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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요즘들어 소설가들이 독자를 웃기기 시작했다. 웃기는 소설가가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 웃기는 수준이 전과는 좀 달라 보인다. 이를테면 예전엔 웃기는 쪽에선, 나는 전혀 웃기지 않은 척 눙치고 있는데 상대가 웃어주면 좋은 일이지 하며 엄숙을 가장한 그런 것이었다면, 요즘의 작가들은 아예 작정하고 나도 웃고, 너도 웃고 우리 다 같이 웃자는 식인 것 같다. 그것이 나쁠 것은 없다. 모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지. 내가 먼저 재미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어찌보면 작가는 자기 글의 제1의 독자인지도 모른다. 내가 재밌게 느끼지 않는데 남 보고 재밌게 읽어달라고 하면 그건 어불성설일게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재밌다. 웃긴다. 나름 톡톡 튀는 재치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그런데 읽으면서 살짝 걱정되는 건, 작가가 독자를 웃겨서 나쁠 건 없지만, 모든 작가가 이것을 들고 나온다면 '웃음 강박증'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웃는 것이 좋다고 하니 웃긴 웃는다만,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웃길거냐에 경도된 나머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걸 놓치거나 부각시키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앞지른 걱정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얘기 하자면 나는 이 작품에서 개그적 요소를 발견했고(이를테면 소설 어디엔가 보면 스파이들이 보는 책목록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거 보고 정말 웃겼고 인물이나 배경 설정이 웃겼다) 그래서 웃긴 했지만, 앞으로 한동안 우리 소설에 이런 개극적 요소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콜럼버스의 달걀' 같과 같은 소설이다. 누구든 한번쯤 다루어 봄직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을 생각 못하고, 안 다루었는지 모르겠다. 아는대로, 007 영화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제임스 본드는 승리를 의미하는 만족스러운 웃음과 매번 바뀌는 본드걸과의 달콤하고도 야스러운 포즈로 마무리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걸고 넘어지는 것은, 정말 보여지는 짜릿한 엔딩이 과연 실생활에서도 이어지고 있느냐라는 의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거 얘기라면 찾아보면 더 나오지 않을까? 나의 경우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던데. '그래 좋아.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왕자님과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됐어. 그런데 삶은 현실이거든. 그 이후의 삶도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신데렐라 이야기의 속편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이 기회에 내가 한번 써 봐?'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많은 가능성과 참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기대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느 쪽일까? 일부러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걸까? 못한 걸까? 정말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단 말인가? 이 책에서 007은 해피엔딩과 달리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에다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간단하게 미미양을 배신하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을 한다. 이에 미미는 복수를 위해 스파이 교육을 받는다. 그랬으면 당연 끝까지 복수를 해야하지 않는가? 그런데 작가는 그것을 슬쩍 비껴간다. 작전 한번 실패해 봤더니 사람이 보이더라는 식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떠한 깨달음이었는지 사람이 저 모습이 되기까지는 나름의 많은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려고 했겠구나. 그러니 어쩌겠니? 서로 이해해 주고 감싸주고 인류애를 좀 발휘해 줘도 괜찮지 않겠니? 그래야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뭐 그런 식의 호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쯤은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정도의 지점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소설이 너무 짧지 안았을까? 작가가 성직자 같을 필요야 없겠지만 암시 정도에서 끝내버리면 독자가 성에 안 차한다. 특히 나 같이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독자는. 아니면 설득될 때까지 더 많은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전개해 보던가? 뭔가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지점에서 대충 뭉개고 마니 김이 빠진다. 그러니 여기에 굳이 '미미양의 모험'이란 타이틀까지 달고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냥 '미미양의 깨달음' 정도이지 않았을까? 모험이 모험다워지려면, 뭔가 박진감이 넘치고 어려워도 목표치까지 가 보고 갔다가 그 이후에 오는 것들을 조용히 음미해 보는, 뭐 대충 그런데까지 나갔어야 '모험'이란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았을까?
물론 사람의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뀐 거 가지고 독자를 설득시킬 수는 없다. 독자는 인물이 변하는 것을 추적해 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니 미미양이 나중에 무엇을 깨달았던지 간에 007을 복수하기로 했다면 해 봤어야 했다. 그리고나서 남는 건 뭐였는가를 얘기해야 완결된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복수를 위한 모험이었을텐데 재대로 해 보지도 않고 끝내 버리다니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은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나를 자극시켰다. 우선 앞서말한 모 작가의 재밌게 쓰기에 또 한번 좋은 사례(?)를 보여줬고, 작가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너무 성급하게 일찍 뭔가를 드러내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거야 설교가나 상담가들이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아무리 열린 결말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독자의 가려운 부분을 충분이 긁어주고 등장인물과 충분히 놀다가 끝내줘도 늦지 않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 여유가 아쉬운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