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수다 - Guns & Talk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선입견이 무섭긴 무섭다. 흔히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는 선입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할 것 같은(또는 싫어하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선입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왜 그동안 장진을 외면 했을까? 무엇보다 난 원래 '유머'를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유머를 믿지 않다니...? 무엇보다 사람을 웃기느라 엎어치고, 매치고 하는 것들이 작위적이고. 그 작위적이란 말 또한 자연스럽지 않은 뭔가의 과장을 담고 있어서 진실되지 못하다. 그러니 그 유머에 속고 싶지 않은 것이다.(그래서 난 '개그 콘서트'를 매주 보지 않는다. 물론 그 프로를 볼 때 '유머'와의 기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면서...) 나에게 장진은, 아니 장진의 작품들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뿐이라면 또 괜찮다. 마초적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한때 조폭 영화가 대세였던 시절, 장진도 이에 질세라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폭을 미화시킨다는 일선의 반발도 있었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하는 상황에서 장신의 영화가 예쁘게 보일 리는 만무했다. 이렇게 난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난 사람들에게 '장진 코드' 별로 안 좋아해.라고 제법 냉소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면 보통 그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은 왜 싫어하냐며 그것의 좋은 것에 관해 설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장진 매니아는 설득 같은 거 하지 않는다. 나의 냉소만큼이나 쿨하다. 그 쿨함은 어떤 의밀까? '하긴 뭐 입 아프게 무슨 설득까지...?'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니가 장진을 알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또 간사하지? 어떻게 '장진 코드'가 나에겐 맞지 않는다며 콧바람을 휘날리던 내가 갑자기 장진이 좋아질 수 있다니. 그것은 작년 가을, 우연히 아는 사람과 함께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본 탓이다. 그것도 꼭 볼려고 해서 본 것이 아니었다. 보여주겠다던 사람이 자동차 극장을 가자는데 거기서 하는 프로가 유일하게 그것 하나였다. 그렇게 우연하게 장진과 새롭게 인연을 맺었고, 아, 정말 이 사람은 '꾼'이구나.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했다. 그놈의 어줍잖은 '유머'와 '조폭' 이미지만 아니었으면 조금 더 일찍 그를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그게 어디 그 사람 잘못인가? 그의 '유머'를 어줍잖게 본 내가 잘못이지. 


사실 킬러가 나오는 영화인 경우, 어떤 감독이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영화는 달라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이런 류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되지만,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 중 <영화는 영화>에서의 킬러로 나왔던 소지섭의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깃든 킬러의 모습은 또 묘하게 여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킬러를 잘 묘사하기로는 코엔 형제나 쿠엔틴 탈란티노를 따라 갈 수 있을까? 그들이 만드는 킬러의 캐릭터는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찌질하고 치사한 구석과 나름의 카리스마와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뭔가의 언발란스적 매력을 발산한다. 그것은 또 모든 감독들이 닮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 (누가 봐도) 쿠엔틴 탈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하게 하지만, 그러기엔 아주 세련되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장진이라도 말이다. 그냥 이 영화는 쿠엔틴 탈란티노에게 바치는 오마주쯤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리는 킬러의 이미지가 있다. 고독하고, 어딘가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어느 부분에선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당연 사람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겠지만), 또 그러느니만큼 나머지 부분에선 너무나도 허술한 이미지여서 생과 사의 공중 곡예를 하고 있구나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거기에 고독을 더하면 <영화는 영화>다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고, 거기에 코믹을 더하면 <조폭 마누라>나 본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킬러에 장진식 재담은 확실히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더구나 장진이 즐겨 차용하는 영화 속 연극을 보는 재미는 과연 저런 조합이 있을 수도 있구나 감탄해 마지않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엔 상연(신현준), 재영(정재영), 정우(신하균), 하연(원빈). 이렇게 4명의 킬러들이 나온다. 하연의 나래이션으로 진행되는 이들의 인물됨은 앞서 얘기했던 어느 부분에선 동물적 감각을 구사하지만, 어느 부분에선 영 젬병인 극과 극을 달린다. 그들은 그 부분에선 하나 같이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 넷이 한 여자를 동시에 모두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질 수 없는 대상이기에 모두 다 좋아할 수 있다는 공식 하나가 성립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지상파 방송국의 오영란이란 여자 아나운서를 좋아한다는 것. 이들 킬러들이 얼마나 얼간이냐면, 매일 같은 시간에 사이 좋게 나란히 TV를 본다. 그것은 오영란 아나운서가 앵커로서 뉴스를 전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뉴스의 내용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여자만을 보기 위해 똑 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오영란이 사람을 죽여 달라고 의뢰를 한다. 너무 위험에 하지 않겠다는 건 이들의 엄살. 의뢰인이 오영란이란 사실을 알고 그들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영란의 의뢰도 어렵긴 어렵다. 사람을 죽이 돼 되도록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많은 사람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죽게 해 달란다. 킬러가 사람을 죽일 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간 큰 부탁에 더 큰 간으로 응대하는 킬러다. 그것은 또한 확실히 감독의 역량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장진은 그의 주무기인 영화 속 연극 무대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영란이 죽여달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연극 <햄릿>에 나오는 주인공 역을 맡은 바로 자신의 애인을 죽여 달라는 것. '햄릿'이 끝에는 죽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만큼, 햄릿의 죽음은 그녀의 애인의 죽음이고, 그녀의 애인의 죽음은 곧 햄릿의 죽음이 된다. 얼마나 장렬하고도 멋진 피날레인가? 만일 내가 관객으로서 이것을 실제로 본다면 정말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피살된을 목도해서가 아니라 한편의 진짜 리얼한 연극을 보는 것이니 얼마나 재수(?)가 좋은가? 물론 그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진은 영화속에서 대리만족을 하게 해 줬다. 그만큼 장진의 상상력이 또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동시에 사방엔 이들을 잡으려고 혈안인 경찰과 검사가 쫙 깔렸다. 그들의 법망을 따돌리고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정말 공중 곡예라도 하는 느낌이 아닌가? 하지만 영화를 보는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뚫고 자신들의 미션을 성공시키는가?를 보는 것.  

이 영화에서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오영란의 애인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장면일 것이다. 그 장면과 효과가 뛰어나다. 그들 4명의 킬러들은 연극 뒤 죽음의 스텝이 되어서 너무나 완벽하고 또한 너무나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바로 그들이 극장에 나타나서 임무를 완수하기까지의 시퀀스는 다시 봐도 훌륭하다. 그때의 영상 효과와 흐르는 음악은 정말 압권이다. 오죽했으면 이 4명의 킬러를 잡기 위해 혈안이었던 조 검사 역의 정진영이 그들의 임무가 성공함에 따라 결국 자신는 임무는 실패했음에도 그들에게 박수를 쳐줬겠는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장진식 유머'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즉 그의 유머는 언제 나오는가?다. 그의 일련의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그의 작품엔 유머가 빠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유머를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절대로 무겁지 않다. 심각하고 무거울 것 같은  장면도 유머로 빠지거나, 유머로 비튼다. 이 영화의 경우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을 일부러 심각하게 만들고, 거기에 화룡점정하듯 유머 한방울을 똑 떨어 뜨린다. 예를들면, 그렇게 예쁜 오영란이 사랑하던 애인을 죽일 때는 사랑에 한이 맺혀 정말 죽이지 않으면 안될만한 뭔가의 중대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정공법이라면 그 이유를 푸는데 중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죽이려 하는지에 관해선 관객도 모르고, 4명의 킬러도 알 수가 없다. 프로 킬러일수록 '어떻게 죽여드릴까?'에 초점을 맞추지 '왜 죽일려고 그러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단지 의뢰인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춘다. 즉, 오영란은, 자신은 남자 B형은 너무나 싫어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덫이되어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됐고 오늘 날엔 죽일 수 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이런 젠장, 남자 B형이 무슨 죄인가?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관객을 빵 웃게 만든다. 그뿐인가? 말미에 가선 우리의 큰 형님 상연이 어깨를 조 검사의 총에 맞아 피를 흘려 수혈을 해야 하는데 나머지들은 처음엔 혈액형이 뭔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B형이란 걸 기억해 냈고, 동시에 나머지 셋도 B형이라는 것을 알고 수혈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된다. 어떻게 남자 넷이 오영란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B형이란 말인가? 정말 빵꾸똥꾸다. 

결국 내가 초두에 언급했던 나의 '유머'를 믿지 않는 그 믿음은 사이비인 것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나는 영화 내내 장진식 유머에 감염되어 킥킥대고 웃으며 봤으니까. 만일 장진 교주가 "너희가 나의 유머를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꼼짝없이, "아멘. 믿습니다." 할 수 밖엔 없다.  

결국 안티에서 매니아는 이런 식으로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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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장진 코미디에 꽂혔군요.
축하드려요^^
저도 이 영화, 그냥 일종의 편견으로 안 본 건데 볼까요?
원빈도 나오군요.ㅎㅎ

stella.K 2010-03-24 20:29   좋아요 0 | URL
코미디라기 보단 장진 영화에 꽂힌 거죠.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연구 대상이 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