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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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소설가들이 독자를 웃기기 시작했다. 웃기는 소설가가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 웃기는 수준이 전과는 좀 달라 보인다. 이를테면 예전엔 웃기는 쪽에선, 나는 전혀 웃기지 않은 척 눙치고 있는데 상대가 웃어주면 좋은 일이지 하며 엄숙을 가장한 그런 것이었다면, 요즘의 작가들은 아예 작정하고 나도 웃고, 너도 웃고 우리 다 같이 웃자는 식인 것 같다. 그것이 나쁠 것은 없다. 모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지. 내가 먼저 재미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어찌보면 작가는 자기 글의 제1의 독자인지도 모른다. 내가 재밌게 느끼지 않는데 남 보고 재밌게 읽어달라고 하면 그건 어불성설일게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재밌다. 웃긴다. 나름 톡톡 튀는 재치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그런데 읽으면서 살짝 걱정되는 건, 작가가 독자를 웃겨서 나쁠 건 없지만, 모든 작가가 이것을 들고 나온다면 '웃음 강박증'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웃는 것이 좋다고 하니 웃긴 웃는다만,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웃길거냐에 경도된 나머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걸 놓치거나 부각시키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앞지른 걱정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얘기 하자면 나는 이 작품에서 개그적 요소를 발견했고(이를테면 소설 어디엔가 보면 스파이들이 보는 책목록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거 보고 정말 웃겼고 인물이나 배경 설정이 웃겼다) 그래서 웃긴 했지만, 앞으로 한동안 우리 소설에 이런 개극적 요소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콜럼버스의 달걀' 같과 같은 소설이다. 누구든 한번쯤 다루어 봄직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을 생각 못하고, 안 다루었는지 모르겠다. 아는대로, 007 영화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제임스 본드는 승리를 의미하는 만족스러운 웃음과 매번 바뀌는 본드걸과의 달콤하고도 야스러운 포즈로 마무리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걸고 넘어지는 것은, 정말 보여지는 짜릿한 엔딩이 과연 실생활에서도 이어지고 있느냐라는 의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거 얘기라면 찾아보면 더 나오지 않을까? 나의 경우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던데. '그래 좋아.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왕자님과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됐어. 그런데  삶은 현실이거든. 그 이후의 삶도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신데렐라 이야기의 속편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이 기회에 내가 한번 써 봐?'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많은 가능성과 참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기대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느 쪽일까? 일부러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걸까? 못한 걸까? 정말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단 말인가? 이 책에서 007은 해피엔딩과 달리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에다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간단하게 미미양을 배신하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을 한다. 이에 미미는 복수를 위해 스파이 교육을 받는다. 그랬으면 당연 끝까지 복수를 해야하지 않는가? 그런데 작가는 그것을 슬쩍 비껴간다. 작전 한번 실패해 봤더니 사람이 보이더라는 식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떠한 깨달음이었는지 사람이 저 모습이 되기까지는 나름의 많은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려고 했겠구나. 그러니 어쩌겠니? 서로 이해해 주고 감싸주고 인류애를 좀 발휘해 줘도 괜찮지 않겠니? 그래야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뭐 그런 식의 호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쯤은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정도의 지점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소설이 너무 짧지 안았을까? 작가가 성직자 같을 필요야 없겠지만 암시 정도에서 끝내버리면 독자가 성에 안 차한다. 특히 나 같이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독자는. 아니면 설득될 때까지 더 많은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전개해 보던가? 뭔가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지점에서 대충 뭉개고 마니 김이 빠진다. 그러니 여기에 굳이 '미미양의 모험'이란 타이틀까지 달고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냥 '미미양의 깨달음' 정도이지 않았을까? 모험이 모험다워지려면, 뭔가 박진감이 넘치고 어려워도 목표치까지 가 보고 갔다가 그 이후에 오는 것들을 조용히 음미해 보는, 뭐 대충 그런데까지 나갔어야 '모험'이란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았을까?

물론 사람의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뀐 거 가지고 독자를 설득시킬 수는 없다. 독자는 인물이 변하는 것을 추적해 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니 미미양이 나중에 무엇을 깨달았던지 간에 007을 복수하기로 했다면 해 봤어야 했다. 그리고나서 남는 건 뭐였는가를 얘기해야 완결된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복수를 위한 모험이었을텐데 재대로 해 보지도 않고 끝내 버리다니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은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나를 자극시켰다. 우선 앞서말한 모 작가의 재밌게 쓰기에 또 한번 좋은 사례(?)를 보여줬고, 작가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너무 성급하게 일찍 뭔가를 드러내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거야 설교가나 상담가들이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아무리 열린 결말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독자의 가려운 부분을 충분이 긁어주고 등장인물과 충분히 놀다가 끝내줘도 늦지 않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 여유가 아쉬운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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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3-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라는 것 같기도 하고, 보지 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stella.K 2007-03-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선택은 자유죠. 저 같은 경우 선물 받아서 읽은 거거든요.^^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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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토머. 토포러. 메모리모자이커. 타임스키퍼 등등. 화자가 캐비닛에서 꺼낸 파일들 보면 하나 같이 너무 그럴 듯해서, 정말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는 줄만 알았다. 근데 뭐란 말인가? 주의사항을 보니, 이 캐비닛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정보들은 창작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오염된 것' 이라지 않는가. 띠옹~!  속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

귀가 얉은 탓일까? 아니면 단순히 이야기가 좋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언제부턴가 보이는 것, 드러난 것에 더 많은 거짓과 위선이 있어 믿지 못하는 버릇이 생겨서일까? 암튼 난 이런 이야기가 꽤 흥미롭고 마음이 갔다. 하지만 저 주의사항을 읽었을 때 꼭 허무했던 것마는 아니었다. 작가는 어찌보면 있지도 않는 것들을 통해서, 보이는 것, 드러난 것들을 통렬하게 조롱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고 속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왜 소설을 읽는 것인가 의문이 생겼다. 사실 읽으면서도 내가 속을 것을 어느만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속였다고, 독자인 내가 속았다고 어떻게 100% 장담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정도가 심한 '심토머'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그 비스무레한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에 심심치 않게 공개되서 정말 놀라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면 "아니, 저러고 어떻게 살아?"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도 산다. 우리와 같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나는 작가가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고딕체로 어찌보면 푸념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연극 대사 같기도 한 그 툭툭던지는 말들이 참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  개다가 소설가가 뻥을 치지는 능력이 없다면 그게 어디 소설간가? 독자가 소설을 읽는 것은  어쩌면 속을 줄 알면서 그 속는 맛 때문에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 작가는 독자를 속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평범하든 비범하든 그 이야기속에서 인간의 인간됨의 진한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재주가 작가에게 없다면 우리는 소설을 읽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자극할만한 뭔가의 울림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읽지 않을 거란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나름의 구조적인 결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읽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 소설은 참 독특하고 기존의 소설적 화법을 과감하게 깨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것이 문체는 어찌보면 하루키의 그것을 닮아 있는 것도 같고, 나중에 공대리가 잡혀가 손가락, 발가락 잘리는 것을 보면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 역시도 내내 킥킥대고 웃으며 읽다가 말미에 갈수록 약간은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뭔가 늘어지는 것 같다는 그 지점에서 나름대로 잘 마무리하고 나왔다는는 점이겠지.

읽다보니, 앞으로 작가들은 점점 발품 팔아 글을 쓰지 않고, 있는 재료와 상상력만 가지고 글을 쓰게 될거라고 하시던 나의 옛 스승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분의 말은 맞는 말이된지 오래고, 이 소설에서도 새삼 확인이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작가에게 있어서 취재력이 없거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무슨 의미가 될까?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지금도 완성하게 발품 팔아가며 소설을 쓰고 계시는 조정래 씨나 최인호 씨 보면 그분들이 어떻게 취재력을 발휘하는지 알고 싶어진다. 또한 작가의 나이가 아직 젊은데 취재력 좀 발휘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작가에게 관용을 베푸는 독자는 이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다.고. 처음에 이 글줄을 읽었을 때 설마...했다. 하지만 봐라. 내가 언제 독자로서 작가에게 관용을 베푸는 거 봤나? 위에서 바로 쓰지 않았나? 취재력 좀 발휘해 보라고. 그의 말이 맞다. 그렇다면 이 말은  독자를 잘 알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작가 나름의 방어술이었을까?

뒤에 작가 전경린과의 인터뷰 내용이 참 절절하다. 역시 작가란 배곪는 직업이란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배 곪는 줄 뻔히 알면서 작가가 뭐 그리 좋다고 못되서 안달하는 것일까? 그래도 그에겐 춘섭이라고 하는 고마운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친구가 그랬다지, '언수야, 내가 세계문학을 위해서 한번 쏜다'고. 그래서 2년간 매달 50만씩 그를 도와줬다고 한다.  멋있는 친구다. 지금 그는 수천억원 매출 올리는 사장이 되었다고 하니, 분명 위에 계신 분께서 그의 갸륵한 마음을 알고 복을 주신게다. 일개 작가지망생 나부랭이 밖에 안되는 나도 가끔 아는 사람 만나면 아는 척 씨부리고 다닌다. 작가는 명예직이라고. 작가가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줄 아냐고? 왜 작가는 기본적인 의식주 걱정없이 오직 이 나라의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글만 쓰면 안되는 걸까?

최재천 교수가 지난 주일 TV에 나와서 그런 말을 했다. 우린 위기란 말은 너무 잘 쓴다고. 인문학의 위기, 자연과학의 위기, 경재위기 등. 그런데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다. 이것이 믿겨지느냐고. 전쟁의 폐허에서 반세기만에 이런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전세계적 몇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린 아무런 가진 자원이 없다. 우리나라가 내세울 것은 오로지 학문 연구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5백명의 가능성 있는 학자를 1년에 4천만원씩 10년 간(?) 무상으로 지원해 주면, 그들이 훗날 각 분야에서 브레인으로 그동안 연구한 것을 쏟아낸다면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좋은 일이겠냐고. 그렇게되면 총 200억 정도가 드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경재 규모상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좋은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5백 명에 글쟁이는 과연 낄 수 있을까? 아니 끼어야만 한다. 아니면 춘섭 씨 같은 친구나 배우자를 만나던지...

아무튼 문학동네가 또한번 '김언수'라는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를 배출해 냈다. 어느 심사평에서처럼, 나 역시도 김언수란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졌다. 이전에 무슨 글을 썼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가 된다. 그런데 이 작가 겸손하기도 하고 자신만만 해 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의 말대로 작가가 단순히 돈 없고, 빽 없는 독자 하나를 후려쳐서 책 한권 더 팔아먹을 요량이라면 귀싸대기를 맞아도 싸다. 그런데 난 이 작가에게 따귀를 올려 붙일 생각이 없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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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믿고 싶었지만 때리고는 싶더군요. 마지막에서요^^:;;

stella.K 2007-02-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물만두님이시라면...!^^
 
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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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모 작가는,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죄로 평생토록 책상 앞에서 글을 써야하는 천형을 지녔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아, 정말 그렇겠구나!'하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 책상 앞에서 평생 글을 써 대는 것을 가지고 '천형'이라고 까지 해야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잔인하고 끔찍한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수 많은 작가들은 왜 이 천형을 굳이 감내하려는 것일까? 또한 어떤 사람은, 작가들은 오만하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양, 전지적인 싯점에서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쥐락펴락 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듯 하다. 작가가 뭐라고 그리도 오만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역자의 후기가 눈에 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욕망과 걱정을 하게 되는 듯하다. 내가 창조한 세상, 내가 그려낸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과,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사이의 갈등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314~315p)   그렇다면 작가의 쓰는 행위를 천형이라고 말했던 그 사람의 말이 일견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내가 창조한 세상이 진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확률은 극히 미약하긴 하지만, 가끔 이런 질문은 해 본다. 어떤 독자가 내가 쓴 소설을 보고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이 독자 자신임을 깨닫고 어느 날 명예훼손 죄로 고발을 해 온다면 그 작가는어떻게 하겠는가? 어차피 작가에 의해 창조된 등장인물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사람을 쓰지 않겠는가? 이것은 정말 있을 법한 일로써 그런 독자를 대하는 건 두려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작가는 왜 쓰는가?란 질문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왔던 질문이다. 거기에 대해 작가들은 나름대로 답을 달아 왔겠지만, 이 말은 또 얼마나 기가 콱 막힐 질문이란 말인가? 작가가 왜 쓰다니? 작가에게 욕망이 있다면, 내가 쓴 글이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만이라도 받아 들여져서 그로 하여금 같이 긍정하고 동감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네가 모르는 이야기를 난 안다. 너 내 얘기 들어 볼래?"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 조너선 캐럴은 사람들에게 '경이감'을 일깨워 주기 위해 글을 썼다고 했다. "어릴 때는 말하는 개나 귀신, 벽장 속 괴물, 보이지 않는 친구 같은 놀랍고도 신기한 일들을 아주 쉽게 받아들인다. 어른이 되면 이러한 것들을 잃으면서 '현실'이 아닌 것들을 밀어내는데, 캐럴은 그것이 가장 슬픈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며, 한 시인의 말을 빌려 그런 작업을 '경이로움의 재탄생'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의 '경이감'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이다.(312p)  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니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나는 동생과 자주 인형놀이를 즐겼는데, 주로 장식용 조그만 인형들이었다. 나는 이것들이 정말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었다. 그러면 정말 정성껏 돌봐 줄텐데. 그 무렵 TV 만화영화를 보면 어느 소녀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의 사람들처럼 작은 사람을 돌봐주는 걸 보면서 나도 실제로 그 소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너무도 빨리 동화를 잊었다. 나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부터 동화를 읽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어른답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인가에 더 많은 촛점을 맞췄다. 이 책을 읽으니, 이 어른다움을 걱정하는 조너선 캐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우린 얼마나 꿈을 잃고 살아왔던 것일까? 현실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독자에겐 이 책은 다소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동화적인 것만도 아니다. 독특하고, 몽환적이다. 작가가 말하는 '게일런'이라고 하는 지명은 실제로는 없는 지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저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무진이라는 곳이 없는 것처럼.

독자라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만 읽지 말고, 작가가 갖는 욕망이나 이면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든 의외의 것이든 말이다. 작가는 말 할지도 모른다. "내가 평생 네가 알지 못하는 얘기를 들려줬으니까 누구든 나의 전기를 좀 써 줘." 그런데 작가는 영리하다. 누군가 나의 전기를 써 줄 사람을 위해 작가의 육필원고,  작가의 집, 그가 살았던 동네의 모습이 어떠한지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놓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기를 쓰는 그 사람을 지켜 보고 또한 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어한다. 못 말리는 병이고 섬뜩하다. 그래서 작가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천형을 지녔고, 오만을 결코 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여, 부디 그 오만을 거부하지 말기를. 직시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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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12-2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님의 발언과 '건이와 경이'가 떠 올라서... ^^

물만두 2006-12-2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탄감탄!!! 저는 횡설수설^^;;;

stella.K 2006-12-2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무슨 말씀이시온지...??
물만두님/에고, 무슨...제 리뷰는 그다지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도 않는 걸요 뭐.ㅜ.ㅜ

2006-12-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12-2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ㅜ.ㅜ
 
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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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터일까? 우리나라에 칠리소스가 들어와 입맛을 사로잡아 것이.  이 칠리소스는 튀김닭을 먹을 때 같이 찍어 먹으면 느끼하지도 않고 톡쏘는 매콤 달짝지근한 맛이, 우리나라의 겨자나 일본의 와사비와는 또 다른 맛이다. 모르긴 해도 이 칠리소스는 남미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간다. 우선 남미의 이국적인 이미지와 강렬하면서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특유의 입심, 자유분망함,  남미를 배경으로한 몇편의 영화들. 그 속에 비쳐지는 빛과 어두움의 이미지가 나의 머릿속을 휘졌고 있어 리뷰 쓰기가 용이하지가 않다.  그만큼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을 풀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말해 보자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 전편에 흐르는 앙헬 산타아고와 빅토리아의 사랑이다. 말을 훔친 죄로 5년 형을 받았지만 대통력 특별 사면 조치로 풀려난 앙헬은 우연한 기회에 발레리나가 꿈인 빅토리아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가정환경은 불우하다.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피노체크 정권에 저항하다 목이 잘리고, 그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버린 어머니와 함께 살며 학교에서는 퇴학을 맞은 상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희망은 없어 보이며, 그나마 유일한 희망은 발레리나가 되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돈이없어 더는 배울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앙헬은 그런 빅토리아에게 용기를 주고, 학교에서 재시험을 치르게 해서 퇴학을 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녀가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오직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발레리나가 되어서 국립극장에 서게하기 위한 것. 때문에 앙헬은 그런 빅토리아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물론 후에 빅토리아는 시험을 망치게 되고 삼류극장에서 매춘을 하지만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도와주는 앙헬의 사랑이 인상깊다.

그러나 앙헬은 빅토리아를 사랑할 때와는 달리 그리 순수하지마는 않다. 오히려 불온하다. 잘 생긴 외목 덕에 수감시절 동료죄수로부터 윤간을 당하고, 그를 범한 사람들 중엔 간수 산토르도 포함이 되어있다. 자신이 석방되면 간수를 꼭 죽이리라던 앙헬과 그의 결심을 알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산토르는 희대의 악명 높은  살인범 리고베르토 마린을 한달 동안 몰래 빼내 앙헬을 죽이라고 한다. 앙헬이 석방되던 같은 날   금고털이범 베르가라 그레이도 석방이 된다. 그는 나이도 많고 아내와 자식에게 버림을 당할 위기에 놓여 있으므로 남은 생애동안 착하게 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앙헬은 난장이 리라의 계획을 베르가라에게 알리고 한탕하자고 졸라댄다. 거기서 등장인물들과의 얼키고 설키는 내용이다.  총 50장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짧막한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완결된 장으로 읽혀져 완급을 조절하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고, 작가가 얼마만한 입심을 가졌는지를 가능케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 소설은 곧 영화화 될 것이라고 하니 아마도 작가는 영화화될 것을 미리 생각하고 쓴 것 같다.  

정말 이 소설은 입심이 좋다. 거침이 없고, 물 흐르는 듯하며,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또한 칠레의 현대사의 질곡을 잘 녹여내고 있다. 또한 베르가라 그레이를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등장인물을 통해 네루다나 레이몬드 카버의 인용구를 적절히 배합시키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탁월하다. 또한 앙헬과 빅토리아의 성애장면은 리얼하면서도 노골적이고 거침이 없다. 

나는 초두에 칠리소스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였다. 아마도 이 책에 흐르는 정서는 칠리소스의 톡 쏘는 듯한 맛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관망하고 인생을 관조하는 그것은 역시 작가다운 면모를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다. 한번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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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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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민규의 소설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이란 책에서였다. 그 책은 한 해 동안 문단에서 주목 받아온 작가들의 단편을 한 권에 묶은 책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명성에 비해 읽을 기회가 없었던 나로선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음...박민규의 소설이 이렇구나.'하는.

그 단편이 어떤 내용인지는 지금은 기억에 거의 없다. 쳇, 불과 지난 여름에 읽었는데 기억에 없다니...(다시마라도 먹어야 하려나? ) 단지 기억하는 건 우리나라의 소외계층의 어느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를 다뤘던 것 같다. 거기에 무슨 아이스크림 먹는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아무튼 그 소외계층의 어느 사춘기 소년을 다룬 작가의 시선이 나름 신선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전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선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소설가 이외수에 비하곤 한다. 정말 독특하기로는 이외수 못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말투는 조금은 달라 보인다. 이외수는 거침없이 말하는 쪽인데 비해 박민규의 말투는 어눌하다. 내가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매력적이긴 하다. 그런 사람에게선 뭔가 할 말이 많아보이고, 풍부한 느낌의 소유자일거라고 상상해 보곤한다. 단지 그것을 말로 푸는 사람이 아닌 부류라고까지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일까?

그의 다른 소설은 어떨지 몰라도, 이 소설은 정말 독특했다. 박민규에 대해서는 세인의 말들이 구구한가 보다. 어떤 사람은 좋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의 이전 소설들을 별로 접해 보지 않은 나로선 이 작품은 '비교불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고, 단지 독특하다는 느낌만으로 나는 좋았다고 말할 뿐이다.

우선 이 소설은 읽고 있으면 재즈를 연상시킨다. 음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선 재즈의 깊고도 오묘한 세계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아는 건 즉흥과 변주가 가능한 그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은 음악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안다. 물론 그 때문에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쉽게 받아 들여지는 않는 것이기도 하다.  <핑퐁> 역시 그랬다. 읽기에 따라선 낮설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탁구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 운동종목이 이 소설을 이해 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단지 작가는 기승전결에 구애 받음이 없이 기본적인 골격만을 가지고 그때 그때 떠오르는 연상에 따라 글을 채워넣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나는 여기서 마이너리티를 생각해 본다. 한때 나도 창작을 배운 적이 있지만, 강사들이 가르쳐 주는 소설 쓰기의 공식이 있다. 그들은 조금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큰 골격에서는 하나 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 인물은 이렇게 구축을 하고, 배경을 좀 더 튼튼히. 기승전결은 이렇게 등등. 물론 그들은 현장에서 뛰는 명망있는 작가들이다. 작가지망생들에겐 정말 진짜 작가가 되는 게 소원이겠지만, 그들에게서 사사를 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는 신춘문예를 뚫기 위한 비법전수는 아니었을까? 작가가 되는 길이 꼭 그렇게 신춘문예 내지는 모 문학지 신인작가상을 받아야 가능한 걸까? 요즘 이 장르가 뜨고 있으니 이 방면의 글을 써 볼까? 나는 이렇게 쓰고 싶은데 독자들은 이런 것을 원하고 있으니 이렇게 써 봐야하지 않을까란 경계선생의 유혹이 왜 없을까? 그러다 보면 그들이 쓰는 소설은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 항상 다루는 등장인물이 하나 같이 잘 나가는 사업가, 의사, 변호사인 것처럼 작가 역시도 그런 인물들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늘 비슷한 인간군만이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 가리워져 있다. 그런 획일화 된 사회를 어떤 작가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싶어한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것에만 시선을 고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 운동가가 소외계층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목청을 높이면 뭘하겠는가? 그들의 백마디 구호 보다 이런 <핑퐁>같은 소설을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여 보인다.

물론 작가 박민규는 어떤 사회주의 이상을 바라고 이 소설을 쓰진 않았으리라. 그냥 자신이 오래 전에 알았던 중학생 두 명에 관해 소설을 써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썼을 것이다. 작가는 왜 그처럼 소외계층을 소재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 볼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모모하지 않으면 모모할 수 없는. 이 형식주의과 권위주의를 거스르고 싶은데도 어느 샌가 모르게 거기에 눈을 두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마땅치 않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주류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비주류의 삶도 삶일텐데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유독히 눈에 띄는 건 쉼표(,)의 문장부호 였다. 어느 저명한 어른께서는 문장부호의 남발을 지적해 나 역시도 못 쓰는 글이긴 하지만 문장부호를 너무 많이 쓰는 건 아닐까 신경이 씌이곤 했는데, 박민규는 지나치리만치 문장부호를 쓰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것도 어쩌면 작가의 자유로움이라면 자유로움이라고 인정해 주자.  하지만 내내 들었던 생각은 왜 <핑퐁>일까 였다. 전체를 아우를만한 단서는 그다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단지 핑퐁이란 건, 내 생각에 인류가 깜박해버린 것과 절대 깜박하지 않을 것 간의 전쟁인 셈이야.(219p) 란 말을 되내어 보는 수 밖에.

어찌보면 주류적 글쓰기 보다 비주류적 글쓰기가 더 자유로워 보인다. 형식에 얽매임도 없이 재즈처럼. 이렇게 자유롭게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나의 글쓰기에 좀 더 용기를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난 왜 이리 눈치를 많이 보고 겁이 많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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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0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즈같은 소설... 읽고 싶어집니다. 꾸욱~

마태우스 2006-11-0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는군요. 재즈같다구요...으음. 사놓고 냉장고 위에 놔뒀는데 읽고 싶어지네요 . 운동보다 이 책이 더 많은 걸 알게 해주나보군요. 으음...

stella.K 2006-11-0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네. 읽어보세요. 추천 고마워요.^^
마태우스님/야호~! 나 오늘 마태님께 추천 받았다!!!!!!!

가시장미 2006-11-08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읽지 않고 있는책. ㅠ_ㅠ 보고싶어요. ㅋㅋㅋ 리뷰도 멋지십니다!

stella.K 2006-11-0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봐. 괜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