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학교는 장충동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이 학교가 나름 좀 유명했던 건 공립학교 치고는 시설이 좋았다는 것에 있다. 당시 있는 집 자식들은 리*초등학교로 간다는데, 그 학교는 사립인데다 시설이 좋기로 유명했다. 오빠와 언니는 그 학교에 비견되리만큼 좋다고 하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진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 학교는 시설이 정말로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거기서 3학년 1학기 정도까지 다녔는데, 내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해도 군데군데 낡은 티가 역력한데  그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으니 언니와 오빠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 성 싶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학교에 딱 한 가지,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제도적이기까지 했는데, 무엇이냐면 학교에서 모든 시상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성적 우수상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개근상조차 모조리 없애버린 것이다. 그 말은 또 오빠와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직접 말씀하실 텐데, 정작 선생님께는 못 듣고 언니, 오빠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게 된 것일까? 내가 결석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게, 언니와 오빠는 각각 4학년 2학년 때까지 간간이 무슨 상장을 받아 가지고 오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론 이렇다할 상이 없었던 것이다. 나야 뭐 워낙에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니 상과는 멀어 기대도 안 했고. 모르긴 해도 상도 차별을 조장한다고 해서 아예 금지시킨 건 아닐까?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3학년 초여름이 됐을 때 갑자기 몸이 아파 1학기도 다 마치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 둬야했고 공교롭게도 그해 가을 우리집은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논현동이란 곳에서 살았는데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해 4학년부터 다닐 수 있었다.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학교도 공립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학교는 시상제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내가 알기론 모든 공립학교는 시상제도를 폐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학교는 그게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하지만 말했시피 난 상과 그다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이었나? 난 '잘씀상'이란 걸 받았다. 그 상은 한 달의 한 번인가? 두 달의 한 번인가 선생님이 아이들의 노트를 검사를 해 글씨를 잘 쓰던가, 노트 정리를 잘하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다.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3학년 2학기를 건너 뛰고, (학교는 비록 갖춘 것이 없어도)먼저 다니던 학교보다 실력이 높은 학교라 상은 남의 나라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나마 만만한 상이라던 개근상도 쳐다 볼 입장이 못 됐다. 하나 바라 본다면 이 '잘씀상'이라는 건데 이것도 사실은 내가 바라 볼 수 있는 상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때 그렇게 아픈 후로 오른손을 쓰지 못했고, 다시 학교는 다녀야 했으니 엉결결에 왼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으니 괴발세발은 당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학하고 있을 때 글씨 연습이나 많이 해 두는 건데 후회한들 너무 늦었다.   

 

하지만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지금이야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게 하등 이상할 것 없겠지만 그 시절엔 왼손으로 글을 쓴다는 게 좀처럼 없는 일이고, 그것도 알아 볼 수 있게 쓴다는 건 거짓말 좀 보태 신기에 가까운 일이다. 왼손으로 써도 누가 보아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쓰게 되자 선생님은 하루는 내 노트를 검사하시더니 상을 줘야겠다며 칭찬을 하시는 것이었다. 난 그게 그냥 나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고 그냥 베시시 웃어 넘겼다. 그런데 왠열. 진짜 선생님은 나에게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 상엔 우수상과 최우수상으로 나누는데 당연히 우수상은 최우수 보다 못하긴 하지만 난 어쨌든 당당히 이 상을 받았던 것이다. 뭐 나름 정리를 잘 했다면 최우수상을 받았겠지만 알아 볼 수 있는 정도로 글씨를 잘 썼으니 그만도 선생님이 가상하게 보신 모양이었다.

 

난 그제야 학교가 내 학교 같았고, 교실이 내 교실 같았으며, 책상도, 아이들도, 심지어 선생님 조차도 나의 선생님 같았다. 오빠는 가끔 나와 동생이 전학해 다니게 된 이 학교가 시설면에서 후지다고 똥통 학교라고 놀리곤 했지만, 시설은 좋지만 학생에게 상이라곤 줄 줄도 모르는 먼저 다니던 학교 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학교는 그 상외에도 몇 가지 상이 더 있긴 하지만 난 내 생애 첫 번째 상과 그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그 시절의 담임 선생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로 글씨를 잘 써서 주셨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상은 다분히 내가 학교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선생님의 고도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학교는 또 6학년 때 학력 평가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나의 성적이 아주 밑바닥마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요즘 말하는 성적 하양평준화가 되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때야 비로소 공부할 맛이 났다. 

 

몇년 전, TV에서 어느 초등학교가 졸업을 하면서 한 반 전체가 상을 다 받고 졸업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 반은 30명 남짓이었나 본데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 하나의 장점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맞춤형 상을 수여했다는 것이다.

 

글쎄, 모든 학생이 상을 받으면 그게 무슨 상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엔 상은 귀한 것이어서 정말 줄만한 사람에게만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상중에 상은 역시 천재들이나 받을 법한 성적 우수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못 살고, 못 먹던 시절 오로지 공부해서 입신양명을 추구하던 시절의 잔재란 생각은 들지 않는가? 물론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상은 줄 수 있다. 또 줘야 마땅하다. 그래야 더 열심히 공부할 테니. 하지만 상은 그런 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엔 다른 여타의 상도 많은데 그게 가치가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상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쯤해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지금의 알라딘 당선작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번에도 그런 말을 했지만, 그렇게 잘쓴 글에만 당선을 허하는 것인지, 그것이 성적 우수자에게만 상을 주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떻게 상이 성적우수상만 있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옛부터 학교는 전교 600명 세울 때 공부 잘하는 학생부터 세우길 좋아했다. 지금도 그럴 테지만. 하지만 그것만이 학생을 세우는 방법은 아니다. 키 순서로 세울 수도 있고, 체력별로 세울 수도 있으며, 봉사를 가장 잘하는 사람 순으로 세울 수도 있다. 더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면서? 그렇다면 더더욱 학생을 그런 방식으로 세우면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게 인이 베겼는지 욕하면서 닮는다고, 우린 학교 때 그런 줄세우기 방식을 비판하고 비난하면서 사회에 나가선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도 예외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알라딘은 몇년 전부터 지금의 당선작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문제점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 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지금의 당선작은 너무 획일적이며, 모호하다. 도대체 뭘 기준을 가지고 좋은 글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 또 얼마 전부터 선정단까지 갖추고 선정의 공정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는데, 물론 선정단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왔고 잘 하겠냐만, 선정작이 순전히 선정단이 뽑은 것을 가지고 뽑는 것인지 아니면 참고만하고 최종 선정은 알라딘에서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 이해 할 수 없는 건, 이 선정 제도가 시행되고부터 지금까지 개근하거나 그에 준하는 알라디더들이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글을 잘 쓰는 건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선정에서 제외되지 않고 꾸준히 이름을 올릴 수가 있을까?(물론 정말 이 사람은 선정에서 제외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선정작이 있기는 하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그런 걸 보면 선정작에도 편견은 존재하지 않는가 의혹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건 또 그렇다고 치자. 알라딘은 이것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해 본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정말 그 사람들 외엔 선정할 다른 마땅한 글은 없는 것인지? 다른 기준, 다른 각도로 알라디너의 글을 봐줄 생각은 없었는지?

 

지난 번 글을 올렸더니 (다른 알라디너들은 몰라도)나와 친분있는 알라디너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이달의 당선작이 너무 적다는 것에 동감을 표해 주셨다. 이쯤해서 알라딘도 좀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촉구하고 싶다.

 

알라딘은 그 어느 서점 보다 데이터 베이스를 잘 구축하고 있다. 작년 말에도 무슨 서재 결산이니, 나의 독서 통계니, 하다못해 내 서재에 어떤 알라디너가 가장 많은 댓글을 달았는지에 대한 빅데이터를 볼 수 있게 해 놨다. 줄 세우기 좋아하면서 왜 이런 자료 가지고 이달의 당선에 활용할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설마 지금의 당선작 제도를 무슨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우고 싶은 것은 아닌지? 전근대적인 것과 아날로그 감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시설 좋다고 그 학교를 좋은 학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시설은 안 좋아도 나를 인정해 주는 학교를 더 좋아하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게 학교만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초기에 알라딘이 표방했던 건 요술 램프에 살고 있는 지니를 생각해서 알라딘이라 붙였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램프를 쓰다듬으면 지니가 홀연히 나와 주인의 바라는 소망을 다 이루어 주는 것처럼 고객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겠다며 힘차게 시작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 갔으면 좋겠다.       

 

나의 친분있는 알라디너 한 분은 기승전박이라고 했는데, 새해 첫 번째로 알라딘에 올리는 글은 유감스럽게도 이런 글이다. 기승전알(라딘)이라고나 할까? 올해가 마칠 때 또 기승전알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땐 또 닭살 돋게도 알라딘 사랑한다고 쓸지 누가 알겠는가?  무튼 올해는 알라디너의 마음을 좀 잘 헤아려 가려운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알라딘, 올해도 변함 없이 욕 보시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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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1-06 14:05   좋아요 1 | URL
옛날이나 신춘문예, 신춘문예 하지 것도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하긴 누가 준다면 그것도 낼름 받긴 할 겁니다.
상 싫어하는 사람있나요?

거 봐요. 여기서 안 되면 저기서 되기도 하고 기준이란 게 따로 없어요.
성적우수상 같은 거야 산술적으로 계산이 나오니까 준다고 하지만
글 가지고 평가한다는 건 너무 주관적이라 줄 세우기 한다는 게 넌센스죠.
그냥 성실하게 쓰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님도 올 한 해 운수대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