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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 The Bachelo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게리 시뇨르 |
주연 : 크리스 오도넬, 르네 젤위거 |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래 전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때 그 사람은 이제 막 장가를 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젠틀하고 순수해 보이는 타입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하는 상대와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도 프로포즈를 해야하는 상황에선 적지 않은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기껏 용기를 냈는데 "No"란 소리를 들어봐라. 그것을 도로 물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된 체면에 어디가 징징거리며 하소연 할 데도 없고(정말 없을까만), 상대에게 퇴짜를 맞았으니 언제 또 누구를 만나 새롭게 공을 들이고, 프로포즈를 해 결혼까지 골인을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실 난 그전까지 남자들에게 이런 과정이 스트레스가 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남자들은 프로포즈에서 퇴짜를 맞아도 되고, 여자의 실연은 큰 상처일 것이다.란 생각이 막연하게 나의 사고를 지배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당시론 남자를 이해하는 지평이 넓어진 것 같아 내심 나 자신에 대해 묘한 뿌듯함 까지 느끼곤 했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프로포즈를 할 때 용기있고, 남자답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온 남자 주인공 지미(크리스 오도넬)을 보라, 얼마나 치사한 방법으로 프로포즈를 하는지. 사실 알고 보면 프로포즈란 상당히 고도화된 전략적인 방법일 것이다. 일단 상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뒤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이겼어." 이런 청혼을 받고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꿀 바른 입술로 온갖 미사여구해도 될까 말까한 판국에 말이다.
사실 지미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결혼이라는 것이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선택' 보단 강요가 많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묘한 떠밀림에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때부터 책임져야 하는 압박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이 영화는 그것을 말하기 위함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프로포즈'가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아주 위트있고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남자들의(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로포즈'는 '피터팬 신드룸'과 대립되는 경계선상쯤에 있다는 것을 나름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영화로는 줄리아 로버츠가 나왔던 <런어웨이 브라이드>가 있을 것 같다. 그 영화는 여자의 경계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대칭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결혼이 낭만적이고 분명 좋은 거지만(물론 그것도 살아봐야 아는 거지만), 프로포즈 받는 그 순간부터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지만 속으론, 내가 정말 이 결혼을 해야하는 것인가? 해도 되는 것인가? 잘 하는 것인가? 결혼식장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만 했을 때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구축한 세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까지의 삶을 구축해 왔던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롭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배우자와 함께.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지금까지의 세계는 나의 취향과 습관과 패턴과 성격까지 총망라된 것인데, 이대로도 좋았는데 새롭게 모든 것을 세워 나간다는 것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란 전제가 붙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결혼식장에 들어선 순간 도망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나마 이것은 나은 편이고 이해 받을 수도 있는(이해만 한다) 상황이다. 이 모든 상황이 싫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 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도 괜히 시크하고 쿨한 척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사랑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포기한 자일 수도 있다. 피터팬 신드룸을 영원히 깨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알을 깨는 아픔에 대한 통렬한 통찰을 하지 않았는가?
사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는 영화는 또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인만큼 중간중간에 실소하게 만드는 장면도 꽤 있다. "네가 이겼어."라는 애매모호한 청혼을 할 정도라면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는 누구도 기대할 수가 없다. 누구든 나로 인해 상대가 기뻐하고 기꺼운 결혼을 해야 좋은 것이지 마지못해 해 주는 결혼은 김 새지 않겠는가? '이제 난 네거야. 네 맘대로 해'하는 것도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과 나의 의지는 접어둔채 그렇게 하겠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의 재미는 무엇보다 부자 할아버지의 다소 황당한 유언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즉 할아버지의 재산은 손자인 지미에게 물려주되 손자가 30살이 되는 생일 전에 결혼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미의 생일은 지금으로부터 꼭 하루 남았다. 그럴려면 지미가 "네가 이겼어." 라고 청혼했다 퇴짜 맞은 앤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사귀었던 여자들 아무라도 찾아내 청혼을 하고 생일 때까지 결혼을 해야 한다.
사실 우리 전 세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세대만 해도 결혼해 아이낳고 평탄하게 가정을 꾸려 가는 것이 소박하고도 큰꿈이었다. 그것은 동서양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미의 할아버지도 살아생전 누누히 지미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가끔은 그것이 고루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 전 세대의 가족에 대한 보편적 사고 방식은 또 얼마나 심플하고도 노말한 가족 형태를 보여 주는가?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자꾸 새로운 대안을 제시 받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범해지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게다가 점점 원만한 결혼이 힘든 사회로 몰아 가고 있다. 해마다 결혼을 하는데 드는 비용과, 가정을 원만히 이끌어 가는데 드는 비용. 자녀를 원만히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산출하곤 하다. 예전엔 물 한 사발 떠 놓고 결혼했다는데, 이놈의 결혼이라는 것도 돈이 걸려서 있는 사람이나 하는 그야말로 '고귀한 행위'가 되고 말았다. 없는 사람은 꿈도 못 꾼다. 적자생존의 원리가 여기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지미가 자기가 사귀어 온 모든 여자로부터 퇴짜를 맞고 결국 신문에 광고를 내 사진에서처럼 많은 신부 후보로 부터 선택을 해 결혼하는 방식 말하자면 역전환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 후보는 저마다 자신이 지미에게 맞는 상대라며 자신을 선택해 줄 것을 강력히 청혼이 아닌 청원을 한다. 물론 저런 건 일종의 영화적 유희를 위한 것이라 실제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지만, 저 많은 여자들이 진짜 지미를 사랑해서 덤비는 것이겠는가? 지미의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려 하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치 돈독 오른 여자들을 빗대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오늘 날의 결혼의 대표적인 형태를 비꼬는 장면임에 틀림없다. 남자나 여자나 상대가 가진 조건을 얼마나 따지고 드는가? 그건 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남자나 여자나 자손 번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내 자식 없는 가운데서 가난하게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마냥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이 영화는 지미의 오랜 방황과 실수 끝에(사람이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 다더니 확실히 실수와 방황은 꼭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 "네가 이겼어"라고 말한 앤에게로 무사히 안착해 정말 앤이 이기는 해피 앤딩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첫번에 잘할 일이지 뭐 때문에 사서 고생이람. 하지만 그래도 또 영화가 아니겠는가? 분명 24시간 전의 지미와 24시간 후의 지미는 다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쫓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되겠지. 인생이란 또 그런 것이다. 뻔히 알아서 갈 수도 있는 길을 돌아서 가는 것.
그런데 지금까지는 지미의 싯점을 많이 얘기했지만, 가리워져 있는 앤에게도 촛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실 지미는 그렇게 청혼하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돌이켜 앤에게 사과하려고 무척 노력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과와 더불어 다시 청혼하는 싯점을 맞이하기도 했다. 특히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각을 세웠던 앤의 마음도 다소 풀어졌고, 한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고도 했다. 즉 '너 하는 것 봐서'다. 하지만 어렵사리 다시 맞은 그 한번의 기회도 불발로 끝나 버린다. 이쯤되면 지미도 더 찌질해지는 거지만, 앤 역시도 두번의 좌절을 맞게 되니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인간인가? 의구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원래 영화의 법칙상, 성공을 위해선 한 번의 큰 성공을 위해 두 번의 실패를 그리란 법칙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만한 기회가 왔을 때 쭈빗쭈빗 망설이는 건 정말 좋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지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고.
사실 그렇게 프로포즈 하는 것도 또 받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얼마나 복에 겨운지 알아야 한다.
이 영화는 제목이 그럴싸 해서 보기 시작한 영화다. 그냥 진한 감동이 있는 사랑 이야기이길 바랬는데 로맨틱 코미디에 이런 제목라니. 조금은 뜨아하다. 그래도 나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