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여관 - 나혜석.김일엽.이응노를 품은 수덕여관의 기억
임수진 지음 / 이야기나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수덕사라는 절 옆에 수덕여관이 있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하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상호라는 게 원래 유명한 곳 하나 있으면 그 이름에 맞혀 슈퍼, 식당, 미용실, 목욕탕 등 우후죽순 생겨나지 않던가? 기억하기 좋으라고. 그러니 수덕여관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덕여관은 원래 수덕사의 비구니들이 거하는 방이었다고 한다. 그런 것이 예술가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여관에 머물렀던 대표 예술인 나혜석과 김일엽, 이응노를 소개하면서 그곳 또한 소개한다.

 

이 세 사람이야 워낙 유명하니 모를 리 없겠지만, 왜 수덕여관은 이리도 생경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원래 절이라는 곳이 아주 유명한 몇몇 곳을 제외하면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고, 수덕사에서 운영하는 여관이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 굳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집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 즉 나그네(여행자)를 위한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렇게 모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책에 소개된 세 사람은 우리나라 근현대 예술사의 한 획을 장식할만한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나혜석이나 김일엽은 우리나라 1 세대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수덕여관에 머물렀다는 게 새삼 뭔가의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집은 가부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안 되고, 귀한 집 여성일수록 집에 매여 있었다. 바로 이 여성의 고전적 이미지를 담대히 깨버리고 당당히 거리로 나왔던 인물이 나혜석과 김일엽이다.

 

이들의 사고나 행동 방식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부르짖었고, 결혼에 있어서도 거의 남자와 동급의 조건을 원했다. 물론 그 배후엔 탁월한 재주가 있었고, 여느 여성들 보다 많이 배웠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에만 머무르도록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 위에 서도록 했으며, 스스로가 주체적이 되도록 했다. 또한 그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도 받게 했지만, 동시에 무수히 많은 질시와 상처를 받게도 된다. 바로 그때 상처 입은 새가 자신의 날개를 드리우듯 찾아들었던 곳이 바로 수덕여관이라는 곳이다. 일종의 피난처인 셈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지치면 일상을 떠나 반드시 휴식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시쳇말로 잠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에만 있다는 피정 제도는 오늘 날 좀 더 확대 적용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느 정도 남성들과의 공존이 가능하다지만(물론 그래도 어렵다), 당시의 나혜석이나 김일엽 같은 1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은 고사하고 같은 여자들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사람을 수덕여관이 품었다는 게 과연 남다른 의미를 가질 법도 하겠다 싶다.

 

그렇다고 수덕여관이 페미니스트였기에 품었다는 좁은 의미로는 해석하지는 말자. 우리나라 유수의 예술인들이 머물렀다지 않은가? 이응노 화백 같은 당대 걸출한 인물도 머물렀다고 하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저자가 인물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인들에 관심이 많은 나로선 언젠가 그곳을 가 봤으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서 상상의 타임머신을 타고 정말 그 세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지 그림이라도 그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이 얇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갈한 편집이 마음에 든다. 휴식 삼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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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5-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네요. 저도 가끔 과거 시대로 타임머신 타고 가서 그 시대에 살아봤으면, 하는 상상하는데 스텔라님도 하시는군요.^^ 스텔라님 리뷰도 정갈합니다.

stella.K 2016-05-28 17:53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요즘 저의 글을 보면 질질거리는 게 많더라구요.
뭐 그리 할 말이 많은 건지...ㅠ
사실 읽은 지는 며칠 됐는데 좀 귀찮은 마음도 있어 간략하게
쓴다는 것이 그만...ㅋㅋ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아요. 브랑카님도 기회되시면 읽어 보세요.^^

니르바나 2016-05-2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아주 오래 전, 수덕사에 갔다가 수덕여관을 일부러 들렀던 것은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이응노 화백의 추상화가 그려진 암각화를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작한 동백림사건 고문휴유증으로
이화백이 그곳에서 전부인의 간병을 받았다지요.
당시 이화백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수덕여관(?)에서
혹시 화가의 다른 흔적을 찾아보려 기웃거렸는데
너무 오래되어 희미한 제 기억으로는
그때 벌써 수덕여관이 아니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음식점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공, 김일엽, 나혜석, 이응노...
이런 분들과 수덕사, 수덕여관의 연관이 그려집니다.

stella.K 2016-05-29 10:40   좋아요 0 | URL
앗, 니르바나님! 오랜만이시어요.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아도 하도 뜸하셔서 잘 지내시나 궁금했습니다.

그렇군요. 어디나 조금만 유명해진다 싶으면 자본과 상술이 끼어드니
좀 실망스럽네요.
그래도 한 번은 가 봐야 할까요?ㅋ

yamoo 2016-06-0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런 책도 있군요. 수덕사에 있는 수덕여관이라....언제 수덕사에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들러보고 싶은 곳이군요~ㅎ

나혜석은 들어봤는데, 김일엽은 첨 듣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페미니스트였다니...이름으로 봐선 남자 이름인데, 여성이었나??

니르바나 님 덧글로 새로운 사실도 덤으로 알아가네욤^^

stella.K 2016-06-02 18:58   좋아요 0 | URL
아, 그게 아니라 스님인데 법명이 일엽이라더군요.
그래서 일엽 스님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저도 수덕사 가 보고 싶더라구요.^^

페크pek0501 2016-06-0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에 새로운 파격적인 주장을 했던 사람들.
최초로 생각해 낸 사람들, 최초로 행동에 옮긴 사람들.
모두 경이롭습니다.
창의성 발휘에 따라 시대가 발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중요한 건 고정관념을 깬 창의적인 시각이 되네요.

stella.K 2016-06-02 19: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런 선각자들이 있어 우리가 이만큼 살아 온 거겠지만
당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자유혼을 가진 놈은 노예가 될 수 없다 - 자유를 실천하는 18인이 답함 정치경영연구소의 자유인 인터뷰 4
정치경영연구소 엮음 / 채륜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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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 집은 정치경제연구소가 각계를 대표할만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을 모아놓은 책이다. 물론 여기 나온 18인들이 다 훌륭하고, 흥미롭지만 지면상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느낌을 다 적을 수는 없고 몇몇 인상 깊었던 내용만 적어 볼까 한다.

 

우선 사회 고발 성격의 영화를 잘 만드는 정지영 감독이다. 나는 그의 영화 중 <부러진 화살>를 개봉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나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를 볼 때 그의 영화는 요즘 흔히 회자되는 천만 관객은 고사하고, 몇 백만을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냐를 고민하는 감독이다.

난 그런 감독이 좋다. 영화가 아무리 감독의 예술이니 어쩌니 해도 관객이 봐 주지 않는 영화, 관객을 이해시킬 수 없는 영화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와 관객을 이해시키는 영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지영 감독은 다분히 후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매스컴에서 천만 관객 어쩌고 떠들면 그도 소외감 들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왜 꼭 천만 관객이 들어야 하는 거지라며 반문을 한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영화를 생각하는 안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어느 감독도 천만 관객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관객의 반응이 좋아 천만이 된 거겠지.

 

그는 말한다. A급 배우들에게만 목매는 대기업의 투자 방식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즉 대기업은 투자만 하고 제작은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한다. 이것에 대해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천만 관객이란 숫자도 정말 관객이 그 영화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 시간만 선택할 수 있지 실제로 영화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못한 게 현실이고 보면, 천만 관객이란 건 축하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대기업이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어떤 시스템을 만드느냐에 따라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하긴, 대기업이야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 숫자와 결과로만 얘기하는 곳이 그런 것을 배제하고 영화를 만들기란 어려울 것이다. 영화인은 언제나 자유롭게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대기업의 돈줄을 꿰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이런 거라고 차근차근 설명하면 알아먹을 수 있으려나?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겨 먹은 영화판에서 정지영 감독 같이 뚝심 있게 영화를 만들어가는 영화인이 있다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마음 속 깊이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정지영 감독의 인터뷰와 관련해서 나는 사실 목수정이란 사람을 잘 몰랐다. 안다면 페미니스트라는 정도? 그런데 그녀가 한때 연극판에 있었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특이한 건 배우로 활약한 적은 없고, 주로 행정 쪽의 일을 해왔던 모양인데 그 열악한 연극판을 잘도 견뎠다 싶다. 결국 그녀도 못 견디고 프랑스로 훌쩍 유학을 떠났는데 그곳의 엥테르미탕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정말 필요한 제도는 아닌가 싶다. 그 제도는 좌파 정부에 의해 1960년부터 실행되어 온 제도로 연극, 영화, 공연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제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예술인을 육성하고, 그들을 지원해야 예술계가 발전할 수 있는데 그 책임을 대기업의 지원이나 협찬에만 맡기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정부가 나서서 그런 지원책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목수정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당시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예술 행정 분야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민노당을 선택했던 건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민노당의 생각이 놀랍도록 맞아서라고 하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신나게 일을 했단다. 하지만 오늘 날 봐라. 민주당은 분열돼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과연 대기업과 정치는 이 나라 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지, 저해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만열 교수의 인터뷰도 인상 깊다. 나는 그가 언젠가 손양원 목사에 관한 글을 몇 편에 걸쳐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을 본적이 있다. 이 인터뷰에서도 손양원 목사에 대해 언급했다. 손양원 목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기독교 목사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기독교의 철저한 신앙에서부터 나온 것인데, 나는 그것을 민족의 자존심과 저항으로까지 이끌었다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흔적이 있는데, 이만열 교수는 그걸 민족 운동이란 단어로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난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손양원 목사는 그가 말했던 대로 우리나라 기독교를 넘어 모든 사람이 존경할만한 민족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분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게 이만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 인터뷰를 통해 기독교가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사참배에 동조한 것이다. 아니 동조한 것까지도 좋다. 마침내 해방을 맞았지만 신사참배를 한 다수의 기독교 목회자들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개하고 근신하는 의미에서 최소 3개월간 강단 설교를 하지 말자고 제안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시켰다고 한다. 바로 이런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만열 교수는 말하고 있다(291~292p).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그런 오점이 있었다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근수 편 역시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가톨릭 신학자로서 가난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집안에 순교자 나오리만치 뿌리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신 신부가 되려고 했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학자의 길을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한 뒤 엘살바도르에서 선교하면서 가난을 선택했고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어디로 오셨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겠냐며,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도 세월호 사건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그는 가톨릭을 넘어 기독교까지 포괄해 교회가 얼마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았는지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강사료나 책의 인세를 받지 않으며 모두 다 기부하고 최소한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도 대형화하는 교회에 대해 비판과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또한 가톨릭은 성모를 우상화하고 있다며, 성모도 하나의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가톨릭을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나로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튼 그의 인터뷰는 뭔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밖에 하종강 편을 읽으면서 노동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유시민 편을 통해서는 그의 됨됨이와 지금은 고인이 된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했다.

이런 책을 읽으면 그동안 내가 세상을 얼마나 좁게 바라고 보고 있는가를 각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 분야를 일일이 알 길도, 알 수도 없지만 이런 인터뷰 집을 통해 그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리더가 되는 길을 알려주지 못해 안달하는 자기계발서 열권 읽는 것 보다 이런 인터뷰 집 한 권 읽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사느라 안달복달 하지 말고, 여유롭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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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5-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스텔라 님 이런 책도 읽으시는군요! 저는 인터뷰 집은 거의 읽지 않는 주의라. 근데, 스텔라 님 리뷰를 보면서 정지영 감독이 참 매력적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냐를 고민하는 감독이다..

정말 그렇습니까? 저도 그런 감독 좋아합니다. 정지영 감독이 저런 감독이라니, 앞으로는 애정해 줘야 겠습니다..ㅎ

목수정은 어젠가...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이 눈에 띄어, 목수정?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페미니스트 목수정 이었군요! 근데, 그녀가 연극판에서 있었다니, 새로운 사실입니다!ㅎ

stella.K 2016-05-19 12:42   좋아요 0 | URL
오, 야무님! 무플이 될뻔한 글에 친히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정지영 감독 영화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죠.
그래서 그렇게 이해 가능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가 봅니다.
진짜 이런 감독의 영화는 일부러라도 가서 봐줘야 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녀의 책을 오래전에 가지고 있었는데 하도
안 읽어서 중고샵에 넘겼는데 괜히 후회가 되더라구요.
전 별로 관심이 없는데 연극판에 있었다니 좀 달리 보이긴 하더라구요.

저는 인터뷰집 좋아합니다. 제가 듣는 귀가 한정되어 있어서
자기 분야에선 최고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니 생생하잖아요.^^

페크pek0501 2016-05-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근수 님이 꽤 훌륭한 분 같군요. 저는 자기 종교만이 최고라는 태도를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는 쪽이에요.

맨 끝에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계발서 열권 읽는 것 보다 이런 인터뷰 집 한 권 읽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이 순간 동의합니다.

stella.K 2016-05-19 17:53   좋아요 0 | URL
오, 언니! 요즘 알라딘에 뜸하신 것 같습니다.
바쁘신가 봐요.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김근수 씨 책을 읽겠다고 작년부터
별렀는데 못 읽고 있어요.
저는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신학이나 신앙에 관한 책은
가톨릭쪽을 더 선호하고 있어요. 웬지 더 좋더라구요.
깊이나 영성이 더 좋은 것 같더라구요.

암튼 반가워요. 뿌잉뿌잉~

2016-05-21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1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민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당대 유명한 배우를 부모로 뒀고(물론 둘 다 고인이 됐지만), 그에 대한 후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인기를 구가했을 때도 난 그가 뭐가 좋은 지를 잘 알지 못했다. 물론 특유의 카리스마에 뭔지 모를 우수가 섞여있는 인상이긴 하지만 그나마 <모래시계>의 인기 때문이었을까? 그때 조금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후 오랫동안 이렇다할 작품없이 TV나 스크린에서도 거의 잊혀진 것 같았다(물론 간간히 예능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지만).  

 

하긴 뭐, 연예인이 '한결 같이 변한없이'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인기 탈런트니, 배우도 한때 잘 나갔으면 그것 가지고 버티고 가늘고 오래 가는 법 아닌가. 그러다 최근 S 본부에서 하는 <대박>에서야 비로소 난 그를 재발견하는 중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 태생이 모호하긴 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정극에서 한참 빗나가 보인다. 흔히 말하는 퓨전과 판타지를 잘 결합한 사극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범상치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에서는 없을 것 같은 비정상인을 그린다. 하긴, 오늘 날 산에 호랑이가 살 거라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옛날엔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알 뿐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이 신통력을 발휘하고, 시위 먹인 화살을 맨 손으로 붙잡고, 1대 17로 싸워 백전백승을 하고. 이랬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초현실적 드라마를 못 마땅해서 안 볼 사람도 있겠지만, 난 아직까지는 봐 줄만해서 보고 있기는 한다. 

 

그 아직까지 봐 줄만해서 봐주는 것중에 무시 못할 건, 아니 전부일지도 모를 요인엔 바로 숙종으로 나오는 최민수가 있어서는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내가 조금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등장인물이 정상은 아니라고. 비범이라고 하면 거기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지만 여긴 그런 게 없다. 그냥 그런 인물이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최민수가 연기하는 숙종 역시 정상적여 보이지는 않는다. 즉 일반에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임금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총애했던 신하의 딸을 특유의 신통력(?)으로 알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임금이 한때 여인의 치마폭(장희빈)에 놀아 났다고는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긴, 이 드라마에선 장희빈을 사랑하는 숙종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후에 영조가 되는 연잉군에게 양위하는 숙종이다. 하지만 순순히 넘겨 주지는 않을 태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궁궐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이 임금이 되야한다는 파와 되어선 안 된다는 파가 팽팽히 맞섰을 것이고, 정말 연잉군이 임금의 재목인지 확신 내지는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겠다는 대의명분이 있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숙종은 그 옛날 장희빈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의 숙종과는 엄청 다르다. 전자의 숙종은 정말 나는 새라도 떨어 뜨릴 것 같다. 하지만 옛날 이미숙이 장희빈을 맡았을 때 유인촌이 맡았던 숙종은 그저 우유부단에 조강지처를 미워하는 캐릭터였을 뿐이다. 그러나 숙종이 실제로 어땠는지 누가 숙종에 좀 더 가까운지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건, 최민수의 숙종 역이다. 

 

애초에 드라마는 연잉군 역을 맡은 여진구와 그의 배 다른 형 백대길이 주가 되는 구도지만 아직 이들에게 크게 기대할만하진 않고(사극은 역시 연륜의 드라마다), 숙종의 최민수가 나오면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때 몇회째던가? 숙종이 약에 취해서 반쯤은 맛이 간 얼굴로 연잉군에게 양위를 받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놀랍던지. 임금이 뽕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부터 난 최민수를 다시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임금이 아무리 만인지상 일인지하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모르는 게 하나도 없을 수 있을까? 시청자로서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그한테 만큼그런 것이 없고 오히려 그것이 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만든다. 겉으로는 한없이 망가져 보이는 듯 한데 그의 눈빛만큼은 살아 있어 모든 것을 꿰뚫는다.

 

실제로 저 뽕을 맞는 아니 피우는 장면은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숙종이 그랬다고 한다. 그라면 피웠을 테지만 드라마에선 담배 피우는 장면이 금지됐기 때문에 시녀를 시켜 태우는 장면으로 전환한 거란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정사에 임하는 장면도 고증에 의한 것이고. 그런 그의 준비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그런데 며칠 전 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영화를 영화전문채널에서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보면 최민수가 노숙자로 잠깐 등장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노숙자다.

                    

 

             

처음엔 너무 초췌하다 못해 더러워 보기기까지 한다. 그래서 개 조차도 좋아할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차츰 착하고, 해 맑은 동심을 닮은 노숙자 연기를 그는 완벽히 소화해 냈다. 모르긴 해도 여기서 빛을 발해 S 본부 사극 입성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또 모르긴 해도 <대박>에서의 그의 인기에 힘입어 초반에 잠시 나왔다 사라지기로 했는데 역할 분량이 늘어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이런 수식어는 신인에게나 해당되는 말처럼 되어버렸는데, 최민수는 정말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앞으로 TV에서든 영화에서든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 영화는 정말 완벽한 동화다. 보고나면 씁쓸하게 그런 일이 정말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냥 잠시 동화에 취해 보고 싶다면 봐도 좋을 것 같다. 별점은 3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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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인가요..최민수가 노인네 폭행했다고 언론에서 떠들었던 사건.....사실이 전혀 달랐죠.그런데 그에게 어느 언론 하나 그에게 사과한 적이 없었죠.

stella.K 2016-05-11 14:38   좋아요 1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노인 폭행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하여간 우리나라 언론 무례한 건 뭐 말해 뭐하겠습니까?ㅉ

cyrus 2016-05-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이나 평소 행실이 괜찮았으면, 최고의 배우로 거론되었을지도 몰라요. 돌출 발언, 행동 때문에 연기력이 묻히는 케이스죠.

stella.K 2016-05-11 14:40   좋아요 0 | URL
이제 마음을 고쳐 먹었나 보지.
그의 사람됨은 잘 모르겠고, 연기력이 대단한 배우임에 틀임없이.
지금이라도 잘 돼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으면 한다.ㅋ

yamoo 2016-05-1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민수...인간은 정말 알쏭달쏭한 사람이지만, 연기는 나름 알아줘야 하는 배우 같습니다. 전 요즘 드라마를 거의 안 봅니다만,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몬스터>. <태양의 후예>보다 3배는 더 재밌는 거 같다는^^

그나저나 스텔라 님의 이런 티브 리뷰, 아주 좋습니다! <몬스터>도 부탁드려도 될른지~ 제가 요즘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라서욤^^;;

stella.K 2016-05-12 19:25   좋아요 0 | URL
헉, <몬스터>가 좋은가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것 같긴하지만
1회 본방을 사수하지 못해 계속 못 보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기대 만땅인 드라마 2편이 첫방을 시작하는지라
몬스터를 언제 보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보게 된다면 꼭 리뷰해 올리겠습니다.^^
 
단테의 연옥 여행기 단테의 여행기
단테 알리기에리 원작, 구스타브 도레 그림, 최승 엮음 / 정민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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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계에서 연옥이란 개념은 가톨릭에서나 있는 개념일 뿐 기독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옥은 단순히 말에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으나 천국에도 들어 갈 수 없는 영혼이 가는 곳이다. 그러니까 지옥에서 보면 다행인 것이고, 천국에서 보자면 아쉬운 곳이 연옥일 것이다.

 

연옥은 어찌 보면 뜻밖의 곳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단테는 지옥에서 만난 영혼은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았을 때 극악한 죄를 지은 영혼이 갔으니까 그건 당연했다. 그러나 연옥은 뜨악했다. 이를테면, 지옥에 있을 것 같은 영혼을 연옥에서 만났으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그들 역시 거기 있을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들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천국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연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있어야할 요건은 살아 있는 사람이 연옥에 있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테는 거기 있는 영혼들에게 수 없이 많은 부탁을 들어야 했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일러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전해 달라고.

 

그게 과연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연옥은 가톨릭에만 있는 개념으로 성경 어디에도 뚜렷한 근거가 될 만한 것은 없다고 알고 있다. 단지 짐작이 갈만한 예는 있다고 들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자와 신앙심 좋은 그의 종이 어느 날 죽어 지옥엘 갔다. 불속에 있으니 신앙심 좋은 자신의 종더러 손끝에 물 한 방울만이라도 묻혀 자신의 입만이라도 서늘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종을 시켜 가족들에게 일러 자신처럼 이렇게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도 부탁을 한다. 바로 인간의 죄를 경계하고 경건하기를 위한 말씀인데, 종을 시켜 물 한방을, 가족들에게 일러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소통과 벌을 유예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럴 수 있는 공안이 연옥이라고 보는 것이다.(물론 난 가톨릭 신학자도 아니고, 오래 전에 얼핏 그렇게들은 것 같아 생각나는 대로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기독교에선 연옥은 없다. 물론 죄를 짓고 살다가 죽음 직전에 회개를 한다면 그 영혼은 그냥 천국을 간다고 보는 것이다. 대신 천국은 7천 층까지 있는데, 살았을 때 신앙도 없고 쌓은 공덕도 없으니 좋은 곳에 있지는 않게 되겠지만 어쨌든 연옥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건, 연옥은 그렇게 자기 수행을 쌓고, 살아 있는 가족들이 기도해 줘야만 가는 다분히 자신의 의가 있어야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마치 착한 사람이 천당 간다는 식의), 기독교에서는 내 의가 아닌 믿음으로 가는 곳이 천국이라고 보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 옳으냐는 차치하고라도, 정말 연옥이 있다면 신의 자비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단테가 신곡을 쓴 이유는, 그가 망명한 이후 심각한 정치와 윤리, 종교적 문제들로 계속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해 보고자 썼다고 했다. 그런 것으로 봐 당대의 부패상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간다. 그렇지 않아도 단테는 말한다.

“...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하긴 하지만 하늘의 행복을 사모하지 않고 지상의 왕이 되려 했기 때문에 정의를 행할 자격이 없다오. 목자가 탐욕에 눈이 어두워 양을 지키는 일을 내팽개치고 부를 찾아 나서는데 어찌 그를 아직도 목자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이오.(155p)라며 분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테의 시대 땐 정교가 분립이 안 됐던 시대였으니 저 말은 액면 그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엔 분립이 되어도 역시 목자들의 탐욕과 부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높은 영성에서 울림이 있게 전하지 못하고,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데 사용하는 목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린 감히 짐작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새삼 신곡은 단테만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사상과 깊이는 감히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가 왜 신곡을 쓸 수밖에 없는가를 안다면 이 시대에 신곡은 이름을 달리해서라도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내가 볼 때 그는 자신의 나라와 유럽의 역사를 통해 윤리의 회복을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나 싶다. 그게 또 지옥 편과 같이 연옥에서도 신화와 성서 말씀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이 세대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테 시대의 역사적 인물은 우리와는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렵다. 좀 더 가까운 예로 잡아 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하긴, 시대에 저항하는 책을 썼다 스러져간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러고 보면 시대정신은 살아 있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해 보게 된다. 욕심이라면 그렇게 단테처럼 인문주의로 무장된 또 다른 단테를 꿈꿔 본다는 거지.

 

이 책은 소설버전이긴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신곡 읽기의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날려주기에 적합한 텍스트인 것 같아 만족스럽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신곡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쪼록 신곡 읽기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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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5-10 18:57   좋아요 1 | URL
그럴수도 있지요. 근데 조금 더 천국에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가는 것 같기도 하죠?ㅠㅠ
 
자유를 위한 변명 - 타인의 시선에 맞추지 말고 홀로 춤추듯 살라
홍신자 지음 / 판미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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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시절에 홍신자란 이름이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해골을 들고 무용을 한다고 이슈였지 아마. 난 그때 뭐 그런 사람이 있나 좀 오싹했었다. 그래도 워낙 유명해 이 사람의 유명세는 제법 오래 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그녀도 세월 속에 잊힌 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한국의 이사도라 던컨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가끔 문득 궁금하긴 했다. 과연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렇게 궁금하던 차에 마침 그녀의 자전에세이가 복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가 그렇게 유명하던 시절 에세이를 낸 것도 난 사실 알지 못했다. 그걸 이번에 복간 되서야 알다니. 하긴 그땐 내가 너무 어리지 않았는가. 아무튼 이 책을 손에 넣고 반가웠다. 마침 그녀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읽고 있으려니 역시 오래 전에 읽은 이사도라 던컨의 전기가 생각이 났다. 그 책도 보면 굉장히 정열적이고, 자유로운 던컨의 면면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그것과 오버랩이 되면서 무용가들의 영혼은 다 이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전공은 영문학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을 갈 때도 무용을 공부하겠다고 떠난 것도 아니었단다. 오히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무용을 접하고 그것에 매료되어 전향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스물일곱.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난 이런 식의 반전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인생 역전’, ‘대박 인생뭐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만이 대박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만 보는 건 인생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 내는 그녀의 집념이 부럽다. 무용을 하려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는 데 스물일곱이면 이미 몸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기꺼이 몸을 만들었다. 그러기까지 그녀의 몸은 또 얼마나 찢기고 허물어져야 했는지. 주위에서도 포기하라고 하는데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자신의 길을 발견했으니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성공한 무용가가 됐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건 그녀가 무용가로서 성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녀는 성공에 도취도지 않고 돌연 어느 순간 무용을 놓아버린다. 어떻게 시작한 무용이고, 어떻게 얻는 성공인데 그것을 과감히 놓아버리는 걸까? 그녀는 말한다.

“(...)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춤이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인생의 한 시기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마침 춤이 그 해답이 되어 준 것뿐이다. 이제 춤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을 찾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서자 나는 자유롭게 그것을 버릴 수 있었다(61p)” 그래서 그녀를 구도의 무용가라고 했는가 보다.

 

그러기 전에 그녀는 죽음의 문제와 자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매번 죽었다고 생각한 자아가 순간순간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구도를 위해 인도를 갔고, 인도 최고의 구루(영적 지도자)의 제자가 되어 여러 가지 수행을 한다. 거기엔 해골에 물을 담아 먹는 기행(?)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해골을 들고 무용을 하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죽음과 자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가르쳤던 구루가 하산을 명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춤을 계속 추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게 참 나에게 강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몰아붙였던 갈까? 물론 그녀의 구도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고, 권할만한 방법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대부분은 어렵게 자신의 인생의 길을 발견했다고 해도 또 다시 자아에 매이는 자신을 본다. 인생의 길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 길에서 최고가 되려고 다시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지는 않는가? 뭔가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치는가? 그걸 또 인생을 위한 거라고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명예와 권력을 쥐게 되지만 그것에 매이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많은 책들과 매스컴이 그러라고 부추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무용이 아니었다. 자유였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무용의 길을 발견하고 몸부림쳤던 건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난 그런 그녀가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에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너머의 세계를 추구했고, 지금도 추구해 갈 것이다.

 

그녀는 늘 초월적 자아의 실현에 목이 말랐다.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뭔가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곧추세우고 나만의 삶을 잘겠다는 자유. 그 무엇에도 메이지 않을 자유.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유.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예술을 추구한다면서 여전히 속박당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예술은 예술 자체에서 추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서 표현되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이 유명한 사람이 너무 안 알려져서 언제 고인이 되었나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녀는 너무도 잘 살고 있었다. 이렇게 책을 복간하리만큼 당당하게. 

 

책이 참 대담하다 싶다. 하지만 몸소 부딪혀 깨어지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대범함이 멋지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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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0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 덕분에 저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그녀를, 필름을 되돌리듯이 다시 돌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무용이 아니라 자유였다니, 바로 그거라는 생각이 새삼 들어요.
죽음의 문제와 자아의 문제, 그것만큼 인간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고뇌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6-05-09 16:40   좋아요 0 | URL
홍신자 씨는 세상을 보는 눈이나 이해하는 폭이 상당히 넓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아를 초월하면 그렇게 되는가 봐요.
비록 그녀의 생각에 완전히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춤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는 점은 정말 배울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너무 급하게 읽고 리뷰를 쓴지라...ㅠㅋ

북극곰 2016-05-0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일곱에 춤을 시작했단 얘기를 기억하고는 스물 일곱 전에는 나도 뭘하든 늦지않았다며 자신을 다독였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지금 생각하니 제게는 게으름의 근거나 되었던 것이고 ㅋ그분은 범인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ㅋㅎ

stella.K 2016-05-10 14:03   좋아요 0 | URL
ㅎㅎ 지금 북극곰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뭘 하는데 있어 늦은 나이란 없더라구요. 안 해서
그렇지.ㅋ
홍신자 씨가 대단한 건 단순히 무용 하나만 보고 달렸다는 것이
아니라 무용 너머 삶의 본질을 직시했다는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이 무용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말 멋진 사람이죠.^^

yamoo 2016-05-1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신자 작가가 아직도 책을 내는군요! 이 작가의 에세이 2권을 읽은 지가 너무도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

근데, 전 홍신자 작가와 김홍신 작가가 너무 헷갈린다는...김홍신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이 그만 홍신자 에세이를 읽고 김홍신이 말이지~ 라고 떠들었던 기억이...--;;

stella.K 2016-05-10 18:12   좋아요 0 | URL
이름에 같은 홍이 들어가니 그럴수도 있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