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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링
유하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2년 6월
평점 :
유하의 작품을 대체로 좋아한다.
그가 다루는 주제의식이 꼭 나와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보여져서 영화의 선택을 망설이지 않게 한다.
영화 '하울링'을 비교적 늦게 챙겨 봤다(그래봐야 1년 늦은 것이다. 게으른 나로선 뭐 그 정도면 아주 늦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왜 하울링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영화에서 뭔가를 놓치고 본 것이 있었을까? 분명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다 보도록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영화에 나오는 살인개의 이름일까 생각했지만, 그 개의 이름은 '질풍이'다.
나름 용맹스럽고 잘 생긴 늑대개에게 '질풍'이란 이름이 어울리기는 하다. 하지만 난 역시 동물애호가로서, 동물 고생시키는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단 시간 내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좋은 조건의 영화가 몇 있을 텐데, 그 중 하나가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과 교감시키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 영화는 대체로 실패하지 않고, 적어도 본전은 뽑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고나면 꼭 이렇게 해야하는 건가? 뭔가 속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체로,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해피엔딩은 거의 없다. 인간과 더 없는 사랑과 우정을 나누다가 장렬하게 죽어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의 짠함을 증폭시킨다. 이 영화도 그런 공식의 영화가 아니길 내심 바랬는데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다.
하긴, 그럴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아 아무나 죽이지 않고 꼭 죽여야 할 사람만(이 죽여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주관적인 기준이지, 절대 선과 악의 기준은 아니다) 죽인다고 해도, 살인견은 살인견이다. 사람을 죽인 개를 인간이 그냥 보고 넘길 리 없다. 누군가에 의해서 사살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 송강호에 의해 죽지이지 않는가.
충무로에서 중년의 배우치고 가장 '핫'한 배우하면 역시 김윤석과 함께 송강호일 것이다. 나 역시 그가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유쾌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비록 그 영화가 꼭 유쾌한 것은 아니어도 배우 자체는 유쾌하지 않은가?). 감독이 송강호를 점찍었다는 건 역시 최선의 선택은 아닐까 싶다. 거기에 함께 나오는 이나영.
초짜 형사로 나오는 그녀로서는 나름 작지 않은 도전은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나영은 청순의 아이콘 아니던가. 거기에 형사라고 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 뛰어 들었다. 하긴, 내가 봐도 형사의 세계에 여자들이 뛰어 든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이 누구인가? 뭐든 남녀를 구별하는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족속들 아닌가?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형사계에 정말 여자가 없는 걸까? 왜 형사라는 직업에 남자들은 여자와 함께 일하는 걸 꺼림하게 여기는 걸까? 뭐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한참 오래 전에,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의 은사님은 남자들이 산을 오를 때 여자들과 함께 오르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함께 오르면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긴다고. 다행히도 내가 그 말을 들은 건 20세기가 막 지고있을 무렵이었으니 들어 둘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어디선가 공공연히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하다고 믿는다면 그저 속설 정도로 알아는 두겠지. 요즘엔 여자가 중장비도 모는 마당인데 뭔들 못하겠는가.
몇 년 전, 시나리오를 공부한답시고 한동안 스터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첫 모임에 나가는데 여자는 나 혼자고 남자들만 댓 명이 모여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자들을 처음 대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때 따라 남자의 거칠면서도 시커먼 기운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껴 그 기에 한동안 좀 눌렸던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이나영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그때 생각이 확 났다.
확실히 남자의 기와 여자의 기가 다른 거겠지. 그래서 음양오행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섞여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범인을 쫓느라 늘 긴장해야 할 거친 형사들의 세상에서 이나영 같이 여리여리한 신참 형사가 들어오면 심란스럽기도 하고, 산란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런 남자들의 세계를 감히 여자가 넘 보나 하다가도, 바짝 날이 선 남자의 기를 이 신참 형사가 흐려놓을 것만 같아 묘한 긴장을 해야한다는 것도 묘하게 신경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형사의 세계가 거칠고, 남자들을 대표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한다고 누가 말하던가? 어느 분야에서든 남자의 우직함, 동물 같은 직감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성의 섬세함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이것은 형사의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은연 중 이나영을 내세워 이것을 말하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종반을 향해 갈수록 증명이라도 하듯 이나영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난 여기서, 감독 유하가 여성을 보는 관점이 나름 긍정적이고, 존중하는 사람은 아닐까 그런 느낌을 살짝 갖게 만들었다. 진짜 그런지는 내가 그 사람을 못 만났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교감'이란 말이 나오는데 상당히 의미있게 와 닿았다. 영화에선 개를 훈련시킬 때 훈련자와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나오던데, 감독은 그뿐 아니라 영화 전체를 통해 진정한 영혼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을 말하려 했던 건 아닐까? 초짜인데다 여자였기 때문에 무시 당해야 했던 이나영을 통해 그 때마다그녀가 느껴야 했던 모멸감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느낌이다. 그래서도 감독이 일부러 여리여리한 이나영이를 캐스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멸감과 분노를 더 느껴보라고. 하지만 그러기만 했다면 영화는 영화가 아닐 것이다. 끝까지 자기 임무를 완수하려고 한 나름의 강인함을 보여줘서 배우는 영화에서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하다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느 날 투견장을 기웃거리다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나는 보는 사람으로서 감독의 의도가 뭐였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처럼 그의 삐딱한 시선이 마음에 든다. 그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니까.
사실 영화 곳곳에서도 생각해 볼만한 요소들을 감독이 여기저기 많이 심어놓았다. 예를들며, 속을 썩히는 송강호의 아들을 보면서, 왜 요즘 사람들이 자식을 안 낳고 개를 키우려 하는 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개는 인간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또 그 뒤에 보면, 그 개가 어떤 엄마 없는 아이에겐 위로와 행복을 주기도 한다. 개와 함께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해 하는 아버지. 그렇다면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미리 실망해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뭔가 빠져 보인다. 물론 개를 어떤 목적으로 키우던 이것이 사람의 보편적인 모습인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복수의 칼날을 위해 동물을 또는 제3의 존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확실히 비윤리적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위해 동물을 쓰는 것도 왠지 도덕적여 보이지는 않는다(이 영화는 양날의 칼이었을까?) 하긴, 언제나 영화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것을 비판하는 건 의미가 없어보인다. 단지 그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들이 측은하다는 거지. 하지만 그건 또 모를 일이다. 출연한 동물은 좋아라 할지. 인간처럼 말을 못하니 알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의 백미는 아무래도 엔딩 부분에서 질풍이와 이나영의 오토바이 추격신은 아닐까 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작품인데, 왜 그렇게 평점이 짠지 모르겠다. 내가 볼 땐 아주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