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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여관 - 나혜석.김일엽.이응노를 품은 수덕여관의 기억
임수진 지음 / 이야기나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수덕사라는 절 옆에 수덕여관이 있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하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상호라는 게 원래 유명한 곳 하나 있으면 그 이름에 맞혀 슈퍼, 식당, 미용실, 목욕탕 등 우후죽순 생겨나지 않던가? 기억하기 좋으라고. 그러니 수덕여관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덕여관은 원래 수덕사의 비구니들이 거하는 방이었다고 한다. 그런 것이 예술가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여관에 머물렀던 대표 예술인 나혜석과 김일엽, 이응노를 소개하면서 그곳 또한 소개한다.
이 세 사람이야 워낙 유명하니 모를 리 없겠지만, 왜 수덕여관은 이리도 생경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원래 절이라는 곳이 아주 유명한 몇몇 곳을 제외하면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고, 수덕사에서 운영하는 여관이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 굳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집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 즉 나그네(여행자)를 위한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렇게 모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책에 소개된 세 사람은 우리나라 근현대 예술사의 한 획을 장식할만한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나혜석이나 김일엽은 우리나라 1 세대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수덕여관에 머물렀다는 게 새삼 뭔가의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집은 가부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안 되고, 귀한 집 여성일수록 집에 매여 있었다. 바로 이 여성의 고전적 이미지를 담대히 깨버리고 당당히 거리로 나왔던 인물이 나혜석과 김일엽이다.
이들의 사고나 행동 방식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부르짖었고, 결혼에 있어서도 거의 남자와 동급의 조건을 원했다. 물론 그 배후엔 탁월한 재주가 있었고, 여느 여성들 보다 많이 배웠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에만 머무르도록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 위에 서도록 했으며, 스스로가 주체적이 되도록 했다. 또한 그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도 받게 했지만, 동시에 무수히 많은 질시와 상처를 받게도 된다. 바로 그때 상처 입은 새가 자신의 날개를 드리우듯 찾아들었던 곳이 바로 수덕여관이라는 곳이다. 일종의 피난처인 셈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지치면 일상을 떠나 반드시 휴식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시쳇말로 잠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에만 있다는 피정 제도는 오늘 날 좀 더 확대 적용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느 정도 남성들과의 공존이 가능하다지만(물론 그래도 어렵다), 당시의 나혜석이나 김일엽 같은 1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은 고사하고 같은 여자들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사람을 수덕여관이 품었다는 게 과연 남다른 의미를 가질 법도 하겠다 싶다.
그렇다고 수덕여관이 페미니스트였기에 품었다는 좁은 의미로는 해석하지는 말자. 우리나라 유수의 예술인들이 머물렀다지 않은가? 이응노 화백 같은 당대 걸출한 인물도 머물렀다고 하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저자가 인물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인들에 관심이 많은 나로선 언젠가 그곳을 가 봤으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서 상상의 타임머신을 타고 정말 그 세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지 그림이라도 그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이 얇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갈한 편집이 마음에 든다. 휴식 삼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