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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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얼마 전 동명의 책을 (선물 받게 되어)먼저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극장 상영 때 보지 못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고, DVD가 나오면 꼭 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엊그제 그 소망을 이루었다. 

 

언제나 그렇듯, 원작이 있는 영화인 경우 영화를 보면 책을 읽고 싶고, 책을 먼저 읽게되면 영화를 보고 싶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래서 두 가지를 다 이루게 되면 분명 어느 한쪽은 기울게 마련이다. 즉 원작이 좋으면 영화가 좀 기울거나, 원작이 안 좋으면 영화가 좋거나. 물론 여기엔 둘 다 좋거나, 둘 다 나쁜 경우는 거의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책으로 읽었을 때는 작가가 나름 조선시대 궁중 생활사를 작품속에서 잘도 고증해 냈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왕의 변기인 매화틀이나 이를 담당하는 상궁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왕의 건강을 책임지는 당시의 의관들이 매일 왕의 매화를 직접 맛 봤다는 것이 놀라웠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필치를 읽어내는 맛도 남달랐다.나름 우아하고 세련됐다고나 할까? 인물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작가가 너무 좋아서 그의 나머지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엔 어떤 건 벌써 절판이 된 작품도 있어 좀 놀라웠다. 어쨌거나 글은 확실히 긴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고, 상상력을 펼치기엔 더 없이 좋다. 더구나 몇몇 에피소드는 영화로는 어떻게 표현됐을까 궁금했다. 특히 이미 말한 광해의 매화틀이나, 왕의 매화라고 더러운 줄도 모르고 기꺼이 맛을 보는 의관들이 어떻게 표현됐을지 궁금해졌다. 광해의 매화라고는 해도 또 이병헌의 그것이기도 하지 않는가?ㅋ

 

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남는 건 그런 것이다. 아무리 가짜여도 이런 왕은 있을 수 없으며, 왕의 역사는 곧 찬탈의 역사며, 왕좌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여전하고, 역시 왕과 양반들의 무능함을 또 한 번 보는 것 같아 아무리 팩션이라고는 해도 씁쓸했다. 

 

 

그런데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듯, 같은 작품을 영화로 보니 감회가 새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막연하던 것이 더 뚜렷해지는 것도 있고, 아쉬운 장면도 있다. 예를 들면, 책으로 읽으면서 좋았던 것들이 막상 영화로는 획획 지나가는 느낌이어서 왜 이렇게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나가는 거지? 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긴요하게 잡아야 할 장면도 너무 밋밋하게 지나가 버리고.

  

그래도 이 영화는 엔딩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다고 보여진다. 감독이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기는 나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어찌보면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원작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연출자의 무능이란 약간의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가 원작자라면 나는 연출자가 내 작품 그대로를 연출하기 보다 연출자 나름의 해석으로 더 멋있게 표현해 주길 바랄 것이다. 반대로, 내 작품을 연출에서 잘 못 살리면 그 사람하고는 더 이상 상종을 하지 않게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원칙적으론 원작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 해석은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지금도 기존에 있어왔던 작품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재탄생되는 마당에 원작자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고 어찌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아마도 이 작품의 원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해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뭐 그 정도면 잘 만든 것 아닌가?

 

그런데, 나 개인적으론 영화는 그래도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책이라면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느낌인데 말이다. 그게 뭘까? 어찌보면 이 작품은 역사 펙션의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는 노골적인 피의 이미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거의 영화 말미에 하선을 도망가게 만들고 도부장이 그를 쫓는 장수들과 싸우는 장면은 어쩔 수 없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은 모두 풀샷으로 찍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런 것이었나? 역사는 어차피 찬탈의 역산데 피 흘리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것에서 약간의 허탈감이 있었다는 것? 나 역시 어떤 영화에서건 피 흘리는 장면은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난 그런 거 보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사관(思觀)이 있었던 걸까?

 

이 작품은 (원작을 포함해서)확실히 차별화된 뭔가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작품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도 같다. 그런데 서글픈 건, 현실에서는 없고, 가짜 또는 이상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를 위로해 주거나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현실에서의 광해를 보자. 그는 왕이 되어서도 언제 자신이 죽을지 몰라 불안해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편집광으로 나온다. 때문에 그의 성격은 포악하고, 찔러서 피도 안 나오게 생겼다. 더구나 그는 안 상궁을 은밀히 만나고 그녀에게서 마약도 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게다가 양귀비를 태운 공기를 마셔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것으로 봐 실제의 광해는 현명한 사고와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은유했던 건 아닌지? 무엇보다 처남인 유종호의 결백을 알면서도 당시의 정사의 늑대들에게 내줘야하지 않느냐고까지 한다. 물론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런데 비해 가짜 광해는 한마디로 가슴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다. 광해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광해를 연기해야 했던 하선이 시간이 가면서 가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진심이 있었기에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가짜 광해야 말로 진짜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진짜 광해는 그 시대 한 사람만 존재했는가? 그렇지 않다. 모습만 바뀌었고, 정도만 다르다뿐 우리가 아는 광해는 광해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다. 자신이 왕이고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권력에만 아부할 줄 알지 진정으로 백성들의 소리엔 귀기울일 줄 몰랐다. 그것은 그 조선시대 거쳐 오늘 날에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왕에게 거는 백성의 소망은 소박하기 이를데 없다. 어미의 생사 확인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부하가 실수하더라고 책망치 않고 다독임을 받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누군가에게로부터 인정 받고, 위로 받았다면 그 보다 큰 것으로 갚아주고 싶어하는 여리디 여린 존재.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자신 보다 크면 클수록 그는 더 큰 것으로 갚아주려고 한다. 우리가 과연 이런 사람을 언제 만나 봤더란 말인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마침 어제 우연찮게 <힐링 캠프> 재방송을 봤는데, 배우 이준기가 게스트로 나왔다. 놀라운 건, 그가 군대 가기 전 믿었던 사람에게 호된 배신을 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얼마나 그 배신감과 상실감이 컸는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순간이겠구나를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고, 너무 괴로워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기 집 소파와 샌드백이 칼로 난자가 되어져 있더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그러는데 그의 눈에 악마가 서려있는 것이 보이더란다. 난 그게 이해가 간다. 그것이 어디 이준기 한 사람 뿐이겠는가? 사람은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지금도 믿거라 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미처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가급적이면 인간에게 배신감은 안겨주지 말아야 한다. 그게 신의로 맺어져야 할 사람이라면, 지도자라면, 왕이라면,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나는 영화의 엔딩이 원작과 달라 정말 좋았는데, 한마디로 울컥할 뻔했다. 하선이 왕의 역할을 했던 건 고작 보름 남짓. 그동안 사람을 어떻게나 감동을 시켜놨던지 당대 따를만한 사람이 없다던 허균조차도 하선이 용안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내내 구박을 받다가도 맨 마지막엔 정중한 인사까지 받는다. 확실히 사람의 진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소의 함정이 있어 보이긴 하다. 정치가 정말 인정주의로만 가능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초야에 묻힌 관객이라면 누구든지 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 한 번하고 영화관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영화 자본주의 환상은 더 높아지기만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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