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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혼을 가진 놈은 노예가 될 수 없다 - 자유를 실천하는 18인이 답함 ㅣ 정치경영연구소의 자유인 인터뷰 4
정치경영연구소 엮음 / 채륜서 / 2016년 4월
평점 :
이 인터뷰 집은 정치경제연구소가 각계를 대표할만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을 모아놓은 책이다. 물론 여기 나온 18인들이 다 훌륭하고, 흥미롭지만 지면상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느낌을 다 적을 수는 없고 몇몇 인상 깊었던 내용만 적어 볼까 한다.
우선 사회 고발 성격의 영화를 잘 만드는 정지영 감독이다. 나는 그의 영화 중 <부러진 화살>를 개봉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나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를 볼 때 그의 영화는 요즘 흔히 회자되는 천만 관객은 고사하고, 몇 백만을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냐를 고민하는 감독이다.
난 그런 감독이 좋다. 영화가 아무리 감독의 예술이니 어쩌니 해도 관객이 봐 주지 않는 영화, 관객을 이해시킬 수 없는 영화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와 관객을 이해시키는 영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지영 감독은 다분히 후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매스컴에서 천만 관객 어쩌고 떠들면 그도 소외감 들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왜 꼭 천만 관객이 들어야 하는 거지라며 반문을 한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영화를 생각하는 안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어느 감독도 천만 관객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관객의 반응이 좋아 천만이 된 거겠지.
그는 말한다. A급 배우들에게만 목매는 대기업의 투자 방식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즉 대기업은 투자만 하고 제작은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한다. 이것에 대해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천만 관객이란 숫자도 정말 관객이 그 영화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 시간만 선택할 수 있지 실제로 영화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못한 게 현실이고 보면, 천만 관객이란 건 축하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대기업이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어떤 시스템을 만드느냐에 따라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하긴, 대기업이야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 숫자와 결과로만 얘기하는 곳이 그런 것을 배제하고 영화를 만들기란 어려울 것이다. 영화인은 언제나 자유롭게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대기업의 돈줄을 꿰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이런 거라고 차근차근 설명하면 알아먹을 수 있으려나?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겨 먹은 영화판에서 정지영 감독 같이 뚝심 있게 영화를 만들어가는 영화인이 있다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마음 속 깊이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정지영 감독의 인터뷰와 관련해서 나는 사실 목수정이란 사람을 잘 몰랐다. 안다면 페미니스트라는 정도? 그런데 그녀가 한때 연극판에 있었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특이한 건 배우로 활약한 적은 없고, 주로 행정 쪽의 일을 해왔던 모양인데 그 열악한 연극판을 잘도 견뎠다 싶다. 결국 그녀도 못 견디고 프랑스로 훌쩍 유학을 떠났는데 그곳의 ‘엥테르미탕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정말 필요한 제도는 아닌가 싶다. 그 제도는 좌파 정부에 의해 1960년부터 실행되어 온 제도로 연극, 영화, 공연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제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예술인을 육성하고, 그들을 지원해야 예술계가 발전할 수 있는데 그 책임을 대기업의 지원이나 협찬에만 맡기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정부가 나서서 그런 지원책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목수정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당시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예술 행정 분야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민노당을 선택했던 건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민노당의 생각이 놀랍도록 맞아서라고 하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신나게 일을 했단다. 하지만 오늘 날 봐라. 민주당은 분열돼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과연 대기업과 정치는 이 나라 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지, 저해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만열 교수의 인터뷰도 인상 깊다. 나는 그가 언젠가 손양원 목사에 관한 글을 몇 편에 걸쳐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을 본적이 있다. 이 인터뷰에서도 손양원 목사에 대해 언급했다. 손양원 목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기독교 목사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기독교의 철저한 신앙에서부터 나온 것인데, 나는 그것을 민족의 자존심과 저항으로까지 이끌었다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흔적이 있는데, 이만열 교수는 그걸 ‘민족 운동’이란 단어로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난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손양원 목사는 그가 말했던 대로 우리나라 기독교를 넘어 모든 사람이 존경할만한 민족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분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게 이만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 인터뷰를 통해 기독교가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사참배에 동조한 것이다. 아니 동조한 것까지도 좋다. 마침내 해방을 맞았지만 신사참배를 한 다수의 기독교 목회자들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개하고 근신하는 의미에서 최소 3개월간 강단 설교를 하지 말자고 제안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시켰다고 한다. 바로 이런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만열 교수는 말하고 있다(291~292p).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그런 오점이 있었다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근수 편 역시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가톨릭 신학자로서 가난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집안에 순교자 나오리만치 뿌리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신 신부가 되려고 했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학자의 길을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한 뒤 엘살바도르에서 선교하면서 가난을 선택했고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어디로 오셨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겠냐며,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도 세월호 사건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그는 가톨릭을 넘어 기독교까지 포괄해 교회가 얼마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았는지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강사료나 책의 인세를 받지 않으며 모두 다 기부하고 최소한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도 대형화하는 교회에 대해 비판과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또한 가톨릭은 성모를 우상화하고 있다며, 성모도 하나의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가톨릭을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나로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튼 그의 인터뷰는 뭔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밖에 하종강 편을 읽으면서 노동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유시민 편을 통해서는 그의 됨됨이와 지금은 고인이 된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했다.
이런 책을 읽으면 그동안 내가 세상을 얼마나 좁게 바라고 보고 있는가를 각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 분야를 일일이 알 길도, 알 수도 없지만 이런 인터뷰 집을 통해 그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리더가 되는 길을 알려주지 못해 안달하는 자기계발서 열권 읽는 것 보다 이런 인터뷰 집 한 권 읽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사느라 안달복달 하지 말고, 여유롭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