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는 분이 그의 사무실 신년회를 한다고 해서 갔다(사무실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오피스텔이다).

예전 같으면 제법 왁자했을텐데 이번엔 공교롭게도 나와 번역하시는 분, 이렇게 셋만 모였다.

사무실 주인장과 내가 동갑이고, 번역하시는 분이 그 보다 한 살 위다.

그런데 그 주인장, 번역가께서 가져 온 와인을 따서는 내 잔에 먼저 따르려 하는 것을 배운 것이 있어 사양하고 번역가 먼저 따라드리도록 했다. 그러면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웬열. 분명 머리속에선 이 말이 적당한 말이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는데 정확한 사자성어가 생각이 나질 않아 무조건 질러버린다는 게 그만...

우린 그대로 한동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웃을 수 밖에 없었던 건 그 순간 누구도 이 상황에서 맞는 사자성어를 대지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번역가님이 깔깔 웃으며 겨우 "장유유서"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할 수 있었다. 장유유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해 그런 실수를 하다니. 결국 이럴 때 만만한 건 나이 탓이다. 학년도 바뀌고, 반도 바뀐 그 웬수 같은 나이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게 꼭 나이탓이겠는가?

같은 '유유'에서 걸린 것으로 그런 실수는 젊은 사람도 하지 않는가?

나이탓하면 서글퍼지긴 하지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나이탓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편해지는 수도 있고.

잊지 말자.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고, 장유유서. 얼마나 아름다운 예의범절인가.

 

그 신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서재의 달인에게 보내준다던 알라딘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그래서인지 선물은 대체로 마음에 들긴 했다. 그런데 좀 아쉬운 건 이걸 새해가 되기 전에 받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다. 그랬다면 달력도 새해 부터 책상 머리맡에 모셔놨을 것이고, 다이어리도 새해부터 썼을 것이다. 알다시피 다이어리는 새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벌써 앞의 일주일 이상을 비워두고 써 나갈수 밖에 없다. 물론 안다. 연말이었으니 택배의 분주함을 피해 이제야 보낸 거겠지.   

아쉬운대로 지나갔지만 새해가 되고 기억나는 일을 적어넣긴 했는데 엊그제 금요일부터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 뭘하고 지냈는지 기억이 없다. 이런 좌절을 봤나?ㅠ

그런데 이 다이어리가 또 나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적당히 두꺼웠다면 그냥 심플하고 모던하네 하며 구석에 방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확 두꺼워져 버리니까 남 줄 수도 없고, 열심히 써서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내가 다이어리를 안 쓰게 된 것은 알라딘의 영향이 크다. 처음 블로그를 쓴게 알라딘 서재였고, 쓰다보니 일기 쓰는 게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도 서재의 달인 선물로 다이어리 보내준다는 게 별로였고. 그런데 이런 다이어리를 보내줘 버리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ㅠ

아무튼 보내주니 고맙게는 받겠다만, 역시 서재의 달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성 싶다. 다이어리를 생각하면 서재가 울고, 서재를 생각하면 다이어리가 울고.

아마도 이러면서 또 한 해는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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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1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1-11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라는 글자가 두 개나 일치하네요.

stella.K 2016-01-11 12:50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유유상종. 장유유서. 그놈의 유 자에서 걸렸다는 거
아닙니까?ㅋㅋㅋ

yureka01 2016-01-1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장유유서..ㅎㅎㅎ 알라딘 노트..딸아이가 냉큼 가져 가서 자기가 쓰겠다고 하더라구요 ^^.
꼭 알차게 빽꼭히 채워서 되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받아서 좋은 거니...축하드려야죠 ^^.

stella.K 2016-01-12 16:25   좋아요 1 | URL
뭐 선물 싫어할 사람은 없긴 하죠.
그래도 이왕 주는 거 상품권이면 더 좋을 텐데...ㅠ
암튼 고맙습니다.^^

yureka01 2016-01-1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라딘 적립금도 좀 줬더라면,,책사는데 보텠을텐데 말입니다.ㅎㅎㅎㅎ빙고 !!~~

stella.K 2016-01-12 16:43   좋아요 1 | URL
제 말이요.ㅠ
전 이번 달도 당선작 불발인데 지난 번 입바른 소리를 해서 미운털이 박인 것
같습니다. 어떤 장벽이 느껴지내요.ㅠㅠ

페크pek0501 2016-01-1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아직 선물이 안 오는 건가요? 후후~~

stella.K 2016-01-14 11:25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거의 다 도착된 모양인데...
한번 고객센터에 문의해 보시죠.

yamoo 2016-01-19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받은 다이어리가 매우 두꺼워서 놀랐네요..ㅎ
컵은 배트맨 노란 컵을 받았습니다. 다이어리는 쥐색이네요. 근데, 저도 좀 늦게 와서 달력이 무용지물 됐다는..ㅎ

stella.K 2016-01-20 11: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확실히 배려가 부족했어요.
택배 물량 때문이라면 좀 일찍 발표해서 일찍 보내주면 좋을 텐데...
요즘 다이어리 쓰느라고 머리 쓰느라 애 좀 먹고 있어요.ㅋㅋ
 
지식은 아름답다
데이비드 맥캔들리스 지음, 방영호 옮김 / 생각과느낌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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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좀 놀랍다. 이 책은 한마디로 백과사전의 지식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그림을 뜻하는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을 보여주는 책이다. 말이 좋아 인포그래픽이지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시각화 할 생각을 했을까? 저자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어질 정도다.

이 인포그래픽이란 분야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보통 백과사전의 지식을 문자로만 섭렵할 생각을 했지 이렇게 하나의 정형화된 그림으로 볼 생각은 별로하지 못했을 것이다.(나만 그런가?) 그런데 이렇게 그림으로 보여주니 복잡한 지식체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지식은 정보를 기반으로 하느니만큼 잡학적이기도 한데, 책은 크게 삶, 지성, 문화, 세상으로 나누고 그것을 또 각각 4개의 분야로 세분화 했다. 그리고 그 세분화된 4개의 분야는 한 개의 분야당 또 5개로 세분화 했다. 그래서 목차만 봐도 대충의 지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고, 내가 지금 어느 분야의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도 이 책은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언제든 아무데다 펼쳐 읽으면 그것이 내 지식이 될 수가 있다.    

글자 보다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 그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유용하다.

한 번 습득한 지식을 오래 남도록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하는데 모르긴 해도 이 책은 저자의 그런 오랜 습관에서 나온 결정판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 정리하고 체계화시키는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더 부럽고 존경스럽다.

한 가지 흠이라면 그림에 치중하느라 글자가 너무 작다. 최소한의 설명만을 쓰긴 했지만 눈이 나쁜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금은 의문스럽다. 요즘 큰 글자 책도 간혹 나오고 있는 모양이긴 한데 원가가 싼 책은 아닌가 본데 큰 글자로 따로 만들기는 아무래도 모험이긴 할 것 같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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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0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봐도 그림이 많을 것 같아요. 이 책 재미있겠어요.  ^^

stella.K 2016-01-08 18:37   좋아요 0 | URL
네가 보면 좋아할만 할거야.
그런데 이 책 엄청 비싸.ㅠ

페크pek0501 2016-01-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씨가 작은 것, 저에겐 큰 흠이에요.
저도 지난 번 네 권을 샀는데 그중 두 권이 글씨가 작아서 어찌나 실망했던지요.
알라딘에서 이런 정보를 줄 수는 없는 걸까요? 반품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뒀어요.
꼼꼼히 살펴보고 사야겠어요.

stella.K 2016-01-10 23:11   좋아요 0 | URL
반품하실 정도면 정말 작은 글씨였나 봐요.
진짜 시력 좋았던 옛날이 그립더라구요.
전 눈이 나빠진다는 게 어떤 의민지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엔 정말 실감해요. 위로삼아 루테인을 먹고 있긴 한데
좋아졌다기 보다 더 나빠지는 것을 늦추겠지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ㅠㅠ
 

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학교는 장충동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이 학교가 나름 좀 유명했던 건 공립학교 치고는 시설이 좋았다는 것에 있다. 당시 있는 집 자식들은 리*초등학교로 간다는데, 그 학교는 사립인데다 시설이 좋기로 유명했다. 오빠와 언니는 그 학교에 비견되리만큼 좋다고 하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진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 학교는 시설이 정말로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거기서 3학년 1학기 정도까지 다녔는데, 내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해도 군데군데 낡은 티가 역력한데  그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으니 언니와 오빠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 성 싶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학교에 딱 한 가지,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제도적이기까지 했는데, 무엇이냐면 학교에서 모든 시상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성적 우수상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개근상조차 모조리 없애버린 것이다. 그 말은 또 오빠와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직접 말씀하실 텐데, 정작 선생님께는 못 듣고 언니, 오빠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게 된 것일까? 내가 결석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게, 언니와 오빠는 각각 4학년 2학년 때까지 간간이 무슨 상장을 받아 가지고 오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론 이렇다할 상이 없었던 것이다. 나야 뭐 워낙에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니 상과는 멀어 기대도 안 했고. 모르긴 해도 상도 차별을 조장한다고 해서 아예 금지시킨 건 아닐까?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3학년 초여름이 됐을 때 갑자기 몸이 아파 1학기도 다 마치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 둬야했고 공교롭게도 그해 가을 우리집은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논현동이란 곳에서 살았는데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해 4학년부터 다닐 수 있었다.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학교도 공립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학교는 시상제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내가 알기론 모든 공립학교는 시상제도를 폐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학교는 그게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하지만 말했시피 난 상과 그다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이었나? 난 '잘씀상'이란 걸 받았다. 그 상은 한 달의 한 번인가? 두 달의 한 번인가 선생님이 아이들의 노트를 검사를 해 글씨를 잘 쓰던가, 노트 정리를 잘하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다.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3학년 2학기를 건너 뛰고, (학교는 비록 갖춘 것이 없어도)먼저 다니던 학교보다 실력이 높은 학교라 상은 남의 나라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나마 만만한 상이라던 개근상도 쳐다 볼 입장이 못 됐다. 하나 바라 본다면 이 '잘씀상'이라는 건데 이것도 사실은 내가 바라 볼 수 있는 상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때 그렇게 아픈 후로 오른손을 쓰지 못했고, 다시 학교는 다녀야 했으니 엉결결에 왼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으니 괴발세발은 당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학하고 있을 때 글씨 연습이나 많이 해 두는 건데 후회한들 너무 늦었다.   

 

하지만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지금이야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게 하등 이상할 것 없겠지만 그 시절엔 왼손으로 글을 쓴다는 게 좀처럼 없는 일이고, 그것도 알아 볼 수 있게 쓴다는 건 거짓말 좀 보태 신기에 가까운 일이다. 왼손으로 써도 누가 보아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쓰게 되자 선생님은 하루는 내 노트를 검사하시더니 상을 줘야겠다며 칭찬을 하시는 것이었다. 난 그게 그냥 나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고 그냥 베시시 웃어 넘겼다. 그런데 왠열. 진짜 선생님은 나에게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 상엔 우수상과 최우수상으로 나누는데 당연히 우수상은 최우수 보다 못하긴 하지만 난 어쨌든 당당히 이 상을 받았던 것이다. 뭐 나름 정리를 잘 했다면 최우수상을 받았겠지만 알아 볼 수 있는 정도로 글씨를 잘 썼으니 그만도 선생님이 가상하게 보신 모양이었다.

 

난 그제야 학교가 내 학교 같았고, 교실이 내 교실 같았으며, 책상도, 아이들도, 심지어 선생님 조차도 나의 선생님 같았다. 오빠는 가끔 나와 동생이 전학해 다니게 된 이 학교가 시설면에서 후지다고 똥통 학교라고 놀리곤 했지만, 시설은 좋지만 학생에게 상이라곤 줄 줄도 모르는 먼저 다니던 학교 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학교는 그 상외에도 몇 가지 상이 더 있긴 하지만 난 내 생애 첫 번째 상과 그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그 시절의 담임 선생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로 글씨를 잘 써서 주셨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상은 다분히 내가 학교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선생님의 고도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학교는 또 6학년 때 학력 평가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나의 성적이 아주 밑바닥마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요즘 말하는 성적 하양평준화가 되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때야 비로소 공부할 맛이 났다. 

 

몇년 전, TV에서 어느 초등학교가 졸업을 하면서 한 반 전체가 상을 다 받고 졸업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 반은 30명 남짓이었나 본데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 하나의 장점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맞춤형 상을 수여했다는 것이다.

 

글쎄, 모든 학생이 상을 받으면 그게 무슨 상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엔 상은 귀한 것이어서 정말 줄만한 사람에게만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상중에 상은 역시 천재들이나 받을 법한 성적 우수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못 살고, 못 먹던 시절 오로지 공부해서 입신양명을 추구하던 시절의 잔재란 생각은 들지 않는가? 물론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상은 줄 수 있다. 또 줘야 마땅하다. 그래야 더 열심히 공부할 테니. 하지만 상은 그런 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엔 다른 여타의 상도 많은데 그게 가치가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상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쯤해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지금의 알라딘 당선작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번에도 그런 말을 했지만, 그렇게 잘쓴 글에만 당선을 허하는 것인지, 그것이 성적 우수자에게만 상을 주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떻게 상이 성적우수상만 있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옛부터 학교는 전교 600명 세울 때 공부 잘하는 학생부터 세우길 좋아했다. 지금도 그럴 테지만. 하지만 그것만이 학생을 세우는 방법은 아니다. 키 순서로 세울 수도 있고, 체력별로 세울 수도 있으며, 봉사를 가장 잘하는 사람 순으로 세울 수도 있다. 더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면서? 그렇다면 더더욱 학생을 그런 방식으로 세우면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게 인이 베겼는지 욕하면서 닮는다고, 우린 학교 때 그런 줄세우기 방식을 비판하고 비난하면서 사회에 나가선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도 예외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알라딘은 몇년 전부터 지금의 당선작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문제점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 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지금의 당선작은 너무 획일적이며, 모호하다. 도대체 뭘 기준을 가지고 좋은 글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 또 얼마 전부터 선정단까지 갖추고 선정의 공정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는데, 물론 선정단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왔고 잘 하겠냐만, 선정작이 순전히 선정단이 뽑은 것을 가지고 뽑는 것인지 아니면 참고만하고 최종 선정은 알라딘에서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 이해 할 수 없는 건, 이 선정 제도가 시행되고부터 지금까지 개근하거나 그에 준하는 알라디더들이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글을 잘 쓰는 건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선정에서 제외되지 않고 꾸준히 이름을 올릴 수가 있을까?(물론 정말 이 사람은 선정에서 제외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선정작이 있기는 하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그런 걸 보면 선정작에도 편견은 존재하지 않는가 의혹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건 또 그렇다고 치자. 알라딘은 이것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해 본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정말 그 사람들 외엔 선정할 다른 마땅한 글은 없는 것인지? 다른 기준, 다른 각도로 알라디너의 글을 봐줄 생각은 없었는지?

 

지난 번 글을 올렸더니 (다른 알라디너들은 몰라도)나와 친분있는 알라디너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이달의 당선작이 너무 적다는 것에 동감을 표해 주셨다. 이쯤해서 알라딘도 좀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촉구하고 싶다.

 

알라딘은 그 어느 서점 보다 데이터 베이스를 잘 구축하고 있다. 작년 말에도 무슨 서재 결산이니, 나의 독서 통계니, 하다못해 내 서재에 어떤 알라디너가 가장 많은 댓글을 달았는지에 대한 빅데이터를 볼 수 있게 해 놨다. 줄 세우기 좋아하면서 왜 이런 자료 가지고 이달의 당선에 활용할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설마 지금의 당선작 제도를 무슨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우고 싶은 것은 아닌지? 전근대적인 것과 아날로그 감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시설 좋다고 그 학교를 좋은 학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시설은 안 좋아도 나를 인정해 주는 학교를 더 좋아하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게 학교만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초기에 알라딘이 표방했던 건 요술 램프에 살고 있는 지니를 생각해서 알라딘이라 붙였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램프를 쓰다듬으면 지니가 홀연히 나와 주인의 바라는 소망을 다 이루어 주는 것처럼 고객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겠다며 힘차게 시작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 갔으면 좋겠다.       

 

나의 친분있는 알라디너 한 분은 기승전박이라고 했는데, 새해 첫 번째로 알라딘에 올리는 글은 유감스럽게도 이런 글이다. 기승전알(라딘)이라고나 할까? 올해가 마칠 때 또 기승전알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땐 또 닭살 돋게도 알라딘 사랑한다고 쓸지 누가 알겠는가?  무튼 올해는 알라디너의 마음을 좀 잘 헤아려 가려운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알라딘, 올해도 변함 없이 욕 보시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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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1-06 14:05   좋아요 1 | URL
옛날이나 신춘문예, 신춘문예 하지 것도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하긴 누가 준다면 그것도 낼름 받긴 할 겁니다.
상 싫어하는 사람있나요?

거 봐요. 여기서 안 되면 저기서 되기도 하고 기준이란 게 따로 없어요.
성적우수상 같은 거야 산술적으로 계산이 나오니까 준다고 하지만
글 가지고 평가한다는 건 너무 주관적이라 줄 세우기 한다는 게 넌센스죠.
그냥 성실하게 쓰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님도 올 한 해 운수대통하시길...^^
 

다사다난 했던 2015년이 지나고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 떳던 해가 오늘도 변함없이 떠올랐을 뿐인데 오늘 뜬 해는 어제 뜬 해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것일까?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는 걸까? 우린 좋든 싫든 새해를 맞이해야 하고, 나이 한 살 먹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여야 할 뿐이다. 마치 쓰레기 봉투값이나 버스 요금 오른다고 호들갑 떨다가도 결국 얼마 안 있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담담하다는 건 담담하지 않기 때문에 애써 담담한 척 하다 이내 담담해져 버리는 그런 역설적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작년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하는 것마다 안 됐고, 별 성과없이 주져 앉았다. 더구나 검기 몸살 외엔 건강하나 만큼은 자신했던 엄마가 생각지도 않은 암선고를 받고 어떻게 해야좋을지 우왕좌왕 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비교적 순조롭게 회복 중에 계시긴 하지만 그토록이나 아파했던 엄마를 지켜 본다는 건 이 엄마가 내 엄마 맞나 싶게 낮설게도 느껴졌던 한 해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게 아픈 엄마를 두고 암판정을 받기 전까지 아무 것도 아닐 거야. 괜찮겠지를 되내이며 난 공연도 보러 다니고, 사람도 만나 히히덕거리기도 했으며, 변함없이 책을 읽고 살았다는 게. 무엇보다 당신이 괜찮다고만 하시고, 병원에 안 가시려고 이리 빼고, 저리 빼시니 그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 원래부터 병원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스스로가 가겠다고 하기 전엔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아픈 엄마를 방치한  잘못도 크다. 

 

서론이 길었다. 그렇게 멋모르고 살았기에 (비록 하루가 갔지만)올해도 '내 맘대로 좋은 올해의 책'을 뽑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무작위로 올려 본다.

 

사실 난 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라디오를 듣는다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유일하다. 물론 다른 프로도 드물게는 듣긴 하지만 결국 끝까지 듣게 되는 건 이 음악 프로다. 그나마 더러는 안 들을 때도 있고. 그러니 팻캐스트를 들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워낙에 유명해서 이렇게 듣기를 싫어하는 나도 간혹 한 두 번은 호기심에 듣기는 했다. 음악 프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무엇을 괴외로 할 수도 있지만(난 보통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이 팟캐스트는 온전히 이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 듣고 있으면 재밌긴 한데 잘 안 듣게 된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웠다. 이동진도 이동진이지만 김중혁을 좀 좋아하는 편이라 이 둘의 결코 밀리지 않는 말빨과 그 조화로움은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싶다. 이동진은 이동진대로, 김중혁은 김중혁대로 자기 맡은 전문 분야(영화와 문학)에서 어쩌면 그리도 지식이 풍부한지. 

 

하지만 팟캐스트에서 다룬 책들의 편수에 비하면 책은 몇편 되지 않아 아무래도 2, 3권 계속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저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 책으로 재대로 저격당했다고나 할까?

 

글쓰기에 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무슨 글쓰기 강사가 매뉴얼처럼 써낸 책도 많은데 나는 그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글쓰기 책도 이토록 철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라고나 할까? 깊이가 있으면서도 문체는 대체로 평이해 이렇게 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존경스러운 마음마져 들기도 한다. 또한 글을 잘 쓰기를 원하는데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격려와 위로를 받는 것 같을 것이다.

         

나는 인터뷰집을 좋아하지만 특히 그 대상이 작가면 내 취향에 딱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은다는 건 행운이었다. 오래 전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고, 특별히 소설을 쓰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설을 못 쓰고 소설가들에 대해서 써 놓은 책을 좋아하니, 난 아무래도 소설은 못 쓰지 싶다.

 

특히 난 그들이 어떻게 글을 쓰고 문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고백컨대 내가 이러는 건 그들에 대한 순수한 관심 보단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 같은 건 아닌가 싶다.  

 

혹시라도 이쪽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몇년 전에 읽은 원재훈의 <나는 오직 글쓰고 책 읽는 동안 행복했다>를 함께 추천한다. 이 책 정말 재밌게 읽었다. 어떤 작가는 서로 겹치기도 하는데 시차가 있으니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 또는 변함이 없다면 어느 부분에서 변함없는 생각을 가졌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나에게 그다지 크게 다가 온 것은 아니다. 그냥 한편의 시 같은 희곡을 읽는 기분이었달까? 작가 김경주가 추구하는 것도 시극이었던 만큼 그냥 작가가 이제까지 써 온 작품 중 하나를 접해 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면 시고, 희곡이면 희곡이지 시극은 또 뭐란 말인가? 말에 의하면 T.S 엘리엇으로부터 이 운동은 펼쳐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성인들 지성을 깨우치는 건 좋은데 그렇게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일반인들 우왕좌왕 헷갈리게 만드는 게 그리 좋은지 묻고도 싶어졌다.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 한 가지 사실이 나의 뇌리를 꽝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작가의 활동이었다. 그는 연극 연출가이기도 하는가 본데 무대를 극장에만 한정 짓지 않고 카페든, 클럽이든 하다못해 창고에서도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사실 나는 3년 전인 2013년에 내가 쓴 뮤지컬 작품을 처음으로 대학로에 올리고 같은 해 말 재공연 말이 나왔다 제작자와 대판 싸우고 결별했다. 솔직히 초연도 겉으로만 성공적이었지 그속을 들여다보면 원칙은 없고 무질서 그 자체였다. 그래도 가까스로 참고 재공연이 성사가 되길 바랐는데 제작자의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빡이 돌았던 것이다. 결과야 뻔한 거고. 역시 돈줄을 쥔쪽이 무섭긴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정말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 건가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이 방법도 있었구나 했던 것. 그래서 대본을 다시 고쳐 쓰고 무조건 돈키호테처럼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작년은 하는 것마다 안 됐고, 그후로 엄마의 병이 점점 더 심해져 급기야 수술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돌이켜 보면 어차피 안 되는 거였구나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어떤 의미로든 행동하도록 만드는 책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고 잠시긴 했지만 나를 이토록 돈키호테가 되도록 만드는 책이 있다는 것에서 이 책은 나름 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고 저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난 이석원의 <언제들어도 좋은 말>이 더 실제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글을(특별히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책이었고, 나도 왠지 이런 식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뭐 누구는 사소설이 아니냐고도 하고, 누구는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쓴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형식에 관한 평가는 차치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솔직함에 방점을 두고 싶다. 작가됨의 덕목 중 하나가 솔직함 또는 정직하게 쓸 것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작가 이석원은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본다. 

 

나는 또 이 책을 읽고 얼마 있지 않아 <보통의 존재>를 샀고 바로 어제 완독을 했다.  글쎄.. 아무리 좋아하게 된 작가일지라도 이렇게 짧은 기간내에 또 다른 책을 사서 읽기란 나에겐 좀체로 없는 일인데 그냥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받고 보니 노란색 양장이 꼭 무슨 일기장 같기도 하고 예뻤다. 나 개인적으론 형식적인 면에선 앞의 책이 더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혼 경력, 정신병 이력, 가족과의 관계 등을 적나라다 싶을 정도로 솔직히 쓰고 있는데, 읽고 있으면 자신을 떠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 앞에서는 용기가 없고 해명할 자신이 없어 뒤돌아서서 혼자 자조하며 중얼대는 그런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의 말이 일견 일리가 있고, 수긍이 가는 그 생각의 독특함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읽기에 따라선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의 책을 먼저 읽었다면 말이다.

 

특별히 그는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독서는 거의 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는데 책 읽기의 괴로움을 아는 사람은 담박에 질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러고도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는지 하면서 말이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없다면, 생각을 많이하고 자기 글을 성실하게 고쳐나가는 것도 작가가 되는 한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블로그에 올라 온 그의 글을 읽으니 그는 <보통의 존재>가 나오고도 책을 끊임없이 고쳐 쇄를 거듭할 때마다 글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다. 지금까지 42쇄가 나왔으니까 42번을 고쳐 썼을지도 모른다. 굉장한 인내고 성실함 아닌가? 그렇더라도 새롭게 사지는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딘가 숨어서 <언제 들어도...>를 고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석원의 발견을 감히 '발견 이 작가!' 라고 하리만큼 작품 보다 오히려 작가의 발견이놀랍고 반갑다.

 

그렇게 말하자면 '발견 이 작가!'에 또 하나의 이름을 올리자면 김경욱이다. 

 

솔직히 이 책은 몇년 전 이곳 아는 알라디너로부터 생일을 빙자하여 받은 책이다. 그런 것을 황송하게도 받은 즉시 읽지 못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다 최근에 읽게 되었는데, 정말 언제까지 읽기를 미루었다면 작가에게나 이 책을 선물한 그 알라디너에게나 실수할 뻔했다. 물론 이미 했지만...ㅠ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정말 요즘 작가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걸 새삼 알았고, 김경욱이란 작가가 있다는 게 우리나라 문학계가 아주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가 위트있게 쓴 것도 한몫하지만 읽다보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과가사를 알 수도 있어 유익하다.

 

특히 작가가 오타쿠적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작가와 내가 같은 세대를 살고 있어 어느 부분 그때는 정말 그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들지만, 확실히 작가는 나 보다 두 세 걸음은 더 앞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래도록 문화계에 종사한 사람의 자서전으로도 읽히는데, 마침 내가 이곳 알라딘에 내가 읽어 온 책들을 정리하는 글을 올리곤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손을 놓고 있긴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성실함이 8할 같다.

 

인생을 100으로 보고 반환점을 돌 때쯤 사람은 자서전을 쓰고 싶어지는가 보다. 뭔가의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엔 문학 잡지도 끼워 본다.

일단 환상적이리만치 착한 가격에 놀랐고 또 놀라우리만치 내용이 좋아서 이래도 되는 건가 의아할 정도였다. 천명관의 인터뷰도 좋았고.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창간호라는 점에서도 이 책을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 근데 세번째 호는 사 놓고 여태 읽지 못했다. 난 왠지 공지영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데 아무래도 그래선지 아직도 읽지 못했다. 

정기구독을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이제부턴 읽고 싶을 때만 사서 읽어 볼 참이다. 

 

대충 이렇게 정리해 본다. 그런데 재작년에 이런 글을 쓰면서 나는 슬쩍 베스트와 함께 워스트를 한 권 올린 적이 있다. 이번에도 좀 짖궃게 한 권 정도 올려보고 싶은데 그건 바로,

이 책이다. 정말 위험하고, 거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옹호하고 점잖게 말해 범신론적인 시각이 다분해 보이는데 읽다가 거의 내팽개쳐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 말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이 책을 일부러 사서 읽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뭐 나름 이 책에서 은혜 받은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봤나 보다. 하지만 이 책은 나로선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올핸 또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언제나 그랬지만 조금씩 건드려놓기만 하고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한 책, 읽으려고 고히 모셔둔 책들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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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16-01-02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즐거운 책읽기와 함께 행복하시길 ^^

stella.K 2016-01-02 11:24   좋아요 0 | URL
어머나! 정초에 야클님께서 제 서재를 친히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새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ㅋ
야클님도 올해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16-01-0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6년은 분명 작년보다 더 나은 해가 될 것입니다^^

stella.K 2016-01-02 11:33   좋아요 0 | URL
아, 책나무님 고맙습니다.
그래야지요. 책나무님도 올해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저도 기원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6-01-0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stella.K 2016-01-03 14: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도 좋은 책들과 함께 복된 한 해 되시길
저도 기도들여요. 고맙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는데, 어떤 셰프가 음식에 폭탄을 숨겨 북극곰에게 먹여 죽었단다.

그런데 그 북극곰이 피가 낭자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북극곰은 멸종 보호종인 줄 알고 있다.

그런 동물을 누가 뭐 때문에 그런 끔찍한 방법으로 죽였을까?

 

현지 경찰은 범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모르긴해도 뉴스는 여기까지가 전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늘 그렇듯 뉴스는 애프터를 잘 하지 않는다.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가 없다.

 

엄마와 나는 이를 갈며, 누군지 그 놈을 잡아다 사형을 시키되 똑같이 폭탄이 들은

음식 먹여 죽여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죄가 많다.

지금도 그 북극곰이 피를 머금고 눈밭을 고통스럽게 구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군지 정말 수박씨 발라 먹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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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환희 2015-12-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정말 화나는 일이네요 ㅠㅠ

stella.K 2015-12-26 18: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ㅠㅠ

cyrus 2015-12-2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킬당한 야생 고라니나 개의 시신을 보신용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있어요. 또라이들이 진짜 많아요.

stella.K 2015-12-26 18:10   좋아요 0 | URL
아프리카는 부자들이 땅을 사서 사자를 방목하고
한마리 한마리씩 죽인단다.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사자를 죽인다고 인증샷도 찍어 올리고.
그런 사자는 야생성이 거의 없어서 순진하게
사람을 따르다가 죽임을 당한다는 거야.
인간이 그런 존재야. 진짜 개또라이들 많지.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