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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김호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11월
평점 :
이제 김호연 작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고, 그는 <망원동 브라더스>로 시작해서 (이 작품은 무려 문학상 수상작이다. 대상은 아니지만.)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로 입지를 굳히더니 지금은 내놓는 작품마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되기까지 작가의 녹록지 않은 과정을 쓴 책이다. 뭐랄까, 그 일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짠 내 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글쓰기 어디까지 해 봤니? 난 여기까지 해 봤다.~"라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싫지 않다. 왜? 그맘 아니까~! 읽다 보면 나의 지난했던 삶과도 일부 오버랩도 돼 절로 배시시 웃게 된다. 내가 글쓰기에 관한 책을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런 책 읽고 자꾸 추억만 떠올리면 뭐 하겠는가? 글을 써야지, 글을.
이 책의 시작은 작가가 2001년 압구정동의 모 영화사에 면접을 보러 간 것으로 시작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작가의 시작은 시나리오부터다.) 나는 속으로 '이 작가 21세기를 나름 화사하게 열었군.' 했다. (원래 21세기는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그보다 조금 앞선 20세기가 서서히 저물어 가던 무렵 교회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A4 2장 반 분량의 짧은 대본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소 내가 대본 쓰는 일에 관심이 있었냐면 그건 전혀 아니다. 작가가 꿈이긴 했지만 그 시절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시 아니면 소설이지 희곡은 비인기 종목이었다. 그런 내가 이 해 보지도 못한 일에 차출(?)된 건 김호연 작가도 책 말미에 그런 글을 썼지만 작가의 마감 때문이다.
나 같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아무리 작가를 꿈꾸더라도 쓰기기는 하지만 항상 중간도 못 되어 중단하곤 한다. 나중엔 그런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작가고 뭐고 꿈도 꾸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일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싫으면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감을 몸에 익힐 수가 있지 않은가. 작가와 작가가 아닌 것의 차이는 마감과 원고료 아니겠는가. 이 일을 수락만 하면 난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가 있다. 채찍과 당근 모두를. 막상 해 보면 현기증 난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완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기도 싫다. 꼭 외줄 타는 느낌이다. 발 하나만 삐끗 잘못 내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래서 초기 땐 쓰다가 안 풀리면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끼곤 했다. 어쨌든 그렇게 난 마감을 몸에 익혀 갔다. 글 쓰는데 요령도 생기고. 하지만 그건 탄탄대로가 아니라 고난의 행군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난 주일학교 교사이기도 했다. 교사 첫해에 알았던 제자 녀석 하나가 나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주일학교 교사의 업무의 연장이라 글만 쓰지는 않는다. 쓴 글이 연극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누구와 닮았다 했는데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어니'역을 맡은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킨다.) 그해는 어니가 고3이 되던 해라 처음에만 도와주고 수능 보고 다시 오겠다며 떠나갔다. 난 녀석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해 나갔다. 그러다 정말 대학생이 되어 짠하고 다시 나타났다. 근데 웬걸, 머리 좀 커졌다고 오자마자 하극상을 부리는데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겠지만 상황이 또 그렇게 굴러갔던 것도 있었다. 결국 나와 어니는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좋아 떠난 거지 사실은 쫓겨났다.
난 그저 그곳에서 그 일을 하면서 마감을 몸에 익히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조직에서 경질될 일인가? 나락은 그렇게 오는 거구나 했다. 쪽팔리기도 하고. 많이 울었다. 이후 뭘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어느 날 신문에 아기 주먹만 하게 조그만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모처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데 그곳이 창작을 가르치는 곳이다. 내가 웬만해서 뭘 배우러 다니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땐 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록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더니 그곳은 내가 있어 온 곳하곤 사뭇 다른 곳이었다. 80년 대 한창 뜨거웠던 시절 광장에서 젊음을 보내고 지금은 한산한 중노년을 보내고 있는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내가 그분들을 이제야 만나다니. 그분들을 사부로 모시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짧지만 공부다운 공부를 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다 어니 녀석 덕분이다.
그 후 난 1년 반 만에 조직에 복귀했다. 그럴 경우 보통은 그곳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썼다. 그런 걸 보면 내가 거기서 아직 할 일이 남았나 보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내가 꽃길만 걸었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면상 역시 다 밝힐 순 없지만 난 그때부터 최근까지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들을 보고 당해왔다. 뭐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좋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영욕은 항상 붙어 다니는 것 같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책을 읽으니 어찌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던지 작가 인생 다 그렇구나 싶다. 노는 물이 크든 작든. 오히려 지금은 그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들을 글로 쓰지 못해 근질근질할 뿐이다.
누가 그랬다잖는가, 앞으로 부자의 개념이 바뀔 거라고. 가진 것이 많은 게 부자가 아니라 자기 서사가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될 거라고. 작가 역시도 자기 서사를 갖고 있을 때야 비로소 진짜 작가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작가 생활 한두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일반인들은 잘 모르니까 작품이나 상으로 작가를 알아보는 것이고 그래서 작가들은 공모 당선 하나에 울고 웃는 거겠지. 또한 서사란 늘 승리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 독자들은 오히려 식상해 한다. 쓰라린 패배도 보여줘야 그제야 비로소 그들도 우리처럼 하며 동질성을 느끼고 끄덕한다. 그러니 작가의 서사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말하자면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옛 추억을 폴폴 떠올리는 건 좋지만 한 프로젝트를 끝날 때마다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말이 좋아 작가고 프리랜서지 보따리 장사가 따로 없다 싶다. 누가 작가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작가라고 하면 되게 멋있게 생각하는데 어느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그냥 집필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누가 이 일로 벌어먹고 살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말리겠다.
그래도 그나마 글 쓰는 환경은 조금 나아졌나 보다. 옛날에 글 쓴다면 무조건 짐 싸서 절로 갔는데 지금은 심사만 잘 통과하면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게 좀 부럽긴 하다. 중국은 나라에서 작가한테 월급 준다던데(정말?) 우리나라 작가들은 나라에서 월급 받는 것과 레지던스를 이용하는 것 어느 것을 더 선호할지 궁금하다. 둘 다면 좋겠지만 그 둘엔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것도 글을 쓰니까 노려 볼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이것 역시 글쓰기 어디까지 해 봤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책을 읽다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서점 매대에 자신의 책이 깔리고 안 깔리고는 그 작품의 인기의 척도와는 상관없는 마케팅의 영역이다. 즉 출판사 측에서 일정 기간 매대 이용료를 내고 자기네 책을 진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이건 내 생각이지만 정말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작품 정도는 내봐야 하지 않을까. 겨우 한 두 작품 낸 걸 가지고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다섯 작품이 시중에 돌다 보면 어느 땐가 누군가에 의해 입소문이 나게 되어 있다. 한 작품이 조명을 받으면 초기작이 다시 재조명 받기도 하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건 작가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 작가는 '연적'이 망했다고 죽상을 하던데 물론 다소의 시차는 있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 내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작품이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도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면 '연적'부터 읽으려고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책부터 읽게 되었다. 어쨌거나 옛 추억과 더불어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전작은 모르겠고 기회 있는 대로 주요 작은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