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기생충 - 엽기의학탐정소설
서민 지음 / 청년의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마태우스님의 서재엘 들어갔다가, 무슨 생각이 발동했는지, 나는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고 리플을 단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리플에 설마 응답을 할까 반신반의 했었다. 왜냐하면, 정말 용기를 내서 어떤 개기를 만들지 않으면, 그의 목소리를 직접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이 현재 고정 출연하고 있는 모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르쳐 주면서, 한번 들어보라는 리플을 달아 주셨다. 앗!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그 방송 프로그램의 저명한 인사라고 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느 방송인지는 몰라도.

그때 난 정말 그 프로그램을 기쁜 마음으로 들어었다. 그리고 외모와 달리 그의 풋풋한 목소리에, 도무지 기생충이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평소 그의 글은 얼마나 귀엽고, 능청스러우며, 종횡무진, 최첨단을 달리던가. 그런데 의외로 목소리는 풋풋하고 차분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어떤 게 진실을 말하고 있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잘 가려 들어야 한다.

오늘도, 우리가 비타민 C를 너무 많이 먹어 한강에 뛰놀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위기에 놓여있다며,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그럴 듯한 가설을 내놓던지. 이글을 읽는 사람 중 그 방송을 못 들은 사람은, 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본인한테 그 대답을 직접 듣길 바란다.

이처럼 그의 책도 횡당하기 그지없는 상상의 나래를 마구 마구 쏟아낸다.  도무지 저자의 상상의 끝은 어딜까? 배를 부여잡으리만치 웃으며 그 책을 읽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오늘 날 <대통령과 기생충>을 읽으며 이토록 좋아라 할 줄은!

정말 제목부터 너무 언밸런스해, 나 같이 고상한 책만 좋아하는 사람은 두 팔 끝을 다 벌려, 당장 읽고 싶은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을 한아름 안는다 해도, 이 책은 순위에 포함되지 않을 성 싶은 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슴에 포~옥 끌어안고 함박 웃음 지어주고 싶은 건, 저자의 친필 사인에 말그림을 그려 준 탓도 조금은 있으리라.

내가 기생충에 관한 책을 읽고 이토록이나 좋아라하면, 이 책을 모르는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은 감염력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엽기, 발랄함을 이용해서 그토록이나 재밌게 전해 줄 수 있을까? 아마 저자와 같은 의학도가 이 책을 읽은 거보다, 일반 대중이 더 많이 읽지 않았을까란 추측을 해 본다. 그만큼 이 책은 감염력이 있다는 말이다.

퓨전이 좋은 것은, 너무 한우물만 파려는 전문가적 성향 때문에 자칫 시야가 좁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일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언급한 바있지만, 기생충 감염 사실을 모르고 무려 1년 동안 설사를 하며 가산을 탕진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를 담당했던 의사가 기생충에 관해 조금만 상식이 있었더라도 과연 그렇게 허무하게 가산을 탕진했을까? 그 많은 의사들 중, 이 책을 읽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아, 그때 내가,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책을 읽어보니까 말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실력있는 의사라고 칭찬 받았을텐데... 

한 사람이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최고가 되는 건 좋지만,  크게 놓고 볼 때 그 사람은 그 분야만 아는 거지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인간의 앎이란 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편벽된 존재다. 아무리 독서광이어도 편식을 한다지 않는가. 

저자가 아무리 기생충학에 일찌감치 눈을 뜨고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역설한다해도, 학적인 지식으로만, 시각적 효과에만 의존에서 징그러운 기생충들을 도판으로 보여줬더라면, 이 책은 정말 이만큼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말도 안될 것 같은 이야기를 끌여들여 거기에 기생충들의 향연을 펼쳐 보일 수 있었을까? 게다가 현세태를 꼬집고, 비꼬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란 기히 상상을 불허한다.

나는 왜, 이 책의 제목이 <대통령과 기생충>일까 궁금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쳅터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겨가며, 저자의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가히 압권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학이 의학분야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기생충이 아직도 있냐고 반문하는 이 시대에, 정말 인간의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음에도 그 분야는 너무도 그늘져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도 보건데, 어느 한 분야가 발전하려면 최고 권력자를 건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난 정말 대통령이 기생충에 걸려서라도 이 분야가 발전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의학분야 중, 항문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나,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 분야를 택하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산부인과는 인기과목이라고는 하지만, 아기를 받을 때의 신비감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여자들의 자궁이나 들여다 보는 그것이 과연 좋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날 생명을 연장하며 잘 살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나 같이 우매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저자는 자기식의 대답을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 기생충에 걸려 죽은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 교통 사고를 당해 죽는 사람이 해마다 1만 명인데 그렇다고 네가 차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 않는냐, 기생충 보다는 뱀이나 지렁이, 지네 따위가 더 징그럽지 않는냐, 외모가 처진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내 서재 대문에 걸린 글 귀가, '그럴 법한 인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책을 애독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겠는데, 저자는, 저자가 말한 저 의도를 설득하는데 또 한 사람을 성공시켰다고 일러주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이, "너는 왜 그런 기생충에 관한 책을 읽고 실실거리고 웃느냐?"고 묻는다면 두말 않고, 한번 읽어 보라고고 그의 코 앞에 내밀어 주고 싶다.

그만치 이 책은 잘 쓴 책이고, 동시에 재미있는 책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4-07-2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태님이 보시면 참 기뻐하시겠네요. ^^
요즘 스텔라님과 마태님 사이가 심상치가 않아요-

stella.K 2004-07-2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은 게 안 떠올라서 좀 그래요.^^

갈대 2004-07-2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이 필독서를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 마태님이 리뷰 보시면 좋아히시겠네요^^

메시지 2004-07-2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저녁에 다 읽었습니다. 리뷰쓰려고 했더니 이렇게 스텔라님께서.... 추천
대단한 발상과 엄청난 재미, 그리고 기생충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stella.K 2004-07-2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메시지님, 어서 리뷰 쓰시지요. 그리고 추천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04-07-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좋은 리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제 방송 들으셨군요! 둘다 부끄럽습니다. 나중에 커서 꼭 님께 은혜를 갚겠습니다.

stella.K 2004-07-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더 이상 클 때가 어딨다고? 여기서 더 크면 늙습니다.^^
글구 부끄럽단 말 이제 하지 마셨으면 해요. 제가 마태님한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럼 다음에 마태님한테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전출처 : 갈대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7원칙

1. 호기심 : 삶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관심과 지속되는 배움에 대한 가차없는 질문

2. 실험정신 :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실험하는 열의와 고집. 실수에서 배우려는 의지

3. 감각 : 경험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단으로서의 감각. 특히 시각을 지속적으로 순환시키는 것

4.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 : 모호함과 패러독스, 불확실성을 포용하려는 의지

5. 예술/과학 : 과학과 예술, 논리와 상상 사이의 균형 개발하기. '뇌' 전체를 쓰는 사고

6. 육체적 성질 : 우아함과 양손 쓰기를 계발하고 건강과 균형감 키우기

7. 연결 관계 : 모든 사물과 현상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것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7-2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괜찮네요.
 

청소년 여러분, 올 여름방학에는 앞으로 생의 길목에서 두고두고 되새겨볼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것이 어떨까요. 책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가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 달리 보일 겁니다. 작가 화가 기업가 등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열두 명의 어른들이 올여름 읽을 책을 골라주셨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을 이들 책과 함께 더욱 풍성하게 가꿔보세요.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참혹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어떻게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성장해 가는가를 대가적 솜씨로 적어내려간 작품.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가명이며 이 작품으로 다시 공쿠르상을 수상하여, 일생에 그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됐다. 성장소설의 고전이라고만 언급하기엔 너무 미안한, 그야말로 대단한 소설이다.”

(김영하)

파브르 식물기

파브르 지음, 정석형 옮김, 두레

“나는 청소년들이 이 세계를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내 맘에 드는 사람과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으로 구별해서 이해하기보다는 우선 이 세계의 객관적 실체를 그 자체로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살아있는 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실이 곧 이야기인 것이다. 파브르는 사실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어서 말해준다. 존재는 그 스스로 정당하다.”

(김훈)

하이디

요한나 슈피리 지음, 한미의 옮김, 비룡소

“알프스의 소녀, 서커스의 소녀. 목장의 소녀…. 소녀 시리즈를 많이도 읽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힘을 주는 것, 목장의 소녀 가트리가 얼음물에 걸레를 빨고 마루청소를 하는 걸 보면서 어른들의 잔소리를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꿋꿋이 참고 고난을 이겨내는 소녀들은 지금껏 내가 힘들 때마다 마음에 떠오르며 위안을 준다.”

(김점선)

 

사람답게 아름답게

차병직 지음, 바다출판사

“저자 서문의 ‘행복한 인권 이야기’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널리 알려진 동서양의 고전 동화를 인권의 문제로 읽어내는 재미있고도 유익한 이야기의 모음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생활과 반대의 자유, 아동의 권리, 사회적 권리 등 청소년의 일상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인권 문제를 알기 쉽게 풀어 쓴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안경환)

먼나라 이웃나라9(우리나라 편)

“우리나라를 먼 나라처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에 대한 문화 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자신의 의식구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하며, 변화의 첫걸음은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견딜 수 없네

정현종 시집, 시와시학사

“마음을 비우고 온몸을 열어서 일상의 순간순간에 반응하는 원숙한 자재로움이 돋보인다. 나날의 삶은 어두운 회색빛을 거두고 더없는 경이와 은총의 지속이 된다. ‘시간을 견딜 수 없다’ 하면서도 친근한 말씨로 속삭이듯 토로하는 시로 쓴 행복론이다. 행복의 매혹적인 창구이다.”

(유종호)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로버트 맥기 지음, 고영범 등 옮김, 황금가지

“오늘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스토리(이야기)가 아닌가. 아침부터 방송되는 TV 드라마의 스토리를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 책은 할리우드 영화의 스토리가 어떤 것인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영화 지망생뿐만 아니라 문학 청년들도 읽어야 할 책이다.”

(유하)

레드문

황미나 지음, 애니북스

“타인에 대한 애정과 자기 희생을 그린 동양풍의 SF만화. 흔히 등장하는 영웅주의와는 달리 주인공의 철저한 자기 희생으로 인해 구원되는 인류의 이야기로, 그 장대한 흐름 속에 유머러스한 연출이 어우러져 전혀 무겁지 않은 재미까지 선사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자신의 피를 뿌려 인류를 구원하고도 신격화조차 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타인애를 생각해 보는 것도 새로운 자기 발견일지 모른다.”

(이현세)

석주명 평전

이병철 지음, 그물코

“단 한 줄의 논문을 쓰려고 나비 3만 마리를 만진 사람. 시간을 아끼려고 걸으면서 땅콩으로 점심을 때운 이. 그의 저서 ‘한국산 접류분포도’는 지금도 생물지리학의 세계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또 최초로 제주도 방언을 연구한 에스페란토어 보급자였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10년간 하면 꼭 성공한다며 세월 속에 씨를 뿌리라던 사람, 석주명.”

(정민)


 

메이팅 마인드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 소소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성의 진화에는 뜨거운 가슴 그 이상의 것들이 담겨 있음을 알려준다. 선정적인 사진 못지않게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남을 웃기려는 유머, 남을 돕는 행위 등은 말할 나위도 없고 우리가 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들이 모두 성과 관련하여 진화한다는 언뜻 당돌해 보이는 진화심리학 이론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최재천)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레

“참 따뜻하고 유쾌하고 슬픈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마치 중학교 1학년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긴 여운과도 비슷하다. 출세지향주의의 어른들에게 부대끼며, 컴퓨터와 입시 강박증으로 온 사춘기를 다 보내는 아이들에게 권한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숫자의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 간의 지속적이고 아름다운 관계만이 우리 삶의 희망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황주리)

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국성 옮김, 예하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영화에서, 책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라스트신 이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가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은 그 곳에서 출발한다. 교육과 관습과 제도가 무의미해진 곳에서. 물리학 교수 앨런 라이트맨은 이 책을 통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수도 있는 서른 가지 세상’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 속에는 수천 개의 세계가 탄생한다.”

(황경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07-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앞의 생>과 <파브르 식물기>에 눈이 가네요.
마지막 그림, 멋지네요.^^

stella.K 2004-07-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와 <석주명 평전>이요.^^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조교와 함께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조금 남루한 차림새의 여자가 들어오더니 노트를 내밀었다. 노트에는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최근에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너무 어려워…’ 등등이 적혀 있었다.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주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여자가 나가자 마자 조교가 말했다. “선생님, 저 사람 청각장애인 아니에요. 사칭하는 거예요.” “네가 어떻게 알아?” “요새 저런 사람이 많아서 일부러 열쇠를 떨어뜨려 봤더니 눈동자가 잠깐 제 쪽으로 움직였어요. 선생님도 참, 헛똑똑이시네.”

‘셜록 홈즈가 따로 없네.’ 나는 조교의 명민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탐정 셜록 홈즈―어렸을 때 한 두 번쯤 그 가공할 만한 추리력에 감탄해 탐정이 되는 것을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이커가(街) 221B 번지, 깡마른 체격, 승마 모자, 파이프 등, 친구이자 조수격인 왓슨 박사 등, 아직도 생각나는 홈즈 관련 사항들이다.

셜록 홈즈는 안과의사였던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이 개업을 해도 환자가 없어서 호구지책으로 일련의 추리소설을 쓰면서 창조해낸 가상인물이다. ‘빨간머리 연맹’ ‘바스카빌가의 개’ ‘여섯 개의 나폴레옹상’ 등 지금은 추리소설의 고전들이 된 작품들을 쓰면서 코난 도일은 탐정소설을 단순히 범죄소설에서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홈즈의 인기는 대단해서 1893년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가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대결하다가 폭포에 떨어져 죽자 독자들은 출판사에 항의전화는 물론, 홈즈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후에 독자들의 요청에 못 이겨 ‘셜록 홈즈의 귀환’(1905)에서 부활시켰다).

홈즈는 코난 도일이 공부했던 에든버러 의과대학의 외과 담당 교수 조셉 벨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는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오면 환자가 말하기도 전에 무슨 병이라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증상에서 지금까지의 생활태도까지도 학생들 앞에서 맞혀 보이곤 했다. 벨 교수는 환자가 들어오면 추상적 이론이나 현학적 지식을 사용하지 말고 ‘눈과 귀와 손과 머리를 직접 써야 한다’고 가르쳤고, 이는 그대로 홈즈의 수사원칙이 되었다.

그렇지만 사실 홈즈의 기발한 사건 해결력은 기록자인 왓슨 박사 때문에 더욱 빛난다. 성실하고 사람 좋지만 ‘박사’라는 칭호가 민망할 정도로 늘 어줍잖은 추리력으로 홈즈를 흉내내다가 홈즈의 ‘똑똑함’에 밀리고 마는 왓슨은 간혹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영국과학발전협회’는 인터넷 투표로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머로 다음 이야기를 뽑았다.

명탐정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이 캠핑 여행을 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함께 누워 잠을 잤다. 얼마 후 홈즈가 갑자기 왓슨 박사를 깨웠다. “왓슨, 하늘을 보고 뭘 알 수 있는지 말해 주게.” 왓슨은 잠깐 생각하더니 “수백만 개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천문학적으로 은하계가 수백만 개 있으며 항성이 수십억이 있다는 것, 측시학적으로는 시간이 새벽 3시쯤 되었다는 것, 신학적으로 신은 전능하고 인간은 미미한 존재라는 것, 기후학적으로는 내일 날씨가 청명하리라는 것…. 자네는 무슨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한동안 말이 없던 홈즈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누군가 우리 텐트를 훔쳐갔다는 걸 알 수 있네….”

‘춤추는 인형’에서 홈즈는 난해한 그림의 암호를 풀고 나서 “사람이 발명한 것은 사람이 풀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살면 살수록 사람이 발명한 것을 사람이 풀 수 없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또 하나 그런 케이스를 나는 만원 과외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ira95 2004-07-1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셜록 홈즈를 정말 좋아하는데... 좋은 글 고맙습니다.. 퍼갈게요..

아영엄마 2004-07-1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홈즈는 정말 현실적이군요! ㅋㅋㅋ 하늘이 보이는 것은 텐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라니.. ^^;;

stella.K 2004-07-1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입니다.^^
 
 전출처 : mannerist > [조광화 희곡집] 悲劇精神의 復活(下)

 21/  96. 11. 11.

연극을 통해 관객과 대화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극에서 실지로 이루어지는 것은 관객과의 교감이다.


작가들은 보통 세상에 할 말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고,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다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더 본질적이고 강력한 현상은 정서의 나눔이다. 생각은 정서의 교감이 발생한 후에야 정리된다.


지식인 시대의 작가들은 일종의 사상가들이었고, 작품을 통해 생각을 나누는 것이 일반론이었다. 주제라는 것도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되는 문장들이었다. 정서는 그 주제나 생각을 다루는 데서 파생되는 부수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관객을 실지로 압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무엇으로 환기되는 정서인 것이다. 정서 그 자체가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연장에서 커뮤니케이션 통로는 정서다. 그리고 나의 정서의 핵은 열정과 열정의 상실이다. 나의 주제는 열정 자체와, 그 열정을 상실함으로 일어 나는 복잡한 심경이다.




22/ 96. 11. 12.

생의 열정과 강력함을 억누르는 것들은 무엇인가? 도덕과 정의의 기만성이다. 이른바 합리적 사고라 하는 진리들의 폐단. 그것들은 연극에 치명적이다.


도덕과 정의를 폐기하면 이 사회의 혼란을 무엇으로 막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은 이데올로기들이 강화될수록 혼란은 더욱 늘어만 왔었다. 마치, 법조문이 하나 늘어 갈수록 범죄가 늘어 가듯이. 상식과 금기와 권위의 부정어법은 개인에게 니힐리즘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사회를 위하여 개인의 생명력을 희생하였다. 이제는 생이 보상받아야 한다.


니체에 의지하여, 니힐리즘을 이기는 길은 권력(강함)에의 의지다. 역시 니체에 의지하여, 예술의 존재 이유는 우리가 진리로 망가뜨려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 기만의 세상을 희생시키는 길은, 최소한 멸망의 속도를 늦추는 강력한 제어 수단은, 활동적 생명의 힘이다.


연극은 위기라는 절망감의 유행. 무엇보다 연극에서 생명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야 관객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뤄진다. 배우들의 표출하는 강력한 생의 힘으로 관객들을 충격시켜 그들의 억눌린 생명을 해방시킨다. 그것이 연극의 효용이다.




23/

웃음의 유행.


이제 무거움의 연극은, 비극은 외면당하는가? 외면당하는 것은 칙칙한, 기운 빠지는, 죽은, 관념의, 껍데기 등등의 연극이다. 무거움의 묘사가, 추함의 묘사가 강력하다면 외면당할 이유가 없다. 생명의 힘을 가진 비극은 여전히 관객을 사로 잡을 것이다.




24/ 96. 11. 15.

다가오는 가상의 세계. 그럴수록 절실한 생체의 역동성.




25/ 96. 11. 18.

내가 신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곳에 정열에 가득 찬 원형적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26/

비극은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비극은 생명으로 가득 찬 정열의 불러 일으킨다.


비극의 마력은 그곳에 숭고한 정열이 꿈틀 댐으로써 가능하다. 셰익스피어 비극은 무엇으로 가치있는가? 그곳에는 일찍이 보기 힘들던, 이후에는 더욱 사라져 간, 정열적 인간들만이 가득하다.


반면에 희극은 약함을 숨기고 위선과 기만에 찬 정열들을 비웃는 것이다.




27/

비극의 부활. 즉, 비극정신의 부활.


전형적 허리우드 영화에서 보듯이, 스펙터클로 위장된, 요란한 갑옷으로 위장시킨 가짜 영웅들은 정열을 타락시켰다. 진정한 비극은 인간의지의 숭고함, 섬세함, 강력함으로 우뚝 선 정열적 인간의 등장으로 부활할 것이다.




28/

정열이란 의지가 농염해져 감지할 수 있는 형태로 발산된 것이다.




29/

정렬의 효용.


진정한 정열의 인간은 만인에게 잠자던 정열을 촉발시킨다. 마치 태양이 만물을 자극시켜 생명을 일으키듯이. 그리하여 만인은 그 정열로 인해 생의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비극은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정열을 환기시키는 일이다. 비극의 정열은 병든 의지를 회복시킨다.




30/

정열이 갖춰야 할 덕목. 균형과 자제.


이상적인 정열은 만인에 폭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타 정열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정열적일 그때에야 위대하다. 그러니, 니체의 초인은 일면 뻔뻔스럽다.




31/

정열의 종류.


a. 생명 자체의 정열 - 스스로의 의지로 가득 찬 정열. 삶을 고양시키고 숭고해진다.


b. 파괴적 정열 - 정치적 권력 지향이 일으키는 잔인함.


c. 흡혈귀적 정열 - 옛 정열들이 이룩한 형식이나 조직에 숨어 자신의 약한 정열을 위장하는 자들. 일종의 죽은 이데올로기들. 무너진 가부장들의 생존방식. 권위적 지도자들의 위선. 말하자면 가짜 정열. 약한 정열이 택하는 비열한 실현 방법.


d. 소비적 정열 - 욕망, 충동, 감각에 자극된 격정 등. 정열을 가다듬어 숭고해지기는 커녕, 있는 정열마저 탕진하는 퇴폐.


e. 기만당한 정열 - 가짜 영웅에 자극받은 헛된 노력.


현대인의 정열은 d나 e가 대부분이다.




32/

정열을 기만하는 자본주의, 또는 상업주의의 전략.

a. 가짜영웅 - 허리우드 영화에서 미화된 폭력, 사회적 명사들, 정치권력자들, 재력가들. 무엇보다 그들의 입장에서 적용되는 ‘정의’라는 외침. 정열이 타락한 결과물.


b. 정열의 탄압 - 조직과 자본을 위한 희생. 희생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도덕. 건전한 사회유지라는 명목으로 억압당하여 이윽고 왜곡되고 마는 개개의 정열들.


c. 정열의 상품화 - 가상현실. 정열은 수많은 가상 물질들에 소비된다. 결국, 재투자 없는 자원은 탕진된다. 자신의 생명감을 상실한 채 허상에 탐닉하는 퇴폐.




33/

정열을 기만하는 연출 중심의 연극.


공연성을 주장하는 당대 연출 중심의 연극들이 도달한 곳에서 정열은 기만당한다. 그들의 초라하지만 마취시키는 변명들은 웃음, 재밌음, 볼 거리, 탈언어, 무대적 역동성 등이다. 그러나 소홀히 다룬 것이 있었다. 배우의 정열이 제거된 것이다. 그 빈 자리는 기고만장한 연출자의 정열로 채워졌다. 무대는 그럴 듯한 포장들로 가득 찬다. 그럴수록 배우는 왜소해진다. 배우들은 연출가가 고안한 갖가지 아이디어, 장식들에 의지해 간신히 서있다.


자신감에 찬 연출들은, 배우의 정열을 외면하고, 자신의 위대성을 증명하기 위해 갖가지 껍데기들로 무대를 채운다. 곧 이어 연극은 쇼로 타락하였다.




34/

정열의 확인.


강한 정열은 단지 스스로를 높일 뿐이다. 약한 정열은 고난을 통해 그 반발력으로 감지된다.


35/

의지 대 폭력. 정열 대 완력. 의지는 생명 자체다. 폭력은 생명을 위협한다. 정열은 감화시킨다. 완력은 강요한다.


위선적 인간은 위장되고 미화된 폭력에 감동한다. 미화된 폭력은 사실 약한 정열의 증거다. 약한 정열은 폭력을 통해 자신을 강요하고 합법화한다. 그러나 위장을 벗기면 비열한 의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연약한 정열을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위선자들은 폭력적이라고 돌팔매질을 한다. 미화된 폭력에의 감동은 비굴하다. 권력에 아부하는 것이다. 위장 제거에 경악함은 그들의 비굴을 들켰기 때문이다. 구역질이 난다.




36/

작가는 그 모든 정열들을 관찰하여, 위장된 신화를 걷어 내서, 정열의 원형들을 정직하게 드러 낸다. 배우는 그 정열을 만끽한다. 연출은 배우를 돕는다. 그때에야 비극은 부활한다. 숭고하도록!




37/ 96. 11. 19

고전적 비극이 정열을 환기시키는 방법. 성격적 결함을 가진 영웅이 강력한 고난을 당한다. 그 힘겨운 짐을 지느라 정열이 불려나온다. 이때 고난은 측량되지 않는 정열을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계측기가 된다. 즉, 고귀한 성품과 고난은 정열을 가리키는 지시문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후세들은 비극의 본질이 성격과 고난인 줄 알았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하여 가짜영웅이라는 괴물을 조제하였다. 이윽고 정열을 보는 감각이 무뎌져 간 관객들은 비극이 따분한 것으로만 여기게 되었다.


비극정신의 삶의 열정 자체에 고양되는 것이다.




38/ 96. 11. 21.

연극이 실험을 거듭하여 발전할수록 기개를 잃어 간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비록 세련되었다 해도 사로 잡지 못하는 연극이 늘어 난 것 아닌가. 조급해진 연극은 기개를 대신한 마취적 감각으로 관객에 아부하는 것 아닌가.




39/ 96. 12. 11.

문학적 연극은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아니다. 단지, 껍데기의 연극이 도태할 뿐이다. 비언어적 연극들도 쇼로 타락한다면 껍데기가 된다. 문제는 생동감으로 살아 있는 공연이냐 아니냐다. 진정한 연극은 인간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작가는 이상을 제시하고, 연출은 현실과 타협하고, 배우는 하루하루성실하게 살아 가는 생활인이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연극은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작가에 충실한 작가이기 어려운 시대다. 바로 이 시점의 대학로는, 포장만 남은, 그래서 허탈한 볼거리만 가득 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한 주제인 양 위장한, 우리들을 기만하는 연극이 주류다.


그러한 연극들은 진정한 극작가를 거부한다. 아니,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그들의 기만술이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은 작가들이 수난을 당한다. 수난이라니? 우리 연극의 희망에게?




40/

갓 등단한 작가들은 기만의 연극으로부터 대학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연극은 문학이 아니다’고. 그리하여 성공하고픈 신인작가들은, 공연이 되는 텍스트를 쓰고픈 신인작가들은, 구세대 작가들의 고리타분에서 벗어 나고픈 패기 찬 작가들은, 뭔가 새로운, 뭔가 연극적인 텍스트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작가정신이 아닌 연희적 테크닉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만다. 연희적 테크닉은 작가의 진정한 몫이 아닌데도 말이다. 작가가 텍스트에서부터 문학성을 포기한다면 작가는 없다. 대본작가가 있을 뿐이다.


대학로에 들어선 신진작가들은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세계관을 키울 의지를 제거당한다. 기만의 연극들은 당장 아쉬운 값싼 볼 거리 만들기를 부추긴다. 대본쟁이로의 강요. 이것이 우리 젊은 작가들의 운명이다.


아니 젊은 극작가는 없다. 사실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거나 공인받지 못한 작가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만의 연극은 작가가 그의 세계를 세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설혹 그 씨앗을 품었더라도, 애써 가능성을 발견해 주고 키워 주는 일이 없다. 실망한 작가는 대본쟁이가 되거나, 대학로를 떠난다.




41/

그러나, 작가들이여, 오만해지라. 연극적 氣의 바탕을 마련하는 극작가들은 그가 품은 기개와 이상만큼 오만할 필요가 있다. 힘찬 기운이 있다면, 아무리 문학적이고 말로 가득 찬 텍스트일지라도, 연극 창조자들을 자극시켜 창작욕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작가들이여, 기만의 연극을 누치 보지 말라. 눈치를 살피는 일은 연출이 할 일이다. 귿르은 극단 재정과, 관객의 기호와, 배우의 능력과, 기술적 한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연출의 엄살과 충고와 엄포에 귀를 닫아라. 눈치를 볼 사람은 연출이지 작가가 아니다. 우린 당당하게 자신의 세계를 주장하고, 연출은 현실의 제약 때문에 눈치를 준다. 그것이 각자의 역할이다.


부디, 연극이여, 작가의 오만을 관용으로 받아 주기 바란다. 그들의 오만은 천성이다. 큰 고기라야 다양한 요리를 내놓을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보이고픈 극작가들이여, 마음껏 오만해지십시오.


42/ 98. 1. 13.

무엇보다도 이 시대를! 이 시대의 관객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