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1disc)
임필성 감독, 천정명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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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이름이 낮설지가 않았다. 누구였더라...? 그래서 일부러 그의 필모그래필을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역시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렇게 이름이 낮설지가 않으니. 그나마 이 영화도 얼마 전, 모 인터넷 TV에서 천정명이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원래 호러나 그로테스크한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이 영화도 개봉 당시에도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어 모르고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의 눈을 끌었던 건, 천정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은원재나 심은경 특히 진지희의 어렸을 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아이들 역시 귀엽다. 그리고 연기를 꽤나 잘한다. 특히 진지희는 정말...! 난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은 이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제 너무 많이(?) 커 버렸다. 얼마 전, M 본부의 사극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문근영의 아역으로 나왔는데 이젠 아역이란 말이 안 어울릴만큼 성숙해 있었다. 몇 년 전, 같은 방송국의 모 시트콤에서 빵구똥구를 외쳐댔던 그 진지희가 맞나 싶을 정도다. 

 

영화는 대체로 볼만하다.

그로테스크하더라도 '헨젤과 그레텔'이란 동화적 이미지와 잔혹의 이미지를 나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저 세 명의 아이들의 연기도 예사롭지 않다. 한마디로 이 영화가 개봉 당시 주목 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영화의 메시지도 뭐 그만하면 전달력이 아주 나쁜 것도 아니다. 글쎄,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내가 볼 때 이 영화는 뭐 얼핏 보면 아동학대를 다룬 듯도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어른아이'를 다루고 있지 않나 싶다.

몸은 어른인데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아는 어린 아이를 벗지 않은 것이다. 특히 어렸을 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쉽게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른아이'는 그렇게 학대를 당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향은 아닌 것 같다. 누구든 자라면서 어떤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러한 면들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간의 내면을 영화는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아쉽다. 시간여행이란 익숙한 또는 한번쯤 보았을 방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지 않아서일까? 연출이나 무대 셋트 디자인은 나름 만족스러운데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그게 뭘까?

그래도 뭐 봐서 나쁠 것은 없다. 난 저 세 아역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으니까. 이렇게 넓디 넓은 영화의 바다에서 괜찮은 영화를 건져 올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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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링
유하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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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의 작품을 대체로 좋아한다.

그가 다루는 주제의식이 꼭 나와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보여져서 영화의 선택을 망설이지 않게 한다.

영화 '하울링'을 비교적 늦게 챙겨 봤다(그래봐야 1년 늦은 것이다. 게으른 나로선 뭐 그 정도면 아주 늦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왜 하울링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영화에서 뭔가를 놓치고 본 것이 있었을까? 분명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다 보도록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영화에 나오는 살인개의 이름일까 생각했지만, 그 개의 이름은 '질풍이'다. 

나름 용맹스럽고 잘 생긴 늑대개에게 '질풍'이란 이름이 어울리기는 하다. 하지만 난 역시 동물애호가로서, 동물 고생시키는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단 시간 내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좋은 조건의 영화가 몇 있을 텐데, 그 중 하나가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과 교감시키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 영화는 대체로 실패하지 않고, 적어도 본전은 뽑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고나면 꼭 이렇게 해야하는 건가? 뭔가 속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체로,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해피엔딩은 거의 없다. 인간과 더 없는 사랑과 우정을 나누다가 장렬하게 죽어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의 짠함을 증폭시킨다. 이 영화도 그런 공식의 영화가 아니길 내심 바랬는데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다.

하긴, 그럴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아 아무나 죽이지 않고 꼭 죽여야 할 사람만(이 죽여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주관적인 기준이지, 절대 선과 악의 기준은 아니다) 죽인다고 해도, 살인견은 살인견이다. 사람을 죽인 개를 인간이 그냥 보고 넘길 리 없다. 누군가에 의해서 사살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 송강호에 의해 죽지이지 않는가. 

 

충무로에서 중년의 배우치고 가장 '핫'한 배우하면 역시 김윤석과 함께 송강호일 것이다. 나 역시 그가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유쾌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비록 그 영화가 꼭 유쾌한 것은 아니어도 배우 자체는 유쾌하지 않은가?). 감독이 송강호를 점찍었다는 건 역시 최선의 선택은 아닐까 싶다. 거기에 함께 나오는 이나영.

 

 

 

 

 

초짜 형사로 나오는 그녀로서는 나름 작지 않은 도전은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나영은 청순의 아이콘 아니던가. 거기에 형사라고 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 뛰어 들었다.  하긴, 내가 봐도 형사의 세계에 여자들이 뛰어 든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이 누구인가? 뭐든 남녀를 구별하는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족속들 아닌가?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형사계에 정말 여자가 없는 걸까? 왜 형사라는 직업에 남자들은 여자와 함께 일하는 걸 꺼림하게 여기는 걸까? 뭐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한참 오래 전에,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의 은사님은 남자들이 산을 오를 때 여자들과 함께 오르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함께 오르면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긴다고. 다행히도 내가 그 말을 들은 건 20세기가 막 지고있을 무렵이었으니 들어 둘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어디선가 공공연히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하다고 믿는다면 그저 속설 정도로 알아는 두겠지. 요즘엔 여자가 중장비도 모는 마당인데 뭔들 못하겠는가.

 

몇 년 전, 시나리오를 공부한답시고 한동안 스터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첫 모임에 나가는데 여자는 나 혼자고 남자들만 댓 명이 모여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자들을 처음 대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때 따라 남자의 거칠면서도 시커먼 기운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껴 그 기에 한동안 좀 눌렸던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이나영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그때 생각이 확 났다.

 

확실히 남자의 기와 여자의 기가 다른 거겠지. 그래서 음양오행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섞여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범인을 쫓느라 늘 긴장해야 할 거친 형사들의 세상에서 이나영 같이 여리여리한 신참 형사가 들어오면 심란스럽기도 하고, 산란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런 남자들의 세계를 감히 여자가 넘 보나 하다가도, 바짝 날이 선 남자의 기를 이 신참 형사가 흐려놓을 것만 같아 묘한 긴장을 해야한다는 것도 묘하게 신경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형사의 세계가 거칠고, 남자들을 대표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한다고 누가 말하던가? 어느 분야에서든 남자의 우직함, 동물 같은 직감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성의 섬세함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이것은 형사의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은연 중 이나영을 내세워 이것을 말하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종반을 향해 갈수록 증명이라도 하듯 이나영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난 여기서, 감독 유하가 여성을 보는 관점이 나름 긍정적이고, 존중하는 사람은 아닐까 그런 느낌을 살짝 갖게 만들었다. 진짜 그런지는 내가 그 사람을 못 만났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교감'이란 말이 나오는데 상당히 의미있게 와 닿았다. 영화에선 개를 훈련시킬 때 훈련자와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나오던데, 감독은 그뿐 아니라 영화 전체를 통해 진정한 영혼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을 말하려 했던 건 아닐까? 초짜인데다 여자였기 때문에 무시 당해야 했던 이나영을 통해 그 때마다그녀가 느껴야 했던 모멸감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느낌이다. 그래서도 감독이 일부러 여리여리한 이나영이를 캐스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멸감과 분노를 더 느껴보라고. 하지만 그러기만 했다면 영화는 영화가 아닐 것이다. 끝까지 자기 임무를 완수하려고 한 나름의 강인함을 보여줘서 배우는 영화에서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하다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느 날 투견장을 기웃거리다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나는 보는 사람으로서 감독의 의도가 뭐였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처럼 그의 삐딱한 시선이 마음에 든다. 그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니까.

사실 영화 곳곳에서도 생각해 볼만한 요소들을 감독이 여기저기 많이 심어놓았다. 예를들며, 속을 썩히는 송강호의 아들을 보면서, 왜 요즘 사람들이 자식을 안 낳고 개를 키우려 하는 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개는 인간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또 그 뒤에 보면, 그 개가 어떤 엄마 없는 아이에겐 위로와 행복을 주기도 한다. 개와 함께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해 하는 아버지. 그렇다면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미리 실망해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뭔가 빠져 보인다. 물론 개를 어떤 목적으로 키우던  이것이 사람의 보편적인 모습인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복수의 칼날을 위해 동물을 또는 제3의 존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확실히 비윤리적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위해 동물을 쓰는 것도 왠지 도덕적여 보이지는 않는다(이 영화는 양날의 칼이었을까?) 하긴, 언제나 영화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것을 비판하는 건 의미가 없어보인다. 단지 그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들이 측은하다는 거지. 하지만 그건 또 모를 일이다. 출연한 동물은 좋아라 할지. 인간처럼 말을 못하니 알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의 백미는 아무래도 엔딩 부분에서 질풍이와 이나영의 오토바이 추격신은 아닐까 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작품인데, 왜 그렇게 평점이 짠지 모르겠다. 내가 볼 땐 아주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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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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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얼마 전 동명의 책을 (선물 받게 되어)먼저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극장 상영 때 보지 못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고, DVD가 나오면 꼭 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엊그제 그 소망을 이루었다. 

 

언제나 그렇듯, 원작이 있는 영화인 경우 영화를 보면 책을 읽고 싶고, 책을 먼저 읽게되면 영화를 보고 싶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래서 두 가지를 다 이루게 되면 분명 어느 한쪽은 기울게 마련이다. 즉 원작이 좋으면 영화가 좀 기울거나, 원작이 안 좋으면 영화가 좋거나. 물론 여기엔 둘 다 좋거나, 둘 다 나쁜 경우는 거의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책으로 읽었을 때는 작가가 나름 조선시대 궁중 생활사를 작품속에서 잘도 고증해 냈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왕의 변기인 매화틀이나 이를 담당하는 상궁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왕의 건강을 책임지는 당시의 의관들이 매일 왕의 매화를 직접 맛 봤다는 것이 놀라웠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필치를 읽어내는 맛도 남달랐다.나름 우아하고 세련됐다고나 할까? 인물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작가가 너무 좋아서 그의 나머지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엔 어떤 건 벌써 절판이 된 작품도 있어 좀 놀라웠다. 어쨌거나 글은 확실히 긴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고, 상상력을 펼치기엔 더 없이 좋다. 더구나 몇몇 에피소드는 영화로는 어떻게 표현됐을까 궁금했다. 특히 이미 말한 광해의 매화틀이나, 왕의 매화라고 더러운 줄도 모르고 기꺼이 맛을 보는 의관들이 어떻게 표현됐을지 궁금해졌다. 광해의 매화라고는 해도 또 이병헌의 그것이기도 하지 않는가?ㅋ

 

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남는 건 그런 것이다. 아무리 가짜여도 이런 왕은 있을 수 없으며, 왕의 역사는 곧 찬탈의 역사며, 왕좌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여전하고, 역시 왕과 양반들의 무능함을 또 한 번 보는 것 같아 아무리 팩션이라고는 해도 씁쓸했다. 

 

 

그런데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듯, 같은 작품을 영화로 보니 감회가 새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막연하던 것이 더 뚜렷해지는 것도 있고, 아쉬운 장면도 있다. 예를 들면, 책으로 읽으면서 좋았던 것들이 막상 영화로는 획획 지나가는 느낌이어서 왜 이렇게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나가는 거지? 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긴요하게 잡아야 할 장면도 너무 밋밋하게 지나가 버리고.

  

그래도 이 영화는 엔딩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다고 보여진다. 감독이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기는 나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어찌보면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원작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연출자의 무능이란 약간의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가 원작자라면 나는 연출자가 내 작품 그대로를 연출하기 보다 연출자 나름의 해석으로 더 멋있게 표현해 주길 바랄 것이다. 반대로, 내 작품을 연출에서 잘 못 살리면 그 사람하고는 더 이상 상종을 하지 않게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원칙적으론 원작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 해석은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지금도 기존에 있어왔던 작품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재탄생되는 마당에 원작자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고 어찌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아마도 이 작품의 원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해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뭐 그 정도면 잘 만든 것 아닌가?

 

그런데, 나 개인적으론 영화는 그래도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책이라면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느낌인데 말이다. 그게 뭘까? 어찌보면 이 작품은 역사 펙션의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는 노골적인 피의 이미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거의 영화 말미에 하선을 도망가게 만들고 도부장이 그를 쫓는 장수들과 싸우는 장면은 어쩔 수 없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은 모두 풀샷으로 찍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런 것이었나? 역사는 어차피 찬탈의 역산데 피 흘리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것에서 약간의 허탈감이 있었다는 것? 나 역시 어떤 영화에서건 피 흘리는 장면은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난 그런 거 보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사관(思觀)이 있었던 걸까?

 

이 작품은 (원작을 포함해서)확실히 차별화된 뭔가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작품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도 같다. 그런데 서글픈 건, 현실에서는 없고, 가짜 또는 이상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를 위로해 주거나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현실에서의 광해를 보자. 그는 왕이 되어서도 언제 자신이 죽을지 몰라 불안해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편집광으로 나온다. 때문에 그의 성격은 포악하고, 찔러서 피도 안 나오게 생겼다. 더구나 그는 안 상궁을 은밀히 만나고 그녀에게서 마약도 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게다가 양귀비를 태운 공기를 마셔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것으로 봐 실제의 광해는 현명한 사고와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은유했던 건 아닌지? 무엇보다 처남인 유종호의 결백을 알면서도 당시의 정사의 늑대들에게 내줘야하지 않느냐고까지 한다. 물론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런데 비해 가짜 광해는 한마디로 가슴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다. 광해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광해를 연기해야 했던 하선이 시간이 가면서 가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진심이 있었기에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가짜 광해야 말로 진짜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진짜 광해는 그 시대 한 사람만 존재했는가? 그렇지 않다. 모습만 바뀌었고, 정도만 다르다뿐 우리가 아는 광해는 광해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다. 자신이 왕이고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권력에만 아부할 줄 알지 진정으로 백성들의 소리엔 귀기울일 줄 몰랐다. 그것은 그 조선시대 거쳐 오늘 날에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왕에게 거는 백성의 소망은 소박하기 이를데 없다. 어미의 생사 확인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부하가 실수하더라고 책망치 않고 다독임을 받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누군가에게로부터 인정 받고, 위로 받았다면 그 보다 큰 것으로 갚아주고 싶어하는 여리디 여린 존재.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자신 보다 크면 클수록 그는 더 큰 것으로 갚아주려고 한다. 우리가 과연 이런 사람을 언제 만나 봤더란 말인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마침 어제 우연찮게 <힐링 캠프> 재방송을 봤는데, 배우 이준기가 게스트로 나왔다. 놀라운 건, 그가 군대 가기 전 믿었던 사람에게 호된 배신을 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얼마나 그 배신감과 상실감이 컸는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순간이겠구나를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고, 너무 괴로워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기 집 소파와 샌드백이 칼로 난자가 되어져 있더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그러는데 그의 눈에 악마가 서려있는 것이 보이더란다. 난 그게 이해가 간다. 그것이 어디 이준기 한 사람 뿐이겠는가? 사람은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지금도 믿거라 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미처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가급적이면 인간에게 배신감은 안겨주지 말아야 한다. 그게 신의로 맺어져야 할 사람이라면, 지도자라면, 왕이라면,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나는 영화의 엔딩이 원작과 달라 정말 좋았는데, 한마디로 울컥할 뻔했다. 하선이 왕의 역할을 했던 건 고작 보름 남짓. 그동안 사람을 어떻게나 감동을 시켜놨던지 당대 따를만한 사람이 없다던 허균조차도 하선이 용안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내내 구박을 받다가도 맨 마지막엔 정중한 인사까지 받는다. 확실히 사람의 진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소의 함정이 있어 보이긴 하다. 정치가 정말 인정주의로만 가능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초야에 묻힌 관객이라면 누구든지 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 한 번하고 영화관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영화 자본주의 환상은 더 높아지기만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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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드 노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사와지리 에리카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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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작위적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모처럼 순수함에 푹 빠져 본 영화다. 

생각해 보면 요즘 영화는 이야기 자체의 순수함 보다는 얼만큼 세련되었는가에 더 촛점이 맞혀져 있지 않는지? 그래서 어찌보면 순수함은 촌스럽다는 것과 동의어처럼 되어버린지도 오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남긴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주인공의 공간(집)이 참 마음에 든다. 창문을 열면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이시토비가 오르내렸던 돌계단도 마음에 든다. 꼭 이탈리아 풍이다. 영화 분위기도 깔끔하고.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영화가 조금 길다는 정도?! 그렇게까지 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일본엔 만년필 전문점이 있는가 보다.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그 보다 아직도 일기를 만년필로 쓰는 사람이 있다는 설정이 생뚱맞기도 하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보통은 컴퓨터로 쓰지 않나? 하긴, 영화는 2007년도 작으로, 지금이야 아날로그 방송도 종료된 마당이지만 이때만해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했던 시기다. 물론 그래봐야 디지털에 밀려 아날로그는 거의 있으나마나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날로그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효할 것이다. 

 

또 특이한 건(?) 요즘에도 영화에서처럼 이렇게 순수한 선생님이 계셨나 싶은 것이다. 저 클로즈드 노트의 주인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다. 물론 이제 막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니 첫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할까? 보고 있으면 나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영화는 36명이 한 반으로 되는데, 글쎄 그렇게 30명 정도면 선생님의 관심 반경에 다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되는 건가? 내가 초등학교 때만해도 한 반은 70명에서 80명 선이었다. 원래 그런가 보다 해서 많은 줄도 몰랐다. 선생님이 그 많은 아이들을 다 신경 써 줄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선생님이 편애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물론 나는 거의 그 편애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본 적이 없지만.  그런데 저 클로즈드 노트의 주인인 마노 이부키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이들의 특징을 파악해 그 아이들에게 맞춤식 상을 수여해 종업했을 때 상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없게 만들었다. 과연 요즘도 그런 선생님이 계실까?

 

보고 있으려니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장충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는 내가 입학하고 1년인가, 2년 있다가 학생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제도를 폐지 했었다. 공립학교 중 시설은 제일 좋으면서 왜 그런 어의없는 일을 단행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난 3학년 1학기만 다니고 집이 이사하는 바람에 전학을 가야했는데, 모르긴 해도 그 학교는 그렇게 하는 동안 학생들의 사기가 저하됐을 것이다. 공부를 잘 해도, 선행을 해도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치하를 받을 수 없으니 학생들이 무슨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겠는가? 모르긴 해도 언젠가 학생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제도를 다시 부활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이부키 선생은 학생 사랑이 좀 과한 편인 것 같긴 한데, 선생님이 아무리 편애를 해도(그들도 인간 아닌가?) 지나놓고나면 아무리 그렇더라도 선생님은 학생에게 좋은 걸 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건 작던. 나도 그렇게 선생님들께 크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지만(그래도 아주 제외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몇 선생님은 '참 좋은 선생님이었지' 하는 선생님들도 계셨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사람들 저마다 일생에 한 번은 그런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까? 엔딩 부분에서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선생님(그것도 하필 종업식 날?!)을 기리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부분은 작위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뭉클하기는 하다. 이런 사제지간의 정이 남아 있다면 그 선생님께 배운 제자는 이담에 나이 먹어서도 절대로 엇나가지 않을 것이고, 좋은 심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부키 선생의 애인이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이시토비 류는 일러스트레이터겸 화가다. 특이하게도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는. 그런데 그 그림이 참 마음에 든다. 나중에 개인전도 열더만. 정말 그런 그림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미술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다) 그만한 필치면 주목을 받을만 하겠다 싶다. 물론 따로 대역은 있겠지?

 

이 영화 정말 가슴 따뜻한 영화다. 훗에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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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02-04 15:34   좋아요 0 | URL
이것, 첫 추천은 저였어요. ^^

2013-02-04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즐거운 인생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김상호 외 감독, 김윤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영화는 뭐랄까, 차라리 진지했으면 좋겠는데 꼭 유머를 쫓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보고나면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쉽다면 또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애정이 있다는 말이 되니까. 하지만 보통의 관객들이라면 아쉬워 하지 않는다. 그 다음부턴 그 감독이 만드는 영화를 안 보면 그만이니까. 그야말로 영화의 세계는 넓고, 볼 영화는 많다. 내 취향이 아니면 그만이지 뭐 그리 할 말이 많겠는가. 그래서 난 오래도록 이 영화의 선택을 미뤄왔다. 그런데 이 영화 크게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지 의외로 빠져드는 뭔가가 있었다.

 

 

사실 인생이 멋있다고 느껴지는 건, 그꿈을 이룬 영웅이 되서가 아니다. 솔직히 영웅이 되면 좋기는 할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봐 주고, 존경해주고, 멋있다고 하는데 으쓱거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은 그때부터 서서히 나락의 길을 걷게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오히려 인생이 멋있다고 느끼는 건, 그 사람이 아직 젊고, 꿈이 있고, 패기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 역시 안타깝게도 결혼하고 나이듦과 함께 묻혀지는 경우가 많다.

 

왜 사람은 결혼과 함께 하나 같이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리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람이 한 가정을 이끌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기 희생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거기에 아이라도 낳으면 뒤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한다. 그냥 한때의 꿈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자조하며 말이다. 더구나 락 밴드는 더하지 않을까? 왕년에 이런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한때는 로션병 마이크 삼아 가수가 되보고 싶은 마음에 다리깨나 떨어 봤었다. 물론 내 방에서, 혼자. 이상하지? 팝송이 좋아지고, 밴드 음악이 좋아지면 허황되지만 꿈이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싫어지면 현실적이 되나 꿈은 없어진다. 

 

우리나라의 40대 중년 가장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뼈 빠지게 일하지만 나라에 경제 한파라도 닥치면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까지 꺼, 여태까지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다 실직 좀 해서 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게 얼마나 사람의 기를 죽이는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가 사람을 하루아침에 실직자를 만들어 놓고도 편히 쉬게끔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 않는가? 물론 그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쉬게 만들면 편히 쉬게 만들어 주던가,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 그럼 일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던가 해야할 텐데 이런 사회는 100년을 살아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 가장들이여, 제발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 같은 건 되지 마라. 가정이 있고 교육이 있지, 교육 있고 가정이 있는 것 아니지 않는가? 가족이란 함께 같이 살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식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되면 뭐 할 건가? 나중에 그 자식이 이런 공을 알아 주기나 할 건가? 정 유학 보내려거든 그 자식이 적어도 자기 앞가림이나 하거든 그때 보내라. 가족도 부부가 먼저고, 그 다음이 자식이다. 부부 관계는 뒷전이고 자식만 오냐오냐 키운 가정 행복한 거 못 봤다. 나중에 그 자식 결혼하는 것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결혼하지 않을 확률이 더 많다. 물론 나의 이런 말이 씨알이 먹힐 리 없을 것이다. 니가 뭔데 남의 젯상에 밤 놔라, 대추 놔라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이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면 방법은 그런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질을 확 높여서 오히려 남의 나라 자식들이 우리나라에 유학을 오게 만드는 것이다. 교육열은 높으면서 그것 하나 이룩하지 못하고 살다니. 원통하고, 애통해 해야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가?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난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우리나라 가정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더 이상의 기러기 아빠, 가족의 해체는 격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공부가 좀 빡세서 그렇지 다른 여타의 나라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공부를 하면서 행복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하는데 그런 것은 형편없이, 낫으니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닌가.

 

 영화 중 혁수(김상호 역)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은, 저렇게 했으면 우리나라에 한창 만연중인 자살만은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봤다. 그것은, 혁수가 아이들의 캐나다 유학에 같이 따라간 아내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그러게 가족은 그렇게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니까!). 순간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표현은 안 됐지만 그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뼈 빠지게 일하고 돌아오는 결과는 겨우 그런 것이라니. 그럴 때 구원이 됐던 건 친구 기영(정진영)과 성욱(김윤석)의 위로(이럴 땐 친구가 가족 보다 낫다)와 음악이었다. 모든 사람이 죽고 싶은 때 음악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할 수도 있겠지. 요는, 그렇게 문제에 빠져 한없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결국 제 목숨도 하찮은 것으로 만들지 말고, 다른 곳으로 자꾸 마음과 관심을 돌려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건 역시 가까이 있는 사람의 관심과 성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중년은 왜 꿈을 꾸면 안 되는가였다. 왜 중년은 자기 가정에 자신의 꿈을 묻고 현실만을 쫓으며 후줄근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물론 가정은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한번쯤은 반란을 꿈꾸라. 이 영화는 한마디로, 중년의 반란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영화다. 솔직히 중년도 늘 반란을 꿈꾸긴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란의 방법이란 게 문제 아닌가? 별로 건전하지가 않다는 것에 있다. 그에 비하면 활화산 멤버의 사이키델릭한 화장은 훨씬 건전하고 멋있기까지 하다.    

 

'언젠가 터질 거야'란 노래가 귓가에 멤돈다.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저예산 영화다. 그래서 크게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터트린 건 확실하다. 그리고 확실히 386세대가 락을 본격적으로 불렀던 세대였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세대는 그 이후 세대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어쩌면 같은 노래를 불러도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아버지 세대는 뻣뻣하고, 감성이 떨어지지만, 아들 세대는 감성이 풍부하고, 기술도 좋아 음악의 질을 한층 드높인다. 그것은 활화산 밴드에 객원 보컬겸 죽은 친구의 아들로 나온 장근석(난 이 영화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를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성형하고 나온 지금의 그는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확실히 멋있다. 이 영화 아직 안 봤다면 꼭 보라.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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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1-19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제 아이랑 같이 앉아서 본 영화네요.
잘 지내셨지요? 반가와요 ^^

stella.K 2013-01-19 11:37   좋아요 0 | URL
앗, 닉넴을 바꿨는데도 알아보시는군요.
바꾸면 바꿨다고 공식으로 인사도 띄우고 그래야 하는데
게을러서인지 그러질 못하고 있네요.ㅜ
그래도 이렇게 먼저 인사해 주시니 황감할 따름입니다.ㅋ
hnine님도 잘 지내시죠? 저도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