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했던 2015년이 지나고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 떳던 해가 오늘도 변함없이 떠올랐을 뿐인데 오늘 뜬 해는 어제 뜬 해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것일까?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는 걸까? 우린 좋든 싫든 새해를 맞이해야 하고, 나이 한 살 먹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여야 할 뿐이다. 마치 쓰레기 봉투값이나 버스 요금 오른다고 호들갑 떨다가도 결국 얼마 안 있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담담하다는 건 담담하지 않기 때문에 애써 담담한 척 하다 이내 담담해져 버리는 그런 역설적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작년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하는 것마다 안 됐고, 별 성과없이 주져 앉았다. 더구나 검기 몸살 외엔 건강하나 만큼은 자신했던 엄마가 생각지도 않은 암선고를 받고 어떻게 해야좋을지 우왕좌왕 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비교적 순조롭게 회복 중에 계시긴 하지만 그토록이나 아파했던 엄마를 지켜 본다는 건 이 엄마가 내 엄마 맞나 싶게 낮설게도 느껴졌던 한 해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게 아픈 엄마를 두고 암판정을 받기 전까지 아무 것도 아닐 거야. 괜찮겠지를 되내이며 난 공연도 보러 다니고, 사람도 만나 히히덕거리기도 했으며, 변함없이 책을 읽고 살았다는 게. 무엇보다 당신이 괜찮다고만 하시고, 병원에 안 가시려고 이리 빼고, 저리 빼시니 그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 원래부터 병원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스스로가 가겠다고 하기 전엔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아픈 엄마를 방치한  잘못도 크다. 

 

서론이 길었다. 그렇게 멋모르고 살았기에 (비록 하루가 갔지만)올해도 '내 맘대로 좋은 올해의 책'을 뽑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무작위로 올려 본다.

 

사실 난 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라디오를 듣는다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유일하다. 물론 다른 프로도 드물게는 듣긴 하지만 결국 끝까지 듣게 되는 건 이 음악 프로다. 그나마 더러는 안 들을 때도 있고. 그러니 팻캐스트를 들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워낙에 유명해서 이렇게 듣기를 싫어하는 나도 간혹 한 두 번은 호기심에 듣기는 했다. 음악 프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무엇을 괴외로 할 수도 있지만(난 보통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이 팟캐스트는 온전히 이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 듣고 있으면 재밌긴 한데 잘 안 듣게 된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웠다. 이동진도 이동진이지만 김중혁을 좀 좋아하는 편이라 이 둘의 결코 밀리지 않는 말빨과 그 조화로움은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싶다. 이동진은 이동진대로, 김중혁은 김중혁대로 자기 맡은 전문 분야(영화와 문학)에서 어쩌면 그리도 지식이 풍부한지. 

 

하지만 팟캐스트에서 다룬 책들의 편수에 비하면 책은 몇편 되지 않아 아무래도 2, 3권 계속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저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 책으로 재대로 저격당했다고나 할까?

 

글쓰기에 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무슨 글쓰기 강사가 매뉴얼처럼 써낸 책도 많은데 나는 그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글쓰기 책도 이토록 철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라고나 할까? 깊이가 있으면서도 문체는 대체로 평이해 이렇게 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존경스러운 마음마져 들기도 한다. 또한 글을 잘 쓰기를 원하는데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격려와 위로를 받는 것 같을 것이다.

         

나는 인터뷰집을 좋아하지만 특히 그 대상이 작가면 내 취향에 딱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은다는 건 행운이었다. 오래 전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고, 특별히 소설을 쓰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설을 못 쓰고 소설가들에 대해서 써 놓은 책을 좋아하니, 난 아무래도 소설은 못 쓰지 싶다.

 

특히 난 그들이 어떻게 글을 쓰고 문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고백컨대 내가 이러는 건 그들에 대한 순수한 관심 보단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 같은 건 아닌가 싶다.  

 

혹시라도 이쪽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몇년 전에 읽은 원재훈의 <나는 오직 글쓰고 책 읽는 동안 행복했다>를 함께 추천한다. 이 책 정말 재밌게 읽었다. 어떤 작가는 서로 겹치기도 하는데 시차가 있으니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 또는 변함이 없다면 어느 부분에서 변함없는 생각을 가졌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나에게 그다지 크게 다가 온 것은 아니다. 그냥 한편의 시 같은 희곡을 읽는 기분이었달까? 작가 김경주가 추구하는 것도 시극이었던 만큼 그냥 작가가 이제까지 써 온 작품 중 하나를 접해 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면 시고, 희곡이면 희곡이지 시극은 또 뭐란 말인가? 말에 의하면 T.S 엘리엇으로부터 이 운동은 펼쳐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성인들 지성을 깨우치는 건 좋은데 그렇게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일반인들 우왕좌왕 헷갈리게 만드는 게 그리 좋은지 묻고도 싶어졌다.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 한 가지 사실이 나의 뇌리를 꽝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작가의 활동이었다. 그는 연극 연출가이기도 하는가 본데 무대를 극장에만 한정 짓지 않고 카페든, 클럽이든 하다못해 창고에서도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사실 나는 3년 전인 2013년에 내가 쓴 뮤지컬 작품을 처음으로 대학로에 올리고 같은 해 말 재공연 말이 나왔다 제작자와 대판 싸우고 결별했다. 솔직히 초연도 겉으로만 성공적이었지 그속을 들여다보면 원칙은 없고 무질서 그 자체였다. 그래도 가까스로 참고 재공연이 성사가 되길 바랐는데 제작자의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빡이 돌았던 것이다. 결과야 뻔한 거고. 역시 돈줄을 쥔쪽이 무섭긴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정말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 건가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이 방법도 있었구나 했던 것. 그래서 대본을 다시 고쳐 쓰고 무조건 돈키호테처럼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작년은 하는 것마다 안 됐고, 그후로 엄마의 병이 점점 더 심해져 급기야 수술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돌이켜 보면 어차피 안 되는 거였구나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어떤 의미로든 행동하도록 만드는 책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고 잠시긴 했지만 나를 이토록 돈키호테가 되도록 만드는 책이 있다는 것에서 이 책은 나름 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고 저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난 이석원의 <언제들어도 좋은 말>이 더 실제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글을(특별히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책이었고, 나도 왠지 이런 식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뭐 누구는 사소설이 아니냐고도 하고, 누구는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쓴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형식에 관한 평가는 차치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솔직함에 방점을 두고 싶다. 작가됨의 덕목 중 하나가 솔직함 또는 정직하게 쓸 것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작가 이석원은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본다. 

 

나는 또 이 책을 읽고 얼마 있지 않아 <보통의 존재>를 샀고 바로 어제 완독을 했다.  글쎄.. 아무리 좋아하게 된 작가일지라도 이렇게 짧은 기간내에 또 다른 책을 사서 읽기란 나에겐 좀체로 없는 일인데 그냥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받고 보니 노란색 양장이 꼭 무슨 일기장 같기도 하고 예뻤다. 나 개인적으론 형식적인 면에선 앞의 책이 더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혼 경력, 정신병 이력, 가족과의 관계 등을 적나라다 싶을 정도로 솔직히 쓰고 있는데, 읽고 있으면 자신을 떠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 앞에서는 용기가 없고 해명할 자신이 없어 뒤돌아서서 혼자 자조하며 중얼대는 그런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의 말이 일견 일리가 있고, 수긍이 가는 그 생각의 독특함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읽기에 따라선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의 책을 먼저 읽었다면 말이다.

 

특별히 그는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독서는 거의 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는데 책 읽기의 괴로움을 아는 사람은 담박에 질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러고도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는지 하면서 말이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없다면, 생각을 많이하고 자기 글을 성실하게 고쳐나가는 것도 작가가 되는 한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블로그에 올라 온 그의 글을 읽으니 그는 <보통의 존재>가 나오고도 책을 끊임없이 고쳐 쇄를 거듭할 때마다 글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다. 지금까지 42쇄가 나왔으니까 42번을 고쳐 썼을지도 모른다. 굉장한 인내고 성실함 아닌가? 그렇더라도 새롭게 사지는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딘가 숨어서 <언제 들어도...>를 고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석원의 발견을 감히 '발견 이 작가!' 라고 하리만큼 작품 보다 오히려 작가의 발견이놀랍고 반갑다.

 

그렇게 말하자면 '발견 이 작가!'에 또 하나의 이름을 올리자면 김경욱이다. 

 

솔직히 이 책은 몇년 전 이곳 아는 알라디너로부터 생일을 빙자하여 받은 책이다. 그런 것을 황송하게도 받은 즉시 읽지 못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다 최근에 읽게 되었는데, 정말 언제까지 읽기를 미루었다면 작가에게나 이 책을 선물한 그 알라디너에게나 실수할 뻔했다. 물론 이미 했지만...ㅠ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정말 요즘 작가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걸 새삼 알았고, 김경욱이란 작가가 있다는 게 우리나라 문학계가 아주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가 위트있게 쓴 것도 한몫하지만 읽다보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과가사를 알 수도 있어 유익하다.

 

특히 작가가 오타쿠적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작가와 내가 같은 세대를 살고 있어 어느 부분 그때는 정말 그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들지만, 확실히 작가는 나 보다 두 세 걸음은 더 앞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래도록 문화계에 종사한 사람의 자서전으로도 읽히는데, 마침 내가 이곳 알라딘에 내가 읽어 온 책들을 정리하는 글을 올리곤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손을 놓고 있긴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성실함이 8할 같다.

 

인생을 100으로 보고 반환점을 돌 때쯤 사람은 자서전을 쓰고 싶어지는가 보다. 뭔가의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엔 문학 잡지도 끼워 본다.

일단 환상적이리만치 착한 가격에 놀랐고 또 놀라우리만치 내용이 좋아서 이래도 되는 건가 의아할 정도였다. 천명관의 인터뷰도 좋았고.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창간호라는 점에서도 이 책을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 근데 세번째 호는 사 놓고 여태 읽지 못했다. 난 왠지 공지영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데 아무래도 그래선지 아직도 읽지 못했다. 

정기구독을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이제부턴 읽고 싶을 때만 사서 읽어 볼 참이다. 

 

대충 이렇게 정리해 본다. 그런데 재작년에 이런 글을 쓰면서 나는 슬쩍 베스트와 함께 워스트를 한 권 올린 적이 있다. 이번에도 좀 짖궃게 한 권 정도 올려보고 싶은데 그건 바로,

이 책이다. 정말 위험하고, 거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옹호하고 점잖게 말해 범신론적인 시각이 다분해 보이는데 읽다가 거의 내팽개쳐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 말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이 책을 일부러 사서 읽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뭐 나름 이 책에서 은혜 받은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봤나 보다. 하지만 이 책은 나로선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올핸 또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언제나 그랬지만 조금씩 건드려놓기만 하고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한 책, 읽으려고 고히 모셔둔 책들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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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16-01-02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즐거운 책읽기와 함께 행복하시길 ^^

stella.K 2016-01-02 11:24   좋아요 0 | URL
어머나! 정초에 야클님께서 제 서재를 친히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새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ㅋ
야클님도 올해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16-01-0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6년은 분명 작년보다 더 나은 해가 될 것입니다^^

stella.K 2016-01-02 11:33   좋아요 0 | URL
아, 책나무님 고맙습니다.
그래야지요. 책나무님도 올해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저도 기원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6-01-0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stella.K 2016-01-03 14: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도 좋은 책들과 함께 복된 한 해 되시길
저도 기도들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