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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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책의 제목 때문에 저자가 조선 미술사에 대해 쓴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은 신윤복을 다룬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재를 살고 있는 미술가들과 그의 작품을 다뤘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제목을 '조선미술'이라고 했을까? 그냥 '한국미술'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본 총칭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즉 '한국미술'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범위가 민족 전체를 나타내기에는 협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8p) 저자가 그렇다고면 수긍은 하겠지만 나로선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는 신윤복을 다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저자의 명성은 알고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특별히 그는 재일교포로서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천착해 왔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통해 그것을 미술의 영역으로 확대했을 거란 짐작도 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신윤복을 제외하면 미술작품으로 본 우리나라 현대사를 아우르고 있었다. 또한 그 방식은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그것으로 봐서 저자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진지한 자세로 이번 작업에 임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는 신경호란 화가를 통해 5. 18 광주항쟁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정연두란 사진가를 통해서는 한국인 또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윤석남을 통해서는 디아스포라 페미니즘을. 이쾌대를 통해서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미희를 통해서는 해외 입양에 대해서. 그들의 작품과 인터뷰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신윤복 때문에 제목을 그리 정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신윤복은 어떻게 다뤘을까? 난 당연히 저자가 인터뷰는 생략하면서 신윤복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나 취재기를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몇년 전 신윤복의 팩션을 다뤘던 소설가 이정명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그 부분에서 새삼 '과연 서경식이다' 싶었다. 독특한 발상도 발상이지만 서경식은 이로써 120% 저자로서의 성실함과 역량을 보여줬던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번엔 어떤 책을 냈을까 관심있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굳이 소설가 이정명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까지 신윤복을 넣을까? 그건 보수적인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신윤복이 성적소수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에 신윤복이 성적소수자였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겠지만 그 이유 때문에 저자가 다룰 생각을 했다면 그건 잘못이다. 성적소수자는 그 시대나 놀라운 거지 오늘 날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그것만을 위해 다루었다면 저자가 천착해 온 디아스포라에서도 약간은 미치지 못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윤복은 내가 봐도 확실히 시대를 전복하는 파격적인 뭔가가 있다. 책에서도 다뤘지만 당시의 억압 받는 여성이나 성적 표현을 그림을 통해 과감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 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신윤복의 그런 과감한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가 그 시대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조선 달리 말하면 한국적인 것을 그 시대로까지 확장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이쪽에서 보면 예언가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저자는 미희라는 작가에게 더 많은 애정과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배경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입장은 같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미희는 해외 입양아 출신이다. 그녀가 그런 신분으로 살았을 지난한 삶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단 말인가? 그저 그들은 한국에 있었으면 거지나 범죄자로 전락했을 텐데 그렇게 잘 사는 나라에 입양 갔으니 구제 받은 거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미희에게서 다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해외 입양아를 '한국 경제성장의 산업폐기물'이라고 했다. 과연 그도 그렇다 싶다. 좋은 나라에 입양가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잘 살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 건 얼마 되지 않으며 그나마 그것도 미비한 수준이다. 저자 서경식도 미희만큼일지 또는 그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적잖이 공감했을 것 같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저자는 고아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러므로 한국의 뿌리를 어느 때고 잊어 본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입양아는 한국은 고사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고사되는 것이니 더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난 신윤복을 제외하면 저자가 다룬 인물중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물론 그만큼 내가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랄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도 비슷한 할 거라고 생각한다. 문외한도 문외한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잘 안 알려진 민중예술인이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대체로 암울하거나 저항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왜 그런 선택했던 것일까? 물론 그건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겠지만 아마도 디아스포라의 정서와 통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을 아는 것이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책을 다 읽고나니 저자 서경식을 대중이 너무 디아스포라로 몰고 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삶이 디아스포라인 건 사실이지만 그는 과연 디아스포라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느 때고 이 타이틀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적어도 이런 대중의 인식을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까? 그를 그냥 일본에 사는 한국인. 한국을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로 바라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마도 나의 이런 생각은 그를 존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될까? 또한 무엇이 저자가 다룬 예술인을 존중하는 것이 될까? 그것은 또 나아가 한국을 좀 더 넓은 안목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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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선미술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봐요. 물론 이렇게 써야할 수밖에 없는 국내 상황이 안타깝지만요. 만약에 ‘나의 디아스포라 미술 순례’라고 했으면 제목이 확 와 닿지 않았을 거예요. 제 생각이지만 요즘 대학생들 중에 ‘디아스포라’의 뜻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걸요. 신문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은 용어라서 시사상식을 공부하는 취준생은 알고 있을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알고 있어도 디아스포라 현실을 잘 모르고 관심이 낮다는 불편한 현실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stella.K 2015-01-10 14:17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런 제목이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서경식 교수가 이번에는 책 제목을 아이러니하게 지은 것마는
확실한 것 같아.
사실 디아스포라란 말이 근래에 생긴 말인 것 같긴 해.
10년전만에도 흔하게 썼던 말은 아니지 않나?
나도 가끔 어색한 걸. 그냥 우린 편하게 해외교포 그런 정도로만 썼잖아.
그런데 디아스포라란 말이 조금 더 정서적으로 들리기도 해.
그나마 난 서경식 교수 때문에 알게 된 것 같아.
그러고 보면 모르는 새로운 말들이 참 많아. 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