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일까? 우리나라에 칠리소스가 들어와 입맛을 사로잡아 것이.  이 칠리소스는 튀김닭을 먹을 때 같이 찍어 먹으면 느끼하지도 않고 톡쏘는 매콤 달짝지근한 맛이, 우리나라의 겨자나 일본의 와사비와는 또 다른 맛이다. 모르긴 해도 이 칠리소스는 남미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간다. 우선 남미의 이국적인 이미지와 강렬하면서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특유의 입심, 자유분망함,  남미를 배경으로한 몇편의 영화들. 그 속에 비쳐지는 빛과 어두움의 이미지가 나의 머릿속을 휘졌고 있어 리뷰 쓰기가 용이하지가 않다.  그만큼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을 풀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말해 보자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 전편에 흐르는 앙헬 산타아고와 빅토리아의 사랑이다. 말을 훔친 죄로 5년 형을 받았지만 대통력 특별 사면 조치로 풀려난 앙헬은 우연한 기회에 발레리나가 꿈인 빅토리아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가정환경은 불우하다.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피노체크 정권에 저항하다 목이 잘리고, 그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버린 어머니와 함께 살며 학교에서는 퇴학을 맞은 상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희망은 없어 보이며, 그나마 유일한 희망은 발레리나가 되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돈이없어 더는 배울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앙헬은 그런 빅토리아에게 용기를 주고, 학교에서 재시험을 치르게 해서 퇴학을 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녀가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오직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발레리나가 되어서 국립극장에 서게하기 위한 것. 때문에 앙헬은 그런 빅토리아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물론 후에 빅토리아는 시험을 망치게 되고 삼류극장에서 매춘을 하지만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도와주는 앙헬의 사랑이 인상깊다.

그러나 앙헬은 빅토리아를 사랑할 때와는 달리 그리 순수하지마는 않다. 오히려 불온하다. 잘 생긴 외목 덕에 수감시절 동료죄수로부터 윤간을 당하고, 그를 범한 사람들 중엔 간수 산토르도 포함이 되어있다. 자신이 석방되면 간수를 꼭 죽이리라던 앙헬과 그의 결심을 알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산토르는 희대의 악명 높은  살인범 리고베르토 마린을 한달 동안 몰래 빼내 앙헬을 죽이라고 한다. 앙헬이 석방되던 같은 날   금고털이범 베르가라 그레이도 석방이 된다. 그는 나이도 많고 아내와 자식에게 버림을 당할 위기에 놓여 있으므로 남은 생애동안 착하게 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앙헬은 난장이 리라의 계획을 베르가라에게 알리고 한탕하자고 졸라댄다. 거기서 등장인물들과의 얼키고 설키는 내용이다.  총 50장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짧막한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완결된 장으로 읽혀져 완급을 조절하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고, 작가가 얼마만한 입심을 가졌는지를 가능케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 소설은 곧 영화화 될 것이라고 하니 아마도 작가는 영화화될 것을 미리 생각하고 쓴 것 같다.  

정말 이 소설은 입심이 좋다. 거침이 없고, 물 흐르는 듯하며,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또한 칠레의 현대사의 질곡을 잘 녹여내고 있다. 또한 베르가라 그레이를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등장인물을 통해 네루다나 레이몬드 카버의 인용구를 적절히 배합시키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탁월하다. 또한 앙헬과 빅토리아의 성애장면은 리얼하면서도 노골적이고 거침이 없다. 

나는 초두에 칠리소스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였다. 아마도 이 책에 흐르는 정서는 칠리소스의 톡 쏘는 듯한 맛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관망하고 인생을 관조하는 그것은 역시 작가다운 면모를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다. 한번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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