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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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민규의 소설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이란 책에서였다. 그 책은 한 해 동안 문단에서 주목 받아온 작가들의 단편을 한 권에 묶은 책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명성에 비해 읽을 기회가 없었던 나로선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음...박민규의 소설이 이렇구나.'하는.

그 단편이 어떤 내용인지는 지금은 기억에 거의 없다. 쳇, 불과 지난 여름에 읽었는데 기억에 없다니...(다시마라도 먹어야 하려나? ) 단지 기억하는 건 우리나라의 소외계층의 어느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를 다뤘던 것 같다. 거기에 무슨 아이스크림 먹는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아무튼 그 소외계층의 어느 사춘기 소년을 다룬 작가의 시선이 나름 신선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전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선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소설가 이외수에 비하곤 한다. 정말 독특하기로는 이외수 못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말투는 조금은 달라 보인다. 이외수는 거침없이 말하는 쪽인데 비해 박민규의 말투는 어눌하다. 내가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매력적이긴 하다. 그런 사람에게선 뭔가 할 말이 많아보이고, 풍부한 느낌의 소유자일거라고 상상해 보곤한다. 단지 그것을 말로 푸는 사람이 아닌 부류라고까지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일까?

그의 다른 소설은 어떨지 몰라도, 이 소설은 정말 독특했다. 박민규에 대해서는 세인의 말들이 구구한가 보다. 어떤 사람은 좋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의 이전 소설들을 별로 접해 보지 않은 나로선 이 작품은 '비교불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고, 단지 독특하다는 느낌만으로 나는 좋았다고 말할 뿐이다.

우선 이 소설은 읽고 있으면 재즈를 연상시킨다. 음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선 재즈의 깊고도 오묘한 세계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아는 건 즉흥과 변주가 가능한 그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은 음악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안다. 물론 그 때문에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쉽게 받아 들여지는 않는 것이기도 하다.  <핑퐁> 역시 그랬다. 읽기에 따라선 낮설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탁구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 운동종목이 이 소설을 이해 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단지 작가는 기승전결에 구애 받음이 없이 기본적인 골격만을 가지고 그때 그때 떠오르는 연상에 따라 글을 채워넣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나는 여기서 마이너리티를 생각해 본다. 한때 나도 창작을 배운 적이 있지만, 강사들이 가르쳐 주는 소설 쓰기의 공식이 있다. 그들은 조금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큰 골격에서는 하나 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 인물은 이렇게 구축을 하고, 배경을 좀 더 튼튼히. 기승전결은 이렇게 등등. 물론 그들은 현장에서 뛰는 명망있는 작가들이다. 작가지망생들에겐 정말 진짜 작가가 되는 게 소원이겠지만, 그들에게서 사사를 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는 신춘문예를 뚫기 위한 비법전수는 아니었을까? 작가가 되는 길이 꼭 그렇게 신춘문예 내지는 모 문학지 신인작가상을 받아야 가능한 걸까? 요즘 이 장르가 뜨고 있으니 이 방면의 글을 써 볼까? 나는 이렇게 쓰고 싶은데 독자들은 이런 것을 원하고 있으니 이렇게 써 봐야하지 않을까란 경계선생의 유혹이 왜 없을까? 그러다 보면 그들이 쓰는 소설은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 항상 다루는 등장인물이 하나 같이 잘 나가는 사업가, 의사, 변호사인 것처럼 작가 역시도 그런 인물들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늘 비슷한 인간군만이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 가리워져 있다. 그런 획일화 된 사회를 어떤 작가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싶어한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것에만 시선을 고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 운동가가 소외계층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목청을 높이면 뭘하겠는가? 그들의 백마디 구호 보다 이런 <핑퐁>같은 소설을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여 보인다.

물론 작가 박민규는 어떤 사회주의 이상을 바라고 이 소설을 쓰진 않았으리라. 그냥 자신이 오래 전에 알았던 중학생 두 명에 관해 소설을 써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썼을 것이다. 작가는 왜 그처럼 소외계층을 소재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 볼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모모하지 않으면 모모할 수 없는. 이 형식주의과 권위주의를 거스르고 싶은데도 어느 샌가 모르게 거기에 눈을 두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마땅치 않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주류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비주류의 삶도 삶일텐데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유독히 눈에 띄는 건 쉼표(,)의 문장부호 였다. 어느 저명한 어른께서는 문장부호의 남발을 지적해 나 역시도 못 쓰는 글이긴 하지만 문장부호를 너무 많이 쓰는 건 아닐까 신경이 씌이곤 했는데, 박민규는 지나치리만치 문장부호를 쓰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것도 어쩌면 작가의 자유로움이라면 자유로움이라고 인정해 주자.  하지만 내내 들었던 생각은 왜 <핑퐁>일까 였다. 전체를 아우를만한 단서는 그다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단지 핑퐁이란 건, 내 생각에 인류가 깜박해버린 것과 절대 깜박하지 않을 것 간의 전쟁인 셈이야.(219p) 란 말을 되내어 보는 수 밖에.

어찌보면 주류적 글쓰기 보다 비주류적 글쓰기가 더 자유로워 보인다. 형식에 얽매임도 없이 재즈처럼. 이렇게 자유롭게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나의 글쓰기에 좀 더 용기를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난 왜 이리 눈치를 많이 보고 겁이 많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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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0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즈같은 소설... 읽고 싶어집니다. 꾸욱~

마태우스 2006-11-0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는군요. 재즈같다구요...으음. 사놓고 냉장고 위에 놔뒀는데 읽고 싶어지네요 . 운동보다 이 책이 더 많은 걸 알게 해주나보군요. 으음...

stella.K 2006-11-0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네. 읽어보세요. 추천 고마워요.^^
마태우스님/야호~! 나 오늘 마태님께 추천 받았다!!!!!!!

가시장미 2006-11-08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읽지 않고 있는책. ㅠ_ㅠ 보고싶어요. ㅋㅋㅋ 리뷰도 멋지십니다!

stella.K 2006-11-0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봐. 괜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