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모 작가는,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죄로 평생토록 책상 앞에서 글을 써야하는 천형을 지녔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아, 정말 그렇겠구나!'하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 책상 앞에서 평생 글을 써 대는 것을 가지고 '천형'이라고 까지 해야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잔인하고 끔찍한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수 많은 작가들은 왜 이 천형을 굳이 감내하려는 것일까? 또한 어떤 사람은, 작가들은 오만하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양, 전지적인 싯점에서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쥐락펴락 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듯 하다. 작가가 뭐라고 그리도 오만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역자의 후기가 눈에 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욕망과 걱정을 하게 되는 듯하다. 내가 창조한 세상, 내가 그려낸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과,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사이의 갈등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314~315p)   그렇다면 작가의 쓰는 행위를 천형이라고 말했던 그 사람의 말이 일견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내가 창조한 세상이 진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확률은 극히 미약하긴 하지만, 가끔 이런 질문은 해 본다. 어떤 독자가 내가 쓴 소설을 보고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이 독자 자신임을 깨닫고 어느 날 명예훼손 죄로 고발을 해 온다면 그 작가는어떻게 하겠는가? 어차피 작가에 의해 창조된 등장인물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사람을 쓰지 않겠는가? 이것은 정말 있을 법한 일로써 그런 독자를 대하는 건 두려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작가는 왜 쓰는가?란 질문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왔던 질문이다. 거기에 대해 작가들은 나름대로 답을 달아 왔겠지만, 이 말은 또 얼마나 기가 콱 막힐 질문이란 말인가? 작가가 왜 쓰다니? 작가에게 욕망이 있다면, 내가 쓴 글이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만이라도 받아 들여져서 그로 하여금 같이 긍정하고 동감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네가 모르는 이야기를 난 안다. 너 내 얘기 들어 볼래?"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 조너선 캐럴은 사람들에게 '경이감'을 일깨워 주기 위해 글을 썼다고 했다. "어릴 때는 말하는 개나 귀신, 벽장 속 괴물, 보이지 않는 친구 같은 놀랍고도 신기한 일들을 아주 쉽게 받아들인다. 어른이 되면 이러한 것들을 잃으면서 '현실'이 아닌 것들을 밀어내는데, 캐럴은 그것이 가장 슬픈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며, 한 시인의 말을 빌려 그런 작업을 '경이로움의 재탄생'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의 '경이감'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이다.(312p)  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니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나는 동생과 자주 인형놀이를 즐겼는데, 주로 장식용 조그만 인형들이었다. 나는 이것들이 정말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었다. 그러면 정말 정성껏 돌봐 줄텐데. 그 무렵 TV 만화영화를 보면 어느 소녀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의 사람들처럼 작은 사람을 돌봐주는 걸 보면서 나도 실제로 그 소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너무도 빨리 동화를 잊었다. 나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부터 동화를 읽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어른답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인가에 더 많은 촛점을 맞췄다. 이 책을 읽으니, 이 어른다움을 걱정하는 조너선 캐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우린 얼마나 꿈을 잃고 살아왔던 것일까? 현실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독자에겐 이 책은 다소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동화적인 것만도 아니다. 독특하고, 몽환적이다. 작가가 말하는 '게일런'이라고 하는 지명은 실제로는 없는 지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저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무진이라는 곳이 없는 것처럼.

독자라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만 읽지 말고, 작가가 갖는 욕망이나 이면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든 의외의 것이든 말이다. 작가는 말 할지도 모른다. "내가 평생 네가 알지 못하는 얘기를 들려줬으니까 누구든 나의 전기를 좀 써 줘." 그런데 작가는 영리하다. 누군가 나의 전기를 써 줄 사람을 위해 작가의 육필원고,  작가의 집, 그가 살았던 동네의 모습이 어떠한지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놓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기를 쓰는 그 사람을 지켜 보고 또한 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어한다. 못 말리는 병이고 섬뜩하다. 그래서 작가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천형을 지녔고, 오만을 결코 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여, 부디 그 오만을 거부하지 말기를. 직시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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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12-2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님의 발언과 '건이와 경이'가 떠 올라서... ^^

물만두 2006-12-2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탄감탄!!! 저는 횡설수설^^;;;

stella.K 2006-12-2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무슨 말씀이시온지...??
물만두님/에고, 무슨...제 리뷰는 그다지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도 않는 걸요 뭐.ㅜ.ㅜ

2006-12-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12-2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