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코멘 남겨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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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2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쟤들 박터지네!!!

icaru 2004-05-2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랴...달아줄께 ㅋㅋ

panda78 2004-05-28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플... ㅋㅋㅋ ^^

*^^*에너 2004-05-2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캬캬~
무서버 리플이당~ ^^

다연엉가 2004-05-2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가면 안될까요... 윽 겁이나서 달고 갑니다.

플레져 2004-05-28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았습니데이~~~ 리플~~~^^

stella.K 2004-05-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효과가 있군. 책울타리님 반갑습니다. 이거 보시지 않으셨으면 그냥 가실뻔 하셨군요.^^
 

비톨트 곰브로비치 장편소설 | 윤진 옮김 | 민음사 | 464쪽 

성숙과 미성숙, 완성과 미완성의 대치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온 폴란드 작가 곰브로비치<사진>의 대표작으로,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치에 의해 금서로 묶여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50년대 이후 프랑스에 번역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실존 철학과 소설의 만남을 추구한 작가는 카프카와 견줘지며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폴란드 하원은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04년을 곰브로비치의 해로 정하고 연극제와 음악회을 비롯한 행사를 열고, 기념포스터와 우표를 제작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소설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삶과 모든 계획이 무가치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서른 살의 작가인 주인공이 한 교사에게 납치되어 열여섯 살 소년들의 세계로 돌려보내지면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머릿속은 어른이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로 납치되어 성장기를 다시 겪는다는 설정은 환상소설이자 성장소설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실제 세상에서는 일어날 법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을 제시하는 작가의 전략은 무엇일까? 열여섯 살로 다시 돌아간 소설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성숙과 미성숙의 대립으로 점철되어 있다. 성숙의 세계는 미성숙을 형식의 껍질 안에 숨겨놓고 싶어한다. 미성숙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작가는 소년의 시신을 통해 성숙한 세계, 질서 잡힌 체계의 허구성과 폭력성,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소년 시절로 납치되어 돌아간 교실은 ‘순진함’을 주입시켜 모두를 어린애로 만드는 것을 교육철학으로 삼고 있는 학교였다. 미성숙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주된 내용은 성인들의 틀, 정상인의 기준, 기성의 체계를 강요하는 시스템일 따름이다.

불합리와 폭력으로 특징 지어지는 성숙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미성숙의 자유로운 힘을 캐치하는 것이 이 소설의 감상 포인트다. 작가는 성숙이 미성숙을 끊임없이 지배하고 통제하려드는 것은, 미성숙한 존재들의 반항은 성숙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은 에로스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육체의 각 부분의 길항작용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머리는 명령하지만, 엉덩이, 넓적다리, 장딴지의 아우성도 들린다. 특히 엉덩이는 미성숙의 근원, 코흘리개 애송이들만 갖는,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갑자기 소년 시절로 돌아간 주인공은 정돈된 어른의 세계에 잠입하여 질서를 전복시키는 젊음의 힘을 발산한다. 그 세계는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기괴하게 커지는 부조리한 세계, 한마디로 기존의 사고체계나 가치가 뒤죽박죽되는 혼돈의 세계다. 작가는 이를 통해 진실함과 성숙됨의 참된 모습을 모색한다.

“정상이란 비정상의 심연 위에 늘어뜨려진 곡예사의 줄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질서 속에서도 언제나 광기가 섞여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단초를 선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점에서는 ‘망치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내 적수를 누를 만한 날카로운 풍자 정도나 써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쓴 말들은 순식간에 격렬한 춤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고, 제멋대로 사납게 날뛰면서 그로테스크한 광기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갔다”고 회고했다.

이 소설의 제목도 아무 뜻이 없다. ‘페르디두르케’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작가가 즐겨 읽은 미국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의 작품 ‘배빗’의 등장인물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 자체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려는 작가의 ‘비틀어보기’는 마지막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나를 따라 달리라. 낯짝을 두 손으로 감싸고 도망가는 내 뒤를 따라 달리라. 이제 끝이다. 트랄랄라. 이 책을 읽을 사람한테 한마디하자. 제기랄!”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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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붙잡고 싶게 만드는 책이네요.^^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세 명의 자녀를 둔 아빠 그가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매달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보도 섀퍼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을파소)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보도 섀퍼는 독일의 이름난 경영 컨설턴트이자 세 명의 자녀를 둔 아빠다. 그가 어릴 때부터 돈과 경제에 대한 합리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신 열여섯 살에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돈의 중요성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돈과 집, 자동차에 미친 사람은 아니다. 자녀교육 측면에서 그가 최근 내놓은 ‘도넛츠’이론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중심에 관한 것이다. 중심이란 한 사람의 인성이며 가치관을 뜻한다. 매달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보도 섀퍼가 띄우게 될 한 통의 편지는 ‘도넛츠’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다.

부모들은 자녀의 부족한 면을 찾아 개선해주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과연 바람직한 걸까?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 왔다고 하자. 미술, 음악, 체육 점수는 아주 탁월하다. 영어 점수도 좋은 편이다. 생물, 역사, 화학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하지만 수학 점수는 기대 이하다. 이때 성적표를 받아든 부모는 제일 먼저 어떤 과목에 대해 언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중요하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학교가 다양한 과목의 기초를 쌓게 하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교육제도하에서는 모든 과목을 동시에 두루두루 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와는 다른 교육 방법을 옹호하는 학자, 교육자, 부모가 생겨났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방법으로는 기껏해야 평균적인 인간을 양산할 수 있을 뿐이다. 잘하는 부분을 북돋워줄 때 아이고 어른이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며, 더 행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 아이를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면 잘 하는 부분을 키워주어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복잡한 계산문제를 실수 없이 잘 풀어내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평균적인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모든 아이 속에는 천재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이며 특별한 재능을 최소한 한 가지씩은 타고난 사람들이다.


▲ 왼쪽부터 스티비 원더, 올리버 칸 그리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 이들은 장점을 키워 성공했다.

어떤 눈먼 소년이 있었다. 친구들도 함께 어울려 주지 않았으므로 소년은 늘 외롭고 힘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소년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사건이 찾아왔다. 수업 중 교실에 쥐가 한 마리 나타났는데 어디로 숨어 들어갔는지 도무지 행방이 묘연했던 것이다. 그때 선생님이 눈먼 소년에게 그만의 특별한 청력을 사용하여 쥐가 어디에 있는지 맞혀 보라고 했다.

눈먼 아이는 귀를 기울였고 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었다. 쥐 소리는 교실 구석의 벽장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쥐는 쉽게 잡혔다. 수업 후 선생님은 눈먼 아이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넌 우리 반의 어떤 친구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어. 네겐 특별한 귀가 있잖니.” 그 말은 소년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소년은 음악을 좋아했다. 이제 맹인이라는 사실도 방해거리가 될 수 없었다. 탁월한 청력이 있었으므로. 이 소년이 바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라는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스티비 원더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약점’을 아이의 몸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처럼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두려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이란 우리로 하여금 목표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부분이다. 나의 목표를 이루는 데 별 지장이 없으면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아이들의 ‘약점’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우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아이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인지를 분명히 생각하라. 확신이 안 설 때에는 일단 부드럽게 나가는 것이 좋다. 강점이 부각되는 곳에서 약점은 쉽게 힘을 잃는다. 위대한 인물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아주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던 사람들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이 지녔던 ‘약점’을 한탄하는 사람은 없다.

도무지 지는 걸 싫어하는 남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는 유달리 승부 근성이 강해 게임 같은 걸 할 때면 이를 악물고 싸웠고, 지면 엄청나게 화를 내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는 것도 배워야 해.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함께 어울릴 줄 알아야지.” 그러나 그토록 지기 싫어했던 꼬마 소년은 현재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축구 골키퍼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올리버 칸이다.

어떤 방랑자가 산길을 걷다가 불상을 조각하고 있는 사람 곁을 지나치게 되었다.

조각가는 커다란 나무 기둥을 놓고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형태는 아직 분간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방랑자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길을 지나치다가 나무 기둥이 멋진 불상으로 변신해 있는 것을 보았다.

조각가의 솜씨에 감탄한 방랑자가 조각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렇게 멋진 불상을 만드는 비결이 뭡니까?” 그러자 조각가는 “나의 비결은 나무 기둥 속에 들어 있는 불상에상처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보도 섀퍼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키라와 확대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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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5-2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점 키워주기... 음 나는 아이 단점만 팍팍~ 찍어서 잔소리 해대서 있는 장점도 사라지게 만드는 엄마인데.. 이런 글 많이 읽으면 많이 반성해서 좋은 엄마의 길에 발가락이라도 하나 들어 놓을수 있으려나?

stella.K 2004-05-2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나중에 한으로 남습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울 엄마도 칭찬보단 잔소리를 많이 하시더라구요. 나도 좋은 점 많은데 왜 엄마는 잔소리만 할까? 아쉬울 때가 많더라구요. 물론 제가 결혼에서 아이가 있으면 그땐 엄마를 이해할 겁니다.^^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디카로 보는 책] 책으로 보는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 패드라익 콜럼, 비룡소

비룡소 클래식의 8번째 권. 아무래도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 [트로이]를 겨냥해 낸듯하다. 그렇다고 급하게 만든 책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어제 책을 받아 읽어보는 데 정말 반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그 방대한 고전을 오디세우스를 중심 인물로 내세워 이야기를 썼다. 이야기의 시작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는데서 부터다.

1부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즉 <일리아드>가, 2부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여정, 즉 <오디세이아>가 펼쳐진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오늘 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어체의 소설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귀로 들어 입으로 옮기는 구조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설명 부분도 시나 노래같다. 그리고 각 등장인물들의 어마어마한 독백이 이어진다. 그런 구조를 콜럼은 충분히 대화를 통해 되살렸다. 특히, <트로이 전쟁>의 백미라고 할만한, 트로이의 노왕이 맨발에 거지처럼 차려입고, 자신의 자식을 죽인 자에게 무릎을 꿇고 아들의 시체를 구걸하는 장면은 눈시울이 뜨겁다. 영화 [트로이]에서도 이 장면이 멋있다고 하니 비교해서 보면 좋겠다.


책의 앞면이다. 표지는 <트로이 전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 허나, 저 속에 그리스 군이 숨었다고 하는데... 다리가 너무 길다. 도대체 어떻게 숨은 것일까? 인간피라미드라도 했나? 밤새도록 저 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리가 너무 길다.

흠.. 나의 추측은 이렇다. 다리는 엘리베이터(로마 시대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다고 하니, 그리고 이것은 신화 시대 이야기가 아닌가. 계단이라고 하면 그리스 병사가 너무 불쌍하다)이고,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방이 펼쳐진다. 거기서 그리스 군사들은 한손에는 창, 한손에는 카드를 들고 놀고 있지 않았을까? ㅎㅎㅎ

 


뒷면이다. 전차를 타고 전투에 입하는 장군의 모습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그림을 따와 전차에 붉은 색깔만 입혔다.

깔끔한 느낌. 전체적으로 비룡소클래식은 왠지 옛날 계몽사 전집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만 그럴까?

 

 

 

 

 


 

 

세워서 펼쳐보았다.

파란색의 책등, 책제목부분은 금박이다.

이쁘고나...

 

 

 


 

펼친 모습.


 

 

 


1부의 첫 장.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부제가 있다. 1부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배를 타고 떠난다. 텔레마코스가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에게서 트로이 이야기를 듣다."

 

 

 

이 책의 삽화는 그리스 시대 토기에 그려진 그림의 느낌이다. 옹골찬 느낌의 선으로 모든 형태를 느껴준다. 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판화의 느낌.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나오는 1부의 마지막 장이다.

 

 


 

목마사진을 좀더 가까이.

저렇게 깎은 나무 목마가 하나 가지고 싶다. 각이 살아있는 몸통, 얼굴, 다리가 멋지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칼립소가 베를 짜고 있다. 그 옆에 서 있는 신은 헤르메스겠지? 날개달린 신발과 머리에 쓴 관을 보면  헤르메스인 듯 한데... 칼립소의 명대사.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게는 슬픔이 찾아오는구나. 다른 신들이 늘 그런 사랑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치마 주름이 너무 예쁘다.

 

 

이 책과 함께 로즈마리 셧클리프가 쓰고, 앨런 리가 그림을 그린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1997, 국민서관)도 권하고 싶다. 로즈마리 셧클리프의 글이야 너무도 훌륭하고, 특히 앨런 리는 <반지의 제왕>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다. 웅장하면서도 신화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일러스트가 일품이다.  알라딘류화선(yukineco@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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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2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큼 퍼갈래요! ^^

플레져 2004-05-25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했다...... 사야징~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을 띄우다
“20세기 최고소설 다시 즐기자”
육필초고 전시·영화·심포지엄도



▲ 매년 6월 16일 ‘블룸스데이’에는 제임스 조이스 팬들이 소설 ‘율리시즈’ 속 등장인물처럼 옛날 복장을 하고 주인공 ‘블룸’의 행로를 따라 더블린을 누빈다.
오스카 와일드·사뮈엘 베케트·버나드쇼·예이츠…. 영문학의 쟁쟁한 별을 탄생시킨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그중에서도 ‘조이스의 도시’로 불린다.

요즘 더블린에서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를 기리는 사상 최대의 문학 축제가 한창이다. 바로 ‘리조이스(ReJoyce) 더블린 2004’ 페스티벌. ‘블룸스데이(Bloomsday)’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기념행사다.

문학팬들은 매년 6월 16일을 ‘블룸스데이’란 이름으로 축하해왔다. 1904년 6월 16일은 ‘20세기 영문학의 혁명’이라는 평을 받는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에서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Bloom)이 더블린 시내를 헤매고 돌아다닌 날이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난해한 문장과 구성뿐 아니라 소설을 이루는 방대한 신화와 상징체계 때문에 악명이 높다. ‘20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10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도입부를 넘기지 못하고 집어던지기 일쑤다.


▲ 제임스 조이스
조이스는 “나는 ‘율리시즈’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숨겨놓았다”며 “앞으로 수백년간 대학 교수들은 이를 풀어내느라 바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이것이야말로 불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는데 그의 예언대로 ‘율리시즈’ 관련 논문과 각종 해설판 발간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거대한 ‘조이스’ 관광산업을 만들기도 했다.

매년 6월 16일이면 조이스 팬들이 실크해트 등 20세기 초 의상 차림으로 해변의 ‘마텔로 탑-레스토랑-펍’ 등 블룸의 동선을 따라 순례에 나선다. 조이스가 소설의 배경을 6월 16일로 잡은 것은 그날이 아내 노라 버나클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날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블룸스데이’ 기념행사는 지난 3월 일찌감치 공식 개막, 8월까지 이어진다. 하이라이트는 ▲조이스가 빨간색, 파란색 잉크로 고쳐 쓴 ‘율리시즈’ 초고와 초판 전시 ▲영화 ‘블룸’ 개봉 ▲전 세계 학자 1000명이 참석, 조이스 관련 논문 400편을 발표하는 국제 심포지엄 등이다. ‘1만인을 위한 아침식사’도 마련된다. 메뉴는 콩팥 볶음. 소설에서 블룸이 ‘입천장에 희미한 오줌냄새가 풍기는 돼지 콩팥’을 먹는 장면을 본뜬 행사다.


▲ '율리시스' 초고

더블린은 말 그대로 ‘조이스의 도시’. 조이스 기념관이 3곳이고, 조이스 다리와 조이스 동상이 서 있다. 기념품 가게마다 조이스 상품도 가득하다. 거리 곳곳에는 ‘율리시즈’에 등장한다는 표식이 붙어 있다.

1904년 더블린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건너간 조이스는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 등에서 더블린과 아일랜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대문호가 자신의 고향을 ‘실패와 소란과 불행의 도시’라고 한탄했을 그때만 해도 아일랜드는 서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였다. 100년 후, 조이스를 포함한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이제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강국으로 꼽히고 있다.

(정재연 기자 whaud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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