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 The Bach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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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게리 시뇨르
주연 : 크리스 오도넬, 르네 젤위거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래 전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때 그 사람은 이제 막 장가를 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젠틀하고 순수해 보이는 타입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하는 상대와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도 프로포즈를 해야하는 상황에선 적지 않은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기껏 용기를 냈는데 "No"란 소리를 들어봐라. 그것을 도로 물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된 체면에 어디가 징징거리며 하소연 할 데도 없고(정말 없을까만), 상대에게 퇴짜를 맞았으니 언제 또 누구를 만나 새롭게 공을 들이고, 프로포즈를 해 결혼까지 골인을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실 난 그전까지 남자들에게 이런 과정이 스트레스가 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남자들은 프로포즈에서 퇴짜를 맞아도 되고, 여자의 실연은 큰 상처일 것이다.란 생각이 막연하게 나의 사고를 지배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당시론 남자를 이해하는 지평이 넓어진 것 같아 내심 나 자신에 대해 묘한 뿌듯함 까지 느끼곤 했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프로포즈를 할 때 용기있고, 남자답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온 남자 주인공 지미(크리스 오도넬)을 보라, 얼마나 치사한 방법으로 프로포즈를 하는지. 사실 알고 보면 프로포즈란 상당히 고도화된 전략적인 방법일 것이다. 일단 상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뒤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이겼어." 이런 청혼을 받고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꿀 바른 입술로 온갖 미사여구해도 될까 말까한 판국에 말이다.  

사실 지미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결혼이라는 것이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선택' 보단 강요가 많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묘한 떠밀림에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때부터 책임져야 하는 압박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이 영화는 그것을 말하기 위함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프로포즈'가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아주 위트있고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남자들의(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로포즈'는 '피터팬 신드룸'과 대립되는 경계선상쯤에 있다는 것을 나름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영화로는 줄리아 로버츠가 나왔던 <런어웨이 브라이드>가 있을 것 같다. 그 영화는 여자의 경계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대칭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결혼이 낭만적이고 분명 좋은 거지만(물론 그것도 살아봐야 아는 거지만), 프로포즈 받는 그 순간부터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지만 속으론, 내가 정말 이 결혼을 해야하는 것인가? 해도 되는 것인가? 잘 하는 것인가? 결혼식장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만 했을 때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구축한 세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까지의 삶을 구축해 왔던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롭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배우자와 함께.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지금까지의 세계는 나의 취향과 습관과 패턴과 성격까지 총망라된 것인데, 이대로도 좋았는데 새롭게 모든 것을 세워 나간다는 것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란 전제가 붙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결혼식장에 들어선 순간 도망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나마 이것은 나은 편이고 이해 받을 수도 있는(이해만 한다) 상황이다. 이 모든 상황이 싫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 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도 괜히 시크하고 쿨한 척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사랑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포기한 자일 수도 있다. 피터팬 신드룸을 영원히 깨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알을 깨는 아픔에 대한 통렬한 통찰을 하지 않았는가?  

   

사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는 영화는 또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인만큼 중간중간에 실소하게 만드는 장면도 꽤 있다. "네가 이겼어."라는 애매모호한 청혼을 할 정도라면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는 누구도 기대할 수가 없다. 누구든 나로 인해 상대가 기뻐하고 기꺼운 결혼을 해야 좋은 것이지 마지못해 해 주는 결혼은 김 새지 않겠는가? '이제 난 네거야. 네 맘대로 해'하는 것도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과 나의 의지는 접어둔채 그렇게 하겠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의 재미는 무엇보다 부자 할아버지의 다소 황당한 유언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즉 할아버지의 재산은 손자인 지미에게 물려주되 손자가 30살이 되는 생일 전에 결혼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미의 생일은 지금으로부터 꼭 하루 남았다. 그럴려면 지미가 "네가 이겼어." 라고 청혼했다 퇴짜 맞은 앤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사귀었던 여자들 아무라도 찾아내 청혼을 하고 생일 때까지 결혼을 해야 한다.   

사실 우리 전 세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세대만 해도 결혼해 아이낳고 평탄하게 가정을 꾸려 가는 것이 소박하고도 큰꿈이었다. 그것은 동서양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미의 할아버지도 살아생전 누누히 지미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가끔은 그것이 고루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 전 세대의 가족에 대한 보편적 사고 방식은 또 얼마나 심플하고도 노말한 가족 형태를 보여 주는가?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자꾸 새로운 대안을 제시 받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범해지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게다가 점점 원만한 결혼이 힘든 사회로 몰아 가고 있다. 해마다 결혼을 하는데 드는 비용과, 가정을 원만히 이끌어 가는데 드는 비용. 자녀를 원만히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산출하곤 하다. 예전엔 물 한 사발 떠 놓고 결혼했다는데, 이놈의 결혼이라는 것도 돈이 걸려서 있는 사람이나 하는 그야말로 '고귀한 행위'가 되고 말았다. 없는 사람은 꿈도 못 꾼다. 적자생존의 원리가 여기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지미가 자기가 사귀어 온 모든 여자로부터 퇴짜를 맞고 결국 신문에 광고를 내 사진에서처럼 많은 신부 후보로 부터 선택을 해 결혼하는 방식 말하자면 역전환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 후보는 저마다 자신이 지미에게 맞는 상대라며 자신을 선택해 줄 것을 강력히 청혼이 아닌 청원을 한다. 물론 저런 건 일종의 영화적 유희를 위한 것이라 실제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지만, 저 많은 여자들이 진짜 지미를 사랑해서 덤비는 것이겠는가? 지미의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려 하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치 돈독 오른 여자들을 빗대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오늘 날의 결혼의 대표적인 형태를 비꼬는 장면임에 틀림없다. 남자나 여자나 상대가 가진 조건을 얼마나 따지고 드는가? 그건 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남자나 여자나 자손 번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내 자식 없는 가운데서 가난하게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마냥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이 영화는 지미의 오랜 방황과 실수 끝에(사람이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 다더니 확실히 실수와 방황은 꼭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 "네가 이겼어"라고 말한 앤에게로 무사히 안착해 정말 앤이 이기는 해피 앤딩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첫번에 잘할 일이지 뭐 때문에 사서 고생이람. 하지만 그래도 또 영화가 아니겠는가? 분명 24시간 전의 지미와 24시간 후의 지미는 다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쫓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되겠지. 인생이란 또 그런 것이다. 뻔히 알아서 갈 수도 있는 길을 돌아서 가는 것.  

그런데 지금까지는 지미의 싯점을 많이 얘기했지만, 가리워져 있는 앤에게도 촛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실 지미는 그렇게 청혼하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돌이켜 앤에게 사과하려고 무척 노력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과와 더불어 다시 청혼하는 싯점을 맞이하기도 했다. 특히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각을 세웠던 앤의 마음도 다소 풀어졌고, 한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고도 했다. 즉 '너 하는 것 봐서'다. 하지만 어렵사리 다시 맞은 그  한번의 기회도 불발로 끝나 버린다. 이쯤되면 지미도 더 찌질해지는 거지만, 앤 역시도 두번의 좌절을 맞게 되니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인간인가? 의구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원래 영화의 법칙상, 성공을 위해선 한 번의 큰 성공을 위해 두 번의 실패를 그리란 법칙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만한 기회가 왔을 때 쭈빗쭈빗 망설이는 건 정말 좋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지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고. 

사실 그렇게 프로포즈 하는 것도 또 받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얼마나 복에 겨운지 알아야 한다.  

이 영화는 제목이 그럴싸 해서 보기 시작한 영화다. 그냥 진한 감동이 있는 사랑 이야기이길 바랬는데 로맨틱 코미디에 이런 제목라니. 조금은 뜨아하다. 그래도 나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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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My Blueberry 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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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같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오래 전, 감독의 <중경삼림>을 봐서 그럴까? 그 분위기가 많이 생각이 났다.  

마치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영상은 뛰어나지만 스토리는 평범하다. 

그런 의미에서 왕가위 감독은 아티스트라기 보단 스타일리스트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미국이라기 보단 대만이나 홍콩적 분위기에 미제 배우를 데려다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노라 존스는 아름답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 게 인도풍이란 느낌이 든다. 근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아버지가 인도 음악가더라. 그러니 인도 사람이 확실한 게지. 

그리고 주드로는 확실히 매력적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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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3-21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저 므흣한 포스터 좀 보라지.
저 사진은 또 어떻고! ㅎㅎㅎ
아니, 잠깐만, 근데 주드 로라구요!!!!!

stella.K 2010-03-22 11:22   좋아요 0 | URL
예. 그렇습니다만. 저 남자 분위기 있죠?^^
 
킬러들의 수다 - Guns &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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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입견이 무섭긴 무섭다. 흔히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는 선입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할 것 같은(또는 싫어하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선입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왜 그동안 장진을 외면 했을까? 무엇보다 난 원래 '유머'를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유머를 믿지 않다니...? 무엇보다 사람을 웃기느라 엎어치고, 매치고 하는 것들이 작위적이고. 그 작위적이란 말 또한 자연스럽지 않은 뭔가의 과장을 담고 있어서 진실되지 못하다. 그러니 그 유머에 속고 싶지 않은 것이다.(그래서 난 '개그 콘서트'를 매주 보지 않는다. 물론 그 프로를 볼 때 '유머'와의 기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면서...) 나에게 장진은, 아니 장진의 작품들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뿐이라면 또 괜찮다. 마초적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한때 조폭 영화가 대세였던 시절, 장진도 이에 질세라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폭을 미화시킨다는 일선의 반발도 있었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하는 상황에서 장신의 영화가 예쁘게 보일 리는 만무했다. 이렇게 난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난 사람들에게 '장진 코드' 별로 안 좋아해.라고 제법 냉소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면 보통 그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은 왜 싫어하냐며 그것의 좋은 것에 관해 설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장진 매니아는 설득 같은 거 하지 않는다. 나의 냉소만큼이나 쿨하다. 그 쿨함은 어떤 의밀까? '하긴 뭐 입 아프게 무슨 설득까지...?'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니가 장진을 알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또 간사하지? 어떻게 '장진 코드'가 나에겐 맞지 않는다며 콧바람을 휘날리던 내가 갑자기 장진이 좋아질 수 있다니. 그것은 작년 가을, 우연히 아는 사람과 함께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본 탓이다. 그것도 꼭 볼려고 해서 본 것이 아니었다. 보여주겠다던 사람이 자동차 극장을 가자는데 거기서 하는 프로가 유일하게 그것 하나였다. 그렇게 우연하게 장진과 새롭게 인연을 맺었고, 아, 정말 이 사람은 '꾼'이구나.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했다. 그놈의 어줍잖은 '유머'와 '조폭' 이미지만 아니었으면 조금 더 일찍 그를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그게 어디 그 사람 잘못인가? 그의 '유머'를 어줍잖게 본 내가 잘못이지. 


사실 킬러가 나오는 영화인 경우, 어떤 감독이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영화는 달라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이런 류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되지만,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 중 <영화는 영화>에서의 킬러로 나왔던 소지섭의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깃든 킬러의 모습은 또 묘하게 여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킬러를 잘 묘사하기로는 코엔 형제나 쿠엔틴 탈란티노를 따라 갈 수 있을까? 그들이 만드는 킬러의 캐릭터는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찌질하고 치사한 구석과 나름의 카리스마와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뭔가의 언발란스적 매력을 발산한다. 그것은 또 모든 감독들이 닮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 (누가 봐도) 쿠엔틴 탈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하게 하지만, 그러기엔 아주 세련되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장진이라도 말이다. 그냥 이 영화는 쿠엔틴 탈란티노에게 바치는 오마주쯤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리는 킬러의 이미지가 있다. 고독하고, 어딘가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어느 부분에선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당연 사람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겠지만), 또 그러느니만큼 나머지 부분에선 너무나도 허술한 이미지여서 생과 사의 공중 곡예를 하고 있구나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거기에 고독을 더하면 <영화는 영화>다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고, 거기에 코믹을 더하면 <조폭 마누라>나 본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킬러에 장진식 재담은 확실히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더구나 장진이 즐겨 차용하는 영화 속 연극을 보는 재미는 과연 저런 조합이 있을 수도 있구나 감탄해 마지않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엔 상연(신현준), 재영(정재영), 정우(신하균), 하연(원빈). 이렇게 4명의 킬러들이 나온다. 하연의 나래이션으로 진행되는 이들의 인물됨은 앞서 얘기했던 어느 부분에선 동물적 감각을 구사하지만, 어느 부분에선 영 젬병인 극과 극을 달린다. 그들은 그 부분에선 하나 같이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 넷이 한 여자를 동시에 모두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질 수 없는 대상이기에 모두 다 좋아할 수 있다는 공식 하나가 성립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지상파 방송국의 오영란이란 여자 아나운서를 좋아한다는 것. 이들 킬러들이 얼마나 얼간이냐면, 매일 같은 시간에 사이 좋게 나란히 TV를 본다. 그것은 오영란 아나운서가 앵커로서 뉴스를 전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뉴스의 내용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여자만을 보기 위해 똑 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오영란이 사람을 죽여 달라고 의뢰를 한다. 너무 위험에 하지 않겠다는 건 이들의 엄살. 의뢰인이 오영란이란 사실을 알고 그들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영란의 의뢰도 어렵긴 어렵다. 사람을 죽이 돼 되도록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많은 사람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죽게 해 달란다. 킬러가 사람을 죽일 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간 큰 부탁에 더 큰 간으로 응대하는 킬러다. 그것은 또한 확실히 감독의 역량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장진은 그의 주무기인 영화 속 연극 무대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영란이 죽여달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연극 <햄릿>에 나오는 주인공 역을 맡은 바로 자신의 애인을 죽여 달라는 것. '햄릿'이 끝에는 죽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만큼, 햄릿의 죽음은 그녀의 애인의 죽음이고, 그녀의 애인의 죽음은 곧 햄릿의 죽음이 된다. 얼마나 장렬하고도 멋진 피날레인가? 만일 내가 관객으로서 이것을 실제로 본다면 정말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피살된을 목도해서가 아니라 한편의 진짜 리얼한 연극을 보는 것이니 얼마나 재수(?)가 좋은가? 물론 그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진은 영화속에서 대리만족을 하게 해 줬다. 그만큼 장진의 상상력이 또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동시에 사방엔 이들을 잡으려고 혈안인 경찰과 검사가 쫙 깔렸다. 그들의 법망을 따돌리고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정말 공중 곡예라도 하는 느낌이 아닌가? 하지만 영화를 보는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뚫고 자신들의 미션을 성공시키는가?를 보는 것.  

이 영화에서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오영란의 애인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장면일 것이다. 그 장면과 효과가 뛰어나다. 그들 4명의 킬러들은 연극 뒤 죽음의 스텝이 되어서 너무나 완벽하고 또한 너무나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바로 그들이 극장에 나타나서 임무를 완수하기까지의 시퀀스는 다시 봐도 훌륭하다. 그때의 영상 효과와 흐르는 음악은 정말 압권이다. 오죽했으면 이 4명의 킬러를 잡기 위해 혈안이었던 조 검사 역의 정진영이 그들의 임무가 성공함에 따라 결국 자신는 임무는 실패했음에도 그들에게 박수를 쳐줬겠는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장진식 유머'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즉 그의 유머는 언제 나오는가?다. 그의 일련의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그의 작품엔 유머가 빠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유머를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절대로 무겁지 않다. 심각하고 무거울 것 같은  장면도 유머로 빠지거나, 유머로 비튼다. 이 영화의 경우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을 일부러 심각하게 만들고, 거기에 화룡점정하듯 유머 한방울을 똑 떨어 뜨린다. 예를들면, 그렇게 예쁜 오영란이 사랑하던 애인을 죽일 때는 사랑에 한이 맺혀 정말 죽이지 않으면 안될만한 뭔가의 중대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정공법이라면 그 이유를 푸는데 중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죽이려 하는지에 관해선 관객도 모르고, 4명의 킬러도 알 수가 없다. 프로 킬러일수록 '어떻게 죽여드릴까?'에 초점을 맞추지 '왜 죽일려고 그러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단지 의뢰인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춘다. 즉, 오영란은, 자신은 남자 B형은 너무나 싫어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덫이되어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됐고 오늘 날엔 죽일 수 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이런 젠장, 남자 B형이 무슨 죄인가?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관객을 빵 웃게 만든다. 그뿐인가? 말미에 가선 우리의 큰 형님 상연이 어깨를 조 검사의 총에 맞아 피를 흘려 수혈을 해야 하는데 나머지들은 처음엔 혈액형이 뭔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B형이란 걸 기억해 냈고, 동시에 나머지 셋도 B형이라는 것을 알고 수혈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된다. 어떻게 남자 넷이 오영란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B형이란 말인가? 정말 빵꾸똥꾸다. 

결국 내가 초두에 언급했던 나의 '유머'를 믿지 않는 그 믿음은 사이비인 것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나는 영화 내내 장진식 유머에 감염되어 킥킥대고 웃으며 봤으니까. 만일 장진 교주가 "너희가 나의 유머를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꼼짝없이, "아멘. 믿습니다." 할 수 밖엔 없다.  

결국 안티에서 매니아는 이런 식으로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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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장진 코미디에 꽂혔군요.
축하드려요^^
저도 이 영화, 그냥 일종의 편견으로 안 본 건데 볼까요?
원빈도 나오군요.ㅎㅎ

stella.K 2010-03-24 20:29   좋아요 0 | URL
코미디라기 보단 장진 영화에 꽂힌 거죠.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연구 대상이 될거 같아요.^^
 
순애보 - Asako in Ruby 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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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은 왜 이 영화를 칭찬했던 걸까? 밋밋하고, 지루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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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여자 - Someone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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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장진
주연 : 정재영, 이나영


제목은 카피에서 썼던 말이다. 정말 영화를 다 보고 보니 과연 그 말이 맞다 싶기도 하다.  

아무리 사랑은 타이밍이라지만, 타이밍을 만드는 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속 한이연(이나영 분)처럼 적절히 타이밍을 만들어 갈 줄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장진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가장 밋밋한 영화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글쎄, 본 중엔 잔잔한 재미는 있었지만 아주 많이 감동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은 잘 표현이 된 것 같기는 하다. 

사랑에 대한 수 많은 오해와 억측과, 상상과 뭔지 모를 말들을 동치성(정재영 분)을 통해 잘도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 낸다. 그건 솔직히 보는 나도 알아 듣지 못하겠다. 하긴 뭐, 사랑에 정답이 어딨겠으며 말로 설명이 되는 것이던가? 그런데 감독은 그에 대한 상상력의 표현은 극대화시킨다. 이를테면, 사랑은 전봇대의 전류를 통해 사랑 때문에 죽어가는 여자를 살린다는 엉뚱한 발상이랄지,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 장면에서는, 어느 사랑하는 여자가 교통사고로 인해 차에 튕겨져 공중에 떠오를 때  순간이 영원처럼 길어지면서 나누는 대화 같은 건 정말 그 표현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엔딩 장면은 확실히 감독이 이제까지 잘 이어 온 사랑에 대한 상상을 의도적으로 깨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이연이 동치성을 사랑하지만 그래서 귀엽고 예쁜 스토커가 되기도하고 상대방을 자극해 사랑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동치성이 물어 봤던 걸 또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하는 것을 보는 장면에서 동치성이 사랑에 그다지 익숙한 사람은 아니란 걸 볼 수가 있는다. 이런 사람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사람 맞나? 나는 상대의 실체보다 상대를 보고 그런 내 상상속의 그를 더 사랑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깨어지기 쉽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도 어쨌든 영화는 정말 좋다. 영화속에서 연극적 분위기를 삽입시킨 점도 좋고. 장진에게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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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15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봤는데..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이나영, 정재영, 장진이 좋아졌던 영화이기도 해요.^^

stella.K 2010-03-15 10:48   좋아요 0 | URL
요즘 시간 되는대로 장진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인데
제가 참 이 사람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의 유머가 좀 작위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 정말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해요.
감탄연발이죠. 오히려 나 자신이 작위적으로 영화를 모른척 한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