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당대 유명한 배우를 부모로 뒀고(물론 둘 다 고인이 됐지만), 그에 대한 후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인기를 구가했을 때도 난 그가 뭐가 좋은 지를 잘 알지 못했다. 물론 특유의 카리스마에 뭔지 모를 우수가 섞여있는
인상이긴 하지만 그나마 <모래시계>의 인기 때문이었을까? 그때 조금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후 오랫동안 이렇다할 작품없이
TV나 스크린에서도 거의 잊혀진 것 같았다(물론 간간히 예능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지만).
하긴 뭐, 연예인이 '한결 같이 변한없이'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인기 탈런트니, 배우도 한때 잘 나갔으면 그것 가지고 버티고 가늘고 오래 가는 법
아닌가. 그러다 최근 S 본부에서 하는 <대박>에서야 비로소 난
그를 재발견하는 중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 태생이 모호하긴 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정극에서 한참 빗나가 보인다. 흔히 말하는 퓨전과 판타지를 잘 결합한 사극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범상치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에서는 없을
것 같은 비정상인을 그린다. 하긴, 오늘 날 산에 호랑이가 살 거라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옛날엔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알 뿐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이 신통력을 발휘하고, 시위 먹인 화살을 맨 손으로 붙잡고, 1대 17로 싸워 백전백승을 하고.
이랬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초현실적 드라마를 못 마땅해서 안 볼 사람도 있겠지만, 난 아직까지는 봐 줄만해서 보고 있기는
한다.
그 아직까지 봐 줄만해서 봐주는 것중에 무시 못할 건, 아니 전부일지도 모를 요인엔
바로 숙종으로 나오는 최민수가 있어서는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내가 조금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등장인물이 정상은 아니라고. 비범이라고 하면
거기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지만 여긴 그런 게 없다. 그냥 그런 인물이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최민수가 연기하는 숙종 역시 정상적여
보이지는 않는다. 즉 일반에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임금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총애했던 신하의 딸을 특유의
신통력(?)으로 알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임금이 한때 여인의 치마폭(장희빈)에 놀아 났다고는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긴, 이 드라마에선 장희빈을 사랑하는 숙종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후에 영조가
되는 연잉군에게 양위하는 숙종이다. 하지만 순순히 넘겨 주지는 않을 태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궁궐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이 임금이
되야한다는 파와 되어선 안 된다는 파가 팽팽히 맞섰을 것이고, 정말 연잉군이 임금의 재목인지 확신 내지는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겠다는 대의명분이
있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숙종은 그 옛날 장희빈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의 숙종과는
엄청 다르다. 전자의 숙종은 정말 나는 새라도 떨어 뜨릴 것 같다. 하지만 옛날 이미숙이 장희빈을 맡았을 때 유인촌이 맡았던 숙종은 그저
우유부단에 조강지처를 미워하는 캐릭터였을 뿐이다. 그러나 숙종이 실제로 어땠는지 누가 숙종에 좀 더 가까운지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건, 최민수의 숙종 역이다.
애초에 드라마는 연잉군 역을 맡은 여진구와 그의 배 다른 형 백대길이 주가 되는
구도지만 아직 이들에게 크게 기대할만하진 않고(사극은 역시 연륜의 드라마다), 숙종의 최민수가 나오면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때 몇회째던가? 숙종이 약에 취해서 반쯤은 맛이 간 얼굴로 연잉군에게 양위를
받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놀랍던지. 임금이 뽕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부터 난 최민수를 다시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임금이 아무리 만인지상 일인지하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모르는 게 하나도 없을 수 있을까? 시청자로서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그한테 만큼그런 것이 없고 오히려 그것이 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만든다. 겉으로는 한없이 망가져 보이는 듯 한데 그의 눈빛만큼은 살아
있어 모든 것을 꿰뚫는다.
실제로 저 뽕을 맞는 아니 피우는 장면은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숙종이 그랬다고 한다. 그라면 피웠을 테지만 드라마에선 담배 피우는 장면이
금지됐기 때문에 시녀를 시켜 태우는 장면으로 전환한 거란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정사에 임하는 장면도 고증에 의한 것이고. 그런 그의 준비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그런데 며칠 전 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영화를 영화전문채널에서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보면 최민수가 노숙자로 잠깐
등장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노숙자다.

처음엔 너무 초췌하다 못해 더러워 보기기까지 한다. 그래서 개 조차도 좋아할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차츰 착하고, 해 맑은 동심을
닮은 노숙자 연기를 그는 완벽히 소화해 냈다. 모르긴 해도 여기서 빛을 발해 S 본부 사극 입성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또
모르긴 해도 <대박>에서의 그의 인기에 힘입어 초반에 잠시 나왔다 사라지기로 했는데 역할 분량이 늘어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이런
수식어는 신인에게나 해당되는 말처럼 되어버렸는데, 최민수는 정말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앞으로 TV에서든 영화에서든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 영화는 정말 완벽한 동화다. 보고나면 씁쓸하게 그런 일이 정말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냥
잠시 동화에 취해 보고 싶다면 봐도 좋을 것 같다. 별점은 3개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