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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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작년 초였나, 재작년 말이었나? 아는 이에게 선물로 받고 작년 말경부터 조금 조금씩 읽었던 책이다. 이야기란 게 (남의 글을)읽을 때는 문제가 안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언제나 그렇듯 글이란 서론, 본론, 결론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스토리에도 법칙은 있는데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야기의 법칙을 알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시학'을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책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시나리오 쓰는데 도움을 주고자 접목시켜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총 33장으로 되어있고, 간결하게 '시학'의 핵심만을 요약했다.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쓸 수 있을까? 감탄했다. 물론 의심이 많은 나로선 '이거 저자가 '시학'을 진짜 잘 알고 쓴거 맞아?' 웬만해선 읽을 수 없다던 책을 저자는 어떻게 이해하고 이렇게 간결하게 쓸 수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거기다 거의 매 장이 끝날 때마다 철촌살인의 위트있는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예를들면, 

   
 

서브플롯 개념을 버리고 시나리오 구조를 <아메리칸 뷰티>처럼짜라. 그러면 당신의 시나리오는 그 구조 속에서 영화의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고, 어쩌면 당신은 오스카상을 타게될지도 모른다.             

                                               -<4. 최고의 플롯은 한 가지 길로만 간다. 63p>-  

    

 
   

 또는, 

   
 

시나리오를 쓸 때 하나의 완결된 행동을 만들고 우연. 필연. 개연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운명을 불러내야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쓴다면 당신은 오스카상을 받으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수상식장의 통로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10. 운명이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건일 뿐 98p>

 
   

 우습지 않은가? 어찌보면 그 말하는 것이, "밑줄 쫙~"의 요점만 간단히를 외치는  학원 선생님 같다.  

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미국 사람이고 그러니 미국 영화 실정에 맞게 쓴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나라에선 감독이 각본까지 써서 찍는 마당에, 스토리 애널리스트는 무엇이고, 피치(시나리오 작가가 감독 및 제작자들에게 자기 작품을 설명하며 팔아 먹을 때를 이름하여)가 웬말이냐? 더구나 저자는 20세기 허리우드의 잘난 영화들만을 엄선해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으~ 그놈의 허리우드! 잘 났어 정말!! 마치 허리우드가 영화의 모든 것인 양 잘난 척하는 게 마땅치 않지만 뭐 어쩌랴? 억울하면 출세하랬다고, 우리도 그런 시스템에 이런 책 하나 못낸 것을 아쉬워 할밖에.  

2년 전, 시나리오를 배웠을 때 나의 선생님은 허리우드 정석대로만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셨다. "세계 영화의 흐름은 이거야." 하면서 거기서 단 한발짝도 비껴나가지 않으셨다. 모르는 사람은 그 선생님이 허리우드표 빠다를 좋아하시게 되었나 보다며 그야말로 듣는 우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그러고 보니 나의 허리우드 불만이 여기서부터 촉발된지도 모르겠다. 그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난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가 있었다고 간파했다. 무엇을 뛰어 넘으려면 그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렇게 정석에 목 매달았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을 뛰어넘어 줄 사람이 나는 아닌 성 싶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허리우드의 벽을 넘어주지 않을까? 나는 바로 그를 위해 응원의 의미에서 허리우드표를 씹어 주는 것이다. 이러는 날 두고, 누구는 잘난 척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관객은 그 영화를 두고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다. 제작자의 입장이면 절대로 못한다. 그야말로 불만은 나의 힘인 것이다. 

이책은 보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참고서라고 하기엔 좋지만 교과서는 아닌 성 싶다. 만일 누군가 시나리오에 대해 전문적으로 잘 쓴 책을 원한다면 감히 다른 책을 알아 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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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모욕에 대처하는 법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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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이 책을 읽고 거기 나온 '성적 모욕에 대처하는 법' 이란 글을 올렸더니 지금까지 추천을 무려 17개나 받았다. 글이 워낙 재미있어서 함께 나누자고 올렸을 뿐인데 추천을 그렇게나 많이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추천을 많이 받은 이유는 뭘까? 나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재미있어서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여성들은 여전히 성적 모욕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것 

뭐 이렇게 성을 건강하게 드러내놓고 나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웃을만한 부분도 있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다. 내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런 게 성폭력이 아니라고?>(70p~76p)를 쓴 '안티 오아시스'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의 내용이다. 간단하게 얘기를 하자면, 그녀는 먼저 자신은 '오아시스'란 영화를 지독히 싫어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그녀는 한마디로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강간범에게 당했다. 강간 당하지 않으려고 소리치고 반항해 봤자 자신의 목숨만 위태로워질테니 그 목숨 지켜내보겠다고 생면부지의 놈이 시키는대로 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상당히 침착해서 비교적 상처도 안 받았을 것 같지? 사실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녀는 비교적 담담하고 상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이 위기의 순간을 대처하느라 그녀가 받았을 고통과 상처가 어땠을지 가히 잠작이 간다.(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그녀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는 그 처절한 상황에서도 범인을 따돌리고 간신히 경찰서로가 범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잡아줄 것을 말해 봤지만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경찰서로 가기까지는 그전에 눈을 다쳐 범인을 졸라 안과를 갔는데 진술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어떻게 범인과 안과까지 갈 수 있었냐며 의아해 하더란다. 거기엔 경찰의 무슨 생각이 덧발라져 있을까? 어쨌든 둘이 좋아서 섹스한 거 아니냐라는 것도 포함이 되었겠지. 그녀는 그 일이 있기 전, 강간범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에 관한 글을 읽어둔 터라 그렇게 해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외국 사람이 쓴 외국의 경우라 우리나라엔 아직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을까? 그녀에겐 덧이었을 뿐이다. 정작 그 간강범에게서 여자를 지켜줘야 할 경찰이 미온적으로 나왔고 범인에게 내려진 죄명은 '무단침입강간미수'가 다였다. 이것은 정말 내가 봐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오아시스'란 영화를 혐오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영화도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소통부재를 다루고 있는데 그녀는 진짜 강간이란 걸 당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나중에 그 강간범에게서 주인공이 애정을갈구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감독은 "사랑, 해보셨나요?"라며 간강범의 간강을 미화시키고 나아가선 관객을 가르칠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영화를 지독히도 미워한다고 했다.(나도 그 영화를 보긴 했지만 정말 그 영화는 문제가 많은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백 번 아니 천만 번 공감한다.  

원래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긴 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저술가들이 이것을 좁혀 보고자 많은 책을 써왔다.(이를테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그런데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언어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경찰서에 여자 경찰만 있었어도 상황은 그나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말 여자는 남자 보다 언어 능력이 발달 됐다고는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남자의 논리와 힘이 지배를 하고 있음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              

또 하나의 이야기는 <섹스할 때, 끝까지 넌 이기적이었지>를 쓴 글이다. 나도 들어보기는 한 것 같다. 섹스는 가급적 이기적으로 하라고. 그것도 여자에게 이르는 말이다. 얼핏들으면 여자를 위한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보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섹스에 대해 소극적일 수 밖에 없음으로 여자를 자극하여 남자를 유리하게 만드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의 내용은 사랑해서 동거를 했지만 남자의 배려없음에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는 한 여자의 씁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헤어졌으면 끝까지 쿨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 남자 녀석 헤어지고 두 달쯤 지나서 우연히 지나는 길에 만났는데, 대뜸 지금은 안 피곤하냐고 묻더란다. "너 그때 '피곤해서' 섹스하기 싫다고 했잖아. 요즘에는 안 그렇냐는 거지." 모르긴 해도 그 녀석도 여자와 헤어진 것이 꽤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런 식으로 긁고 있으니.  사실은 남자의 지독한 이기심 때문에 헤어진 건데. 그녀가 섹스할 때마다 당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뿐인가? 다른 부분의 이야기지만, 깐엔 배려한답시고 끊임없이 "좋으냐?" 물으며 자신의 능력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그 남자의 심리는 또 뭐냐? 빨리 일을 끝마쳐주길 바라면서 일부러 연기해야 하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이 알기는 알까?  

이책은 좋으면서도 위험하다.      

이 책이 어떻게 해서 내 손에 들어 왔는지 모르겠다. 사지는 않았고, 몇년 전에 받아만 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 걸 최근에야 읽었다. 여러가지 사정상 못 읽은 것도 있었지만 한편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난 그다지 성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관심이 없다는 게 자랑은 아닐 터. 읽어보니 내가 이 책에 선입견이 많았구나 싶다. 이렇게 솔직하고 대범할 수가! 하지만 너무 공감이 가고, 오히려 나의 무지와 게으름을 책망하고 싶어졌다. 어떤 부분은 단편 소설을 읽는 것 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기도 했다. 

이책은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언니네 방'이란 싸이트에 올라 온 글들을 발췌한 글들이다. 이 싸이트가 생겼을 때 적지 않은 여성 네티즌들이 환영을 했다고 한다. 혼자만 음습하게 가지고 있었던 아픔들 상처들을 용기있게 양지로 끌고 나왔다는 점에서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있었는가? 당한 건 여잔데 범한 남자는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말이나 되는가? 섹스가 인생에 전부는 아닌데 상업주의와 맞물려 모든 사고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고 귀결시키는 이놈의 세상. 그리고 그 후유증은 또 얼마냐? "...좇까라. 씨발..."은 이럴 때 써 먹는 말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언니네 방'이 잘 운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싸이트 찾아 봤지만 잘 못 찾겠던데. 이렇게 자유롭게 서로의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지만 자칫 우려되는 건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남성 기피' 내지는 '남성 혐오'를 부추길까 봐 그게 걱정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정한 페미니즘은 여성우위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자는 억압받고 하위의 개념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해 보고자 하는 움직임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공존하는 것일 것이다.  

결코 만들어지지 못할 방           

'언니네 방'이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시도가 있다는 건 상당히 획기적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언니네 방'은 있으면서 남성을 위한 '형님네 방'이나 '오빠네 방'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이런 방쯤 만들어질 필요도 있을 텐데 내가 아는 바로는 없는 것 같다. 있어도 섹스를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할 것이냐? 뭐 그런 게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남성도 말 못할 고민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방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부장의 사회에서 같은 종족 욕 먹일 필요 있냐? 절대 만들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성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기론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진데 그속은 좀 다를 것이다.  

 '여성학'이란 학문은 진정한 의미에서 '학'이 될 수 없다     

나의 20대 어느 가을 날 나는 어느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었고 그때 처음 여성학이란 학문을 접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그때 가르쳤던 강사가 '여성학'이란 학문은 진정한 의미에서 '학'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언젠가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이 되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안다. 여성학이란 학문은 지구에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여성학은 점점 더 중요한 학문이 되리라는 걸. 

하지만 여성학은 어느 특정인을 위한 전위물처럼 취급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저작물이 아니면 어디가서 여성의 실태를 쉽게 접할 수 있을까? 여성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인데 이 책은 절판이 됐다는 것이 다만 아쉬울 뿐이다.(품절로 나오지만 아마도 절판됐지 싶다) 그런데 왜 짧은 시간 절판(품절)이 됐는지(이책의 초판은 2006년이다.) 알 것도 같다. 나름 부작용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궈서야 말이 되는가? 어느 날 화려한 복간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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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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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책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본인들은 극구부인을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얼굴이 명함인 사람들 아니던가? 그런 잘난 사람의 이야기가 예전엔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의 글일테니 나에겐 거부감이 들밖에.(나는 어느 새, 메이저를 꿈꾸는 삶에서 마이너의 삶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으로 전락(?)했다.ㅜ) 그래도 이 책을 쉽게 내칠 수 없었던 건 이 책이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출판사를 좋아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인지도가 있어 기회가 주는 호사를 거부한다는 건 여러모로 예의가 아닐 것이다.(책에게나, 출판사에게나, 이 책을 건내 준 모처에게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나 두루두루) 

읽고나니 과연 지면의 제약이 아쉽긴 했지만,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은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누군들 돈 많이 벌고, 입신양명하여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 우리는 태어 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기를 교육 받고 살지 않는가? 우린 그런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느 새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아도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 입신양명과 상관없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다.  

공선옥. 소설을 좋아 하지만 늘 나의 선택에서 제외되는 작가다(하긴 그런 작가가 한 둘인가? 그래도 작년 초, 나는 겨우 그녀의 책을 한 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행복한 만찬>이다). 그녀의 삶을 읽고나니 그녀의 글이 얼마나 소박하고 진솔하길 바라왔는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 작가들은 참 고급이다. 평균학력은 모르긴 몰라도 대졸이요, 재미있다기 보다는 똑똑한 사람도 많다. ......나는 충무로, 종로, 명동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쓰지 못한다. ... 그곳은 내게 사랑도 상처도 주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가 살았고 내가 경험했고 내게 사랑을, 상처를 주었던 곳,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만 쓸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삶의 시골, 삶의 변방, 삶의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한데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나는 마흔 일곱해가 되도록 생의 한데에서 떨고 있다. 내가 안온해 지는 길은, 기술을 배우는 것 뿐이다. 이런 '펜대 잡는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 말이다.(19~20)      
   

하긴, 작가가 없는 말을 어떻게 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럴 작가도 없진 않지만 또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녀의 자기 글을 대하는 방식에 무척 신뢰가 느껴졌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또 어떤가?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약간 섬짓해 지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하랬더니 글을 4분의 3(또는 3분의 2)을 영화 감독 임권택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무척 냉소적이다.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게 서 있어 그 삶을 흔들어 놓을만한 어떤 사람도 사건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임권택에게 깜빡 넘어 가다니!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삶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임권택을 빗대어서 아주 살짝 '나는 이런 사람이오.' 퉁치고 있다. 굉장한 반항아 같다. 나름 매력있다. 

또한 매일 기생충에게 고마워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연구하느라) 우리의 마태우스 서민 교수. 늘 사람들에게 재미와 유익을 전달하고자 설레발(!)계의 절대강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왜 하필 기생충을...?'하는 의문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는 것도 예의는 아닌 성 싶어 참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지금은 기생충을 연구하겠다는 후학들이 늘어나서 좋긴 하지만, 그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정해 버리는 것 같아 흔쾌히 기뻐해 줄 수만은 없다는 그의 심정이 꼭 부모 같다. 어느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 중 자신의 일이 너무 힘들어 내 자식은 나와 같은 길을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잖는가? 그처럼 서민 교수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10년 후에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결정하라고 조언한다니 그의 솔직함에 마음 한켠이 찡해 온다. 만약 의학계에서 예산 삭감들 당한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외로운 분야 중 하나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매일 화장실 가는 한 사람으로써 바랄 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기생충 한 마리가 국가도 구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갈팡질팡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기생충 포에버!다. 

개인적으로 가장 부럽기는 김창남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일로 확대시켜서 사는 사람이다. 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은 일 따로 취미 따로가 대부분이 아니겠는가? 물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김창남 교수 같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취미가 일이라고 생각하면 머리에서 쥐부터 나고, 취미가 취미면 잠시 좋아하다가 마는 그래서 시작해 볼 엄두도 못내는 맹추로선 그저 부러울 뿐이다. 또 그렇기로서는 대중문화 평론가 이영미씨도 비슷한 류에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얼리어댑터인 아버지 덕분에 텔레비전을 일찍 접했고(그녀는 60년대 초에 태어났고, 우리나라 방송 개국도 비슷하게 때를 같이 한다), 그 덕분에 그녀는 '텔레비전 키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뿐 아니라 요즘 소위 '미드'라고 불리우는 <도망자>나 <전투>같은 외회시리즈에 심취할 수 있었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더빙을 누가 맡았는지도 정확히 기억해 낸다. 이름만 들어도 그리운 프라이 보이 곽규석의 <쇼쇼쇼>나, 라디오 드라마인 <아차부인, 재치부인>은 나도 기억하는 프로다(특히 이 두 프로가 종영을 맞을 줄은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못지 않은 얼리어댑터인데 난 왜 이영미씨 같이 못 됐을까 후회가 든다. 하긴, 그녀는 학업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어 자신의 관심을 학업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난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덕에 결국 요모양 요꼴이 됐다. 정말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아닌데. 일찌감치 길을 찾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 그녀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역사를 정리 연구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밖에도, 미술치료사인 박승숙 편을 읽으면 난 그림에는 젬병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란 생각이 들고, 요즘 우연찮게 <언니네 방>(갤리온)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페미니스트인 김신명숙 편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확실히 여성의 문제는 남성의 문제고, 남성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것이 결국 온전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사람이 하는 일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 본다.(솔직히 내가 페미니즘에 이토록 가슴 뛰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항상 대학교육을 모색하는 양희규 씨도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지금의 교육으론 정말 우리 아이들은 올바로 키워낼 수 없다.  

책이 워낙에 많은 사람(17인이면 너무 많다. 7인만 해도 많은 것을)을 다루고 있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애초에 내가 가진 선입견과 달리 하나같이 박수쳐 주고 싶고, 응원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알고보면 외로운 문화전사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일에 다 관여는 할 수 없지만 응원하는데 돈 드는 거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부러웠다. 자신의 삶을 무엇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재간이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 삶이 그들에게로 왔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 삶에로 투신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드는 생각은 나는 내 삶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자책도 하게 된다. 꼭 이렇게 어떤 한 분야에 족적을 남기는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 지금이라도 그 일을 말 없이 부지런히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누가 알아주던 못 알아주던, 읽어 주던 안 읽어주던 자기만의 자서전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그 자서전의 이름을 꼭 '그 삶이 내게 왔다'고 하진 않더라도 그 비스무레하게라도 이름 지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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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이승규 - 세계 최고 간이식 드림팀을 이끄는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지음 / 허원미디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오래 전,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읽었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나 <7막7장>같은 그런 분위기가 난다. 그런 류의 책들이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는 것처럼 이 책 역시도 그렇지 않나 싶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저자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흔히 운이 좋은 사람,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왠지 일회성이며, 자신의 노력 보단 순전히 거저먹기 식의 사람을 가리킬 때 하는 말 같다. 하지만 저자는 정말 복이 있는 사람 같다. 이 복은 거저먹기 식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어느 분야에 들어서든 입신양명을 꿈꾸기 마련이다. 저자 역시 아무나 갈 수 없는 의대를 지원하고 의사로서 훈련을 받았지만 입신양명을 꿈꾸었기에 그러고도 돈 잘 벌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려고 했다.(그래서 선택하려고 했던 게 대장항문 외과란다. 그쪽분야가 그렇게 돈 잘 버는 분야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런데 좋은 떡대와 좋은 스승과 선배를 만난 덕에 외과를 선택했고 나중에 간이식에 최고 전문가가 된다. 만일 그 사람들이 똑같이 돈 잘 벌고 편한 곳을 이끌었다면 오늘 날 명의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타고난 근성과 일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혹독한 유학생활도 이기고 돌아와 학연의 텃세(실제로 그는 서울대 출신이지만 그가 일하는 곳은 고대출신이 많은 병원에서 일했다고 한다)도 다 이길 수가 있었다. 그러니 저자를 두고 그저 단순히 운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운이 좋은 건 딱 한 가지 좋은 멘토를 만나 다른 분야도 많은데 (하필)외과를 선택했다는 정도다. 사실 어찌보면 좋은 멘토도 아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라." 그렇게 말해 주기는 쉬운가? 남의 명운을 그렇게 쉽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단지 그것을 찰떡 같이 알아 듣는 저자가 더 대단한 사람인 줄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개척하고 노력했다. 그러니 그를 어찌 운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복은 스스로가 불러 들이는 것이라고 그런 점에서 그는 복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 본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좋은 사람들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이다. 책 중간 이상을 넘어 읽다보면 저자가 힘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누구는 어떻고, 어떠며, 어떻더라. 뭐 그런 얘기를 장황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특이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 거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어느 분야건 권위자가 되기 까지는 절대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더구나 매번 수술을 해야하는 직업이라 팀워크가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좋아하고, 사람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저자의 겸손과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인 것이다.

그는 자기 분야에 있어서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당시 간이식은 뇌사자의 간을 기증 받았을 때나 이루어지던 것을 한 차원 높여서 생체간이식에 성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다 설혹 인정이 돼 간을 적출을 한다고 해도 수혜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안에 죽어나가는 간질환 환자가 얼마겠는가? 그런데 생체이식은 그런 번거로운 절체를 뛰어넘었고 그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상당한 해결을 보았다고 한다. 이를테면 법으로 금지된 정기매매나 중국 원정수술 등의 부작용 등.

저자는 그 팀에게 이렇게 강조한다고 한다고 한다. “우리는 3차 진료기관이 아니라 4차 진로기관이다. 그만큼 더 열심히 환자들을 봐야한다.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1차, 2차, 3차 진료기관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가 찾아오는 4차 진료기관, 우리 간이식팀은 그런 사명감으로 일한다.(109p) 병원이 자신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가르치고, 이런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럽고 믿음이 간다.

현재 우리나라의 (적어도 아산병원의 팀이다 하여 ‘아산 드림팀’) 간이식 수술성공률은 96%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보다 먼저 간이식 수술을 시작한 미국, 유럽, 일본 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특히 혈액형이 달라도 그 수술이 가능한 것을 보면 가히 간이식의 혁신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것으로 볼 때 목에 힘을 줘도 될 텐데 저자와 아산 드림팀은 나머지 4%에 또 연연해 한다. 확실히 전문가는 만족을 모르는 완벽주의자다. 그것은 ‘제4차 진료기관’을 감당하고픈 그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책은 편안하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외과의사의 직업병이 무엇이고,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 수술 현장들을 소탈하면서도 흥미롭게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의 의료현장은 언제나 희비가 엇갈리는 그야말로 ‘인간극장’이라고 말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살아보겠다고 원정 수술도 하고, 간이식 수술을 하면 조금은 젊게 살 수있다는 말에 실제로 나쁘지도 않은 간을 수술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우리나라의 이 못돼먹은 건강에 관한 지나친 관심은 여전하다 싶다. 또한 가족 간의 간이식을 성사시키고도 수술 하루 전에 증발해 버리는 씁쓸한 일도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미국이나 선진 유럽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본인이 장기기증의 뜻이 없다는 의사표현이 없는 한 장기기증은 국민 저마다 하는 것으로 의무화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기 주민등록증에 장기기증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판이한 양상이다.

이렇게 아쉽고 눈살 찌푸리는 사례도 있지만 훈훈한 사례도 있다. 특히 간질환으로 수혜를 입고 그 때문에 또한 세상을 등져야 했지만 남편의 유언을 따라 지금까지 3억을 기증한 어느 부인의 이야기. 또 관련기관이 만들어져 자칫 죽을 뻔한 사람들이 살아난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정말 이 맛에 의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다.     

처음에 이 책은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이 읽어도 좋다. 간에 대한 의학상식을 겸해서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더구나 아직은 연초가 아닌가? 연초에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또 한 해 또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은 힘이 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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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역사는 승자 독식의 기록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것은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그렇다 보니 그렇게 증명된 것처럼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양지의 역사'는 우리가 접할 기회는 많지만 '음지의 역사'는 접할 기회가 없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양지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음지의 역사가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장되어 갔는지를 우리는 알리가 없다. 

누가 역사를 논할 때 거대담론만을 논하며 양지의 것들만을 논하라 했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칫 가리워져 잊혀질 뻔한 것에도 빛을 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또한 역사 기술자가 응당해야 할 몫은 아니겠는가? 이 책의 저자 폴 콜린스는 똑똑하게도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찾아 자신만의 독특한 일인칭 방식으로, 13명의 똑똑하나 바보스러운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13인의 인물들은 각 분야에서 한때는 남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요즘 시쳇말로 대박 인생을 살다 끝끝내는 역사속에 스러져간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의 쓸쓸한 말로를 보는 것은 확실히 유쾌하지마는 않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다. 좀 더 엄중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들도 알고 보면 한때는 인류 문명에 이바지했던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자멸을 했건, 시대가 그들을 뒷받침 해 주지 못했던 역사는 공정할 필요가 있고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이 책을 그다지 성실하게 읽어내지는 못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번역의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남의 나라 역사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의 편협함이 문제인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낮선 느낌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읽다보면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을 발견을 하게 된다. 그렇게 역사 속에 가리워진 사람들 그래서 누가 기억해 줄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의 역사도 사료적 가치로 인정하고 보관해 놓는 미국이란 나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꺼내 내놓을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물론 그도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하다못해 여기 소개된 13인의 초상을 소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점은 우리가 본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를 말할 때 이인자, 패자 즉 역사적 음지의 사람들은 기억도 알지도 못한다. 그들이 잘 했으면 어떻게 잘하고, 못 했다면 어떻게 못 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한 채 사장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 반면교사의 의도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성공에 목마르고 사람을 단죄하려는 속성 때문에 그것에 부합되는 사람들만을 부각시켜 표적을 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도 아니면 모라는 편협된 사고 방식으로만 역사를 주입 받는 것이다. 그래가지고서는 창의적인 국민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라도가리워진 것에 애정을 보이고 좀 더 풍부한 역사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새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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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1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링크 타고 찾아서 흥미있게 소개글을 보다 리뷰 중에 스텔라님이 보이더라구요. 반가워서 와봅니다.^^

전 책 속 인물 같은 사람들을 보면 왠지 그냥 괜히 응원하고 싶어지더라구요.

stella.K 2010-08-14 14:27   좋아요 0 | URL
에그, 고맙습니다. 이책 저는 좀 그랬지만
과학쪽 그것도 과학사쪽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괜찮게 읽힐 것도 같아요.

주말인데 루체님 뭐하고 지내시나요?
휴일까지 모쪼록 즐겁게 보내세요.^^