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사 (양장) -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사의 거장들을 만나다
전호근 지음 / 메멘토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철학하면 주로 서양 철학에 편중되어 온 느낌인데 이 책이 우리 철학을 체계화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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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10-1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철학사, 저도 기대해 봅니다. 우리 나라에도 큰 깨달음을 줄 인물들이 많지요.

stella.K 2015-10-11 18:2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보는 순간 관심이 확 갔는데
두께가 좀 만만치가 않아서 막상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ㅠ

2015-10-11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1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5-10-1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철학사의 가장 좋은 입문서는 <쟁점으로보는 한국철학사>입니다..^^ 이 책보다 얇고 쉽고 정리가 빠릅니다..ㅎㅎ

stella.K 2015-10-18 18:56   좋아요 0 | URL
엇, 그런 책이 있었군요. 근데 알라딘에선 검색이 안 되는데요?
제목이 이게 맞나요?

stella.K 2015-10-21 16:13   좋아요 0 | URL
아, 오늘 보니 쟁점이 아니라 논쟁으로 보는이네요.^^
 

 

 악스트, 이번호는...  

 

악스트의 장점이라면 가격이 파격적으로 싸다는 것과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나 질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밥 한끼 먹으려면 보통 7,8천원 줘야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천원, 이천원하는 밥집이 있다고 한다. 그럼 눈물나게 고맙고 정감이 가는데 이를테면 악스트도 그런 것 같다.

 

보통 문학잡지가 권당 만원이 넘는데 이렇게 정이 가는 가격의 잡지가 있다니. 내가 만일 훗날 작가로 등단한다면 작가가 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받은 책 목록을 묻는다면 거기에 악스트를 포함시키겠다.ㅋ 

 

물론 두께에선 다소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 별로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슬림하다고 할 수 있다(하긴 난 이 슬림한 잡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지만). 

 

그런데 여전히 단점은 글씨가 너무 작다는 것. 그나마 창간호는 전체적으로 깨알 같은 것에 비해 이번호는 어떤 지면은 크기가 컸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냥 큰게 아니라 어떤 지면에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뿐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작다는 느낌이다.  눈 나쁜 사람도 악스트를 읽을 권리가 있는데 그 점은 악스트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점이 아닌가 한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요즘 핫한 작가 중 한 사람인 장강명의 기사였다. 그도 전업작간데 전업작가가 그렇듯 그 역시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꼭 만날 사람이 아니면 한가하게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전업으로 글을 쓰느니만큼 그가 선택한 삶이니 각오한 일이겠지만 새삼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또 한 번 스산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요즘엔 부지런히 쓴 덕에 예전만큼 각종 문학상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그 말에서 괜히 착한 흥부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건 배수아가 번역을 맡은 한 장 짜리 소설 두 편이다. 난 한 장짜리 소설은 쓸 엄두도 안 날 것 같은데 상당히 인상적으로 잘 썼다. 앞으로 계속 실릴 모양인가 본데 기대가 된다. 

 

그런데 역시 악스트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작가와 나눈 인터뷰가 아닐까 한다. 창간호에선 천명관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는데 이번에는 박민규다.  독자인 나로선 나름 적절한 대상이란 생각이 들고, 벌써부터 다음 호 인터뷰 대상자는 누가될지 궁금하다(개인적으로 김경욱이 됐으면 좋겠다. 요즘 내가 이 작가에 꽂혀 있는 관계로 ).  

 

 

역시 민규 형님은...

 

천명관 때도 그렇게 느꼈지만 박민규 역시 후배 작가들은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과부가 과부의 심정을 안다고, 작가의 길이 그리 쉽지 않으니 선배로서 후배를 챙기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박민규의 별스러움이야 그의 작품 보다 더 잘 알려진 사실이고(어느 핸가 동인문학상 수상식 때 타이거 마스크 쓰고 찍은 사진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인터뷰 기사를 보니 나름 포복절도할 내용도 나온다. 그것은 언젠가 이곳 알라딘이 내 인생의 책을 선정해 달라고 했단다(이런 건 또 언제했나?). 그런데 그의 답이 걸작이다. 자신의 인생의 책이 <허슬러>란다. 허슬러가 무엇인가? 도색잡지 아니던가? 처음엔 웃었지만 역시 박민규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때 부연 설명에서, 어렸을 때 자신은 책만 펴면 잠부터 밀려오곤 했단다. 그런데 처음으로 허슬러를 통해 책을 골똘히, 끝까지 보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책 덕분에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또 뭐,, 지금도 비스마르크를 읽고, 노자, 장자를 읽고... 그러고 나서도 갑자기 <허슬러>를 보면 우와, 엉덩이다! 하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나라는 인간의 모순을 늘 깨우쳐주기 때문에 내 인생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134p) 고. 뭐 끝까지 본거야 이해할 수는 있다고 쳐도 그게 뭐라고 골똘히 보기까지 했을까?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뭐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이상적인 조화를 추구했을까?

 

그런데 이런 별스러움은 박민규 한 사람으로 족했으면 한다. 혹시라도 작가 꿈나무 중 박민규 코스프레 하겠다고 할까 봐.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문학 대들보가 나온다면야 말릴 건 아니겠지만 그러다 삼천포로 빠진다면 그 안타까운 인생을 어찌할 것인가.

 

참고로 난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도색잡지를 보았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갔던 오빠가 가방에 넣고 다니던 걸 엄마의 눈에 띄어 보게 되었는데, 놀랍고 야릇하기도 했지만 나 보다 2살 많았던 오빠가 갑자기 훌쩍 커 보인 느낌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노는 차원이 달라졌구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제 겨우 1학년이다. 1학년 짜리가 벌써 그런 거나 밝히고. 엄마로선 이놈의 자식이 이담에 커서 뭐가 되려고 할까 한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도색잡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보고 느낀 건 왜 도색잡자는 여인만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남자도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박민규, 그가 말하는 한국문학

 

올해 한국문학계를 뜨겁게 달군건 역시 표절이다. 그도 얼마 전 표절의 도마위에 올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 기회가 왔으니 한마디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표절에 대체로 온건한 입장이란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표절에 대해서는 작가들 보단 독자들이 더 공분했고 강경한 인상이다. 마치 뭐에 사기 당한 양. 하지만 독자도 표절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반응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것에 대해 박민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문학에 대해서 '순수'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표절에 대한 규정 내지는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되 있지 않다고 한다. 도작, 위작, 모방, 인용, 차용, 도용...어느 하나도 세부 협의된 기준이나 범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한 '표절'한 단어에 의지한 채 지금까지 왔다는 얘기지. 이는 곧 교육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나도 문창과를 다녔지만 그런 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여전히 이에 대한 교뉵이 없다는 사실이다. 글을 잘 쓰고, 등단을 하고 작가가 될 훈련만 받을 뿐 이에 따르는 위험 내지는 안전수칙에 대해서 어떤 준비도 대책도 없다. ...... 표절이란 명사엔 '남의 문장을 훔쳐 쓴 것' 외에는 다른 뜻이 없다. 예컨대 천 매가 넘는 소설에서 한 문장만 같아도 표절은 표절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18세기에나 적용될 판단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저작물의 수가 현저하게 적고 '3434/3444/3543 詩歌가 문학의 기준일 때를 말하는 것이다. 한 문장이 전체 작품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시대니까.(141~142p)

 

정말 어느 것을 가지고 표절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저작물이 워낙에 많은 세대에 살고 있으니 내가 누구의 것을 나도 모르게 표절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반대로 표절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적용의 문제에 감정의 문제가 끼어들 수도 있고, 이젠 여기저기서 하도 표절, 표절하니 또 그런가 보다고 무뎌질 것도 같다. 하지만 의도성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표절을 그렇게 한 단어로만 하지 않고 여러 동의어로 적용할 수 있다면 표절은 그것을 한 사람의 양심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표절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가려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 표절 작가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바라 볼 것이냐도 중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 작가 신경숙 씨가 미국에서 작가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했다. 우린 신경숙 씨가 표절의 도마위에 올랐을 때 이 사람 작가 인생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수그러들자 그녀의 그런 보도를 접하게 됐다. 하긴, 그녀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작가 인생을 정리할만큼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평생 그것으로 밥 먹고 살았을 텐데 그 일을 접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또 한쪽으로 생각하면 자성을 촉구하는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녀를 옹호하는 사람이야 그녀의 작가활동 재개를 환영하겠지만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작가도 어차피 매문가다. 글을 써서 팔아야 먹고 사는 존재. 상인에게 상도가 있듯 매문가에게도 매문의 도가 있지는 않을까? 만일 그게 있다면 표절에 대한 교육과 함께 이것도 교육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저작이 많은 세상에 살면 살수록. 

 

 

문학은 섹스 같은 것이라구?

 

앞서 박민규는 문학에 대해 순수의 감옥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표절의 문제와 문학계의 카르텔을 지켜보면서 대중은 문학 너 마저 ...?하며 통탄했다는 말을 들었다. 문학 청정의 이미지가 손싱된 것마는 틀림없다.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무 보다 문을 숭상해왔던 민족성과 관련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생각해 보면 문학은 그렇게 성스럽지마는 않을 것이다. 문학이 뭐라고 그렇게 성스러워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강요해 왔던 건 작가들 자신이 이니었을까? 문은 천한 것일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찍은 꼴은 아닌지. 각종 문학상이 그 권위를 얼마나 뽐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가? 그래서 문학상을 못 받은 작가는 작가라고 명함도 못 내민다. 이에 대해 박민규는, 이제라도 '순수'의 감옥을 벗어나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자칫 순수라는 창살에 '순결'이라는 창살마저 덧씌워질까 우려가 들어서다. 작가에게 문학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섹스의 대상이어야 한다(144p)고 말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크긴 하다. 문학 스스로가 지고 있는 권위의 갑옷을 벗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되고 B 급 언어로 가득 채워진 문학은 문학이 아닌 양 바라보는 시각도 좀 덜어낼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민규 형님 뭔가 좀 어버하는 느낌도 든다. 문학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섹스의 대상이라니. 뭐 그 나름대로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왜 하필 비유를 그렇게 했을까?

 

그가 섹스라고 말할 때 섹스는 오늘 날 배설, 쾌락, 카타르시스의 의미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문학이 관연 그런 건가? 하지만 섹스도 알고 보면 상당히 복잡한 철학과 윤리학, 생리학을 왔다갔다 하는 문제다. 고전적 기독교 진영에서는 섹스는 오늘 날 그렇게 타락했지만 알고 보면 섹스는 원래 거룩한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게까지도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차원은 아니지 않을까? 아무래도 허슬러의 영향이었을까?

 

이밖에도 우리의 민규 형님은 여러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여기서 줄인다. 창간호 천명관 때도 그랬지만 읽으면서 우리 문학과 그 나갈 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민규 형님은 사진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는 카리스마를 작렬하고 있다. 꼭 홍콩 배우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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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트 작으면 일단 눈이 아파서 못봅니다.(블로그 폰트조차 키웠거든요..)

stella.K 2015-10-08 17:5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이야 좋아서 무릅쓰고 보겠지만
독자의 마음도 갈대 같은지라 언제 안 보게될지 모라요.ㅠㅋ

아이리시스 2015-10-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저도 이거 살래요. 두권. 이건 기간 지나도 품절같은건 안될까요? 덜팔려서 여전히 지난호도 있는거겠죠?

stella.K 2015-10-08 17:54   좋아요 1 | URL
아이리스님, 오랜만이여요. 잘 지내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벌써 중고샵에도 있던 걸요?
전 이 책으로 우리나라 문학의 현주로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는 우리 문학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거든요.ㅋ

스윗듀 2015-10-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K님과 마찬가지로 악스트를 통해 한국문학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재밌다는 사실도요.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15-10-09 10:4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 잡지는 기대가 많이 되요.
우리 열심히 읽어 보아요.^^

cyrus 2015-10-0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싼 가격으로 매겨진 책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요.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도 그래요.

stella.K 2015-10-10 20:16   좋아요 0 | URL
그래? 글씨만 빼면 솔직히 나름 고급진데.
종이 질도 싸구려가 아냐. 하지만 솔직히 난 종이가 반사가 되서 그것도
조금 부담스럽더라구. 그냥 일반 종이를 써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단가가 좀 싸지 않나?
올재 클래식도 그러는구나. 그렇다면 그 시리즈는 나와는
인연없다고 봐야겠네. 난 이제 글씨 작으면 못 읽어주겠더라.ㅠ

페크pek0501 2015-10-1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는 크고 볼 일입니다. 이젠 눈 피로해서 작은 글씨가 싫더라고요.
가격에 비해 내용이 좋은데 글씨가... 참 아쉬운 일입니다.

stella.K 2015-10-10 18:34   좋아요 0 | URL
저도 조만간 안경을 하나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전에 루테인이란 눈 영영제가 있다는데 먹어 본 사람은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걸 먹어 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평생 써 온 눈인데 제가 제 눈을 위해 해 준게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 눈을 좀 위로해줬야겠다 싶어서요.ㅠㅋ
 

지난 번 중고샵에서 책 세 권을 샀다. 2만원이 되지않아 배송료 2천원을 내고 속이 좀 쓰리긴 했지만 그냥 주문을 했다. 그 몇 백원을 충족시키지 못해 배송료 2천원을 내다니. 좀 바보 같은 일이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안 읽은 책이 많고, 내 방은 오래 전부터 책으로 포화상태다. 배송료 2천원 때문에 언제 읽게될지도 모를 책을 한 권 더 신청한다는 게 부담되는 일이라 그냥 과감하게 포기하고 3권만 샀던 것.

 

그런데 이걸 결제하자마자 몰별적립금이라고 해서 천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사용기간은 10월 9일까지란다. 기간이 긴 것도 아니고, 그 안에 내가 책을 또 사서 이걸 사용해 볼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빨리 책을 또 사라는 부추김의 상술이란 건 알겠다만 그래도 이왕 고객을 위한 거라면 좀 충심을 보여주면 안 되는 걸까? 천원. 있는 사람에겐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이것도 돈은 돈인지라 없는 사람에겐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산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 급하게 사야할 책이 생긴다면 모를까 역시 마음 아픈 일이지만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사고 싶은 책이 발견이 됐다. 물론 중고샵에서. 6천원짜리 책이다. 나와줘서 고맙긴 하다만 역시 배송료 2천원을 까야한다. 그때 생각난 게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몰별적립금이었다. 이걸 사용한다면 적어도 배송료 천원은 세이브되는 셈이다. 그래서 사용해 보기로 했는데 왠걸 사용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 단다.  6천원 짜리 책에는 몰별적립금을 내 줄 수 없으시겠다. 일단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다른 중고책 한 권을 더 얹어 보았다. 근데도 사용 승인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용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는 건데...?

기왕이면 다홍치마고, 에누리 없는 장사 없다는데 이렇게 몇 백원 또는 천원 안팎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사거나 포기해야하는 고객을 위해 좀 속시원한 서비스 좀 해 주면 거냐?

있으나마나한 몰별적립금 차라리 안 쓰고 만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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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5-10-0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그렇녀요 막상쓰려니조건이안되서못쓰죠

stella.K 2015-10-06 18: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다는 느낌이 안들어요ㅠ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도 여기저기서 이석원, 이석원하길래 (드디어)나도 그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것도 신간을. 나는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인간이지만, 소설은 워낙에 호불호가 갈리는장르인지라 아무리 평이 좋아도 선뜻 손을 내뻗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에세이는 대체로 무난하게 잘 읽힌다. 그래서 별 부담없이 읽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편하면서도 작가의 사유가 담겼다는 것인데, 그런 에세이도 그 모습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걸 목격한 건 일본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의 <삶의 힌트>라는 책에서였다. 우리나라엔 그다지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은데, 일본에서는 나름 존경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뭐 조정래나 김주영 급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그의 책을 읽었을 때, 기존에 에세이와는 다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기존의 에세이가 정제된 문장이라면 이츠키 히로유키의 글은 좀 더 서술적인 느낌이어서 약간의 소설 분위기도 연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에세이의 한 편의 지면 할애가 3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면 그의 글은 4, 5 페이지를 넘는 것이 보통이라 작가의 포스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석원의 글은 이츠키 히로유키의 독특함을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에세이의 신세계를 경험했다고나 할까?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놀라웠다. 하긴, 에세이가 꼭 정해진 룰이나 규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 형태의 글을 접할 수만 있다면 독자로서는 읽는 즐거움이 배가가 될 것이다. 

 

물론 작가 이석원은 에세이를 쓴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이미 그의 책을 읽어 본 사람도 있겠지만 독자로서의 나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나의 이런 반응이 다소 호들갑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에세이의 첫 부분에서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단 말인가? 미스테리한 게 자꾸 그 다음 장을 펼쳐들게 만든다. 구성도 어느 편의 글도 완결된 것이 없다. 무슨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나 2, 30분짜리 연속극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가의 솔직함이다. 이혼한 것,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너무도 솔직하고 자세하게 쓰고 있다. 하다못해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상호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다. 보통의 작가들은 그럴 경우 가명을 쓰거나 이니셜을 쓰는 것이 보통이지 않는가? 하긴 뭐 그런다고 해서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는 것인가 의아스러울 정도다. 물론 글쓰기의 기본 중 하나가 솔직함, 진솔함에 있다고 볼 때 작가는 그것에 지극히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솔직함 때문에 누군가는 본의 아니게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 전, 성석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에 가서 내가 질문했던 것도 그거였다. 그렇게 누군가를 소설에서 형상화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 온 적은 없었냐고. 그래서 왜 나를 이렇게 썼냐고 따져 묻는 사람은 없었냐고. 어차피 소설은 허구라고는 하나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경험 있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등장하면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다. 특히 작가는 솔직함을 무기로 글을 썼다지만 상대의 행위가 글로 형상화 된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바로 이 솔직함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일일연속극 같은 그의 에세이는 형식은 새로워 좋긴한데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연애는 그림 같은 거다.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그것 아닌가? 그래서 다소 김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맛은 있는데 하필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의 이야기가 주라니. 물론 그것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다소 쉽고 흔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구나 작가는 자신을 가리켜 나이탐험가라고 했다. 작가는 40대 초반의 나이다. 사랑, 연애도 2, 30대나 열나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4, 50대만 되어도 그 보단 인간관계나 노후 또는 추억 등에 관해서 얘기할 때다. 그런 것을 40대 초반에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아직도 젊구나 싶었다.

 

하도 에세이가 별스럽게 느껴져서 궁금해 하던 차에 얼마 전, 예스24에서 그의 제법 오래 전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첫 책 <보통의 존재>를 쓰고 한 인터뷰 같은데, 책에서 본인은 못 생겼다고 적고 있지만, 같은 남자끼리는 어떨지 몰라도 여자인 내가 봤을 때 그는 결코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빠지는 얼굴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작가는 베시시 웃으며, 그럼 어떻게 스스로 못 생기지 않았다고 얘기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런 인상의 남자를 좋아할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음악을 하고 글을 쓴다지 않은가. 

 

8분 가량 되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을 가수 겸 작가로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탁과 함께, 자신이 기억하는 모두를 글로 쓰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 자신은 할 일이 너무 많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제야 이 작가가 왜 사람의 이름은 물론이고, 상표고, 상호를 실명으로 쓰는지, 왜 솔직함을 무기로 글을 쓰는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오래 전부터 해 보고 싶은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있다. 나는 또 에세이치고 이렇게 기승전결이 있는 에세이는 처음 본다. 하긴, 요즘엔 통섭도 많이 하는데 소설 속에 에세이가 있고, 에세이 속에 소설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안 써서 일뿐. 책 표지에도 분명 밝히고 있다.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얼핏 연애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더 정확히는 성공 보다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서점에 가면 성공과 용기를 주는 자기계발류의 책이 대센데 자신은 그러기 보단 오히려 실패나 상처를 통해 공감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저건 내 얘기야 내지는,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느끼는 공감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연애의 짜릿함이나 즐거움, 기쁨 보단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이해하고 바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고독하고 때론 신산하게 글을 썼다. 특히 어렵사리 이제 막 사랑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실연의 아픔을 절절하게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연속극은 어느새 사랑과 실연에 대한 다큐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다. 한마디로 '사랑 잃고 나는 쓰네.'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실연도 먹고 살아야 하는 앞에서는 두 번째의 문제라고도 쓰고 있다. 

돈에 쫓기는 것만큼 영혼이 파괴되는 일은 없나니, 사랑도 연애도 그 다음이나니.  ...... 이래서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하는구나. 참 안 로맨틱하고 인정하기도 싫은 너무도 현실적인 깨달음이었다.(315p)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도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경우는 없더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의 첫 책 <보통의 존재>를 내놓고 글 쓰기가 자신을 구원했다며 좋아라 했지만 다시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어쩌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하는 자의 고백'을 나름 하소연 같이 길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리도 공감이 되는 것일까?

 

재주가 메주여서일까? 평생 꿈이라곤 작가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꿈을 꿔 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것도 해 봤더니 쉽지 않더라. 써야만 하는 글을 썼더니 내 자아는 어디로 가고 어느 순간 쓰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나도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중엔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이 써야할 글을 걔속 써야한다면 쓰고, 언젠가 그 일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때야 말로 본격적으로 내 글을 쓰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그때가 돌아왔을 때 왠지 김이 빠지면서 어느 샌가 지난 날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자에 속했던 시절엔 내 글을 보고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후자는 완전 독백일 뿐이다. 그렇다면 난 비록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어도 끝까지 전자의 일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것일까?

 

책의 완성은 작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얼마 전에 알았다. 문득 이석원 작가는 바로 위와 같은 말을 하기 위해 그처럼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에 다큐 드라마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연애를 할 때 얼마나 부주의한 인물이며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자책하듯 절절하게 쓰고 있지만, 결국 그는 그가 하는 일인 글 쓰기를 포함해서 인생을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가에 대해 조근조근 중저음의 톤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선배나 친구가 해 주는 조언이나 충고 보다 좋다. 특히 작가의 연애 실패담은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까? 순수한 연애를 갈망하는 남자들은 더더욱 참고할만 하다. 사실 연애할 때처럼 자신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기워질 때가 또 있을까?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그래서 연애를 하지 않겠다거나, 손해 보는 연애는 하지 않겠다거나, 요즘에 순수가 어딨냐고 일갈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뭐든 공짜는 없다. 연애를 하든 안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이다. 이 에세이는 또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반전도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로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는 말도 되겠다. 

 

그가 말하는 언제들어도 좋은 말은 그의 애인이 언제나 자신을 찾을 때 묻는 말 '뭐해요?'의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예전에 이 비슷한 문자를 가끔 보내줬던 후배가 있었다. 젊은 시절 함께 일하며 그 어려운 인간관계의 전장을 함께 굴렀던 들꽃 같은 후배였다. 분명 나와 맞지 않는 데가 있어 난 그 후배를 그리 많이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언니, 언니하며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챙겨준 후배였다. 가끔 그 친구가 뭐하냐고 물어 오면 그건 만나자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면 우린 서로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또 가끔은 맥주도 마시며, 영화나 연극도 같이 보았다. 알고 보면 그 친구와의 추억이 그 어떤 사람과의 관계 보다 많았던 것도 같은데  어떤 계기로 멀어졌다. 내가 선배이기도 하니 다소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을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난 '그렇지 뭐.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았던 사람끼리 끝까지 좋을 리 있겠어?'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냉소하고 멀어져 갔다. 

 

그런데 이 나이쯤 돼서 돌이켜 보면 나에게 있어 쉬운 관계는 없었다. 뭔가 코드도 맞고, 스타일도 비슷해 잘 맞을 것 같은 관계도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사랑하는 관계를 크리스탈 유리잔이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세심하게 잘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꼭 사랑하는 관계만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모든 인간관계는 다 어렵고, 언제든지 깨지기 쉬운 크리스탈 같은 것이다. 지금 깨닫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읽으면서 나도 그 친구가 어제 만나고 헤어졌던 것처럼 "뭐해요?"하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가까이 있어 뭐해요라고 묻는 건 지금 만나자는 뜻이 되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뭐하며 지내니라고 묻는다면 그건 안부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친구를 두고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석원처럼.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도 하루에 단 한 두 시간도 집중해서 쓰지 못하는 나에게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석원같이 글을 쓰더라도 짝퉁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는......

그리고 작가의 이 말도 기억해야겠다.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 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345P)            

작가들의 글은 대개 뭔가의 불만과 부조리함 또는 불안과 회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는다면 뭐 때문에 작가가 되겠는가?) 이석원 작가도 그렇게 글을 쓰다가 마지막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그런 것으로 봐 작가는 글을 잘 써서 이렇게 쓰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뭔가 어려움을 극복했거나, 일이  잘 풀리거나,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초월했거나. 어쨌든 책의 마무리가 좋다. 

 

작가의 은밀하고도 솔직함에 독자인 나로선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작가는 허투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 같아 신뢰감이 느껴진다.이 책은 언젠가 외롭거나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다시 한 번 펼쳐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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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0-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책이 그렇게 좋다는 말이죠? 언젠가 다시 한번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라니.
그런데 저는 이석원이 누군지 몰라요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썼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도 그 책의 저자로서만 아는데 원래 글쓰는게 직업인 사람은 아니죠? 아닌가요? ㅠㅠ

stella.K 2015-10-03 14:39   좋아요 0 | URL
가수래요. 언니네 이발관이란 인디 밴드 리던가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이 처음인데 <보통의 존재>가 성공을 거뒀던 것 같아요.
말에 의하면 <보통의 존재>가 좋긴한데 굉장히 무겁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에세이가 그래도 밝다고 하는데 이미 밝혔듯이
중저음톤이라 나인님껜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근데 프랑스 영화 같은 느낌도 들고 어쨌든 전 좋았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03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이 글 오늘의 당선작이다, 했는데 당선작되었던데.. 또 조심스럽게 점쳐봅니다. 으 글도 오늘의.. 아, 아니구나. 이 달의 당선작 추천합니다. 독자선정위원회는 이 덧글 읽으면 추천 누르시오 ! 명령이오...

stella.K 2015-10-03 14: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곰발님 땡!
저번에 당선작이 될 것 같다고 한 그 글 실은 안 됐어요.
대신 다른 것이 됐지롱.
그런데 이 리뷰 열심히 쓴 건 사실이어요.
가끔 저의 생각에 불을 집혀주는 책이 있지요.
이 책이 그랬어요. 이번에도 되면 좋겠군요.^^

페크pek0501 2015-10-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님의 명령에 따라 추천 눌러야 할 것 같군요. 제가 독자위원은 아니지만... 하하~~

요즘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더라고요. 소설은 쭉 이어져서 한꺼번에 읽어야 될 것 같고
에세이는 딱 딱 끊어지니까 아무 때나 읽어도 될 것 같은 건 에세이 독서의 장점.

˝짝퉁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 저, 안 놀릴 거예요. 뜨겁게 응원해 드리는 쪽이에요. ㅋ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 그러니 미래의 성공을 향해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가 중요한 거군요.
명심하겠습니다. (빨리 나의 화단을 가꾸러 가야지.)

stella.K 2015-10-03 14:47   좋아요 0 | URL
고맙슴돠, 언니.
이미 쓰기도 했지만 전 소설은 호불호가 좀 심한 편이라
선뜻 읽기가 두렵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언니 이 에세이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읽으면 끝까지 읽으셔야 할 거예요. 안 끊어져요.ㅠㅋ

묘하게 이 책 읽고 나도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말 정말 좋죠?^^
 

언젠가 여름이 시작될무렵 동생이 전자 모기채를 사 둔적이 있다.

흡사 베드민턴채를 닮은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과연 모기를 잡는데 도움이 될까 의문을 가졌었다.

모기를 잡을 때 불꽃이 튀겨 불이 날 수도 있다는 주의사항을 얼핏 들을 것도 같다.

한여름 보단 늦여름에 오히려 모기가 극성인 우리집은 한동안 전자 모기향을 쓰다

요며칠새 그것의 덕을 보고 있다.

뭐 말에 의하면 전자 모기향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하여.

물론 이 얘기는 오래 전에 듣고 있던 바였는데 최근까지도 그냥 썼다.

이것의 장점은 모기가 어딘가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날아 다니고 있을 때 휘둘러 잡을 수 있다.

몇번 헛발을 내두를 수도 있지만 모기와 정통으로 맞을 땐

정말 지직거리면서 불꽃이 난다. 감전사 하는 것이다.

어떤 땐 모기가 타는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약하게 노가리가 타는 냄새라고나 할까?

모기는 해충이라 박멸이 필수다. 

그런데 모기향을 쓸 땐 모기를 조용히 보내줄 수가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죽이니 그도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도 좀 더 써보면 왠지모를 쾌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난 어느새 사디스트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물건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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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0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기의 존재 이유...

남에게 함부로 피를 뽑아 낸다면, 모기처럼 박멸의 대상이 된다는 뜻~~~
(뭐 나름대로 이유를 붙혀 봤습니다. 시험에는 안나옵니다 ㅋ)

stella.K 2015-10-01 17:39   좋아요 1 | URL
모기는 반면교사...?ㅎㅎㅎㅎㅎ

cyrus 2015-10-0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벤더 향이 모기를 퇴치하는 천연제라고 하더군요. 향도 좋은데 그거 써보면 좋아요. 계피가루도 좋고요.

stella.K 2015-10-02 13:46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내 말은 모기도 못 되긴 하지만 인간도 못지않게 잔인하다는 걸
얘기하는 거였는데...ㅠㅋㅋㅋ
역시 너는 너다운 결론을 내는군.
좋아. 참고하겠스~!^^

cyrus 2015-10-02 23:56   좋아요 0 | URL
모기를 잡지 않아도 라벤더, 계피가루를 방안에 보관하거나 액체를 뿌리면 모기가 향이 나는 쪽으로 얼씬하지 않을거예요. 평화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서 알려준거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