말 아닙니까..

stella.K 2015-01-16 12:56   좋아요 0 | URL
ㅎㅎ 에이, 뭘 그리 역정을 내십니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자는 의미겠죠.
솔직히 이해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둘 다 쉽지는 않잖아요.
이해하면 사랑하는 거고, 사랑하면 이해하는 건데
이게 안되서 인류의 불행은 끝이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저 디제이가 그랬겠어요? 원고 쓴 사람이 그렇게 쓴 걸
디제이는 읽었을 뿐인데...ㅋ

페크pek0501 2015-01-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를 사랑하는 법. 조금 사랑하고 이해하는 척할 것.

여자를 사랑하는 법. 조금 사랑하고 이해하는 척할 것.

- 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ㅋㅋ

stella.K 2015-01-16 13:24   좋아요 0 | URL
그러면 여우 밖에 더 되겠습니까? ㅎㅎㅎ

기억의집 2015-01-1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는 하지 않지만, 예전에 곽정은이 연애에 있어서 충고가 무의미한 것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이 말에 무척 공감해요. 사실 사랑에 있어서 남자든 여자든 이성이 작동할까 싶어요...

stella.K 2015-01-17 10:45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그런데 저 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쉽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랑도 이해도. 이게 없어지면 건조해지거나 주먹이 날아가거나
뭐 이렇게 되잖아요. ㅠㅋ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이다.(101p)'

벌써 7년쯤 된 일이 되어버렸다. 그때 난 예전에 배웠던 글선생님을 찾아 가 다시 배움을 청한 적이 있다. 이 선생님을 찾아간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건 소설을 쓰기 위함이었다. 웬지 이때야말로 나의 남은 생은 오로지 소설에 바쳐야겠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기 전 선생님께 점검 겸 마지막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소설을 가르쳤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선생님의 시작은 소설이었지만 지금은 시나리오를 가르치신다. 하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시나리오와 소설이 아무런 관련이 아무 것도 없다고 누가 그러더란 말인가.

워크숍 방식으로 진행되는 선생님의 수업에서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수준이 어느 정돈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하필 가장 글쓰기가 어렵다는 시나리오로.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13년 전엔 단편 소설을 써서 칭찬을 받았었다.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이번에도 내가 칭찬을 받을만 한지 알아 보고 싶었다. 그동안은 어디가서 글 못 쓴다는 소리는 안 들었으니까. 깐엔 여기서 평가 받고 후에 난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게지.

지면상 시시콜콜한 얘기는 다 할 수는 없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마디로 참패였다.

선생님이 워낙에 기가 세신 분이라 나중엔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였다. 더구나 착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시 어떤 남자 수강생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나에게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나는 이것을 차마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생님과 (그를 포함한)모든 수강생으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나니 더 이상 글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일까? 뭔가 모를 자괴감이 들었고 무엇보다 그 남자 수강생에게 부끄러웠다. 

시간은 때로 빨리도 가지만 어느 땐 느리도 간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 책의 저자에게서 위의 구절과 마주하는 것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이다. 이 비슷한 이야기를 당시 나와 단짝이던 강이 하기도 했다. "언니, 우린 어쨌든 써 냈다구. 저 안 쓰는 인간들(워크숍 작품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가 훨씬 나은 거야." 나를 위로하느라 하는 말이지만 당시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은 내가 앞으로 겪어야 하는 많은 혹평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책은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바로 실패를 낳는다. 실패를 즐기고, 실패에서 배워라. 실패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단박에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57p)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해 본다. 나는 그때 왜 옛 선생님을 찾아갔던 걸까? 어쩌면 뭔가 직선으로 가야할 길을 돌아갔던 것은 아닐까? 내가 나를 생각해도 정말로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순간 멈칫거리고 주저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습성에 따라 나는 글을 쓰지 않고 그렇게 선생님을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겪어야 하는 일을 겪지 않았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라.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참패였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늘 남이 이해하지 못한 글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언젠가 그런 글을 써 봤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단 한편의 글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남을 위해 쓰는 글은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늘 필요에 의해서만 글을 쓰다보니 언제부턴가 '좋았어요'란 말 한마디 듣는 게 내 역할과 가치를 정해버리는 기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


이 책의 저자는 저 유명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이다 밑에 이런 말을 남겨 놓았다. '졸작은 누구나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써라.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쓰지 말라. 칭찬받기 위해서도 쓰지 말라. 오직 피 흘리기 위해 써라. 자신의 치부, 결점, 상처,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자신에게 치명적인 바로 그것을 써라. 당신이 모르는 당신을 드러내보도록 하라.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아,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은 '상처받은 용'을 바깥으로 끌어내라. 밖으로 나온 그 짐승은 용틀임하며 크게 분노해 당신을 할퀴려 들 것이다. ...... 하지만 상처받은 용'을 세상 밖으로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으며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101p)


나는 그 선생님에게서 두 번의 배움의 기회를 가져었다. 그랬을 때 한번은 단편 소설을 썼고, 또 한번은 시나리오를 썼다. 한번은 칭찬을 들었지만 한번은 혹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둘의 공통점은 다 나의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나는 안다. 사람들이 꾸며내고 지어낸 이야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더 많이 반응한다는 것을. 그런데 단편 소설을 썼을 땐 좋은 평을 받았지만 왜 두 번째는 그런 혹평을 받았던 걸까? 뭐 이유야 따져보면 없지 않겠지만 중요한 건 혹평을 받은 글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란 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봤어야 했다. 아주 똑똑히. 그래서 내 동기가 무엇이고, 내 치부와 결점이 무엇인지, 내 안에 상처 받은 용이 무엇인지를 봤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작가야 말로 수시로 정신분석을 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닐까? 아니면 고백성사를 가장 많이 해야하는 존재는 아닐까?

이렇게 저자 장석주는 저 말을 통해 작가를 무섭게 응시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또 책 전반에 걸쳐 수시로 다른 말로 표현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작가는 노출증 환자라고까지 했을까?

 그렇다면 그때 내가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눈물이 찔끔거리도록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던 건 의미없는 짓이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솔직히 적지 않은 나이에 배움을 청한다는 건 적어도 나 같은 성격에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쓰기도 어느 만큼의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앞서 저자도 말하지 않는가? 자신의 치부, 결점, 상처,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자신에게 치명적인 바로 그것을 쓰라고. 그래서 쓰는 것이다. 솔직히 그 일은 다리미로 데인 듯 상당히 오래 갔었다. 한 2년, 3년까지도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이렇게 흘러 이 책과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 옛날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 글 이후에도 또 쓰고 싶은지 자신의 욕구를 들여다 보라고. 그렇다. 나는 그렇게 다리미로 데인 듯 그 일이 충격적여 당시론 다시는 글을 못 쓸 것만 같았다. 그런데 2012년 나는 우연히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 전공인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어느 극단에 의해 대학로 무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그때 보았다. 나의 욕구는 항상 글을 쓰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걸.

한번 좋으면 또 한번은 나쁜 법일까? 그렇게 대학로에 내 작품을 올렸으니 비로소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고, 내 작품이 공연되어지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내 생애 최고의 일이라고 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정말 꿈만 같았다. 그리고 연이어 계속 새로운 작품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더 좋은 작품을 써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왜일까? 글쎄, 사실은 그 작품을 올리면서 그리고 올린 후에 인간의 부조리한 면을 보고야 말았다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그 부조리에 항거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난 그렇게 한 죄로 그 다음 작품을 못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냐고.

솔직히 인간의 부조리한 면을 보면 너무도 역겹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엔 작가 근성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이 역겨운 인간의 부조리함을 글로 쓰는 것에 진짜 작가 근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난 다음 차기작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루는 한이 있어도 이 부조리함만큼은 글로 밝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는 여기에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당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들어내는 것. 

저자는 말한다. 한시도 글 쓰는 손을 멈추지 말라. 글을 쓰는 손을 멈추는 순간 글쓰기를 향해 흘러가던 에너지까지 멈출 수 있다.(80P) 

난 장석주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의 여러 많은 저서와 명성에 비하면 참 게으른 독자다. 어쨌든 읽고난 나의 느낌은 이분은 문학에 순정을 바친 분이구나 싶었다. 아니 더 나아가 문학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다. 문학 순교자. 그러면서 문득 문학 구도자라던 마루야마 겐지가 생각이 났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라던 저자의 문체는 상당히 쉽고 깔끔하면서도 동시에 싯적이고 사유적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격려와 용기를 얻게 되었다.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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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을 한번 시험에 들게 하시느라, 그걸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거치게 하시느라 선생님께서 그때 혹평을 하셨던건 아닐까요?

장석주의 다른 책을 떠올려볼때 이 책도 어떤 분위기일지 조금은 짐작이 가기도 해요. 더구나 Stella 님이 이 책을 읽어보고 싶게 리뷰를 쓰셨네요 ^^

stella.K 2015-01-14 13:29   좋아요 0 | URL
아이고, hnine님 이 어인 문안이십니까?
황송하여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격조하였지요? 죄송합니다. ㅠ

그래요. h님께서 딱 바로 보신 것 같아요.
아마도 선생님은 그러셨을 겁니다.
그때 당시엔 어찌나 무안하던지.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뭐 그런 생각도 했더랬지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야단 맞을 수 있는 것도
특권은 아닌가 해요. 나이들면 누가 야단쳐 주는 사람도 없잖아요.
선생님이 워낙 독특하신 것도 있지만 그분 입장에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해주신 거죠. 조언도 많이 해 주셨는데.

제가 워낙에 글쓰기와 작가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초보자가 읽으면 감동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저는 장석주란 이름에 관심이 가서 읽은 건데 아, 이 분이 글을 이렇게 쓰는구나
좀 감동했고 글을 참 사랑하시는 분 같았어요.

참,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비종 2015-01-1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쓴다는 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앞모습이냐 옆모습이냐는 작가의 선택일테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모습이 비춰지겠지요. `용기`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Stella.K님도 용기를 내셨기에 스스로 들여다본 조각을 보이셨겠죠? 화이팅!!입니다^^

stella.K 2015-01-14 14:40   좋아요 0 | URL
나비종님, 반갑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런 류의 책을 만날 때마다 제가 글공부한 얘기를
종종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번 리뷰는 좀 대충 써 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써 놓고 보니 너무 솔직하게 쓴 것 같아 부끄럽긴 하더군요.
하지만 저자의 저 긁은 글씨의 말에 넘어간 것 같아요.ㅠㅠ
예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5-01-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는 갖고 있지만 어떤한 글(예를 들면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 따위)도
쓸 수 있는 용기는 없사와요. 향상시킬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겠죠? ^^

stella.K 2015-01-16 13:2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니 못 쓰는 글 보다 안 쓰는 글이 더 나쁜 거겠다 싶더군요.
물론 작가가 될 사람에겐 말이어요.
그래서 한 시도 글 쓰는 손을 멈추지 말라고 했나봐요.ㅠ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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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책의 제목 때문에 저자가 조선 미술사에 대해 쓴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은 신윤복을 다룬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재를 살고 있는 미술가들과 그의 작품을 다뤘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제목을 '조선미술'이라고 했을까? 그냥 '한국미술'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본 총칭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즉 '한국미술'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범위가 민족 전체를 나타내기에는 협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8p) 저자가 그렇다고면 수긍은 하겠지만 나로선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는 신윤복을 다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저자의 명성은 알고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특별히 그는 재일교포로서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천착해 왔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통해 그것을 미술의 영역으로 확대했을 거란 짐작도 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신윤복을 제외하면 미술작품으로 본 우리나라 현대사를 아우르고 있었다. 또한 그 방식은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그것으로 봐서 저자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진지한 자세로 이번 작업에 임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는 신경호란 화가를 통해 5. 18 광주항쟁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정연두란 사진가를 통해서는 한국인 또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윤석남을 통해서는 디아스포라 페미니즘을. 이쾌대를 통해서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미희를 통해서는 해외 입양에 대해서. 그들의 작품과 인터뷰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신윤복 때문에 제목을 그리 정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신윤복은 어떻게 다뤘을까? 난 당연히 저자가 인터뷰는 생략하면서 신윤복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나 취재기를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몇년 전 신윤복의 팩션을 다뤘던 소설가 이정명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그 부분에서 새삼 '과연 서경식이다' 싶었다. 독특한 발상도 발상이지만 서경식은 이로써 120% 저자로서의 성실함과 역량을 보여줬던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번엔 어떤 책을 냈을까 관심있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굳이 소설가 이정명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까지 신윤복을 넣을까? 그건 보수적인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신윤복이 성적소수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에 신윤복이 성적소수자였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겠지만 그 이유 때문에 저자가 다룰 생각을 했다면 그건 잘못이다. 성적소수자는 그 시대나 놀라운 거지 오늘 날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그것만을 위해 다루었다면 저자가 천착해 온 디아스포라에서도 약간은 미치지 못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윤복은 내가 봐도 확실히 시대를 전복하는 파격적인 뭔가가 있다. 책에서도 다뤘지만 당시의 억압 받는 여성이나 성적 표현을 그림을 통해 과감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 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신윤복의 그런 과감한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가 그 시대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조선 달리 말하면 한국적인 것을 그 시대로까지 확장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이쪽에서 보면 예언가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저자는 미희라는 작가에게 더 많은 애정과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배경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입장은 같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미희는 해외 입양아 출신이다. 그녀가 그런 신분으로 살았을 지난한 삶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단 말인가? 그저 그들은 한국에 있었으면 거지나 범죄자로 전락했을 텐데 그렇게 잘 사는 나라에 입양 갔으니 구제 받은 거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미희에게서 다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해외 입양아를 '한국 경제성장의 산업폐기물'이라고 했다. 과연 그도 그렇다 싶다. 좋은 나라에 입양가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잘 살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 건 얼마 되지 않으며 그나마 그것도 미비한 수준이다. 저자 서경식도 미희만큼일지 또는 그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적잖이 공감했을 것 같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저자는 고아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러므로 한국의 뿌리를 어느 때고 잊어 본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입양아는 한국은 고사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고사되는 것이니 더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난 신윤복을 제외하면 저자가 다룬 인물중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물론 그만큼 내가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랄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도 비슷한 할 거라고 생각한다. 문외한도 문외한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잘 안 알려진 민중예술인이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대체로 암울하거나 저항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왜 그런 선택했던 것일까? 물론 그건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겠지만 아마도 디아스포라의 정서와 통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을 아는 것이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책을 다 읽고나니 저자 서경식을 대중이 너무 디아스포라로 몰고 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삶이 디아스포라인 건 사실이지만 그는 과연 디아스포라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느 때고 이 타이틀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적어도 이런 대중의 인식을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까? 그를 그냥 일본에 사는 한국인. 한국을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로 바라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마도 나의 이런 생각은 그를 존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될까? 또한 무엇이 저자가 다룬 예술인을 존중하는 것이 될까? 그것은 또 나아가 한국을 좀 더 넓은 안목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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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선미술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봐요. 물론 이렇게 써야할 수밖에 없는 국내 상황이 안타깝지만요. 만약에 ‘나의 디아스포라 미술 순례’라고 했으면 제목이 확 와 닿지 않았을 거예요. 제 생각이지만 요즘 대학생들 중에 ‘디아스포라’의 뜻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걸요. 신문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은 용어라서 시사상식을 공부하는 취준생은 알고 있을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알고 있어도 디아스포라 현실을 잘 모르고 관심이 낮다는 불편한 현실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stella.K 2015-01-10 14:17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런 제목이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서경식 교수가 이번에는 책 제목을 아이러니하게 지은 것마는
확실한 것 같아.
사실 디아스포라란 말이 근래에 생긴 말인 것 같긴 해.
10년전만에도 흔하게 썼던 말은 아니지 않나?
나도 가끔 어색한 걸. 그냥 우린 편하게 해외교포 그런 정도로만 썼잖아.
그런데 디아스포라란 말이 조금 더 정서적으로 들리기도 해.
그나마 난 서경식 교수 때문에 알게 된 것 같아.
그러고 보면 모르는 새로운 말들이 참 많아. 그지?^^
 

 

지난 주말 본의 아니게 영화를 많이 봤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용하고 있는 IP TV 컨텐츠의 자회사 지원을 오늘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별포인트 50% 지원을 받고 회원이 50% 내서 볼 수 있었던 것을 20%만 지원해 준단다. 별포인트가 처음 생겼을 때 100%  지원을 받았는데 어느 날 50%만 지원한다더니 올해부터는 20%로 한단다. 이런 제길! 

아무래도 단통법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을 이런대서 만회하려는 건 아닌가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다. 물론 월정액은 변함이 없는데, 이것을 내고 볼만큼 내가 IP TV의 컨텐츠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대신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을 하겠다고 하는데 입에 발린 소리 같아 믿을만 하진 않다. 어쨌든 그래서 어제까지 영화를 좀 많이 보게 된 것.

그런데 본 영화 중 두 편이 나의 독서욕구을 자극한다. 여간해서 영화로 본 작품은 책으로는 땡기지 않는데 말이다. 

 

 ★★★

 

이 영화를 보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던데 왜 그런지는 알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그런 기법은 그 영화 하나면 족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웬지 그 이후에 나온 건 다 아류작 같아서 말이다. 

 

아무래도 유럽 영화라 그런가? 이국적인 건 고사하고 좀 낮설다는 느낌이 든다. 배우도 그렇고. 그래도 영화 자체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고 허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지만 레이건을 좋게 말하지 않아서 말이다.

 

유희로 다루긴 했지만 영화가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 있으니 이런 건 책으로 읽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들으니 작가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스트레스가 하도 많아 머리도 식힐겸해서 쓰기 시작한 게 이 책이라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확실히 신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는 밥만 먹고 글만 써도 이런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는 사람도 있을텐데 스트레스 풀겠다고 이 책을 썼다니 얼마나 불공평한가. 덕분에 하던 일 때려 치우고 지금은 아예 작가로 나섰다는데 운도 억세게 좋은 남자다.

 

★★★☆  

 

프랑스 영화를 좀 좋아라 하는 편이어서 이 영화 역시 즐겁게 보았다.  

영화를 상상력 풍부하고 자유롭게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주인공을 맡은 귀욤 고익스의 극과 극을 달리는 1인2역 연기가 뛰어나다 싶다. 

물론 이 영화는 원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제목에서 풍기듯 이 영화는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 주인공 폴이 두 살 때 사고로 돌아간 자신의 부모를 기억해 내기 위해 쓴 차를 마시고 마들렌을 한입 베어문다. 그러면 기억으로 통하는 문을 통과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 책을 눈 딱 감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어렵다고 이리 빼고 저리 뺄 것인가 싶기도 하다. 

꼭 프루스트가 아니어도 문학이란 기억의 산물이 아니던가? 거기에 더해진 허구, 허풍, 허세.

 

아무튼 영화가 참 아기자기하면서도 강렬하다. 훗날에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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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0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쿡TV를 SK티브로드로 바꿨는데 무료 영화가 많이 없어서 이제 영화 보는 낙이 사라졌어요. 집에 와이파이 그거 하나 설치하고 싶어서 IPTV도 바꿨거든요.

stella.K 2015-01-06 14:21   좋아요 0 | URL
그래? 쿡이면 올레잖아. 요즘 올레에서 무료 전환률이 좀 많아진 것
같은데. 비교적 최신영화들. 이를테면 역린이나 폼페이 최후의 날 같은 거.
난 50%에서 20%로 낮췄다는 게 괘씸하더라고 IP TV로 벌어들이는 돈도
엄청날 것 같은데 말이야.
새해 서비스 차원에서 별포인트 결제하면 TV 포인트 준다던데
그거 기대해 보고 있어. 얼마나 줄 건지 원...ㅠ

참,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셀린저.ㅋㅋ
 

생각해 보니 올 한 해는 지난 해 보다는 지내기가 낫긴 했지만 특별히 한 일이 없는 별 볼 일 없는 한 해였던 것 같다.

 

특히 작년에 미처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 일을 올해도 붙들고 씨름했었구나 싶다. 인간의 걱정 중 90% 이상이 쓸 때 없는 거라던데, 쓸 때 있고 없고를 떠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끙끙대며 보냈다는 게 좀 억울하다 싶다. 그냥 단순해질 수는 없는 건지...

 

이 책은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총 5권 중 2권까지 독서를 마친 상태다.

이 책은 지금도 품절으로 나오는데 이 책이야 말로  나에겐 '발견, 이 책!'쯤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이렇게 좋은 책이 아직도 품절로 나온다는 건 독서계의 불행 같다. 하지만 난 운 좋게도 5권을 다 구입했다. 

이 책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강원용 목사의 자서전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아우른다는 것에 있다. 그것을 편견이라고 볼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펙트럼의 문제고, 사고관의 문젠데 저자의 역사를 통찰한 면이 탁월하다 싶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어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나이라서 그럴까 나 역시 자서전이라는 걸 쓰고 싶어졌다. 개인사로서의 자서전인 동시에 나의 살아 온 삶을 갈무리 한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필요한 것 같아 용기를 내서 조금씩 썼는데 아무래도 올해 안에 끝내진 못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선 올해 안에 끝내고 새해 새로운 자서전을 쓰기 위한 원년으로 만들어었야 하는 건데.

 

물론 나의 이야기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다 아우르는 건 아니다. 올해가 내가 연극 대본을 쓴지가 딱 20년이 된 해였는데 그것을 뒤돌아 보고 싶었다. 잘 써서가 아니다.

얼떨결에 그 일을 붙들고 나름 세상을 주유했다.

 

내 이야기 내가 쓰지 않으면 누가 쓰겠는가?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쓰자는 건데 진척이 없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글이란 안 쓰고 있을 땐 굉장히 위대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쓰기 시작하면 지루하고 후회로 점철될 때가 많다. 이 한심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을 왜 붙들고 있는 건지. 그걸 전체 이야기 중 4분의 1 정도를 남겨둔 상황이다.

 

그 다음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이 책이다.

일본 여성이 쓴 아시아 여성들이 지난 세기 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를 고발한 책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거기엔 일본 여성도 포함을 시켰다는 것이 나로선 좀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지난 세기는 일본의 패권주의가 극에 달한 때로서 일본 여성들이 전쟁의 고통을 겪었을 거라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누구는 저자더러 당신도 일본 사람이면서 그렇게 쓴 것이 엄살을 부린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 여성도 전쟁에서 예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위안부 문제만 끄집어내면 발끈부터 하는 일본의 극우 수컷들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이 문제를 외면하고 거짓말을 해야하는 극우 암컷들은 확실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갑질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해로 기록될 것 같은데 나는 올해 교회에서조차 갑질을 해 대는 어떤 인간 때문에 내내 가슴 한켠에 뭔가가 얹혀진 느낌으로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팀의 리더고 재정의 거의 대부분을 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팀을 자기 휘하에 두려고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즉 자신은 하나님의 대리인이고 그 권위를 위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망상적인 생각들도 가득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들이 가능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입장에선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돈을 가지고 그 누구의 일도 아닌 하나님 일을 하겠다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순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배면에 깔려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생각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 갑질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가진 자의 세상이니까. 하지만 교회에서 돈을 가졌다는 건 그저 신자들이 가진 여러 많은 탈란트 중 하나를 가진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희생해야 하는 것이 교회다. 그리고 그것엔 강요는 없다. 이렇게 겸손한 생각을 가져줘야 하는데 마치 돈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일도 가장 크게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그것을 권력삼아 군림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적어도 가진 자로서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런 사람한테 희생을 설명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일이고. 

 

그런데 더 화가나는 건 그녀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입장에 처하면 고난 당하는 척, 약한 척혼자 다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마디로 말하면 소시오패스다. 그녀 때문에 상처 받고 모임에 탈퇴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은 생각도 않고 자신만이 고난 당하는 것처럼 가증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교회에 종속된 팀을 사유화하면서 말이다. 그건 정말 겉으로 보기에만 복음 전파를 위한 선교팀이지 알고 보면 그녀의 사조직이다. 교회는 언제까지 이를 방치하고 묵인할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 그나마 위안 내지는 나를 추스르기 위해 읽었던 책이 이재철 목사의 책들이었다. 정작 욕하면서 닮는다고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이 책들을 읽었다.  

 

무엇보다 내가 읽는 이 책은 설교집이라고는 하지만 인문학적 향취가 물씬해 읽으면서도 굉장히 만족감하며 읽었다. 앞으로 이재철 목사의 다른 책도 꾸준히 읽어 볼 참이다.

 

앞에서 강원용 목사의 <역사의 언덕에서>가 발견 이 책이었다면, 이 책은 '발견 이 작가!'쯤 되려나? 그렇게 말하기엔 김연수 작가는 이미 중견 작가다. 단지 나에게 있어 김연수 작가의 발견이 너무 늦은 거다(하긴 아직도 내가 모르는 작가가 좀 많은가?).  그러리만치 이 책은 좋았고 이 책을 통해 김연수 작가가 좋아졌다. 

그의 다른 책도 틈나는대로 읽어 봐야겠다.

 

 

 

 

 

 

 

 김연수의 책과 더불어 <거장처럼 써라>나 <작가란 무엇인가>는 모두 글쓰기란 한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거장처럼 써라>는 저자가 당대 유명한 작가들이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일일이 분석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감탄을 하다 못해 존경을 표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반인들은 넘 볼 수 없는 놀라운 경지를 펼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작가들의 글 쓰기의 특징을 나열하면서 우리도 글을 쓸 수 있다고 다독이기도 한다. 오늘 날의 글쓰기가 선호하는 방식은 셀린저의 방식은 아닌가 한다.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직접 사서 읽어보기 바란다.

 

 

또한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건 하나의 축복 같다. 세상에 그토록이나 많은 작가를 인터뷰한 책이 있을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파리 리뷰 인터뷰는 모르긴 해도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작가를 인터뷰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헤밍웨이나 윌리엄 포크너, EM포스터 같은 작가. 특히 자살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를 읽는다는 건 좀 아련한 느낌이 있었다. 

이 책의 2권과 3권이 동시에 출간되어 나왔는데 곧 읽어 봐야할 것 같다.    

 

지금까지 난 서재활동 이후 거의 해마다 나의 베스트를 뽑아 왔던 것 같는데 올해는 나 나름의 워스트나 문제작을 생각해 봤다.

이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작품성이 뛰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책은 확실히 문제작이다 싶다. 등장인물의 실명을 그대로 쓴 것도 독특하고 일종의 잘 편집된 다큐멘터리 극을 보는 것도 같다. 

우리는 나름 인정 받고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정말로 믿을만 한 것인가에 우리는 왜 의심하지 않는 것일까? 글쎄 이 책은 학문은 신성하지 않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솔직히 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그다지 유쾌하게 읽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남다르게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이야 말로 내가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쓰레기는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 책은 돌아가신 원로 목사님의 아들이 썼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 책인데, 저자가 지금까지 나름 기독교에선 알아주는 유명한 책을 여러 권 쓴 것에 비하면 이 책은 지금까지의 명성을 그 스스로가 깍아 먹지 않았나 싶다.

 

물론 풍자 소설은 있을 수 있지만 나 개인적인 입장에선 오늘 날의 교회 문제를 소설의 형식으로 빌려 써야 했나 나름 소설을 애호하는 나로선 좀 불쾌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썼을 땐 그다지 교회의 갱신을 호소하기 위한 대의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냥 타깃이 된 목사를 웃음 거리로 만들기 위해 쓴 것 같은데 그런 의도라면 좀 더 거룩한 목적을 가질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웠다. 서초교회가 잔혹했던 거룩하건 어쨌든 자신의 아버님이 세운 교회 아닌가?  

이제 본인도 알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시 소설 쓴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밖에 좋은 책이 몇권 더 있긴 하지만 생략한다.

 

올해 우리나라 독서계의 키워드는 도서정가제가 아니었나 한다. 좋은 책을 만드는 입장에선 좋은 가격 받고, 독자는 할 수만 있으면 적당한 가격에 사 보는 게 꿈인데 그럭저럭 안착이 되는 걸까?  

 

내년엔 또 어떤 책이 나의 관심을 끌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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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2-3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해를 잘 정리하셨네요.

올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멋진 글 읽었습니다. ^^
내년에도 올해처럼 변함 없기를...

stella.K 2014-12-31 22:58   좋아요 0 | URL
캄샤합니다.^^

yamoo 2015-01-04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한 해 정리를 잘 하셨네요..ㅎ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길! 그리고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stella.K 2015-01-05 13:2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야무님 고맙습니다.
님께서도 건강하시고 올 한 해 행운이 함께하시길 빌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