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문장들 - 업의 최고들이 전하는 현장의 인사이트
김지수 지음 / 해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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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큼 자신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게 또 있을까.

예전, 적어도 새마을 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세대까지는 일에 목숨 걸었던 세대다. 그래서 그 인력들이 독일도 가고, 중동도 갔다. 열사의 기후를 이겨내고 일하는 민족은 우리나라 사람들 밖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뭐든지 빨리빨리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에 대한 태도다. 하지만 우린 어느새 그 세대의 일하는 방식을 경멸하거나 비아냥 거리게 되었다. 누가 들으면 섭섭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제 일은 삶에 전부가 되거나 제일의 수단이 아니라는 말도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즉 하나의 사고와 철학 체계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철학이란 게 배고파서는 절대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 않는가.


사람은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딴짓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래가지고 딴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단계에선 철학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18인의 인터뷰이들은 근면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사람은 아닐까 한다. 즉 자신이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부단히 연마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팔아도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달라 보인다.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았을까.


개미가 열심히 일만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개미 집단을 보면 70%만 일을 하고 나머지 30은 빈둥거린다고 한다. 또 그것에 대해 70의 일개미들은 별 불만이 없다고 한다. 그건 하나의 질서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하면 그 빈둥거리는 개미들이 대신 해결해 준다나 뭐라나. 즉 게으른 개미는 그 상황에 맞게 존재하는 것이다. 게으름을 악덕이라고 보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누구는 절대로 100%의 힘을 발휘해서 일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매 순간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 아프거나 번아웃이 됐을 때 구재 받을 수 없다고. 나를 구할 사람은 나 밖엔 없기 때문이다. 새삼 일에 대한 사고가 이렇게까지 진화했나 놀랍기도 하다.


난 이 말에 동의한다. 난 원래 그렇게 애써 공부하고, 힘써 일하는 타입이 못된다. 물론 한때는 열심히 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웬걸 열심히 일했더니 일종의 신경쇠약 같은 것에 걸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 후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난 무조건 피곤하거나 힘들면 쉰다.


'짧고 굵게'란 인생 모토도 건강하고 멋모를 때나 가져 봄직한 거지 나이 들면 이 모토도 바뀐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니 '가늘고 길게'가 된다. 까짓 거 죽기 밖에 더하겠어란 말도 그다지 만만한 말은 아니다. 죽으면 누구 손해인데. 그래서 누구는 근근이 살라 고도 한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인프라가 좋은 시대다. 맨땅에 헤딩이란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맨땅에 헤딩하지 않는다. 물론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있는 것을 가지고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이다.


늘 우리나라 교육은 주입식이 문제인데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할 고등학교에선 일의 기능이나 방법은 가르쳐 줄지는 몰라 일의 철학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건 역시 그 분야의 멘토를 만나야 (조금이나마)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할 수 있으면 멘토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일에서든, 삶에서든 멘토를 만나 자기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첫 번째로 실린 김미경 대표의 말은 울림이 있다. 그녀는 울고 있는 나를 도울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내가 나를 돕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부라고 했다. 맞는 말 아닌가. 그래서 이런 책도 읽는 것이고.


또한 내 상처에 내가 답하는 것이 철학이라고도 했다. 상처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AI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상처도 받는다. 그래야 성숙할 수 있다. AI는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화하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일을 지시하고 해결해야 하는 고용인의 입장에선 사람보단 AI가 훨씬 좋고 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계는 성능이 좋아질 수는 있어도 결코 성숙하지는 않는다. 성능이 좋아지는 것을 가지고 성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믿어 줬으면,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하는 기계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기 성취를 이루어야 하는 인간을 위해 썼기 때문이다. 그걸 자꾸 일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계로 대치한다면 인간은 어디서 자아를 실현하며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AI가 발달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사람의 숨결이 미처야 가능한 분야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은 멋진 책이다. 인터뷰 전문 기자가 발로 뛰어가면서 쓴 글이다. 가끔 어떤 글은 자신의 말을 조금 줄이고 인터뷰이의 말을 더 많이 쓰면 좋지 않을까 싶은 곳도 간혹 보이긴 했다. 하지만 뭐 크게 흠이 될 건 아니고 일에 관해 즐겁게 보고 사색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사람 백현진이나 장기하 등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고만 하지 않는다. 난 그렇게 말하는 게 정말 좋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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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5-26 0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들은 일에 미쳐 있지 않죠. 저같은 사람도 피부로 와 닿아요. 이제 주 사일 근무 시대라니깐… 씨제이는 금요일 두시면 퇴근하는 기업도 있다 하던데요. 동생이 말해주더라구요. 이제 개인의 시간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어요!!!

stella.K 2022-05-26 19:49   좋아요 1 | URL
왓, 주 4일 근무 추진한다더리 벌써 그렇게 시행하는 곳이 있군요.
금요일도 두 시 퇴근이면 완전 일할 맛 나겠어요.
예전엔 학교나 기업체도 토요일만 기다리며 다녔는데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하지만 또 그에 못지않게 아직도 열심히 일해야 돌아가는 기업체도 많겠죠?
기업 환경이 일하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데...

페크pek0501 2022-05-30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 무조건 피곤하거나 힘들면 쉰다.˝ - 현명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해요. 이젠 체력이 바닥 나면 몸살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바닥 나기 전에 스톱 합니다. 건강을 우선으로 챙기기, 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멘토가 없었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었어요. 멘토가 있었다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독서 지도 같은 거요. 선배로서 후배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추천해 주는 그런 멘토가 있었다면 나의 삶이 지금과 많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땐 놀기 바빴죠. 그때 독서 동아리 같은 것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 생각해도 젊은 시절을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

stella.K 2022-05-31 10:41   좋아요 2 | URL
젊었을 때 한때 열심히 살아왔으며 됐잖아요.ㅎㅎ
그래도 제 나이 또래 사람들 여전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들 생각하면 존경스럽기도하고, 안쓰럽거든 하고.
그들을.생각하면서 너무 게을러지진 말자 생각해요.ㅋ

우리 땐 아예 멘토란 개념이 없었잖아요.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그죠?^^

희선 2022-06-14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려야줘야 한다는 말씀 맞네요 누구나 처음엔 실수하기도 하는데, 잘 하는 사람은 그때를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실수하면 안 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잘 하는 사람이 도와주면 되겠지요 기계는 실수하지 않고 일을 잘 하겠지만, 사람 같은 마음은 없어서 안 좋을 듯도 합니다 사람을 믿으면 좋을 텐데...


희선

stella.K 2022-06-14 10:13   좋아요 1 | URL
저는. 키오스크도 사실 마땅찮아 않더군요.
물론 기계치이기도 하지만 직원과 고객이 서로
돈 주고 받으면서 인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대면을 잘 안하려고 하니 이러다
자발적인 대인기피증이 걸릴 것 같아요.😂

2022-06-21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1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1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2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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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식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일 때 부모님은 한때 화초를 거의 공격적으로 사들인 적이 있다. 부모님이 40대 중후반쯤 되셨을까. 그 화초들을 봄이면 마당에 내놓고 찬바람이 불면 안으로 들여놓아야 하는 게 번거롭지는 않을까 싶은데도 두 분은 그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셨다. 그걸 보면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식물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식물을 좋아하는데 따로 정해진 나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도 나이가 들수록 나무와 꽃이 좋아진다.

올봄 울진에 큰 산불이 났다. 이글거리는 불에 타들어 가는 나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것들이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얼마나 뜨거울까, 발 달린 짐승이면 피하기라도 해 볼 텐데 그 뜨거움을 온몸으로 맡고 있으니 보는 나도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새까맣게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도 새싹이 돋고 나무가 자란다는 것이다. 숲의 복원력이 놀랍다. 그만큼 식물의 생명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하긴 동네 공원에 볼 품 없이 서 있는 나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지 모른다. 600년 이상을 사는 소나무도 있다니 않았는가. 어디 그뿐인가. 시멘트 바른 담벼락에서도 풀꽃이 자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싹을 틔우는가 궁금하고 관심이 갈 만도 하다.

이 책은 이런 막연한 식물의 생장 방식에 대해 보다 정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식물은 환경에 맞추어 자신을 조율하고 조절한다. 또한 경쟁하고 협력하며 친족 범위를 넓힌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환경을 변화시키고, 다양성의 호혜적 이익을 인식하고, 서로를 돌보기도 한다. 그냥 어느 곳엔가 심어져 땅으로는 뿌리를 단단히 하고 위로는 가지를 뻗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식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뭔가를 끊임없이 작동시키고 있었다. 참으로 은밀하고 긴밀하지 않은가.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사는 방식은 경이롭고 놀랍다. 어쩌면 그래서 우린 앎의 경지가 넓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참, 그래서 그렇게 시작된 나의 부모님의 화초 가꾸기가 나름 오래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한동안 엄마 홀로 화초를 돌보다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키우지 않게 되었다. 글쎄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살아 계셨다면 화초 키우기가 좀 더 오래갔을까. 두 분이 함께 화초를 애지중지 돌보는 모습도 좋았는데 지금 엄마는 연로해서 돌볼 여력이 없다. 성격상 긴밀하고 은밀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동물보단 식물을 더 좋아하고 반응하는 존재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이 작고 가볍지만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알차다.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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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5-19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식물도 경쟁이 심할 거예요 서로 돕는 것도 있겠지만... 소리가 나지 않아도 식물은 나름대로 힘을 다해 사는군요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식물, 나무는 산불이 나도 피하지도 못하네요 세상에 사람만 있으면 안 좋겠지요 식물이 사람보다 더 빨리 세상에 나탔겠습니다 함께 살아야 할 텐데,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네요


희선

stella.K 2022-05-20 15:15   좋아요 2 | URL
그렇겠죠? 지구에서 일생을 산다는 건 다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경쟁도 해야하지만 서로 협력해야 공존한다는 걸 식물도 알고 있다는 게
참 신비로운 것 같아요.

mini74 2022-05-20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아직 아기해바라기라서 햇빛 따라 움직이더라고요. 아침 위치랑 저녁 위치가 다른 ㅎㅎ 넘 신기했어요. 전 식물연쇄살인마라 ㅠㅠ 파나 심어놓고 먹을까 했는데 언니가 해바라기씨 하나를 주더라고요. 또 보고있으니 좋긴 합니다 *^^*

stella.K 2022-05-2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식물연쇄살인마! 저도 그런데ᆢㅋㅋ 지금 한창 예쁘겠어요. 아기 해바라기. 예쁘게 잘 키우세요.🤗

페크pek0501 2022-05-24 1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식물도 서로 경쟁하며 자란다는 걸 어느 책에서 읽고 놀란 적이 있어요. 많은 나무가 함께 있을 경우에 힘이 있는 나무가 더 좋은 자리를 확보하여 줄기를 뻗으며 자라겠지요.
제가 화초에 물을 줄 때 처져 있던 잎이 갑자기 확 올라올 때가 있어요. 이때 놀라운 생명력을 느끼죠.

stella.K 2022-05-24 16:43   좋아요 1 | URL
언니도 화초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언니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종들은 다 경쟁을하면서
사 나봐요. 또 그러면서도 경쟁만하며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게도 되고.^^

프레이야 2022-05-28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니 어찌보면 훨씬 강한 것 같아요 동물보다. 제가 식물 가꾸기에 능력이 부족한데 그게 정성과도 연관있겠죠. 이 책 마음 가네요 찜!

2022-05-28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28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e Earthian Tales 어션 테일즈 No.1 - alone
김보영 외 지음 / 아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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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우리나라에 문학잡지의 수가 꽤 되고 얼마 전부터는 특정 장르만을 전문으로 한 문학잡지도 나왔다. 그렇다면 다른 장르의 문학잡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이렇게 SF 문학의 창간호가 나와 주었다. 다양한 문학 전문 잡지가 나온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새삼 이게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사람은 얼마나 억울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뭔가 모를 포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책 책상이나 서가에 꽂혀 있으면 흐뭇해지며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언뜻 보기에 잡지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앞으로 허투루 만들지 않겠다는 이 잡지만의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벌써 오래전에 SF 전문잡지가 나온 것을 생각할 때 많이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아직 마니아층이 그다지 두텁지가 않으니 그럴 것이다. 내가 기준이 될 순 없겠지만 SF에 대한 나의 이력은 어렸을 때 본 TV 시리즈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이란 양대산맥이 있었고, 만화로는 '은하철도 999'와 '캐산(?)'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로는  <인터스텔라>나 <마션>, <반도>(이 영화를 액션물로 구분했는데 내가 볼 땐 SF라고 생각한다) 정도가 얼핏 떠오를 뿐이다. 90년대부터 간간히 드라마도 만든 것으로 아는데 작품성은 몰라도 그다지 흥행을 논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전문작가를 양성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분야가 발전하려면 문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 근래 부쩍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SF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잡지만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하긴 문학 전반에서 활동 작가의 수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매체가 증가되었으니 그럴 것이다. 이 잡지도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시, 만화, 평론, 인터뷰 등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SF를 말하고 표현하는 줄은 몰랐다.  


물론 난 전문가가 아니니 수준이나 성과를 논할 순 없지만 수준을 말하기 전에 일단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이런 잡지가 나와주면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기도 좋고 독자 역시도 다양한 작품을 읽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좀 놀라운 건 여성 작가들이다. 얼핏 여성 작가들은 SF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은 그리 크진 않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꽤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하긴 외국만 해도 르귄이나 머거릿 애트우드 여사는 이 분야에선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고 동시에 원로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늦게 시작한 만큼 아직 젊은 분야다. 그만큼 가능성이 많기도 하다. 


그런데 SF의 공식은 디스토피아인가 새삼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들의 분위기가 밝지마는 않다. 느낌도 쇳소리가 많이 나는 것 같고. 하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렸을 때 봤던 SF 만화에서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지배하는 암울한 세계를 그린 작품이 있었다 (앞서 말한 '캐산'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보면서 덩달아 나도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솔직히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겠는가. 그게 꼭 로봇이 아니고 다른 것을 대입시켜도 말이 된다. 예를들면 산업폐기물 같은 거 말이다. 사람 편하지고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어느 날 수명이 다하고 쓰레기가 되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AI는 우리의 피부만큼이나 접촉성이 강한 물질이 되었다.  


그래도 이 책에서의 단연 압권은 곽재식의 단편 '백세 포스터 그리기 대회'다. 이 작품은 이제 의학의 발달로 영생을 살게 된 사람들에게 100세만 살자고 권장하는 포스터 대회를 여는 어느 학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풍자적이면서도 빵 터지는 것이 엄지 손가락을 높이 쳐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역시 우울하다. 작품이 아니어도 우린 100세까지 살게된 게 축복이냐 저주냐 말들이 많지 않은가. 이 작품은 그걸 휠씬 뛰어 넘는다. 그나마 우울하지 않게 그렸다는 점에서 곽 작가의 재능에 환호할 뿐이지.  


하지만 SF는 미래에 과학의 발달로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 그런 의미에서 다소 예언적 요소도 있으며(그것이 진짜든 꾸며낸 것이든) 어떻게하면 인류를 인류답게 할 것인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만한 장르도 없지 않나 싶다. 이제 뭐든지 우리가 만들면 세계적이 된다. 그래서 K로 시작하는 분야가 많아졌다. 난 앞으로 SF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K-SF의 무한한 발전을 응원한다. 이제 곧 통권 2호가 나올 모양인가 본데 모쪼록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순항했으면 좋겠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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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22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분야에서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많은 걸 보면 아직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예요. 신문만 보더라도 필진의 남성과 여성의 성비는 8대2 정도 된다고 합니다.
SF 분야에선 여성 작가가 많았으면 싶네요. 티브이 드라마 분야가 그나마 여성 작가의 뛰어난 활약이 있었죠.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만든 로봇의 지능이 너무 발달해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ㅋㅋ 이 비슷한 영화를 보기도 했고요. 먼 미래의 일이라서 제가 사는 동안은 일어나지 않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stella.K 2022-03-22 18:20   좋아요 2 | URL
지난 주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 보니까
밀레니엄버그를 다루더라구요.
그제야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웃었죠.
뭐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요?
한 23,4세기쯤 있을까 말까한 일이겠죠.ㅋ
그런 영화 뭐가 있는지 생각 나시면 갈켜 주세요.^^

희선 2022-03-23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많지 않을지 몰라도 꾸준히 SF 쓴 사람은 있는 듯해요 새로운 사람도 나오고... 이런 잡지가 나오다니 잘됐네요 아작은 SF 소설을 주로 내는 곳이군요 거기에서 잡지도 만들었군요 이 잡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22-03-24 18:06   좋아요 1 | URL
머지않은 미래에 sf작가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울나라는 거의 전인미답의 분야기도하니. 다음 달에 나올 2호도 잘 생겼더군요. 저는 잡지는 별로 성실하게 못 읽는데 그래도 가급적 창간호는 갖고 싶더군요. ㅎ
 
기타 등등의 문학
전성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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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문학집배원을 자처하고 독자들에게 부친 편지들 가운데 엄선해서 책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문학을 구독 서비스를 했었던 모양이다. 나도 몇 년 전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젊은 작가에게 구독료를 지불하고 보내주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그때 정성스럽게 쓴 작가의 글을 보고 꽤 감동한 적이 있다. 나도 이젠 어느새 구세대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버린지라 구독하면 신문 밖엔 생각 못했는데 이제 구독은 다양하게 널리 퍼져있다. 그중 문학을 구독한다는 건 놀랍긴 하다. 또 이렇게 문학을 구독한다면 앞으로는 과학이나 다른 분야의 전문 작가도 이런 구독 산업에 뛰어들지 않을까.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그렇게 하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쓰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하는 존재이긴 한가 보다. 이 당연한 전제를 이 글을 읽으면서 또 한 번 확인한다. 저자가 문학집배원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했을까. 작가들이야 2, 3일에 한 권 또는 하루 만에도 책 한 권을 뚝딱 읽어 치우는 존재들 아닌가. 일일이 책을 읽고 그것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꽤 바빴을 것 같기도 하다.  


형식은 이렇다. 읽은 책을 요약하기보단 인상 깊은 내용을 골라 싣고 저자의 생각을 엽서 한 장에 들어갈 길이의 글을 썼다. 그렇게 짧게 쓴 이유가 있어 보이긴 한다. 좋은 글을 음미하고 독자의 생각을 더 깊게 해 보라는 나름의 전략이 있지 않을까. 처음엔 너무 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런 저자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늘 도톰하고, 글 많고, 눈과 마음도 사로잡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좀 아쉽긴 하다. 나는 늘 남의 생각이 궁금한 사람이라서 말이지. 이런 책들을 읽고 저자의 생각은 아주 조금 밝히는 건 독자에겐 배 배신이야, 배신.


그래도 아주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머리말에 나오는 박영근 시인을 어찌 알았을까. 저자는 박 시인이 책을 참으로 아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계절마다 발표되는 시, 소설, 비평을 망라하여 꿰고 있고 술에 삭혀 전하는 감상이 일품이라고 했다. 그뿐인가, 박성원의 소설 <하루>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짧지만 도회적이면서도 강렬한 구성이 좋았다. 와, 우리나라에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다니. 한 번 그의 작품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저자는 당신의 하루는 어땠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고 글 말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내는 하루의 종합은 12억 시간. 지구인들의 하루의 총합은 1600억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뭐 천문학적인 숫자고 시간이라고 밖에는 말 못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수치로 밝히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적이고 개개인에겐 얼마나 귀한 시간일까 감이 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짜 웃겼던 건, 이정록의 <교무수첩에 쓴 연애편지> 중에서다. 내용은, 이정록 시인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에 모 출판사에서 나눠준 교무 수첩을 고향집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어머니가 뭘 쓰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수첩에 뭘 쓸 만큼 학식이 있으셨던 분도 아니었다. 시인은 군 복무 때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의 글은 한글 받침이 항상 빠져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시작이 "사라하느 내 아더라" 그러면 시인은 울컥했다. 그런 어머니가 세상 떠나가신 분 그리워 그 교무수첩에 연서를 쓴 것이다. 그게 묘하게 시인의 마음에 질투가 났다 보다. 아버지가 누구한테 연서를 받을 만큼 대단한 분이 아니다. 술주정에 긴 병치례를 하고, 가난한 농사꾼이면서 집안사람에겐 인색하고 남에겐 한 없이 후한 그야말로 집안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가장인데 그런 분을 향하여 연서를 쓰니 신경이 쓰일 밖에.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조용히 이해시킨다.  


한 번은 어머니를 안고 블루스를 추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자신에게 안기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입방아를 놨다고 한다. "어머니, 저한테 남자를 느껴유, 어째서 자꾸 엉치를 뺀대유?" "아녀, 이게 다 붙인 거여.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순간 어머니의 볼이 붉어졌다고. 그러면서 "가상키는 하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읍서야." 이 이야기는 사랑받는 일에서만큼은 정말 아버지가 부럽다고 맺고 있다. 


재밌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은 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런 발견의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뭐 때문에 글을 읽겠는가. 이런 글은 예전 같으면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발견의 기대 때문은 아니겠는가. 평소 쉬거나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고 하겠지. 그럴 때 어느 작가가 보내주는 편지를 받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출판사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 책은 굳이 안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인들의 하루의 총합이 1600억 시간이라고 할 때 저자의 한 통의 편지를 보내는 시간은 1초에도 해당하지 못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쓰고 누군가는 읽으며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 시간은 또 다른 차원에서 무한대로 증식할 것이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작가와 독자가 직접 받는다는 현재성을 누려봤으면 한다. 해 봐서 아는데 나름 묘한 짜릿함이 있다. 작가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당신의 이메일을 보라. 무엇이 들어와 있는지. 거의 대부분 각종 고지서 아니면 연동해 놓은 SNS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 가운데 작가가 보내주는 글 하나쯤 끼어 있으면 그도 나쁘지 않다.  


독서 에세이는 이제 너무 많아졌다. 물론 그건 여전히 나의 관심 대상이긴 하지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읽으려고 한다. 읽으면 책에 대한 안목을 키워 줄 테니 좋긴 하겠만 이제 눈도 안 좋고,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있는 책이라도 잘 읽어두자는 쪽이다. 물론 반대로 어차피 책을 읽는 건 한계가 있을 테니 이런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기에 좋지 않은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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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2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정록 시인 이야기 재미있네요. 저는 이 분 의자 란 시 생각나요. 그 시에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따뜻한 분이란 생각 들었어요 ~

stella.K 2022-03-13 20:08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 시는 문외한이라...
글을 이렇게 쓴다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기도 해요.^^

얄라알라 2022-03-22 11:30   좋아요 1 | URL
시를 잘 모르는 저이지만, 이정록 시인의 시집 가을철에 읽고 따뜻해했던 기억이 나요
시인의 어머님 말씀을 많이 옮겨다 쓰셔서 더욱 따스했었네요^^

기억의집 2022-03-12 2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엽서 한장으로 압축은 아마 긴 글은 안 읽기때문에 딱 저 정도 분량의 글이 알맞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였을까 싶어요. 저는 문학은 아닌데 김복준교수님(전형사이셨던 분)의 편지 신청해서 받아 읽어요. 교수님의 사적생각도 범죄에 대한 생각도 들어 있어서 편지 서비스 괜찮더라구요!!!

stella.K 2022-03-13 20:11   좋아요 1 | URL
맞아요. 긴 글은 사람들이 안 좋아하죠.
근데 김복준 교수라면 저도 아는 분 같아요.
그분도 그렇게 하시는군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기억의집 2022-03-13 23:42   좋아요 2 | URL
112case.gr8.com 에서 신청하시면 되세요! 저는 이 분 유튭 다 들었는데 정말 좋으세요!!

프레이야 2022-03-12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곱슬머리 이정록 시인 좋아해요. 부산에서 강연을 들은 적 있는데 이야기도 참 재미나고 의미있게 하더군요. 시도 참 좋아합니다. 시인의 서랍,에는 그의 시쓰기 마음이 담겨 있어 좋아하고요.

stella.K 2022-03-13 20:14   좋아요 1 | URL
ㅎㅎ 곱슬머리군요. 정말 재미있으실 거 같아요.
금관심입니다. 한 번쯤 읽어 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2-03-12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학집배원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립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하는데 작가들은 정말 책을 많이 읽더라고요.
읽는 능력도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아요~~
작가에게 글을 배달받는 일은 두 세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부터는 식상해질것도 같아요^^

stella.K 2022-03-13 20:18   좋아요 3 | URL
ㅎㅎ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책을 항상 끼고 사는 사람 보단
잘 안 읽는 사람에게 이런 유용하죠.
그러다 책을 사 볼 수도 있고.^^

희선 2022-03-14 0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정록 시인 하면 어머니 말씀을 받아 적은 시집이 생각납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이 말 한 것 같기도 한데... 다른 분한테 했을까요 그 시집 제목은 《어머니 학교》네요


희선

stella.K 2022-03-14 15:40   좋아요 2 | URL
아, 그게 그 책에 수록된 건가요?
솔직히 엮은 양반이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놓지 않아서
도대체 어디에 이런 내용이 있는 건가 궁금했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껍데기는 가라 -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와의 대화 이슈북 1
함세웅.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최근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란 책을 읽다 함세웅 신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는 그가 이끌었던 '정의구현 사제단'이다.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이 민주화의 중심에 서서 정의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모를 전율이 느껴졌다. 철없던 시절 신부들이 데모한다고 좋지 않은 눈으로 본 적도 있었는데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함세웅 신부가 EBS의 한 대담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나온 것을 알고 VOD를 챙겨 보기도 했다. 


TV에 나온 함 신부는 작은 체구에 단아한 분이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정의구현 사제단을 이끌었을까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지금은 은퇴해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나름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고, 신앙으로 단련되서일까 아니면 노년이 주는 여유로움 때문일까 얼굴엔 온유함과 인자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내친김에 이 책까지 읽었다. 


정의구현 사제단의 공식 명칭은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이다. 1974년 7월 원주교구정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태동되었다고 한다. 그해 9월 26일 서울 명동성당 기도회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사제의 양심에 입각해 교회 안에서는 복음화 운동을, 사회에서는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활동하겠다는 다부진 결기를 밝히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정의구현 사제단을 알리기 위한 책은 아니고 지난 2012년 함세웅 신부와 손석춘 언론인과 함께 나눈 정치비평 대담집이다. 말이 정치비평이지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겪어 온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 현대사를 얘기할 때 당연 역대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데 각 정권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다. 


공교롭게도 그는 초두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한다. 난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나쁜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잠시 대령통직을 정지당했을 때도 왜 그래야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대통령 하다 총 맞고 쓰러지는 일은 있어도 이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나 의아했다. 그러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그에 관한 책을 읽고 거의 통곡하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함세웅 신부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평소 노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대통령은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함세웅 신부가 기억하는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너무 폐쇄적이었다는 평가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대통령에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너무 비판적이 되거나 아니면 감정적이 되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말로를 생각할 때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함세웅 신부의 말을 놓고 볼 때 자초한 면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또한 지금까지 난 김재규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또 그래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고. 이미 지나간 역사 아닌가. 한때는 우리나라에 대통령은 박정희 한 사람 밖엔 없는 줄 알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그 기간이 독재의 역사이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김재규가 쏜 총탄에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충격과 비탄의 마음만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속속 드러난 박정희의 정체와 만행은 알겠는데 김재규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죽게 만든 사람 아닌가. 그런데 함 신부는 달랐다.


그때 함 신부는 교도소에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가 슬퍼서가 아니라 드디어 우리나라에 독재가 종식되고 자유가 오겠구나 좋아서. 그는 그것은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폭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출소 후(그것도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김재규 구명에 나서기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함 신부는 김재규가 상당히 바른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그가 박정희를 살해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박정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차지철과의 통화를 들으면서부턴 데 둘이 그랬단다. 캄보디아에서는 200만 명을 잡아 죽였는데 여기서는 100~200명만 죽이면 된다고. 그러자 박정희가 그 발포명령을 자신이 직접 할 것이며, 내가 하겠다는데 누가 날 어떻게 하겠냐고 했단다. 단순히 김재규가 박정희를 증오해서가 아니다. 박정희를 살려두면 이 나라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공대처럼 김재규를 도왔던 몇몇과 그 일을 감행했다. 이 사실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도 나온 내용이기도 하다. 이 책에 의하면 박정희는 사생활이 상당히 문란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독재를 해 온 사람의 말로가 그렇듯 박정희의 말로도 별 다르지 않았다는 건 여러 사람에 의해 증언된 바 있으니 과언은 아니겠다 싶다. 


하지만 역시 대한민국은 왕정이 아닌 만큼 그 어떤 식으로도 살인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모양인가 보다. 김재규는 그렇게 사형을 당했어도 앞서 말했던 함 신부를 비롯한 구명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김재규의 복권을 위해 힘썼지만 안 됐다고 아쉬워했다. 모르긴 해도 거기엔 박근혜를 비롯한 박정희의 잔당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 복권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까 싶다. 그것과 관련해서 함 신부는 지금의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원죄와 군부독재를 청소하지 못한 역사적 죄과 때문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에 온통 휩싸여 이 말이 먼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젠 일본이 수시로 그것을 일깨워 주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함 신부는 애초부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책이 2012년에 나왔던 것을 감안할 때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했다.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굴욕적으로 합의를 이끌었으니 함 신부의 말이 맞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죄다. 보수는 박근혜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함으로 보수의 면모를 보이려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히려 수구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 되었고 역사를 오히려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박정희의 잔당이 아직 건재하다고는 하나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 보단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길을 수구에서 찾는 건 너무 시대착오 아닌가. 역사는 진보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러면서 함 신부는 이후 나타난 각 대통령에 대한 공과와 비판을 거침 이어 갔다. 그렇지만 한 가지로 말하는 건 누구의 정부이든 간에 정권을 잡고 나면 후에 안일해지고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이 책을 좀 잘못 선택하긴 했다. 난 그저 정의구현 사제단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 웬 대통령에 대한 공과와 비판이란 말인가. 하지만 읽다 보니 지금이 대선인 걸 생각하면 읽기를 잘했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는 것인가. 이런 책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만 높여놨지 과연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대통령이 누군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을 보지 말고 공약을 보고 선택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공약 없는 후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매일 쏟아내는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서 저걸 임기 내에 다 이루겠다고? 영끌 아니야 악마에게 영혼을 팔 건가 싶기도 하다. 


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과연 우린 대통령을 선출하면 선출할수록 행복했는가? 잘 살게 되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후자 쪽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과연 대통령 선거가 의미가 있는 건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공약보다 더 중요한 건 훗날 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또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는 건데 과연 그게 공약만 이행했다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대 비리가 없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은 또 몇 가지로 압축되지 않을까. 탁월한 지도력으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고, 취임에서 퇴임까지 청렴해 주길 바라는 것 뭐 그런 사소한(?) 건데 과연 이런 대통령이 없단 말인가. 흐흑~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이젠 대통령의 공약 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후보가 과거 어떤 정책을 펼쳤으며 주위로부터 어떤 평판을 들어왔는가가 가산점으로 작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대통령이 누가 됐든 국민보다 앞설 수는 없다. 그래서 나라가 민심이고 민심이 곧 나라라고 했는가 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배출시키는 나라가 아니란 말이다.  지난 세월 민주화에서 대통령 파면까지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정치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확실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대통령의 도덕성과 청렴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결국 또 지켜볼 일이다.


책이 얇지만 묵직하다. 길쭉한 판형도 독특하고. 몇 년된 책이지만 역사책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읽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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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12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 생각들이 드는 글 입니다.
지나간 순간들은 번쩍임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는 것 같아요~~
유독 이번 선거는 누굴 뽑을지 고민이 되는데 대한민국의 인재가 이 정도밖에 없는지에 대해 우울해지기도 해요^^

stella.K 2022-02-12 18:24   좋아요 2 | URL
이번 대선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저 역시도 그렇고.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역사적으로 보면 결국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왕도 대통령도 아니었습니다. 국민이었지.
누가 대통령이되든 이것마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후져도 나라는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
아닙니까? 문화적으로도 뛰어나고.
그 긍지가지고 살아야죠.
국민이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도 좋은 나라가 진짜 좋은
나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놈의 특권의식, 관료주의만 없어도 진짜 좋은 나라될 텐데...ㅎ

기억의집 2022-02-12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이이제이에서 김재규 들었는데.. 김재규가 박정희가 차지철을 엄청 신뢰하면서 금이 간 거라고 하더라구요. 차지철이 진짜 건방이 하늘을 찌를 듯 해서.. 박정희 외에 위아래가 없었다고.. 김재규와 박정희가 사이가 벌어지면서 그 사이를 차지철이 메꾸고.. 김재규가 바른 사람 같지는 않던데.. 혹 시간 나실 때 이이제이 김재규 편 한번 들어보세요. 시끄러울 수 있는데 이동형이 진짜 시끄러워서 정신 사나울 수 있어요!!!

stella.K 2022-02-13 08:08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바른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였겠나 싶더라구요. 그런데도 함 신부는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정치계 사람들은 알 수가 없어요. 누구는 좋다고 그러고 누구는 나쁘다고 그러고. 그래서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해요.

mini74 2022-02-13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통령이 누가 됐든 국민보다 앞설 수는 없다 는 스텔라님 글 마음에 와닿습니다. ㅠ

stella.K 2022-02-13 18:31   좋아요 1 | URL
아웅~ 고맙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요즘에야 우리나라 현대사에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예전에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 별로였는데 지금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ㅋ

레삭매냐 2022-02-14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사촌 형님이 신부님이신데
저희 아버지가 어느 자리에서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해 비판하
시면서 슬쩍 형님의 의중을 떠
보셨는데...

형님이 당신도 그쪽이라는 말에
아버지가 식겁하시던 기억이 납
니다 ㅋㅋㅋ

예측불가 역동적인 코리안 완쉐이!

stella.K 2022-02-14 12:39   좋아요 0 | URL
오, 정말요? 대박!
사실 이 책에 의하면 정진석 추기경은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며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도 사제단에 비협조적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어느 단체나 그런 어르신 꼭 있잖아요. 모난돌이 정을 맞을까봐 괜히 겁나는 거겠죠. 사실 그 시절 운동하면 빨갱이 짓 한다고 싸잡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