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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김상호 외 감독, 김윤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영화는 뭐랄까, 차라리 진지했으면 좋겠는데 꼭 유머를 쫓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보고나면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쉽다면 또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애정이 있다는 말이 되니까. 하지만 보통의 관객들이라면 아쉬워 하지 않는다. 그 다음부턴 그 감독이 만드는 영화를 안 보면 그만이니까. 그야말로 영화의 세계는 넓고, 볼 영화는 많다. 내 취향이 아니면 그만이지 뭐 그리 할 말이 많겠는가. 그래서 난 오래도록 이 영화의 선택을 미뤄왔다. 그런데 이 영화 크게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지 의외로 빠져드는 뭔가가 있었다.

사실 인생이 멋있다고 느껴지는 건, 그꿈을 이룬 영웅이 되서가 아니다. 솔직히 영웅이 되면 좋기는 할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봐 주고, 존경해주고, 멋있다고 하는데 으쓱거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은 그때부터 서서히 나락의 길을 걷게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오히려 인생이 멋있다고 느끼는 건, 그 사람이 아직 젊고, 꿈이 있고, 패기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 역시 안타깝게도 결혼하고 나이듦과 함께 묻혀지는 경우가 많다.
왜 사람은 결혼과 함께 하나 같이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리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람이 한 가정을 이끌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기 희생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거기에 아이라도 낳으면 뒤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한다. 그냥 한때의 꿈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자조하며 말이다. 더구나 락 밴드는 더하지 않을까? 왕년에 이런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한때는 로션병 마이크 삼아 가수가 되보고 싶은 마음에 다리깨나 떨어 봤었다. 물론 내 방에서, 혼자. 이상하지? 팝송이 좋아지고, 밴드 음악이 좋아지면 허황되지만 꿈이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싫어지면 현실적이 되나 꿈은 없어진다.
우리나라의 40대 중년 가장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뼈 빠지게 일하지만 나라에 경제 한파라도 닥치면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까지 꺼, 여태까지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다 실직 좀 해서 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게 얼마나 사람의 기를 죽이는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가 사람을 하루아침에 실직자를 만들어 놓고도 편히 쉬게끔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 않는가? 물론 그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쉬게 만들면 편히 쉬게 만들어 주던가,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 그럼 일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던가 해야할 텐데 이런 사회는 100년을 살아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 가장들이여, 제발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 같은 건 되지 마라. 가정이 있고 교육이 있지, 교육 있고 가정이 있는 것 아니지 않는가? 가족이란 함께 같이 살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식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되면 뭐 할 건가? 나중에 그 자식이 이런 공을 알아 주기나 할 건가? 정 유학 보내려거든 그 자식이 적어도 자기 앞가림이나 하거든 그때 보내라. 가족도 부부가 먼저고, 그 다음이 자식이다. 부부 관계는 뒷전이고 자식만 오냐오냐 키운 가정 행복한 거 못 봤다. 나중에 그 자식 결혼하는 것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결혼하지 않을 확률이 더 많다. 물론 나의 이런 말이 씨알이 먹힐 리 없을 것이다. 니가 뭔데 남의 젯상에 밤 놔라, 대추 놔라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이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면 방법은 그런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질을 확 높여서 오히려 남의 나라 자식들이 우리나라에 유학을 오게 만드는 것이다. 교육열은 높으면서 그것 하나 이룩하지 못하고 살다니. 원통하고, 애통해 해야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가?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난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우리나라 가정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더 이상의 기러기 아빠, 가족의 해체는 격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공부가 좀 빡세서 그렇지 다른 여타의 나라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공부를 하면서 행복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하는데 그런 것은 형편없이, 낫으니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닌가.
영화 중 혁수(김상호 역)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은, 저렇게 했으면 우리나라에 한창 만연중인 자살만은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봤다. 그것은, 혁수가 아이들의 캐나다 유학에 같이 따라간 아내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그러게 가족은 그렇게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니까!). 순간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표현은 안 됐지만 그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뼈 빠지게 일하고 돌아오는 결과는 겨우 그런 것이라니. 그럴 때 구원이 됐던 건 친구 기영(정진영)과 성욱(김윤석)의 위로(이럴 땐 친구가 가족 보다 낫다)와 음악이었다. 모든 사람이 죽고 싶은 때 음악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할 수도 있겠지. 요는, 그렇게 문제에 빠져 한없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결국 제 목숨도 하찮은 것으로 만들지 말고, 다른 곳으로 자꾸 마음과 관심을 돌려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건 역시 가까이 있는 사람의 관심과 성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중년은 왜 꿈을 꾸면 안 되는가였다. 왜 중년은 자기 가정에 자신의 꿈을 묻고 현실만을 쫓으며 후줄근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물론 가정은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한번쯤은 반란을 꿈꾸라. 이 영화는 한마디로, 중년의 반란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영화다. 솔직히 중년도 늘 반란을 꿈꾸긴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란의 방법이란 게 문제 아닌가? 별로 건전하지가 않다는 것에 있다. 그에 비하면 활화산 멤버의 사이키델릭한 화장은 훨씬 건전하고 멋있기까지 하다.
'언젠가 터질 거야'란 노래가 귓가에 멤돈다.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저예산 영화다. 그래서 크게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터트린 건 확실하다. 그리고 확실히 386세대가 락을 본격적으로 불렀던 세대였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세대는 그 이후 세대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어쩌면 같은 노래를 불러도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아버지 세대는 뻣뻣하고, 감성이 떨어지지만, 아들 세대는 감성이 풍부하고, 기술도 좋아 음악의 질을 한층 드높인다. 그것은 활화산 밴드에 객원 보컬겸 죽은 친구의 아들로 나온 장근석(난 이 영화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를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성형하고 나온 지금의 그는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확실히 멋있다. 이 영화 아직 안 봤다면 꼭 보라.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